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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의 바다로

 

  걸어서 5분 우리 집 앞에는 도서관이 있다. 내가 하루라도 들르지 않으면 발에 가시가 돋힐지도 모르는 곳. 나의 숨과 고뇌와 외로움과 쓸쓸함을 받아주는 곳. 나와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친구들이 있는 곳. 나는 오늘도 도서관으로 간다.

  똑. . 투 둑, 투두둑, 후두두둑…….

  한쪽 천장에서 갑자기 물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긴 물줄기를 만들어내며 주르륵 쏟아져 내렸다. 도서관 공연장은 이미 200명가량의 유치원 어린이들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공연을 막 시작하려는 순간에 난감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늘은 도서관에서 1년에 두 번,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하는 동화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얼마 전 무더위를 대비해서 낡은 에어컨을 새것으로 교체하는 공사가 한창이더니, 그게 잘 못 되었는지 바로 그 자리에서 물이 떨어졌다. 다행인지 에어컨을 끄면 물줄기도 뚝 그쳤다.

  올해는 111년 만에 닥친 더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야말로 지구는 화롯불, 지금 여기 도서관 공연장은 그 화롯불에 잘 달궈진 고구마 같다. 이런 무더위 속에서 에어컨을 끈 채, 물이 떨어지는 자리는 비닐을 이용해 임시방편으로 수습하고 공연의 막은 올라갔다.


  내가 속한 동아리는 도서관에서 일주일에 한 번, 지역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일 년에 두 번, 봄과 겨울에 이렇게 동화잔치를 연다. 동극, 인형극, 악기 연주, 율동 등 다채로운 내용의 공연은 아마추어답지 않게 알차서 지역 주민들에게 제법 인기가 많다.

도서관을 처음 찾은 건 언제쯤일까? 20대에 취업을 준비하며 매일 오르던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외로움으로 허기를 채우며 헤매던 시간, 진학을 준비하며 홀로 공부와 씨름하던 시간들. 그러고 보니 언제나 내 옆에 도서관이 있었다. 그리고 결혼해서 첫째 아이를 키우며 막막하던 육아의 지혜를 얻으러 갔던 곳도 집 앞 도서관이었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과 책을 만났다. 가만히 다독이며 나에게 와 주었던 그림책,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 주었던 선물이 가득했던 도서관의 오랜 된 책 향기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림책을 읽다가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는 책 읽어주는 엄마봉사단체다. 동아리의 공연을 처음 봤을 때, 아이와 자주 가던 소극장의 전문 배우들의 공연이 생각났다. 그곳에 출연하던 배우들 못지않게 연기를 하는 엄마들을 보고 놀랐고, 연출과 무대 준비를 모두 소화해 내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감탄했다. 연극을 워낙 좋아해서, ‘연극으로 만나는 그림책수업을 듣고 있었던 나는 공연을 보자마자 이 팀으로 합류했다.

  동아리 회원들은 각자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 낸다. 동화 속 이야기를 각색하여 대본을 쓰는 작가가 되기도 하고, 우쿨렐레로 동요 연주를 하고, 동극에 등장하는 배우가 되고, 인형극의 목소리 연기자가 된다. 필요할 땐 극의 소품 뿐 아니라 무대장치도 뚝딱 만들어 낸다.


  오늘 공연은 우쿨렐레 연주로 막이 올랐다.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박수를 치는 아이들의 환한 웃음으로 연주는 멋지게 완성되었다. 우쿨렐레만 있던 연주에 얼마 전부터 아코디언 연주자가 합류했다. 흔하지 않은 악기에 아이들은 신기함을 감추지 못했고, 어른들도 흥미로워 했다.

  연주가 끝나고 인형극이 시작되었다. 목소리 연기에 맞추어 손 인형 역할을 맡은 사람이 인형의 동작을 책임진다. 인형극 무대 뒤 좁은 공간에 쪼그려 앉은 목소리 배우와 인형 연기자들은 어둠 속에서 호흡을 맞춘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동극이다. 옷과 분장 덕분에 동물 연기는 살이 있는 듯 생동감이 넘친다. 연기의 내공도 물론 무시할 수 없다. 무더위 속에 동물 옷까지 입은 연기자들의 등줄기에는 땀이 쏟아져 내린다.

  황소가 등장 한다. “음매~ 사람들은 나빠 우리한테 만날 힘들게 일만 시키잖아, 정말 짜증나! 그러니까 잡아먹어도 된다고 생각해!” 동극토끼의 재판의 한 장면이다. 호랑이가 구덩이에서 구해준 나그네를 잡아먹으려고 누가 옳고, 그른지 지나가는 동물들에게 물어 보는 장면이다. 황소는 이때 한 번 등장해서 딱 한 줄의 대사를 한다.‘음매~.’하는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우리들은 연습하던 모습이 생각나 웃고, 아이들은 그저 사람이음매~.’ 하니 그 연기가 기똥차서인지 깔깔거린다.

  대사가 한마디였던 황소 역할은 이번에 들어온 신입회원이 맡았다. 이 한마디 대사를 위해 겨울부터 봄까지 호흡을 맞추었다. 이 회원의 나이는 올해 60을 넘겼다. 얼마 전 정년퇴임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 볼까 고민하며 여러 가지 일에 도전 중이라고 한다. 이 분이 바로 아코디언 연주자이기도 하다.

 

 30, 40대가 주를 이루던 동아리에 올해 60대 언니가 3, 신입회원이 되었다. 언니들은 공연 연습이 있는 날이면, 항상 일등으로 도착한다. 먼저 와서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놓고, 동생들을 기다린다.

언니들! 나이 들어서 잠 없는 거 티내지 말고 천천히 좀 오세요.”

약속 시간보다 30여분 지나야 모두들 모여들기 마련인 것이 멋쩍어 내가 농담이라도 이렇게 던져본다. 그리고 팔팔 끓어 오른 물에 커피 한 봉지를 털어 열정 한잔을 탄다. 언니들의 도전처럼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공연 몇 달 전부터 계속 되는 연습은 낯설고 어색한 관계를 친밀하게 해 준다. 이렇게 연습부터 호흡이 잘 맞추어지면 공연도 순조롭고, 막힘이 없이 진행된다. 연습은 대본읽기와 소품 만들기로 시작한다. 손은 소품을 만들고 있어도 입은 수다쟁이가 된다. 소품에 집중하는 사이 입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아이들 이야기, 꿈 이야기, 남편이야기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때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되고, 때론 들어주는 상담사가 되어 준다.

 

 사람들이 모여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뭐니 뭐니 해도 함께 밥 먹는 시간이다. 연습 후에 주로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는데 공연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시간도 절약 할 겸 배달음식을 먹기도 한다. 누가 먼저 밥이라도 해 오겠다고 단체 톡에 글을 올리면 반찬 하나씩 준비하겠다는 댓글이 달린다. 냉장고를 뒤져 찾아낸 갖가지 나물들이 한데 모인다. 비어지는 냉장고만큼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찬다.

  고슬고슬 잘 지어진 밥에 열무김치, 콩나물, 시금치, 무생채 등 알록달록 개성 넘치는 나물들의 향연, 여기에 고추장과 감초 같은 들기름 몇 방울이면 누구나 숟가락을 들고 양푼 앞으로 모여들게 만든다.

만들기를 좋아하고, 그리기를 좋아하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말없이 조용히 뒷정리를 하는 사람,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기의 열정을 쏟아내는 동아리 회원들의 모습이 커다란 양푼에 담긴 비빔밥처럼 맛나게 잔치를 완성해 낸다.

 

 우리의 어설픈 재능보다 뜨거운 열정을 아름답게 보아주고 즐겨주는 아이들과 도서관 이용자들, 그리고 이 모두를 연결해 주는 집 앞 도서관이 있어서 참 좋다.

  철학자 이반 일리치는 , 도서관, 자전거가 인류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매일 아침 나는 생각의 바다 도서관으로 가서 책장을 넘긴다. 책 속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우리 인생 가운데 펼쳐 질 것을 꿈꾸며, 함께 꿈을 이루어 가는 멋진 사람들, 그들과 도서관에서의 행복한 삶이 일상이 되어가는 나의 중년은 그 어느 시절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2) 안녕! 소래풀꽃


 6, 이른 아침인데도 제법 뜨거워진 햇살로 걷기가 여간 만만치가 않아졌다. 모자와 선글라스로 단단히 무장한 나를 나무라듯 꽃들은 쨍쨍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싱그럽게 피어있다. 오래 만에 나도 풀처럼, 나무처럼, 꽃처럼 그렇게 햇빛 샤워를 해 봐야지 하며 모자를 벗어 본다. 따뜻함이 머리에서 온 몸으로 전해진다.


  안양천을 걷다보면 계절의 변화가 그대로 느껴진다. 아니, 자기의 때를 모르고 계절에 따라 꽃들은 재빠르게 옷을 잘도 갈아입는다. 요즘은 황금색 코스모스라는 별명을 지닌 금계국이 산책길을 안내하듯 나란히 피어있다. 계망초도 수줍게 자기를 뽐내며, 붉은 토끼풀도 곳곳에 이웃해 있다. 계절을 헷갈린 코스모스까지 한데 어울러져 한들한들 피어있다. 하늘 도화지를 배경 삼은 풀꽃들의 살랑임은 내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피어있던 제비꽃을 닮은 보랏빛 꽃들은 어느새 모습을 감추고 없다.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보랏빛 꽃들이 옹기종기 안양천 산책로 곳곳에 피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어릴 때 많이 보던 제비꽃인가 하였다. 버드나무 아래 다소곳이 자리 잡은 꽃무리들을 보며, 관공서에서 씨를 뿌려 참 깔끔하게도 조성해 놓았구나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마침 꽃에 대해 잘 아는 선생님을 만나게 되어 사진을 보여주며,

  “선생님 안양천에 꽃이 예쁘게 피었던데, 이거 제비꽃 맞죠?”

하고 꽃을 좀 사랑하는 사람인양, 좀 아는 척하며 보여드렸더니, 보고는 바로,

  “~ 선생님 이 꽃은 제비꽃이 아니에요. 제갈채라고, 소래에서 처음 피기시작해서 소래풀꽃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제갈량이 전쟁 때 식량을 키우던 풀이라고 해서 제갈채라고 부른답니다. 언제부터 여기에 피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는데 최근 5년 전부터 안양천 상류에서 금천교까지 자생하며 뿌리 내리기 시작했어요.”

하며 술술술 꽃의 유래와 안양에 자리 잡은 시기까지 설명을 해 주었다.

 거참 신기하여,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고 있자니 생태계의 신비로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형용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풀꽃들이 계절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피어나는 것도 신기한데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도 참 놀랍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어디서부터 와서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옛 전쟁이 많던 시절 중국에서 제갈량이 군량에 대기 위해 심기 쉽고, 잘 자라며, 버릴 것이 없이 몸에 좋은 무를 심었는데 거기에서 유래가 되어 제갈채라는 이름까지 붙었다고 한다.

토종식물들의 서식지는 침범하지 않으면서 버드나무 그늘아래 자기들만의 군락을 만들며, 고요하고도, 아름답게 자리 잡은 모습이 이주노동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나라 다문화 가정이 2012년을 기준으로 30만이 넘었다고 한다. 베트남, 중국, 필리핀, 미국, 일본, 캄보디아 등 다양한 민족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정착하여 우리들과 어울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노랑, 보라, 분홍, 빨강 꽃들이 어울 더울 피어나듯이, 태어난 곳이나 겉모습과 관계없이 들판에 어울어진 꽃들처럼 우리가 되어 살아간다.

 

 얼마 전 경주에 갔을 때는 첨성대 주위에 핑크빛 갈대가 곱게 피어 있는 것을 보았다. 이름도 이국적이고 그 자태는 또한 현실의 것이 아닌 것처럼 몽환적이었다.

이 풀은 핑크뮬리라고도하고 분홍쥐꼬리새라고도 불린다. 미국 중서부에서 유럽을 건너 제주도의 한 생태공원에서 두각을 드러냈다. 그 이름처럼 환상적인 자태에 유행을 타며 현지화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군락 조성이 지역성과 관계없이 퍼져가니 순간의 유행이 생태계를 교란 한다는 우려의 말도 나오기 까지 한다. 눈을 즐겁게 해 주는 그 아름다움만큼은 우리 것으로 만들고 싶어진다.


  뉴스에서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 제조업체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마비가 될 정도라고 한다. 농업이나 어업도 이주민의 손을 빌려야 하고, 아이 울음소리가 사라진 농촌도 결혼이민자 덕에 생기를 잃지 않는다고 한다.

일자리를 빼앗을까 하는 염려, 생태계를 교란시키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뒤로 하고, 원래부터 우리였던 것처럼, 우리민족이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살아가듯이 그들도 이제 우리가 되어 함께 어울 더울 잘 살아가길 바라본다.

 

 

 

 


  • profile
    korean 2020.02.29 20:59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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