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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21:21

붉은 괴물1-1

조회 수 70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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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트럭은 고요히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자신을 임지석이라고 부른 남자는 성격이 굉장히 유들유들하고 말이 많았는데 사납게 생긴것과는 다른 성격이였다. 그는 트럭을 운전하면서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였는데, 자신이 이 고속도로를 오가며 매일 출퇴근 하지만 이렇게 늦은 시간에 차가 고장난 사람은 처음이라고 놀리듯 말했고 내가 자신보다 몇살 더 많은 나이라는것에 놀라워했다. 사실, 그밖에도 여러 말을 한것에 '그렇군요'라고 대답해 주었지만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한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 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지.

시렵다 못해 동상에 걸릴듯한 두 손을 마주잡고 간간히 비비며 녹였다. 바들바들 떨려오는 몸을 진정시켰지만 곧 이가 딱딱거리며 부딪혔다.

트럭안은 무척이나 추웠다. 얼음이 꽝꽝 얼어있는 한겨울의 호수 위에 발가벗고 앉아 있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아까 밖에서 느꼈던 늦가을의 밤공기와는 비교도 되지 못할 추위였다. 내가 이렇게 온 몸을 죄여오는 한기에 떨 동안 그는 아무렇지도 않고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의 말을 멈추고 히터를 틀어도 되겠냐는 허락을 구했고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그렇게 춥냐고 물었다. 거짓말 하는 것으로 느껴질까 싶어 얼마나 추운지를 보여주려고 했지만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아 결국 겨우겨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흠, 하더니 히터를 틀어주었고 그에 주변공기가 한결 따뜻해지는것을 느끼며 그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임지석씨가 히터를 틀고 어색한 침묵이 계속되던 중, 다시 그의 입이 열리고 이야기를 들어준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다왔다며 그가 가리킨 곳에는 불이 켜져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지나가다보면 보이는 도로 아래의 마을들과 흡사한 모습의 그곳은 겹쳐있는 두 산의 사이에 위치해서 조금 음산해 보이기도 했다.

고속도로의 아랫길로 빠져나와 생각보다 큰 규모의 밭에 나있는 길을 따라 마을의 입구에 도착했다. 마을의 입구에는 두개의 장승이 세워져 있었는데 얼마나 오래 되었던건지 금방이라도 쓰러질것 같이 아슬아슬하게 기울어져 낡고 부서진 얼굴인 채였다. 그리고 그런 장승의 옆에 이 마을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로등 하나가 세워져 있었는데, 금방이라도 꺼질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빨리 오세요"

"아, 예"



깜빡거리는 가로등을 쳐다보고 있던 나를 임지석씨가 재촉했다. 그에 서둘러 걸음을 옮기며 마을 안으로 한발자국 내딛는 순간, 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가로등이 환하게 켜졌고 잠시 그것을 보던 나는 다시한번 재촉하는 목소리에 빠르게 그에게 다가갔다. 임지석씨는 미로같은 마을 안을 걷고 또 걸어 어느 집 앞에 멈춰섰고 내게 양해를 구한 뒤 집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안에 들어갈 수 있엇고 어머니를 돕겠다며 주방으로 가버린 임지석씨를 뒤로하고 임지석씨의 아버지인듯한 노인과 마주 앉아 있을 수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에 눈을 굴리며 방안을 흘깃거렸다. 장농과 옷장, 나무로 만든 앉은뱅이 책상하나와 그 옆에 기대어져 있는 오래된 나무 지팡이 하나. 방안을 밝히고 있는 촛불을 보면서 어련히도 시골인가보다..하는 생각을 하던 도중,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옴에 살짝 긴장하여 몸을 굳혔다.



"자네 이방인인가?"

"..예 그렇습니다."




외부인도 아닌 이방인이라는 단어선택이 매우 이상했지만 그게 그거려니 싶은 마음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계속 눈을 감은채였던 노인은 내 쪽을 쳐다보더니 "그렇군, 그렇구먼" 하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다시 말없이 앉아있은지 얼마 후, 임지석씨의 어머니인듯한 노부인이 쟁반에 차를 가지고 돌아왔다. 트럭에서의 강렬한 추위탓에 피곤이 누적된 몸을 달래주기 위해 감사인사를 하며 차를 들었고 차는 어릴적 고향에서 많이 마셨었던 생강차였다.

차를 홀짝홀짝 마시며 내가 머물곳을 정하고 있는 그들을 쳐다보았다. 노부인은 말을 못하는 벙어리인듯 했고 노인은 앞이 안보이는 맹인인듯 했지만 누구보다 이 마을에 대해 잘알고 있는듯 서로의 의견을 말하기 시작했고 임지석씨는 그 중간에서 둘의 의견을 서로에게 알려주며 자신의 의견도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차를 다 마시고 몸이 다시 노곤해 질 때 쯤  셋의 이야기가 끝난듯 했다.

임지석씨를 따라 그의 집을 나와 내가 머물곳이라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마을 깊숙히, 다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주변에는 집이라고는 밭 근처의 작은 집 한 채 뿐이고 눈앞에는 고급스러운 대문과 담벼락 뿐이였다. 이런 곳에 이런 집이 있을 줄은 몰랐던 나였기에 놀라운 마음으로 구경하고 있는 사이 임지석씨는 대문의 문고리를 잡고서 쿵쿵, 문을 두드렸고 조금 시간이 지나고서야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나 임지석씨의 발소리와는 사뭇 다른 사뿐사뿐한 가벼운 발소리였다. 그리고 곧 발소리가 가까워짐과 동시에 대문의 사이로 옅은 빛이 새어나왔고 이 고급스러운 대문이 있는 집의 주인인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죠?"

"죄송합니다 혜진누님. 저예요 지석이"

"아, 잠시만 기다려"



빗장을 밀어 떨어뜨리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리고 집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 밝지않은 촛대를 들고있는 탓에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음양이 드리워진 집주인의 얼굴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였다. 혜진, 이라 불린 집주인은 나를 경계하며 임지석씨에게 무슨일이냐고 물었고 사정을 전부 전해들은 뒤에는 여전히 경계어린 모습으로 자신의 집에서 머무는 것을 허락해 주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것보다 계속 신경쓰이고 있던 점을 물었다.



"그런데 왜 촛대를 들고 다니시는 겁니까?"

"네?"

"별로 밝지 않아서 위험하지 않습니까?"



방안에서라면 모를까 야외에서의 촛불은 그다지 쓸모가 없을것이다. 등불이나 램프라면 모를까 저 작은 촛불로 커보이는 이 집의 길을 비추면서 다닐 수 있을까? 지금 체감하기로, 이 마을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꽤나 어둡다. 어째서 마을의 입구에만 가로등이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이곳이 지독한 시골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램프정도는 임지석씨가 밖에서 가져오지 않았을까. 그러고보면 아까 있었던 임지석씨의 집에서도 양초를 써서 방을 밝히고 있었다. 트럭을 몰고 바깥 도시에서 일을 한다던 임지석씨와 지금 있는 이 마을의 이질감은 너무나도 확연하게 느껴져서 기이할 정도 였다.

집주인은 임지석씨를 잠시 쳐다보더니 무인인가 중요한 비밀이라도 말하는 양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마을은 다른곳에 비해서 규모도 작고, 이장님이나 마을사람들이 전기는 필요없다고 거절을 해서... 그래도 살만해요. 밤이 되면 할일이 없으니 불을 켜지 않아도 되고요........죄송하지만 이제 빨리 들어오실 수 있나요? 이대로 있다간...."

"아참! 빨리 들어가보세요 누님. 당신도 빨리 들어가세요."



집주인은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바들바들 떨며 잔뜩 겁을 집어먹은 목소리로 말했고 임지석씨는 집주인이 왜 그러는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와 집주인을 재촉해 대문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대문이 닫히자마자 밖에서 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여기있던 새끼 어디갔어!!"

"아이고 진정하세요 형님"

"여기있던 새끼 어디갔냐고! 안에 있냐? 어!? 안에있지!!"



곧이어 쾅쾅하며 그 남자가 발로 찬듯한 대문이 심하게 삐그덕 거리며 덜컹거렸다.

옆에 서있는 집주인의 얼굴은 새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질려, 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휘청거렸다. 일단 나는 침착하게 빗장을 들어 대문을 고정 시켰고, 그 잠깐의 작은 소리를 들었던 것인지 남자의 말투가 더욱 험악해 졌다.



"뭐야 잠궈? 잠궜어!? 너 이 개새끼 밖으로 안나와!!!"

"아이고 진짜 미치겠네 진정 하시라니까, 혜진누님 이 형님 데리고 전 이만 갈게요!"



임지석씨가 남자를 달래며 끌고가는 소리가 들렸다. 발광을 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점차 멀어지고 희미해질 즈음, 집주인은 이제 진정이 되었는지 나를 데리고 집으로 향했다. 대문안의 풍경은 쉽게 말하자면 종갓집의 풍경으로 아침이 되어서 본다면 무척이나 고급스러울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조용해서 을씨년스럽기도 했다. 대문에서 한옥 두채를 지나 내가 머물곳은 소설에서나 흔히 나오던 손님을 맞는다는 사랑방이였다. 방은 난로 같은것이 없어도 포근하고 따뜻했는데, 연탄이 있냐고 물으니 집주인은 아궁이를 뗀다고 대답해 주었다. 조선시대에 온 것 같다, 고 생각했다.



"저기, 부탁드리는거지만 문에 붉은 끈이 매어져있는 방에는 들어가지 말아주세요. 아이가 있거든요."

"아이가 있으셨습니까?"

"네. 올해로 막 두살이 되었어요. 많이 예민하고 낮을 가리는 아이니까 조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늦은 시간에 머무는걸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예요. 이만 푹쉬세요"



집주인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서 문을 닫았다. 그녀의 걸음소리가 멀어지고 난 뒤 나는 쓰러지듯 푹신한 솜이불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던 탓일까, 온 몸이 욱신거리고 오래 서있었던 탓인지 발바닥에 찢어지는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끙끙거리며 겨우겨우 움직여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 배터리는 80퍼센트 정도였고 견인회사의 전화는 없는 채 였다. 아직 차를 견인해 가지 않을걸까. 휴대폰을 끄고서 피곤에 절어 가물가물 해지는 정신을 애써 붙잡지 않았다.



멀리서 아기의 칭얼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오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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