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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건강 상 문제와 아울러
약 1개월간 수필등단 준비로 활동이 미비하였음
혜량있으심 기대합니다.
7번째 개척한 문단에서 습작의 수필이 두번째 당선의 영예를 얻음과 동시 자동 등단으로 경제적문제에서 해방되어 등단하게 되어 무척 즐겁습니다.

[당선작]



제목 / 초등학생의 첫 펜팔

초겨울 12월 중순이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한 초등학생이 등교를 위하여 어린아이 여린 볼 밤샘 추위 언 것 같이 붉은색을 띠는 흙벽돌을 힘들게 붙잡고 있는 창호지 문을 오른손으로 밀어 열을 때였다. 얇은 돌 위에 앉자 서로 뒤엉겨 추위를 이겨내던 검정 고무신을 향해 발을 내려놓을 때였다. 검정 고무신을 이불 삼아 꼽추 잠자던 찬바람까지 이때라며 벌떡 일어나 어린 가슴에 안기자, 나 자신도 모르게 “어~이, 추~워” 외침과 함께 어깨가 움츠려졌다. 곧바로 가족들의 “빨리 문 닫아!”라는 합창 소리에 묻지는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내 음성을 등 뒤로 자세를 바로잡자, 볏짚으로 느타리버섯 모양의 지붕 옆 하늘 향해 세워진 굴뚝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로 붉게 충혈된 두 눈에 눈물 가득 찬 눈으로 등교하였다. 아마 내가 한글을 막 깨우쳤을 초등학교 2학년의 겨울방학 종업식 며칠 전으로 기억된다.

유년기인 60년대는 재래방식의 일차 산업의 주축으로 6, 25전쟁으로 붕괴한 산업의 육성과 개발을 목적으로 이차 산업인 제조업의 초기 상태의 열악한 경제 여건이었다. 따라서 현재와 같은 유치원 제도가 없었을 뿐 아니라, 선행학습제도 또한 없었다. 따라서 누구나 초등학교 입학 후 한글을 배움이 공통적이었다. 나 또한 2학년 때 한글을 깨우친 된 것이다.

당시 우리 고장은 시내버스가 오전과 오후 하루 2회 운행되는 시골이었다. 하여 외출이나 방문객이 버스를 놓치기 일 쓰였다. 따라서 외출과 방문객은 하루 이상 충분한 시간의 계획이 필요한 실태였다. 이러한 생활에서 소통을 위하여 편지보다 좋은 방법이 없음을 인지하신 담임선생님께서 우리 사고의 폭을 넓히는 목적으로 읍내 큰 학교 학생과 편지 교환을 전개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담임선생님께서 반 친구들 대상으로 한글 받아쓰기 시험을 통하여, 한글을 깨우친 순서대로 이미 취합된 인근 광천읍 소재의 모 초등학교 학생들 편지를 상품으로 주셨다. 이러면 누구나 이성과 연결됨을 희망할 것이다. 나 또한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 예쁜 여학생의 편지가 내 손에 쥐어지길 기대한 사실이다. 차례가 되어 내 호명에 따라서 앞으로 나가 편지를 받으면서 봉투를 보던 순간 나와 같은 남학생의 이름이 쓰여 있으면 확인과 동시 나의 기대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실망한 표정의 얼굴로 손에 든 편지의 봉투를 열자, 편지지에 연필을 꾹꾹 놀러 가족과 자신의 소개가 있었는데, 아버지께서 도자기를 생산하시어 판매까지 하신다는 소개에 끌리어 현재까지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이유일 것이다. 아울러 지속적 관계 유지의 희망에 따라 곧바로 답장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막상 쓰려니까 편지지가 너무 넓었다. 그래도 매월 두 번 정도 교환하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때마다 어렵사리 완성된 편지를 가슴에 품고 우체국으로 달려가 우표를 샀다. 건너 받은 우표 뒷면에 즉시 혀끝 침을 뭍 이어 주먹 손으로 꾹꾹 힘을 주어 눌러 붙인 다음 부끄러워 밖으로 나왔더니, 우체통의 키가 나보다 컸다. 그래서 까치발을 서 편지를 넣자 곧바로 배고픈데 잘 먹었다는 인사하는 듯 우체통 안에서 퉁 하는 엷은 소리가 가슴까지 울렸다. 이것이 내 인생에서 처음 쓰는 편지였다.

​그 후 며칠 지났을까? 하교하기 무섭게 “엄마 내 편지 왔어?” 묻는 말이 하교 인사였을 뿐 아니라 집배원 아저씨가 지나갔나? 아니면 아직....... 하는 생각을 하며, 그 어린 마음의 간절한 기다림이 떠오른다. 이후 서로 생일이 다가오면 친구의 생일 선물을 무엇을 보낼까? 고민과 함께 내 생일 다가올 때면 과연 선물이 무엇이 일까? 기다림 속에 설렘이 일었다. 이렇게 우리가 크리스마스실을 우표 옆에 나란히 두 번 붙였을 때까지 유지되었던 것 같다. 우리가 같은 군내이므로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펜팔의 범위 유지하기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만나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만 가슴 한편 남았다. 만약 우리 둘 중 한 명의 요구와 노력만 있다면 만남은 물론 그를 통하여 최소 안부라도 교환함으로 이름이라도 기억하며, 어쩌다 떠오를 때 부를 수 있었을 것을 그러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제목 / 어렵게 입은 군복

우리 고장은 서해안 지역이기에 고졸까지는 대부분 방위를 복역함이 대부분이었다. 만약 현역으로 복무하고 싶으면 지원하여야 했다. 그러므로 현역 복무하는 선배들이 얼마 안 되었다. 그런데 나는 대학 졸업과 즉시 파란색으로 인쇄된 집 영 영장이 집으로 나라 왔다. 씁쓸한 마음으로 뜯어보니, 3월 18일 강원도 춘천 102보충대로 집결하라는 내용과 12,000원 상당의 교통비 소액환으로 기억된다. 우체국을 방문하여 교환한 현금으로 집안 어른 방문하는 경비로 지출하며 3월 10일까지 동네 어르신들의 인사를 마친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부터 1주일간 학교별 동창생들의 송별회로 코가 삐뚤어지라 술독에 빠져 생활하였다. 마침 갈산면 동산리에 사는 중학교 1년 선배이자 대학 동창인 Y와 입영 동기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동반 입대의 상의를 목적으로 입대 하루 전 동기 집을 방문하던 중 그동안 누적된 주독 때문이었을까? 무엇이 그리 급하였던가! 버스에서 내리기 무섭게 버스 앞쪽에서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퍽~‘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 천골 부위를 강력하게 때리는 통증을 느낌과 동시 내가 까치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 같이 하늘을 날며, 내 몸 밑으로 진 검은 도로가 쫓아오고 있었다. 그곳 정류장은 읍내에서 나오는 승객들이 하차가 많았지만, 반대로 읍으로 들어가는 차는 하차 객이 없고 승차 객만 있기에, 기사의 편의상 앞쪽의 승차 문만 열어주었다. 그래서 나도 앞으로 내리자마자 버스의 앞쪽 횡단보도 건넜다. 그때 뒤쪽에서 정차한 버스를 추월하는 승용차와 충돌을 인지하면서 가속도가 붙은 사항에서는 측방낙법이 부상을 줄이는 최고의 방법임이 떠올라 공중에서 몇 번 몸을 회전하더니, 반대쪽 차도 약 5m 지점에 떨어졌다. 즉시 일어나니 나를 받은 승용차의 조수석의 문이 안쪽으로 붙은 듯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즉시 P 정형외과로 후송되어 검사 결과 다행히 골절 없는 단순 타박상 진단을 받았다.

그다음 날 Y와 함께 비둘기호 열차 편으로 홍성역을 출발 서울역에서 환승하여 땅거미 질 무렵 춘천에 도착하였다. 현장에서 눈에 튀는 이발소에 나란히 들어가 앉아 장발이던 머리 박박 밀었다. 서려 움일까? 아니면 구속의 생활 압박과 두려움일까? 둘 중 어느 감정이 큰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한 손에 10홉 소주 한 병과 구운 오징어 한 마리를 들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춘천 시내 뒷골목을 휘청휘청 방황할 때였다. 우리의 모습이 꼴불견이었던가? 가로등들이 한결같이 불그스레한 내려 보는 눈빛이 문어 대가리 물들이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마치고, 102보충대 입소하여 첫날은 시설 이용의 안내와 안전교육을 받았고, 다음 날 아침 식사 후부터 신체검사가 실시되었는데, 혈압측정 코너에서 문제가 생겼다. 나의 혈압 수치가 160이라 하였다. 곧바로 나는 안정을 위하여 간이 야전 침상에 눕혀졌으며, 나만 관리하는 전담 위생병이 배치되어 수시 측정하는 과정에, 검사를 마친 동료들은 군복 등의 보급 받는 부산한 분위기로 하루를 보냈다. 그다음 날 3일째의 아침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녹색으로 치장한 버스 몇 대와 군용트럭(60)들의 요란하게 연병장의 대기를 찢는 시동 소리가 긴장감을 높였다.

곧바로 국방색 군복 차림에 더플 백을 등에 맨 동료들이 기간병들의 구령에 따라 자신들이 배치된 사단 훈련소로 출발하는 검정 전투화 발소리에 놀라 옷깃에 숨어있던 군번줄의 은빛 반짝임 막사 외벽 붙박이 된 두 눈이 시렸다.

점심 식사를 마쳤을까? 전담 기간병이 “군의관의 호출이다! 따라 앗!”하였다. 뒤따르자 어느 사무실로 안내되었다. 그곳에 들어서니 국방색 군복 위로 하얀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를 본 그가 “너 혈압이 너무 높으니 귀가 후 육 개월 후에 다시 오라!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친구들과 송별회 받은 것은 그렇다 하여도, 동네방네 떠들며 인사하였기에 되돌아가게 되면 동네에 흉흉한 소문을 어떻게 감당할까? 눈앞이 깜깜해졌다. 곧바로 내가 못 갑니다! 하자 군의관이 이 상태로 훈련하면 너 훈련 도중 죽는다! 하는 말에 힘을 잃고 고개를 숙어졌다. 그때 책상 위 중령의 계급장이 붙은 모자가 놓여있을 보았다. 그 즉시 내가 ”어~우리 아저씨는 대령이신데“라고 하였더니, 군의관이 근무지가 어디? 하고 묻기에 내가 ”부모님 말씀으로 육군본부 인사과장이라 하셨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더니, 군의관이 옆에 있던 기간병에게 ”군복 보급하라! 라는 명령받은 기간병을 따라 재물 창고에 도착하니, 기간병이 "너 제일 마지막이라서 빅 사이즈밖에 없으니 훈련소에서 바꿔 입으라" 하며 던져주었다.





제 목/ 요양보호사 경험

어제의 피로일까? 오서산 봉우리의 골짜기에서 잠자던 태양이 깨어났다. 맞은편 원룸 베비앙 건물과 포시즌 마트 건물 사이에 걸터앉아 어두움을 붉게 태워 밝아졌다. 이와 동시에 긴 밤을 꼿꼿한 자세로 서 있던 가로등들 내려 봄 고단한 눈으로 껌벅이는 피곤함에 지친 눈빛 하여 내려 보던 어느 날이었다.

아내가 매주 월, 수, 금요일 3회 재활 통원치료 예약하여 치료에 임하고 있기에 정확한 일자는 기억나지 않으나 아마, 금요일로 기억된다. 예약에 따라서 외출준비를 마친 우리는 출입구에 끝 선 맞춰 나란히 누워 늦잠 자는 운동화를 흔들어 깨웠다. 그때마다 아침 등굣길 추녀 밑 제비 둥지 안에서 어미에게 크게 입 벌려 먹이를 받아먹던 새끼 제비들이 떠올랐다. 곧바로 크게 벌린 두 입에 빠르게 두발을 나누어 꾹꾹 짓눌러 배 채웠다.

뿌연 한 미세먼지가 자욱한 아침 햇살을 뚫고 달려 목적지에 도착, 아내가 수작업치료를 마치고, 1층에 내려와 보행 기능 훈련치료실에 입실하고, 나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독서를 하던 때였다.

처음 뵙는 70대 중반 어르신이 다가온 인지한 내가

"안녕하세요? 앉으시죠!" 인사를 하면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는 인천의 모 공장의 관리직에서 퇴직하여, 덕산면에 귀촌하여, 부부 동시 요양보호사시험에 응시하여 부부공동 재활 치료 동행하는 요양보호사 활동 중이라고 설명"하였다.

그 후 내가 나도 사실대로 "뇌경색 후유장해가 있던 아내의 재활 치료받고 있습니다." 설명하자

곧바로 그분께서 "요양보험의 가족 요양제도를 아느냐?" 묻으며, "요양보호사 자격 획득하면 가족 요양 급여 제도가 있다며 자격증을 꼭 따서 신청하라." 하셨다.

당일 귀가 후 즉시 전화번호 책에서 확인한 결과 본 군에는 2개 업소가 운영됨을 확인하였다. 그런데 나는 신체적 중증장애의 여건에 따라 응시 자격과 교육 참여 형태 등을 전언으로 문의하였다. 이후 '홍성 간호학원 부설 요양보호사 양성 원' 선택하여 등록하였다.

수강 계획에 따라 첫째 날이었다.

학업을 마친 후 33년 동안 굶주림에 큰 입 벌린 책가방 속에 두툼한 교재로 든든한 아침밥을 먹이고, 책가방을 등에 메니 내가 마치 중학생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구형 건물 계단을 3층에 오르자, '요양보호사자격'에 도전을 위하여 5, 60대 늦깎이 원생이 열네 명, 그리고 40대가 세 명, 막내인 30대 한 명으로 이중 생계 문제로 3회 떨어진 4수생 한 명 있었다. 더욱이 중국교포가 두 명도 있었다. 열일곱 명의 여성분 중에서 내가 청일점으로 박수의 환영도 무색하게 4주간 매일 8시간씩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이론과 실기를 학습하면서 나의 잔존 기능을 확인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 후 학원의 계획에 의거 실습을 위하여 아홉 명씩 두 개조로 편성되었다. 그중 우리 조는 먼저 재가센터에서 1주일 3세대를 방문하여 실습하였다. 가호 방문을 통하여 서로 경제적 여건은 다르나, 핵가족화 현상에 따라서 자녀들은 모두 떠나고, 빈 둥지에서 외롭게 홀로 생활하심이 공통점이었다. 이때 식사와 세면과 목욕 등 기본적 자기관리 유지를 못 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그중 어르신께서는 자제들이 주말에만 방문하여 평일에는 텅 빈 집을 홀로 지킴이 외롭다! 특히 복용하는 약이 떨어졌거나, 월말 공과금 납부하기 제일 어렵다. 하소연하시며 반기시는 분도 만났다. 가족과 이웃의 단절된 외로운 생활 하심을 느꼈다. 방문을 통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눔은 물론 요양보호 서비스 종류와 범위를 설명하는 등 외출도 함께하여 단골 분식집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함께한 기억이 있습니다.

1주일이 지난 후 군 생활 시절을 제외하고 이곳을 떠난 적이 없이 생활하였거늘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다. 바로 '결성면 박철마을'이었다. 그곳에 소재한 요양 시설 방문을 위하여 고등학생들로 만원인 통학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버스에 오르자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많은 학생을 헤집고 내리나 걱정이 앞섰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 또한 초행길의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의 첫날로 기억된다. 출입구 앞에 근처에 앉아 있었다. 차내 안내 방송에 따라 하차를 위하여 벨을 누르고 통로에 입석 승객 틈을 비집으며 열린 문에서 한발을 땅에 내린 상태였다. 아마 버스 안 만원인 승객으로 운전기사가 룸 밀러와 백미러로 나의 동작의 부자연성을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 내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버스의 출입문이 닫으며 나의 오른쪽 팔을 물고 서서히 움직임에 깜짝 놀란 내가 큰 소리로 "아직 못 내렸어요~" 외쳤다.

​이렇게 아찔함으로 첫날 신고식을 마치고, 3층 20여 분의 어르신 입소한 곳으로 배치되었다. 여섯 분을 제외한 열네 분은 거동을 못 하시어 침대 생활하셨고, 더욱이 거동하시는 여섯 분 중 네 분은 치매로서 가정에서 가족이 돌보다 지쳐 자녀들이 이곳에 입소하신 분이었다.

어르신들을 관찰하면서 87세와 84세의 고령이시면서 자기 관리하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또한, 중증 장애인을 부모로 둔 아들과 딸은 얼마나 부담일까? 하는 생각하다 보니 어느덧 다시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그동안의 격정을 앉아있던 자리에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내리려 하자, 내 옆에 서 있던 남자 고등학생이 정지 버튼을 눌러주더니, 하차까지 도와주었다. 그러므로 무사히 내릴 수 있었다. 고마움 마음을 실은 버스가 아침잠에 취한 듯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휘~청 휘~청 꼬리를 흔들며 눈앞에서 멀어져가자, 그 빈자리 소나무의 피톤치드가 바람결 따고 흥겨운 춤을 추다

Who's 靑雲

profile

독서와 학습을 통한 심리상담사, 인권강사, 요양보호사 경험의 결합,평생학습센터 강사로 사회교육에 참여함은 물론 전국 4개소 문단의 회원 및 필진으로 수필과 소설 그리고 시를 발표하는 문학작가활동 중입니다.


2008년 07월 10일 : YAHOO! KOREA아름다운 대한민국을 찾아주세요! 동해안수기 대상 수상

◉ 2011년 05월 26일 :〈KB국민은행〉KB국민 So want(소원)성취 프로젝트 당첨

2016 03월 20일 :지필문학협회지필문학 0458기 신인문학상 작가(시 부문) -님의 눈동자,수줍은 마음의 동백꽃,수선화 새싹의 아우성당선 및 등단(발표)

2017년 05월 31일 :)한국 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민들레 24() -가로수에서 얻은 깨달음발표

2017년 09월 29일 :문학광장67기 신인문학 작가(수필부문)당선 (등단포기)

2017 12월 02일 :도서출판 시산문> 계간 웹북 38() - 첫눈 내린 아침발표

2018 03월 15일 :도서출판 시산문> 계간 웹북 39() - 「화과동시(花果同時발표

20180420:)한국 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민들레 25() -석류꽃 핀 집발표

20180420:)한국 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민들레 25수필 -부부장애인의 재활 생활발표

2018 09월 01일 :〈마중문학> 계간 40() - 「백로의 물장구발표

2018 12월 01일 :〈문학의 봄『계간 049호() -「마음의 산,「홍시 먹은 간장독발표

2019  0301:계간 문학의 봄  50() -개나리꽃 전투 ,키다리 백합화발표

20190601: 계간 문학의 봄  51() -떠남과 만남 ,여름철 손님발표

2019  06월 10:『반간 솟대평론 () -「백지 편지 ,「쥐불놀이발표

20190612: 『시마詩魔』 창간호 (시) -「꽃길 걸음 」발표

20190615:)한국 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민들레 26() -생일선물발표

20190615:)한국 민들레장애인문학협회민들레 26수필 -최고의 여행발표

20190901: 계간 문학의 봄  52() -「억새꽃 인사 ,「가을 아침 햇살발표

2019년 12월 25일 :  『시산문 테마수필』양철지붕 집 세채 공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