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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의 향기

   


 

문을 열고나오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비 사이로 바다는 회색빛 얼굴로 꿈을 꾸듯 잠잠하다. 발밑으로 느껴지는 흙의 부드러움은 비를 머금어 촉촉했고 길을 따라 서 있는 나무들도 부드러움을 머금고 있다.

하루 중 이 순간이 참 좋다. 바다를 마주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아직도 낯선 이곳에서의 하루하루를 버티어낼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이 순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숙소에서 나와 카페까지 걸어가는 채 5분도 되지 않는 이 순간이. 변함없지만 늘 다른 얼굴로 마주하는 바다가.......

엄마, 나 지금 퇴근해. 근데 나 목요일에 화보 찍어요. 회사에서 주력하는 제품 홍보하는데 제품하고 연구원들을 촬영하는데 나도 참여하게 되었어. 그래서 강남에서 메이커업도 받아, 나 머리 괜히 잘랐나봐.“

아이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잘 되었네. 너는 머리 짧아도 귀여워. 바로 집으로 가는 길이야?”

, 나 지금 출발해요. 집에 먹을 게 뭐 있어?”

그럼 집에 도착하면 전화해. 운전 조심하고.”

아이와 통화를 하는 중에도 계속 주변을 맴돌던 남편의 궁금함을 풀어주느라 나는 아이와의 통화를 이야기로 풀어놓는다. 먼눈으로 회색빛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제주시 북동쪽의 해안로를 따라 가다보면 바다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삼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그 곳에 있으면 왼쪽부터 시작해 고개를 완전히 돌릴 때까지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마음이 반짝일 만큼 멋진 풍경을 선물한다. 그에 비해 이곳을 찾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남편이 이 카페를 운영하게 된 것은 작년 가을부터였다. 2년 전, 느닷없는 퇴직으로 긴장된 날을 보내던 남편에게 선배로부터 제의가 들어왔고 남편은 한동안 고민 끝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건설 일을 하고 있는 선배는 제주도에서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리조트 앞쪽으로 카페가 있었고 그 카페 운영을 남편에게 맡아서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반면 남편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결국 남편은 선배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작년 10월초에 내려와 일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한다는 것부터 내키지는 않았지만 딱히 일이 잡히지 않아 더 이상 만류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저 손님처럼 왔다가곤 했었는데 겨울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일주일에 반은 제주에서, 나머지 반은 집에서 보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러니까 한 달에 비행기를 여덟 번씩 타고 다니는, 그 뿐인가? 집에서 나와 제주 카페에 도착하기까지 거의 일곱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버스에 전철, 비행기, 택시를 타야 하기 때문에 집을 나설 때는 심호흡을 하곤 한다. 거기에 비행기 값도 무시할 수 없어 마음 같아서는 그 횟수를 줄이고 싶지만 그것도 마음뿐, 남편을 위주로 하면 아이가 걸리고, 아이를 위주로 하면 남편이 걸려서....... 아르바이트생을 쓰는 대신에 내가 왔다 갔다 하는 게 낫다는 안위로 대신한다. 다만 카페에 손님이 많기를 바랄 뿐이다.

 

휴대폰으로 아이가 나를 불렀다. 시간을 보니 집에 도착할 시간은 좀 이른 것 같은데.

, 어디야?”

엄마, 아아아앙, 엄마, 아아아앙.......”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뜻밖의 아이 울음소리에 순간 온 몸으로 소름이 돋았다. 초보운전으로 대학원에 다닐 때 졸음운전으로 접촉사고가 났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왜 그래? 어디 다친 곳은 없니? 괜찮아?”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쯤 높아졌다.

아아아앙. 엄마, 보고 싶어. 아아아앙.......”

“.......”

다시 한 번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동안 내색하지 않던, 아니 꾹꾹 누르고 있었을 아이의 외로움이 오롯이 전해져 마음을 적셨다.

올해 스물일곱인 아이는 올 해 대학원을 졸업하고 3월에 연구원으로 취업한 새내기 직장인이다. 완벽함을 추구하며 까다로운 남편, 그런 남편을 꼭 빼닮은 큰아이와 달리 작은아이는 긍정적이고 단순해서 늘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낙천적이고 단순하고 잠도 많이 자는 아이는 막내라는 생각에 어려서부터 많이 관대하게 키웠던 것 같다. 공부에 욕심이 많고 그만큼 잘하는 큰아이에 비해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 잘 먹고 잘 자라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곤 했었다. 우등생에 모범생으로 성적이 항상 전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아이를 뒷바라지 하느라 작은아이는 늘 뒷전이었다. 그런데도 별 탈 없이 잘 자라주었고 그 모든 것이 큰아이의 그늘에서 자라기 때문이라는 우스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마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결하는 방법을 터득했던 때가. 밖에서는 늘 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집안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서는 코맹맹이 소리를 섞어가며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고 남편의 구두를 닦아놓기도 했었다. 그렇게 지내더니 대학생이 된 후부터 아이는 달라졌다. 그렇게 힘든 통학거리를 소화해내는 것은 물론 결석은 물론 지각도 하지 않았고 성적장학금을 꼬박꼬박 타는 것이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래도 생각지도 않았던 일에 나는 놀랍고 대견스러웠다. 장학금을 받았다고 용돈을 더 쥐어준 적도 없었으니.......

그렇게 4년 동안 변함없이 통학을 하고 성적장학금을 받더니 전액장학금으로 대학원에 다니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연구원으로 취업하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집안에서는 늘 부족하고 어리게만 생각했었는데 정작 아이는 밖에서 남들의 부러움을 받는 아이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워낙 말이 없고 자신이 맡은 일은 끝까지 해내는, 내가 차려주는 대로 먹고 알아서 생활하는 탓에 나도 작은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에 무심했었다.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인 남편과 아직도 공부에 전면하는 큰아이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힘겹다는 이유로,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사랑을 운운하고 있었으니.......

집에 오면 아무도 없어서 싫어. 흑흑, 예전에는 집에 오면 언제나 엄마가 있었잖아. 엄마, 우리 예전처럼 같이 살자. 나 대학교에 다닐 때도, 대학원에 다닐 때도 통학시간이 두 세 시간 씩 걸려서 기숙사에서 지내게 해달라고 그렇게 졸랐는데도 같이 지내자면서 붙잡아두더니 지금은 나만 혼자 두고 다들 나가버리면 어떻게 해. 엄마, 보고 싶어. 그냥 엄마가 집에만 있으면 좋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숨만 쉬고 있어도 나는 좋단 말이야. 엄마, 보고 싶어. 흐흐흑.......“

그래. 엄마도 보고 싶어. 다행이다. 엄마는 사고 났는줄 알았어. 토요일에 올라갈게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면서 나는 한동안 아이의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면서 코끝이 싸아해졌다. 그 사이로 춤을 추고 있었다. 회색빛 얼굴의 바다가, 그 바다를 마주하고 서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 아이의 환한 웃음이.......

그리고 깨닫게 된다. 한집에서 부대끼며 사는 평범한 일상이 소중하다는 것을,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는 소소한 웃음이 행복이라는 것을,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때로는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삶의 힘이 된다는 것도.......

 

토요일, 제주에서 집으로 가는 길. 새벽 6시에 카페를 나와 집에 도착하니 오후 1시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는 막 집을 나서려는 중이었다.

나 왔어.”

.”

어디 가니?”

은솔이 만나기로 했어.”

무심한 듯 나서는 아이를 보며 나도 애써 서운함을 감추었다.

미리 전화라도 하지. 엄마 오는 거 알면서, 조금만 늦었으면 얼굴도 못 볼 뻔했네. 피곤하다며 좀 쉬지.......“

나가려던 아이는 순간 몸을 돌리더니 어린아이처럼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엄마, 와서 좋아, 아니. 그냥 엄마가 곁에서 숨만 쉬어도 좋아.”

들릴듯 말듯 속삭이는 아이에게서는 바다 내음이 났다. 행복이라는.......




                                                          2. 요셉, 나의 아버지 요셉.





얼굴을 스치는 칼바람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움츠려든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일기예보가 실감나는 날이었다.

"요한, 바오로, 노마. ......."

아버지 기일을 얼마 앞두고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세례명들이 오갔다. 며칠째 되뇌어 보아도 도무지 아버지 세례명이 기억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 세례명만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없었다,

오늘은 아버지 기일이다. 원래대로라면 외아들인 오빠가 제사를 지내야 하지만 처음 서너 해를 지내고서는 지금까지 10년이 넘도록 제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엄마 먼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아버지. 허망함으로 돌아가신 엄마를 찾는다며 집밖으로 돌아 식구들 애를 태우시더니 어느 날 갑자기 진짜 엄마 곁으로 가셨다. 두 분의 모든 것을 걸었던 자식들, 특히 엄마에게 외아들인 오빠는 삶의 전부였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오빠를 위해서는 뼈라도 갈아달라면 갈아주겠다는 말로 마음을 아리게 하던 엄마, 그런 외아들로부터 되돌아오는 무관심과 며느리의 냉대는 헛헛함과 덧없음으로 병을 얻게 하더니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려 결국은 스스로 삶의 끈을 놓게 했다.

그 모든 것을 함께 하며 엄마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아버지를 밖으로 돌게 했고 집에 있을 때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는 건조함은 아버지의 정신을 헝클어진 실타래로 뒤엉키게 했다. 그래서 날이 밝으면 밖으로 나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그 횟수가 잦아지며 아버지 목에 주소를 적은 목걸이를 걸어주고 나중에는 바깥출입까지 금했다. 그러다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마주한 아버지는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면서도 편안한 얼굴이었고 아기처럼 말간 살갗은 부드러움으로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두 분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그 원인이 오빠와 올케언니 때문이라는 사실에 두 분의 기일 이외에는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말 한 마디 나누지 않는 남처럼, 아니 원수처럼 지냈다. 게다가 오빠가 살던 집이 재개발 사업이 시행되면서 이사를 가게 되자 그나마 기일 날 오는 것도 버겁다며 제사는 자신이 알아서 지내는 것으로. 상을 차리는 것보다는 성당에서 미사를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고 했다. 일방적인 오빠의 통보에 별 다는 대안이 없었고, 지금까지 거의 10년 넘게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그렇게 연락두절로 세월이 흐르면서 오빠가 위암 말기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소식에 병원을 찾았고 낯선 오빠의 모습은 날이 선 마음을 무디게 했다. 그 날, 나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찾지 않았던, 이십 여 년 만에 처음으로 성당을 찾아가 두 분께 오빠를 살려달라는 기도를 했다. 다행히 오빠는 수술이 잘 되고, 더 이상의 전이도 없어 일상으로 돌아왔고 일 년에 한두 번 안부를 묻는 것으로 끊어진 연을 조심스럽게 이어갔다.

그런데 오빠, 엄마, 아버지 제사는 어떻게 하고 있어?”

, 성당에서 위령미사 올리고 있어. 집사람이 몸도 아픈데 마트에 다니다보니 제사상 차리는 게 쉽지 않네.“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오빠의 덤덤한 목소리에 마음이 뾰족해졌지만 병원에서 보았던 초췌한 오빠의 웃음이 떠올라 풀어져 버리고.

그럼, 그 날 미사에 같이 참여할까? 기일을 그냥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려.“

“......., 마음은 알겠는데 굳이 그러면 네가 살고 있는 동네 성당에서 미사 올려도 괜찮아.“

“.......”

더 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 같아 나도 입을 다물었다.

그 이후로는 나름대로 기일이 되면 성당에 가서 위령미사를 드리고 있다. 위령미사를 올리려면 기일 전날 성당에 가서 미리 접수해야 하는데 성의껏 준비한 돈을 넣은 봉투에 이름과 세례명을 쓴다. 분명히 작년에도 봉투에 아버지 세례명을 썼는데 그 세례명이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저기 묻지 않는 것은 올 해는 그나마 위령미사를 신청할 여유마저 없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면 다 좋아진다는데 이즈음 되면 옛날이야기를 하며 나이듦의 여유를 누려야 하는데 요즘 나는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두 아이를 뒷바라지 하느라 양말 한 켤레도 제대로 사 신지 못한 남편 손에 쥔 것은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남편,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하다못해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나에게도 꼿꼿하게 자존심을 세우곤 한다.

그 뿐인가? 대학3학년 때 휴학을 하고 외무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큰아이,

화장기 없는 맨얼굴에 질끈 동여맨 머리에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고시원과 독서실을 오가며 공부하고 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해진다.

큰아이는 자신이 뜻하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로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되었다. 재수, 삼수, 사수까지 네 번의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이 되고 보니 남들보다 늦었다는 조바심으로 대학생활도 조기졸업을 목표로 학업이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 생활을 하더니 느닷없이 외무고시를 봐야겠다는 말을 했고 남편과 나는 무조건 반대를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처럼 아이의 뜻을 따르게 되었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지 5년이 넘어가는데, 불안함이 점점 더 커져 요즘은 말조차 건네기가 어렵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이도 그런 결정을 내리기다 쉽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남들처럼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하는 평범한 삶을 바라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자꾸 머리를 드는 꿈에 대한 그리움,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던 아이의 말이 자꾸 떠오른다. 빨개진 눈시울도.......

남편의 정년퇴직에 큰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며 5 년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겨우겨우 모아두었던 돈은 물론 은행 대출에 주변에 아쉬운 소리를 해가며 돈을 빌려 쓰고, 이제는 그 마저도 여력이 되지 않아 당장 내일이 걱정되는 상황이다.

젊었을 때는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절실함으로 집에서 과외를 시작하는 것으로 생활을 책임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걱정만 하고 있을 뿐,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렇다고 남편이 일을 시작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큰아이의 마지막 시험이 8월이니 그 때까지 버티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툭하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면서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마음속은 온통 비둘기 서성거리는 소리로 내딛는 발걸음도 휘청거린다.

오후 3시 즈음의 성당은 고요하지만 평온했다. 아무도 없이 텅 빈 본당은 어두웠지만 오히려 편했다. 집을 나설 때부터 먹먹했던 마음은 본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는 물먹은 솜처럼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터져버릴 것 같더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으자 급기야 눈물을 쏟게 했다. 그리고 나즈막히 아버지를 불러 가슴 속에 묻어있던 아버지의 모습에 숨결을 불어넣어 되살려냈다.

눈 오는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자정미사를 보러갈 때 아버지 등에 업혔을 때 걸을 때마다 가슴으로 전해져오던 따뜻한 울림, 구두를 만드느라 투박한 손으로 안아주던 무뚝뚝한 아버지의 웃음,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내 발에 구두를 신겨주시던 자상한 아버지의 손길, 그리고 겨울 어느 하루, 아이 둘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았다가 돌아가는 길에 전철 역 건너편에서 하얀 눈을 맞으며 하염없이 손을 흔들어주던 마지막 모습까지 마주할 수 있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뜨니 어두웠던 성당은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온 햇살로 밝아져있었고 텅 비어있던 가슴이 훈훈함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아버지를 입 밖으로 되뇌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만만치 않은 이 세상, 어떻게든 살아내겠다고, 모자라고 부족한 것 투성이지만 다독이고 안아주며 이끌어나가겠다고. 아버지의 사랑을, 삶을 가슴에 안고 함께 하기로 마음의 손가락을 걸었다.

문득 아버지 세례명이 떠올랐다. 요셉.

나는 본당 문을 나오며 아버지의 세례명을 조용히 불러 본다.

요셉, 나의 아버지 요셉.

 


 

 

이름/ 정순옥

이메일/ jungso0915@naver.com

연락처/ 010-2299-0917

  • profile
    korean 2020.02.29 20:53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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