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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 11:47

《 여차순 할머니 》

조회 수 62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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찜질방에만 가면 보이는 그가 그날 따라 오래 내 시선 속에 머물렀다.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찜질방을 전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찜질방의 한켠에 자리잡은 그는 매트 두 장을 깔고 또 덮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스러워 나는 그 후로 찜질방에만 가면 습관적으로 그를 찾게 되었다.

어느날엔가는 매트 두 장을 깔고 덮고 자는 그의 흰 머리카락이 유독 눈에 들었다. 그 흰 머리카락을 오래 보고 있노라니 문득 경주의 일들이 생각났다. 나는 총각시절 경주에서 소년소녀가장 8세대와 무의탁노인 두 분을 소위 말하는 봉사활동이란 명목으로 이웃하며 살았다. 경제적으로는 턱없이 부족해도 젊음을 재산삼아 대출까지 내서 그 이웃들을 돌보곤 했다.

하루는 가끔 들리는 사찰의 노보살님께서 깨끗하게 빤 모시윗옷하나를 건네고는, 나와 이웃하는 할머니 한 분께 전해드리라고 당부하였다. 그 사찰은 평소에도 사람들에게 먹거리며 입을 거리를 챙겨주는 곳이었다. 나는 그 모시윗옷을 할머니께 전했다. 하지만 며칠 만에 할머니는 그 옷을 불에 태웠다고 하였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마음속에 남아있는 아픔 중의 하나다. 그 할머니는 평생 가족도 없이 혼자 지내시는 것을 동네에서는 모두 알고 있었지만, 결국 그 누구도 할머니의 가족이 되진 못했다. 할머니께서 거주하시는 동네 사람들은 나를 보고 이제 할머니를 찾지 않는 게 좋겠다고 당부하였다. 할머니가 가지고 있는 70여 평의 집터를 마을에서 기부 받아 동네에서 돌보겠다고 하니 안심은 되었지만, 내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찜질방에 앉은 것처럼 눅눅했다.

매주 한 두 번 들릴 때면 그렇게도 아껴 주시던 할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당신이 죽으면, 수년 동안 잊지 않고 찾아와 준 목이한테 이 집을 줄 것이라고 신신당부까지 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날에는 도자기 작가인 친구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 뵌 일이 있었다. 할머니는 마침 혼자 식사 중이셨다. 나는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할머니 밥 줘요. 배고파요.”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마냥 찌그러진 노란 양푼에 김치와 밥 그리고 고추장을 넣어 비벼먹다 말고는 자신이 쥐고 있던 고추장 묻은 숟가락을 내밀었다.

"자 묵으라."

할머니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도자기 작가였던 친구는 어떻게 그걸…….”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도자기작가 친구의 말없음은 오히려 나와 할머니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었다. 나는 매주 할머니를 모시고 면소재지에 있는 보건소에 다닐 때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약을 이것저것 타오셨다. 면소재지에 나갈 때면 꼬깃꼬깃 감춰두었던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흔쾌히 꺼내어 고기를 사오시곤 하였다. 면소재지의 푸줏간에서 사온 소고기는 핏기가 가시기도 전에 불판에서 이글거렸다.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신의 이가 불편하여 고기 한 점 오물거리는 동안 내가 다 먹게 된다는 것을.

동네 분들의 이기적인 부탁이기도 하지만, 이제 할머니를 그만 찾아오는게 좋겠다고 판단하여 할머니께는 회사를 멀리 옮기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고 돌아서서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동네 사람들에게 할머니를 부탁드리고 나오는 길은 나에게 천산북로보다 더 멀고 아득했다.

옮기지도 않은 회사였기에 이 후에도 가끔씩 그 길을 지나면서 먼발치에서 할머니의 안부가 궁금해서 차창너머로 모습을 보고 돌아오곤 했다. 할머니를 찾는 일도 뜸해질 즈음 어느 날인가 할머니 집을 지나는데, 폐가처럼 느껴질 때는 이미 할머니는 이세상분이 아니셨던 것이다.

지금 내 앞에서 매트 두 장을 깔고 덮은 저 흰 머리카락이 내 기억에서 오래 씹힌다. 아흔이 넘은 연세에도 늘 깔끔 떨었던 할머니가 그때 그 모시윗옷을 태우신 것은 어쩌면 사찰보살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인상은 제법 말쑥하고 성품은 꽤 조용해 보였다. 앉아있을 때는 몰랐지만 일어서서 걸을 때에는 거동이 꽤 불편해 보이기도 하였다. 찜질방으로 이어지는 짧은 길을 걷는 동안, 이 길이 그에게는 천산북로와도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매트를 깔고 덮는 다는 것은 바닥의 생을 이해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찜질방이 아무리 시끄럽고 더워도 아무렇지 않게 잠을 청하는 저 힘은 인생여정의 고난의 깊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찜질방에 앉아 찐 계란을 머리에 죽비로 내려치며 목이 메도록 그 풍경을 곱씹는다. 친인척 한 명 없이 혈혈단신 평생을 살아오신 여차순 할머니의 맑은 모습이 내 마음의 한 장 이불이 되어 찜질방의 온기로 전해온다지금은 아주 먼 곳에 계시지만, 할머니의 응원을 받아 깨끗하고 포근한 이불 한 장 장만해서 이해가 가기전 이름 모를 어르신께 사람의 온기를 선물해 드릴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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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뻘건눈의토끼 2019.02.04 13:45
    고추장 된장 쌈장 비벼드시는 건 한국식인데 거기데다가 마요네즈를 발라 드시는건 어떨까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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