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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텅 빈 잔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텅 빈 조부모님댁을 바라보며 조용히 생각에 잠긴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부모님께서 지으셨던 건 농사가 아니라 전투였다. 그래서 더 힘들고 고단했던 것이다. 세월이 흐른 지금, 농사짓는 것은 더 이상 생업이 아니다. 모두가 떠났다. 사무실에서 공장에서 각자의 생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우리들의 땅에 더 이상 곡식이 나지 않고 아무도 논, 밭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에 서글픔을 느꼈다. 어린 시절 대부분을 보냈던 그곳에서 다시 농사를 지어보고 싶어졌다. 비록 생업도 아니며 전문성도 떨어지지만, 나는 말 그대로 전원생활을 통해 다시 한 번 우리의 고향으로 돌아가려 한다.

 먼지로 덮인 텅 빈 잔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후 쉬며 마른기침을 토해낸다. 내게 농촌은 한 방울 술도 남지 않은 텅 빈 잔이자, 동시에 추억들로 가득 채우고 싶은 잔이다. 코 흘리게 꼬마들이 어른 흉내를 내며 도시로 빠져나가고 그곳을 지키던 조부모님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20대가 다 된 내가 썩혀가는 땅을 바라보면 어느새 10여 년 전 그날로 돌아가곤 한다. 해가 정수리쯤 떠서 온 몸에서 땀이 삐질삐질 흐를 무렵이면, 저어 멀리 경운기 소리와 함께 참이 함께 온다. 유치원생인 나와 누나는 머리맡을 몇 배는 넘게 쌓인 짚더미에 드러누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눈을 감고 누웠다. 얼마나 지나서 살며시 눈을 뜨니 나도 누나도 대학을 가고 고향을 떠나 있었다.

 올해 여름 친구가 시골로 놀러 가자는 말에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소 마구간을 청소하고 논, 밭일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도시에서 자란 친구에게 시골은 계곡이나 산을 말하는 것이었지만. 내게 시골은 해 뜨기 전부터 해지고 나서까지 죽을힘을 다해서 일을 하는 전쟁터였다. 시간의 망각에 채색되어 아름다운 추억이 되고 그것이 내가 시골에서 보낸 전부라고 조금씩 착각도 하지만,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 논과 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내게 아직은 고통스런 기억이다. 어린 시절 틈만 나면 논으로 밭으로 가서 일을 하던 것이 그다지도 싫었던지 고향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지금에야 그리움이 든다.

분명 뒤돌아보면 즐겁고 행복했던 일들도 참 많이 있었는데 그땐 힘들게 일을 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봄엔 봄의 여름엔 여름의 가을엔 가을의 겨울엔 겨울의 온갖 해야 할 일들과 신경 써야 할 작물들. 물론 10살도 되지 않았던 내가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 턱이 없었지만 지금의 기억으로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삼촌들과 부모님께서는 당시에 새벽부터 밤까지 참 분주하게 사셨던 기억이 난다. 밤에 잠 들려고 누우면 집 앞 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소리, 산의 풀벌레 소리, 뻐꾸기소리와 어른들이 나지막이 읊조리던 옛날 얘기에 스르르 눈이 감기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떠나보낸 그 곳. 당시에 함께 지내던 어르신들이 대부분 떠나간 그 곳에 이제는 빈 집만이 늘어서 있다. 이따금씩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 댁을 가보면 방 안 곳곳에 편 거미줄들이 내 마음을 더욱 울적하게 만들고 10여 년 전 웃음으로 가득했던 그 마을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서, 마치 내 기억조차도 모두 거짓말인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떠나고 황폐해진 그곳의 정자나무 아래의 대청마루에 누 워 하늘을 바라보면 나는 다시 10여 년 전의 그날로 돌아간다.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은 할아버지의 크고 억센 손이다. 그 큰 손으로 세상에서 못해낼 일 따위는 없었다. 경운기를 몰고 소를 잡고 농사를 짓고. 뭐든지 척척해내시는 할아버지의 큰 손은 때로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면서 아이고 우리 손주, 머 먹고 싶노?”라는 말과 함께 털털거리는 오토바이로 읍내까지 나가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내 손에 쥐어주기도 했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암으로 쓰러지시고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나시던 날에, 우리 집안의 농사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큰 아버지도 아버지도 직장 일로 더 이상 시골을 찾을 수 없게 되었고 홀로 남은 할머니를 모시면서 삼촌께서 혼자 농사를 하셨다. 하지만 삼촌마저 고향을 떠나면서 우리들의 고향은 기억 저 멀리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에 대한민국에서 벼농사는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한다는 것은 이제 무리다. 소를 수 백 마리 길러 먹이로 줄 벼를 겸사겸사 키우거나 전국적으로 유명한 쌀이거나 엄청나게 넒은 땅에 벼농사를 짓지 않는 이상 어느 농촌에 가도 놀고 있는 논을 보는 것이 흔한 일이 되었다. 그 논에 처음 발을 담글 때 아버지께서는 장화를 꼭 신어야 한 데이, 뱀한테 물리면 클란다라고 하셨다. 나중에 초등학생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몇 년이 지난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나처럼 어렸을 때 할아버지께서 항상 당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논에서 일을 할 때는 반드시 장화를 신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할아버지의 아버지도 할아버지께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는지 생각하면 수 십 수 백 년 간 같은 말들이 이어졌다는 것인데, 그땐 그 말이 왜 그렇게 듣기 싫고 짜증났던지 이유 없이 반항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이해가 안 되더라도 알겠다고, 명심하겠다고 나는 말했어야 했다.

 이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농사하던 그 곳에서 차로 3분 정도 떨어진 선산으로 가야만 한다. 그 분들께서는 이제 내가 어떤 질문을 해도 아무런 대답도 주지 못하시지만, 언제나 그 곳 그 자리에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신다. 지금에 와서 아쉬운 것은 더 많은 얘길 못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당신께 말씀 못 드렸다는 것이다. 정겨운 그 시실리 동네 사람들과 좀 더 반갑게 인사를 못 나눴고 좀 더 즐겁게 지내지 못했던 것이 많이 후회가 된다. 그 미련과 추억도 모두 조용히 그 자리 그대로 나를 기다려 주고 있기에 어깨가 축 늘어져서 세상 다 잃은 표정으로 한 번씩 고향을 방문해도 이내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게 농촌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보듬어주고 먹을 것을 수고 입을 것을 주고 잘 곳을 주며 죽고 나서 돌아갈 수 있는 집이다. 비록 현재의 대한민국의 경제구조 상으로 농사를 짓는 다는 것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머리가 나쁘고 학력이 뒤쳐진다고 보여 지지만. 내가 판단하기에 어떤 큰 기업의 회사원이나, 어떤 중요 직책의 공무원만큼 머리를 써야하는 것이 농사짓는 일이지 그보다 절대 덜하지는 않는 다고 생각한다. 서리가 내리는 것을 판단해 비닐을 덮는 것, 어떤 병충해가 생기는 지를 판단하고 농약을 치는 것, 기르는 가축의 건강상태를 파악하는 것 등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서 신중하게 해나가야지 겨우 지을 수 있는 것이 농사일이다. 그런 일을 우리 가족들, 동네 사람들이 매일 같이 웃으면서 해내었다는 것이 사실은 내겐 자랑거리이자, 농촌을 떠나 도시로 나온 지금도 내가 힘을 내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고, 또 해내는 원동력이다. 어떤 힘든 일도 꿋꿋하게 해내며 웃는다는 것. 사실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지만.

 안타깝게도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2, 3차 산업이 1차 산업인 농업보다 훨씬 세련되고 발전된 기술이라고 큰 착각을 하곤 한다. 심지어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벼가 채소인지 과일인지 구분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만큼 1차 산업에 대한 사람들의 무시가 심각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나라가 한 그루의 나무라고 한다면 1차 산업이 이뤄지는 농촌은 그 뿌리다. 뿌리가 썩은 나무는 생명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조건을 의, , 주라고 하는데 사실은 식이라고 하는 먹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이 시대처럼 농촌이 천대받는 시대는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한 번쯤 놀러가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사실 내겐 불쾌한 말이다. 그곳은 삶의 터전이자, 모든 생명을 일궈내는 곳이다. 처음 도시로 나왔을 때 느꼈던 쓸쓸함은, 이곳은 생명을 품어낼 수 없는 곳이라는 직감 때문이었으리라.

 공기의 소중함은 우리들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농촌의 중요성은 농촌을 잃어봐야지 확실히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잃은 농촌은 다시 되돌아오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건 인식의 문제 사회 구조의 문제 국가의 문제를 넘어 세계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우리나라처럼 급진적으로 발전을 이뤄낸 나라라면 더욱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하며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따졌을 때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사실 농사짓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생각에 대한 핑계는 아닌 것인지도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지금 경찰공무원이다. 그래서 더더욱 농촌에서 내가 떠나는 이유를 붙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을 떠난 사람들 모두다 결국에는 돌아온다. 살아 서든 죽어 서든.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정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은 살 수 없기에. 모든 것을 주는 나무처럼, 작은 나무가 나에게 모든 것을 나에게 내어주고 밑둥치만 남아서 나를 기다려주듯, 농촌은 내 고향은 그렇게 나를 기다려 주리라 믿는다. 다만, 그것이 너무 늦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코끝이 축축하게 젖은 어린 송아지가 음머라고 소리 내며 저 멀리 강가에서 풀을 뜯는 어미 소를 부르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면, 당신도 분명 농촌을 사랑하는 사람이리라.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을, 내가 결국 돌아가 한 줌 흙이 될 그곳을 그려보았다. 그리고 나름대로 이것저것 정리한 나는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조용히 군에 입대했다. 처음 고향을 떠나던 그날처럼.



 





2부 : 폐허에서 다시 한 번




 풀내음과 벌레 소리로 가득 찬 그곳이 문득 그립다. 폐허가 된 고향을 눈앞에서 하염없이 바라만 보다가, 술에 잔뜩 취해 군에 간 내게 역시나 고향은 점점 더 멀어졌다. 하지만 고향에서 차로 5시간이나 걸리는 군부대에서도 문득문득 이 맘 때면 모내기할 계절인데, 추수할 때 다 됬네라며 중얼거렸던 것은 어린 시절부터 힘들게 농사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내가 결국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어머니께 소식을 전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들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새로운 소식은 작게나마 남은 땅에 내가 조금씩 농사를 짓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버리고 떠난 땅. 그러나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죽고 나면 결국엔 돌아올 땅. 그곳을 내가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찼다. 2013년의 봄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2년이 지금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은 건 그때 안도하고 있었던 내 자신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마음으로 진정 내가 농촌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싫어져 버린 건지 사실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내가 농사짓는 땅은 10여 년 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아주 작은 땅이다. 사실 농사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 만 평에서 겨우 천 평도 안 될 정도의 땅에 감자, , 옥수수, 우엉 등등 참 아기자기하게도 심었다. 하지만 마치 방 한 쪽 구석에서 먼지가 수북이 쌓인 시계에 다시 배터리를 갈아 끼워서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듯이 다시 돌아가야 할 곳으로 왔다는 생각에 설렘이 앞섰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너무나도 가볍다. 새벽 공기를 마셔 본 사람은 아주 잘 알 것이다. 마치 다른 세 상에 온 듯 신비로운 분위기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의외로 새벽에는 풀벌레도 개구리도 새도 울지 않기에 조용한 것이 너무 좋다. 물론 그것보다 좋은 것은 겨울 새벽이 특히나 상쾌하다는 것이지만. 졸리던 몸도 순식간에 깨어나고 몸에 힘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밭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보인 풍경은 여기저기서 수확하고 남은 흔적들이었다. 겨울에 농사를 짓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겠지만, 1년 어느 시기든 중요하지 않은 시기 따위는 애시 당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1월의 밭에는 수확하고 남은 비닐들이 흩날렸고, 땅도 엉망이 되어 있었다. 골을 고르고 비닐을 덮고서 심고 수확하고. 그러나 뒷정리는 동등하게 힘든 작업이다. 어린 시절부터 계속해서 일을 해왔던 탓에 잔뼈가 굵다고 자신해왔던 나지만, 제대로 안 한지 오래된 탓에 온 몸이 뻐근한 것이 처음엔 영 힘이 들었다. 그러나 장갑을 끼고 비닐 위로 자라서 덮고 있는 잡초를 걷어 낸 후에 비닐을 걷어내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있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군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남아도는 내 힘을 밭에 쓴다는 것이.

버스로 6시간을 꼬박 시간을 보내면서 그 동안에 내내 농사 지었던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흙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 왜인지모를 즐거움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리고 참 더디게도 시간이 흘러 2달이 지나 다시 세상에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께서 청소기로 연신 방을 청소하고 계셨다. 천천히 전투화 끈을 풀다가 문 득 10여 년 전의 하루 가 생각이 났다. 낡은 우리 집을 마룻바닥을 엉덩이를 들썩이며 실이 헤어진 바지를 입고 연신 걸레질을 하시던 어머니. 털털 거리는 소리를 내는 고물 오토바이로 나를 태워주시곤 했던 아버지. 그리고 저 멀리서 손을 흔들어 주시던 할아버지.

  4월의 밭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생명을 품을 준비가 끝난 땅은 싱그러운 향기가 난다. 어떤 향수보다도 향긋해서 인공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은은한 향이다. 나는 땅에 골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지 공사를 위해서 땅을 평평하게 하면서 속으로 밭을 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판단하기에 아무 의미가 없는 활동을 내가 군에서 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속상할 때쯤이면 저 멀리 숨어있던 농촌이 내 기억을 뚫고 살며시 다가온다. 이 삽을 내가 흙에 내다 꽂는 다면 어떤 각도로 어느 정도 힘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밭에 까는 비닐은 주로 작물을 심는 중앙이 하얗고 양쪽 모서리 쪽이 검정색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검정색인 비닐을 덮게 되었다. 가격보다는 요샌 검정색, 하얀색이 섞인 비닐을 쓰면 새가 씨앗을 먹기 위해 더 달려든다고 어디선가 들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뭐가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반복, 또 반복. 처음에 등이, 이마가 그리고 온 몸이 다 젖을 때쯤이면 정수리쯤에 해가 떠서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허기가 반찬이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된장에 풋고추를 푹 찍어 씹고 차가운 된장국을 밥에 비벼 먹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포만감과 행복감이 차오른다. 어떤 비싼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보다도 고급 회보다도 행복하다. 이렇게 먹는 것이 요샌 무슨 유세인양 웰빙 다이어트인지, 건강해지는 식단인지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 생각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헛소리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 후에 먹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감과 건강함을 가져다주는 것이지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이렇게 먹기만 한다면 이왕이면 기름진 고기가 옳다고 본다.

 모판에 벼를 담아서 흙을 덮고 옮기고 다시 벼 하루 종일 일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왕이면 남아도는 내 힘을 밭에 쓴다는 것이. 버스로 6시간을 꼬박 시간을 보내면서 그 동안에 내내 농사 지었던 꿈을 꾸었다. 오랜만에 흙에서 일을 했다는 것이 왜인지모를 즐거움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리고 참 더디게도 시간이 흘러 2달이 지나 다시 세상에 나왔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께서 청소기로 연신 방을 청소하고 계셨다. 천천히 전투화 끈을 풀다가 문 득 10여 년 전의 하루 가 생각이 났다. 낡은 우리 집을 마룻바닥을 엉덩이를 들썩이며 실이 헤어진 바지를 입고 연신 걸레질을 하시던 어머니. 털털 거리는 소리를 내는 고물 오토바이로 나를 태워주시곤 했던 아버지. 그리고 저 멀리서 손을 흔들어 주시던 할아버지.

  4월의 밭이 몰라보게 변해 있었다. 생명을 품을 준비가 끝난 땅은 싱그러운 향기가 난다. 어떤 향수보다도 향긋해서 인공적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은은한 향이다. 나는 땅에 골을 만들기 시작했다. 진지 공사를 위해서 땅을 평평하게 하면서 속으로 밭을 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판단하기에 아무 의미가 없는 활동을 내가 군에서 하고 있다고 판단되어 속상할 때쯤이면 저 멀리 숨어있던 농촌이 내 기억을 뚫고 살며시 다가온다. 이 삽을 내가 흙에 내다 꽂는 다면 어떤 각도로 어느 정도 힘으로 해야 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밭에 까는 비닐은 주로 작물을 심는 중앙이 하얗고 양쪽 모서리 쪽이 검정색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검정색인 비닐을 덮게 되었다. 가격보다는 요샌 검정색, 하얀색이 섞인 비닐을 쓰면 새가 씨앗을 먹기 위해 더 달려든다고 어디선가 들었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뭐가 옳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반복, 또 반복. 처음에 등이, 이마가 그리고 온 몸이 다 젖을 때쯤이면 정수리쯤에 해가 떠서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허기가 반찬이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된장에 풋고추를 푹 찍어 씹고 차가운 된장국을 밥에 비벼 먹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포만감과 행복감이 차오른다. 어떤 비싼 레스토랑의 스테이크보다도 고급 회보다도 행복하다. 이렇게 먹는 것이 요샌 무슨 유세인양 웰빙 다이어트인지, 건강해지는 식단인지 하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내 생각에는 아무 소용도 없는 헛소리이다. 땀 흘려 일하는 노동 후에 먹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감과 건강함을 가져다주는 것이지 아무 것도 없이 그저 이렇게 먹기만 한다면 이왕이면 기름진 고기가 옳다고 본다. 모판에 벼를 담아서 흙을 덮고 옮기고 다시 벼 씨를 뿌리고 옳기고 흙을 덮고. 매 년 여름이면 행사처럼 했던 벼 씨를 뿌리는 날에 먹었던 그 밥처럼. 그래서 지금도 뭐가 됐든지 땀 흘려 열심히 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죄지은 것 마냥 마음이 영 찜찜한 것이 밥도 맛이 없고 그다지 행복하지도 않다. 이게 사람들 모두의 행복의 잣대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역시나 나와 우리가 농촌에서 나고 자랐다면 마음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리고 시간이 흘러 바람이 선선해지던 날에, 마침내 다시 찾은 그곳엔 곡식들이 풍성하게 여물어가고 있었다. 아무 것도 없던, 황량하게 땅만 남은 땅에. 한 방울 술도 없는 빈 잔에. 고작 천 여 평의 땅이 내겐 아직 내가 돌아갈 수 있는 땅이 있다는 희망과 나도 어떤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기쁨을 주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도 나만큼이나 자라서 알알이 익은 옥수수도 툭 치면 우수수 깨가 떨어지는 깨도 그리고.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털털거리는 경운기 소리에 허리를 펴니 저어 멀리서 손을 흔드는 동네 어르신.

 내겐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큰 아버지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직장일로 더 이상 밭을 돌보기가 힘이 드시고 나도 누나도 도시로 나가고. 그러나 흙을 만지면서 흙냄새를 다시 맡으면서 겨우 깨닫게 된 것은 아무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에 내 추억 속에 옥수수마냥 알알이 박혀 있어서 내가 죽기 전에는 떠나지 않는다. 나는 고향을 떠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내게 모든 것을 주었던 고향은 내가 떠나는 것조차도 도와주고 그리고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들도 함께.

 어머니는 지난날 농사 할 때 이후로 허리가 계속 아프셔서, 밭에 가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나중에 퇴직하시고 부모님께서 10여 년 전처럼 농사를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나도 내가 하는 이 모든 열망들이 다 사라질 때 다시 한 번 농사일로 다시 불태워보고 싶으니까. 딱 한 번 아버지께서는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 여기를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하셨다. 단 한 번뿐이지만 역시 나는 농사일이 좋다. 물론 머리로 인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막상 또 논에, 밭에 가까워지면 툴툴거리면서 집에 가고 싶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계속 투덜거리면서 흙냄새를 맡으면서 농촌을 만나고 싶다. 우리가 혹여 조금씩 서로 소홀해지더라도, 농촌이 나를 기다려 준 것 만큼 나도 더 자주 찾아가려고 한다. 가을이 풍성하게 저물고 수확이 끝나고 쓸쓸해진 밭을 바라보면서 다시 돌아올 봄, 그리고 여름, 가을과 겨울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지루하지 않고 매일 매일이 재미있는 그 곳을 다시 찾을 생각에 설렘이 앞섰다. 혹여 이것이 아버지가, 큰 아버지가, 삼촌이, 할아버지가 느끼셨던 것이라면 분명 나도 그 분들과 조금은 비슷해 진 것이 아닐까. 빨강도 파랑도 하양도 모두 초록색이 되어버리는 풀밭처럼 말이다.

  50 여 년 전에 폐허였던 우리 땅에 처음으로 삽을 꽂으시던 할아버지의 큰 손처럼, 세월이 흘러 나도 무언가를 해내어 보려고 한다. 이것이 형태가 되든지 간에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이 모든 것이 농촌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장점이라고는 무식하게 우직한 것 밖에 없는 내가 이 무식함으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준 이 곳 모든 것이 잠들어 있고 언제까지고 깨어 있을 이곳을 나는 앞으로도 사랑할 것이다. 폐허는 없다. 내가 만들었던 핑계이자 망상하자 허상이었을 뿐. 잡초만 무성하던 흙덩이가 곡식들로 뒤덮여 여물어가는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면서 내가 무언가를 남긴다면 역시 흙이 가장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가에 미소가 맴돈다. 그곳에서 나는 또 어떤 꿈을 꾸고,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다시 또 한 번 꿈을 꾼다면.











이름 : 박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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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2020.02.29 20:54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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