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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와 꽃무늬 스웨터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다. 노을은 이미 해를 삼켜버렸는데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림자조차 찾을 수 없다. 마을 공터에도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데 어머니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고 보니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꽃무늬 스웨터도 없다. 그제야 짐작 가는 곳이 있다. 아무도 몰래 집을 나선다. 비뚤비뚤 이어진 논둑을 지나자 조붓한 산길이 이어진다. 층층을 이룬 산밭에는 작물들이 키를 재고 있다.

   산과 밭의 경계에 초록이 무성하다. 한껏 물이 오른 은행나무 한그루가 턱 버티고 선 채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발아래 세상을 관장하듯 위엄이 서려 있는 은행나무는 늘 봐도 변함이 없다. 사시사철 색깔만 달리할 뿐, 산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듬직하다. 품을 벌려 뭐든 다 안아줄 것만 같다.

   나무 밑에 어머니가 앉아 있다. 무심하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에 노을이 짙다. 도대체 저런 자세로 얼마나 앉아있었던 것일까. 얼굴에 노기가 사라진 걸 보니 꽤 오래 있었던 듯싶다. 나무 밑에서만큼은 어머니의 얼굴에 깃든 평화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어머니가 의지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에 안도의 숨이 나온다.

어머니는 그렇게 산밭 은행나무에 마음을 달래며 살아오셨다. 만약에 나무마저 없었다면 어머니는 어찌 살아오셨을까. 그 때문에 나 또한 산밭 은행나무가 신성하게 보였다. 그냥 나무가 아닌,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그런 나무가 우리 집 선산 산밭에 있었다.

   어머니는 15살 어린 나이에 32살이던 아버지와 혼인했다. 당시 일제강점기 시대는 처녀들을 공출했기에 어머니는 공출을 피하고자 혼인을 선택한 것이었다. 요즘 나이로 15살이면 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예전에는 어디 그랬는가. 엄한 시집 가풍에 무조건 순종해야 했고, 시집살이가 아무리 혹독해도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당시 여자라면 누구나 겪는 시집살이와 집안일쯤이야 어머니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일해야 먹고 살 수 있었고, 시집살이야 각오했으니 그로 인해 어머니의 삶이 흔들린 건 아니었다.

   어머니를 송두리째 흔들어놓은 건, 대를 잇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종가라면 모든 책임이 여자에게 있었다. 결국 어머니는 남편을 베갯동서에게 내어주어야 했다. 종부의 의무만 남고 권리를 빼앗겨버린 어머니는 화를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온 집안이 뒤집어진다는 걸 잘 알던 어머니의 선택이었다.

   화병은 끝내 폐병을 불러왔다. 어머니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심한 기침으로 온몸이 녹아내리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기침 소리마저 들으려 하지 않던 어른들과 아버지로 인해 숨어서 울음을 삼켰다. 기운이 없어 비실비실하다 마루에 걸터앉기라도 하면 영락없이 어른들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어머니는 마음대로 쉬지도 못한 채 남들의 눈을 피해 가쁜 숨을 삼켜야 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어머니는 호미를 자주 들었다. 밭에 가기 위해서였다. 빈손으로 집을 나가면 누군가 또 없는 말을 만들까 봐 어머니는 호미와 양동이를 들고 집을 나섰다. 밭에 갈 때 어머니는 꽃무늬 스웨터도 잊지 않았다. 허청허청 산에 오른 어머니가 호미를 밭둑에 두고 먼저 찾은 건 은행나무였다. 언젠가부터 나무는 어머니의 가장 절친한 벗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나무를 향해 당신의 마음을 쏟아놓았다. 나무가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머니는 뭉친 마음을 그렇게 풀어놓으셨다. 나무는 어머니를 품어 주었다. 가지를 흔들어 다친 마음을 다독거려주고, 그늘을 만들어 어머니의 심신을 편히 쉬게 해주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실하게 매단 은행 알은 어머니의 폐병에 도움이 되었다. 어머니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은행을 양동이에 주워 담았다. 은행이 기침에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던 것이다. 은행나무는 어머니에게 정신적 육체적 버팀목이었다.

어머니가 꽃무늬 스웨터를 가져간 건, 추위를 피하려 한 것도 있지만, 어머니도 여자로서 예뻐 보이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다. 베갯동서에게 아버지를 빼앗겨버린 후, 어머니의 젊음은 파리하게 시들어갔고, 외로움은 가슴에 똬리를 틀었다. 꽃무늬 스웨터를 입고 어머니는 나무아래 조용히 앉아 눈을 감았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라도 어머니는 여자이고 싶었다.

   어머니가 쓰러지던 그 날도, 호미를 들고 어머니는 산에 올랐다. 밭에는 일이 지천이었다. 뙤약볕 아래 어머니는 땅을 일구었다. 끝이 없는 일은 어머니의 손에서 호미를 놓지 못하게 했다. 어머니는 심한 어지러움에 허공을 붙잡다 밭둑에 고꾸라졌다. 그 와중에도 살아야겠다는 의지 하나로 어머니는 기어서 나무 밑으로 갔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무 밑 풀숲에 고여 있던 물을 마셨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 있던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앉았을 때 옆에는 해골바가지가 뒹굴고 있었다. 어머니가 마신 물은 해골바가지에 고여 있던 물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근처는 빨치산들이 활동하던 무대였고, 해골의 주인은 시동생의 것으로 밝혀졌다. 기막힌 우연이었다.

   어머니는 은행나무 옆에 시동생의 봉분을 만들고 해마다 정성껏 제사를 지내주었다. 그 후 어머니의 폐병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세상의 이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머니는 그 후 건강을 되찾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너그러워졌다.

   어느 날, 베갯동서가 사라졌다. 딸만 다섯을 낳아 놓고 그 딸들을 온전히 어머니에게 맡긴 채 혼자 떠났다. 내게는 동생이 다섯이나 생긴 셈이다. 그날 아침, 밥상에는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굴비가 놓여 있었다. 딸들을 부탁한다는 의미였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에게는 또 다른 삶이 펼쳐졌다. 다섯이나 되는 애증을 보듬어 안아야 하는 어머니는 품을 넓히기 위해 또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위의 눈총과 숙덕거림을 이겨낼 수 있는 건 오히려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었다. 어머니에겐 나무가 필요했다. 어머니의 하소연을 묵묵히 들어주던 나무도 가끔은 눈물을 흘리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머니는 나무에서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나는 산에 올라 나무를 볼 때마다 어머니가 풀어놓았을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무를 쓰다듬고 어머니처럼 그 자리에 앉아 밭을 둘러보곤 했다. 그러면 씀벅씀벅 가슴이 아려왔다. 감히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어머니의 삶이 내게로 스며들어와 눈물이 되었다.

   이제는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는 나란히 나무 옆에 누워계신다. 그 질곡의 세월을 다 품어 안고 흙 속에서 영원한 삶을 얻으셨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살아생전 어머니가 보인다. 꽃무늬 스웨터를 입고 은행나무 아래 앉아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어머니가 보고 싶은 날이면 아직도 푸른 그늘을 드리운 채 묵묵하게 서 있는 은행나무에게로 달려가고 싶다




삶의 여백을 채우다


   그날, 가족들은 모두 들에 나가고 없었다. 나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문을 잠근 채 방에 드러누워 있었다. 집안은 조용했고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때, 부엌 쪽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쥐 두 마리가 쏜살같이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부엌 시렁 위에 있던 쥐약을 꺼냈다. 밥 두어 숟갈과 쥐약을 비벼서 구멍 앞에 두고 부엌바닥에 오도카니 앉았다. 지난밤 아버지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농사를 쎄빠지게 지어봤자 먹고살기도 어려우니 너까지 대학에 보내기가 힘들구나.”

아버지는 휴우, 한숨을 내쉬었고 그 바람에 등잔불이 흔들렸다.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본 건 처음이었다.

그럼 제가 포기 할게요

하는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교대로 진학해 교육자가 되겠다던 꿈은 산산이 조각났다. 그날 밤 베개가 젖도록 울었다. 내게는 공부가 최고였던 그때, 대학에 못 갈 바에야 살아서 뭘 하겠나 싶은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쥐약을 마셔버렸다. 평상에 누웠는데 하늘에는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다. 마치 내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 나는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 보니 병원이었다. 날 내려다보고 있던 아버지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맺혀있었다. 그 사건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던 병으로 찾아왔다.

   눈 깜빡하면 지나가는 게 인생이라더니 정말 그랬다. 나는 공부 대신 결혼을 했다. 십년 만에 낳은 아기가 옹알이를 하면서 맨 처음, ‘엄마!’라 불러 주었을 때 코끝이 찡해지면서 귀가 먹먹했다. 아기는 내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식 날, 술을 좋아하던 남편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아기와 살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쥐약을 마셨던 일로 인해 나는 만성 폐쇄성 폐 질환이란 병을 얻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직업을 갖기 쉽지 않았다. 아들의 수학 여행비를 마련할 수 없던 날, 아들은 엄마 괜찮아!”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 울었다. 아들은 일찍 철이 들어 중학교 때부터 새벽 신문 배달을 했다. 하지만 아들의 코 묻은 돈마저 내 약값으로 들어갔다.

    나는 백화점에서 배달 일을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면 일당 삼만 원을 받았다. 남편의 제삿날,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더니 어린 아들이 햄과 맛살로 전을 붙이고 아빠 제사상을 차려놓았다. 그날 둘이서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아들은 잘 커 주었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내 가슴은 늘 허전했다.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방송대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의욕에 불타올랐으나 쉽지 않았다. 더구나 손자를 키우고 있는 나로서는 시간이 자유롭지 못했다.

   공부도 해야 하고 손자도 봐야 하고, 바쁜 날들이 이어졌다. 아기를 그네에 앉혀놓고 컴퓨터 강의를 들었다. 오십여 년 만에 펼쳐본 교과서는 지면에 깨알처럼 글자로 가득 차 있어 어지럼증이 일었다. 아래쪽을 읽으면 금방 읽은 위쪽이 생각나지 않았다. 다음 장을 읽으면 앞장이 까마득해졌다.

일 학년 말경, 김포로 이사를 오게 되면서 상황은 더 좋지 않게 되었다. 김포에는 방송대 학습관이 없다 보니 서울로 가야 했다. 서울까지는 왕복 네 시간 정도, 걷다보면 숨이 찼다. 어린이집에 보낸 손자를 데리러 갈 시간에 맞추느라 달음박질을 하고 다녔다.

   이 병은 숨쉬기가 어려워지는 게 특징이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 정신이 가물가물해진다. 한번은 길가에 주저앉고 말았다. 의사는 수술도 할 수 없고, 고칠 수도 없는 병이라 평생 약을 먹는 게 최선이라 했다.

공부를 놓고 난 뒤, 오십 년이 지나서야 손에 쥔 대학 졸업장을 받던 날, 자살하려고 약을 먹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부모님 산소를 찾았다. 졸업장과 사진을 앞에 놓고, 절을 올렸다. “아버지 어머니, 생전에 불효를 용서해 주십시오.” 나는 엎드린 채 엉엉 울었다. 손자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따라 울었다. 할머니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서인지, 여섯 살 손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국문과를 졸업한 뒤 교육과에 편입해서 교육학 공부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공부를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고, 공부를 하면서 늘 나를 따라다니던 후회와 절망, 체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를 배웠다. 내 나이 칠순을 넘겼 지만, 소중한 매 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컴퓨터를 열고 자판을 두드린다. 내 인생도화지에는 파란색으로 채워야 할 여백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성 명 : 박 선 영

전 화 : 010 2261 7510

이메일 : park480303@hanmeil.net

 

  • profile
    korean 2020.09.01 18:58
    대단하십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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