그런 것들보단 역시 네가_학생
널 바라보다
봄이 끓어넘쳐
벌써 여름이고
널 생각하다
가을이 식어버려
이내 겨울이네
날씨따라
계절따라
끓어넘치기도,
때론 식어버리기도
맘고생 심했지만
멀고 멀었던 발자국 끝에
선물 하나 웃고 있다면
은하수 한바퀴 둘러가는 여정이라도
웃으며 배낭 챙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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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꽃_학생
오래된 꽃길 위에 그대 홀로 덩그러니 두진 않을 거에요.
그대도 헌 꽃들 사이에 나 혼자 외로히 남기지 말아 주세요.
그렇게 외로히 억겁의 시간이 지나면 심장을 식혀버리던 찬 눈물 한 줌이
가장 뜨거웠던 꽃의 기억이 되어 버릴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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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꿀단지, 나가야 할 좁은 방_학생
꿀이라는 속삭임에 녹아
그 꿀단지 든 방안에 들어가
나를 가두고는
단지에 구더기 몇 마리 생겨도 몰랐고
꿀이 상해가도 모르다가
결국 알아차렸을 땐
잠구었던 자물쇠에 녹이 슬어
열쇠도 안맞아.
보름 정도 방 안에 틀어박혀 며칠을 단지만 바라보다
가득히 풍겨져버린 꿀 내에 헛구역질 몇 번 할지도 몰라.
그러다 지쳐 얼굴만한 창틀에 기대어
바깥 세상 바라보며 방에서 나왔다는 착각을 해도
어느 날, 어느 순간 가끔 방 안을 다시 둘러보게 된다면
그 달던 꿀이 생각나 결국엔 눈물 맺혀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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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의 낮에서 밤까지_학생
사랑합니다.
말로써는 다 못하니
그대를 만나
진실된 거울로써 아름다운 그대 모습 비춰드려 미소 띄우겠습니다.
글로써는 다 못하니
그대를 보며
생그러운 노래로써 그대 미소 들려드려 웃음꽃 한 송이 선물 드리겠습니다.
아름다운 날일테니
멋있는 걸음으로 그대 앞에 서겠습니다.
화창한 날일테니
사랑스러운 향기로 그대 모습 드리워주세요.
그 밤부터 그대 집 앞 오솔길엔
나와 달맞이꽃 한 송이 피어 그대 걸음 맞을테니
그 한 송이와 나를 분위기 있게 찍어 행복한 우편과 내게 실어보내주세요.
그 밤에는 마주잡은 두 손 위에
휘영청 밝은 보름달 드리워있을테니
고즈넉한 목소리로 달빛이 아름다워
달빛에 반한 서로의 눈동자가 눈부시게 어여쁜 달이 되었다고 사근히 말해주세요.
그렇다면 나는 당장 사랑에 녹아 미스티블루 한 단이 되어
그댈 향한 나의 마음 훤히 보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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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가을 아침_학생
늦가을 어느 날, 눈을 뜨자마자 몸이 베베 꼬여 침대에서 한 걸음도 바깥으로 나가기 싫어
어젯밤에 읽다 머리맡에 펼쳐두곤 눈꺼풀 감아버렸던 만화책을 들고 뒤척거리다
2권을 찾아 책상을 향해 고개를 돌린 내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사라진 과자 부스러기들과 필통에 들어간 어수선했던 필기구들,
바닥을 뒹굴던 만화책들이 가지런히 꽂힌 책장.
시계를 살펴보니 벌써 정오가 다 되었기에
요깃거리 찾아 부엌을 어슬렁거리다 부스스한 눈으로 바라 본 냉장고 옆, 식탁 위에
어제 쳐둔 갈색 커튼의 누리끼리한 빛을 받아 더 노란 유자 한 통과
유자 뒤 어두운 그림자에 더 검은 보온병과 한 데 담긴 과자들, 그리고 냉장고 속 반찬통들.
콩자반 옆 남은 과자 세 조각 집어들고 거실로 향한 내 눈길엔
가지런히 개어진 빨래와
예쁘게 정돈된 선반 위 아기 천사들, 그리고 내 어릴적 사진들.
깨끗이 비워진 쓰레기통과
위치가 달라진 진공청소기, 그리고 청소기 옆엔 처박혀있던 대걸레.
화장실엔 낯선 샴푸와 칫솔 세트, 그리고 하얘진 욕조.
현관엔 주욱 정렬된 나의 몇 안되는 신발들, 그리고 옆에 걸린 새 구두주걱.
베란다엔 싱그러운 선인장, 널려진 아직 축축한 빨래들, 어머니의 흔적 남은 세탁 비누.
집 안을 살펴보다 퉁명스레 나온 말은 겨우, 에이 아침부터 찾아오지 말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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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내 첫 시_학생
초등학교 1학년
나는 내 생에 처음으로 시를 써.
이제 와서 그 즈음 비슷한 시기에 썼던
운동회와 바다 중 어느 것이 내 첫 시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 편 쓰고 나니 즐거워 다시 또 펜을 잡고선
내리 세 편은 쓴 듯한 기억이야.
담임 선생님께선 다 쓴 시 고이 받아
반 뒷편 초록이 연두같은 게시판에 걸어주셨더랬지.
아무 이유 없어도 내 시가 게시판 한가운데에 걸려서
하루종일 왠지 기분도 좋고 시도 좋았지.
그 날 하루 내내 내 시들만 뚫어져라 감상한 것 같아.
그게 아직도 기억 저편 사랑방에서 손님을 받는 걸 보면
난 그 때부터 시를 짝사랑해왔는지도 몰라.
실력이 안되어도, 너무 재밌어서
가끔은 추상적었고, 때로는 자연적이었고, 언제는 로맨틱했던
내 짝사랑은 벌써 9살이지.
앳되고 어린 복숭아처럼 부드럽고 하얗던 내 짝사랑은
벌써 내 첫 시를 쓴 나의 나이보다 많아져버렸고,
이제 조금은 아름다운 사랑을 쓸 수 있게 되었는지도 잘은 모르지만
꽃을 그리고, 아이를 그리고, 바다를 그리고, 친구를 그리다보면
언젠가 다시 한 번
손톱에 예쁜 봉숭아 물들인
8살 꼬마 소년의 붉고 두꺼운 입술 위로
너무 푸른 바다 위에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뛰어노니 행복하다는 짝사랑이 태어날거라 믿어.
성명 : 심재혁
이메일 : tlawogur7@naver.com
HP : 010-3333-4202
좋은 결실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