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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9 23:47

낡은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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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는 정상입니다. 미치지 않았어요. 아직은”

그가 말을 꺼냈다.

“애초에 하루종일 하는게 미친놈들을 만나는거니, 조금 지치는건 당연하다고 봅니다. 아니, 오히려 이 직업으로 정신이 이렇게나 멀쩡한 사람은 제가 유일 할 겁니다.”

그가 당당하게 말을 꺼냈다.

“아,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군요. 슬슬 다음 손님이 올 시간이니, 조금 이따 다시 얘기하죠.”

그가 핸드폰을 꺼내들고 말을 꺼냈다.

그의 책상 앞은 지저분한 편이다. 환자들이 오는 방인데 이렇게나 지저분한 편은 좋지 않을거다. 특히 그 환자들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면. 책상의 맨 앞에는 검정색으로 된 명패가 있다. 매일매일 손질했는지, 그의 이름인 ‘김민수’가 적혀있는 부분은 언제나 윤이 난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나고, 이윽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

“실례...합니다…?”

누가봐도 미친놈이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초췌하다 못해 매독에 걸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고, 그가 입은 양복은 너무 커서 소매가 손을 반이나 덮었다.

나는 그를 일부러 피해서 문을 나섰다. 김민수가 일을 해야해서이기도 하고, 그가 일하는걸 보면 나까지 미치는것 같아서였다. 진짜로 미칠수는 없지만.

… 이제 무엇을 할까.

할 일이 너무 없다. 나에게 있어서 유일한 일과라고 말할수 있는건 김민수와의 대화가 거의 전부이다.

일단 병원의 프런트로 향하기로 했다. 할 일이 없을 때는 프런트에서 노는게 그나마 재미있는 편이기 때문이다.

프런트를 향해 뛰어갔더니, 거기서 간호사가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 핸드폰을 보면서 웃는걸 보니, 친구랑 대화라도 하는 모양이다. 평일 오전이라서 다행이지, 주말이었다면 아마 잘리고도 남았을 것이다.

마침 잘 됐다. 가서 뭘 하는지 구경이라도 해야겠다.

나는 프런트의 옆에 있는 직원 전용 간이문을 넘어서, 그녀의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다. 예상대로 그녀는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이름들을 보니, 전부 여자인 모양이다. 나조차 뭔가 살짝 쓸쓸해졌다.

그 순간, 현관의 자동문이 열리더니, 사람 같은 무언가가 들어왔다.

간호사는 한두번한게 아니란걸 증명하듯, 능숙한 솜씨로 핸드폰을 데스크 아래로 숨기고, 환자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처음 오시나요?”

새로운 환자는,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말도 못꺼내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럼 여기에 있는 이 서류를 작성해주세요.”

환자는 또다시 묵묵히 서류를 작성하였다.

할 일이 없어진 나는 새로운 환자가 적고있는 서류로 관심이 옮겨졌다.

… 악필이네.

그의 글씨는 암호에 어울릴 정도로 못 알아 볼 정도였다. 그러나 간호사는 대체 어떻게 읽은 건지, 웃으면서 말하였다.

“최철호씨 맞으시죠? 앉아서 기다려주세요.”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미국 연방 수사국이 채용해도 되겠다.

“아… 저… 그…”

놀랍게도, 지금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환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제 이름은 지상윤인데요…”

풋. 실수로 웃음이 나와버렸다. 간호사는 매우 당황했는지, 눈동자가 떨리는게 보였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시력이 나빠서요.”

그래도 프런트에서 일하는 직원답게, 꽤나 센스있는 처사를 했다.

간호사가 당황하는 사이, 시간이 벌써 그렇게나 지났는지, 멀리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  환자가 드디어 나온 모양이다.

나는 그녀의 핸드폰을 보는걸 그만두고, 다시 직원용 간이문을 지나서 김민수의 방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방금 그의 방에서 나온 환자를 만났다. 그의 표정이 조금 풀린듯한걸 보니, 김민수가 뭔가 도움이 될듯한 말이라도 해 준 모양이다.

나는 그 환자를 통과하고, 김민수의 방문을 열었다.

김민수는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걸 보더니, 웃으며 반겨줬다.

“아, 오셨군요. 여기 앉으시죠.”

그는 자신의 책상 건너편에 놓여있는 의자를 권했다.

“생각해보니, 저는 매번 당신에게 카운셀링을 받는것 같군요. 하하. 제가 이렇게나 좋은 상태인건 전부 당신 덕분일 겁니다.”

나는 그의 도움이 됐다하니 꽤나 흡족했다.

그는 방금 있었던 환자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그가 겉으로 보기에는 50대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30대여서 충격먹은것, 그가 보기보다 상태가 그리 심한 편은 아닌 알코올 중독이었던 것, 그리고 그가 아마 암에 걸렸을 거라는 것.

“딱 보기에 암이었어요. 물론 암이 이렇게 겉으로 본다해서 알 수 있는건 당연히 아니지만, 뭔가 저도 예전에 간암에 걸렸던 적이 있는지라, 느껴지는게 있는것 같아요.”

그가 멋쩍은 듯이 말을 했다.

김민수도 예전에는 여기오는 환자들과 다를 바 없는 정신병자였다. 그는 극도의 불안증세와 우울증, 그리고 알코올 의존증까지 있는, 흔히들 말하는 인간이라 부를 수 없는 존재였다. 그가 처음으로 우울증이 왔던것은 약 8년전, 그가 이 병원을 담당한지 3년째되는 날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우울증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증, 그리고 결국엔 알코올 의존증까지 생겼다.

백지. 김민수는 그때의 그를 그렇게 표현한다.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많이 미달되는, 원시인보다 못한 존재. 남들에게 피해만 끼치는 쓰레기. 재활용도 안되는 폐기물. 그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꽤나 많이 있다. 그러다가 2년 뒤, 그는 나를 만났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그를 만났다.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은 꽤나 유명한 자살 명소인 어느 숲이었다. 하루에 많게는 몇십명이 거기서 삶을 끝낸다. 그 곳에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우리의 인연은 그 곳에서 시작하였다.

그는 한손에는 손전등을, 한손에는 밧줄을 들고 숲을 돌아다니며 죽기 좋은 명당을 찾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동족인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행동을 보니, 예전에 내가 했던거랑 똑같아서 가까스로 사람인걸 눈치챘다. 곧 죽을것 같았지만.

나는 그에게 다가갔었다. 그러자 그는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당황한듯,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아… 그… 여기 어딘가에서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그 순간,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김민수는 허겁지겁 뒤로 돌아서 핸드폰을 껐다.

이 상황에 굉장히 뻘쭘한듯, 그는 내 눈을 쳐다보질 못하고 이미 다 들킨 핸드폰을 등 뒤에 숨기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웃으며, 그에게 따라오라 손짓 한 뒤 숲을 벗어났다. 그는 의아한 채, 멍하니 서서 떠나는 나를 바라보다, 이윽고 나를 천천히 따라왔다. 숲을 나서서 내가 도착한 곳은, 어느 술집이었다. 내가 술집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김민수는 내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어이없어 한 채 술집 앞에서 멈춰섰다. 그는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결심한 듯, 힘찬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술집 안은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었지만, 촌스러운 느낌도 없진 않았다. 가구들은 독일의 전통 술집 같은 기분을 내었지만, 벽지는 줄무늬에다가 색깔도 파랑에다 빨강이어서, 좋게라도 이쁘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는 한 쪽 구석에 있는 2인용 테이블에 앉아서 입구를 바라보며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가 들어오자, 손을 흔들며 나의 위치를 알렸다.

김민수는 술집에 자주 온 거 같이 능숙하게 소주 두 병을 시키며 자리에 앉았다.

서로 조용히 있다, 드디어 김민수가 입을 열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람을 여기로 끌고 온 겁니까?”

나는 그저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실례지만… 저희 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건 아니죠? 초면인데 이렇게 사람을 끌고오는건 예의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나는 그저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는 포기한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술이 오기를 기다렸다.

직원이 소주 두 병을 들고 오는걸 보자, 그는 무언가 생각난게 있듯, 재빠르게 손에 들고있던 물건들을 테이블 아래에다가 숨겼다.

“주문하신 소주 두 병 나왔습니다.”

직원은 김민수 앞에 컵과 병들을 두며 말했다.

“...? 저기… 컵이 하나가 부족한데…”

“네…? 아, 죄송합니다! 금방 갖다드리겠습니다.”

술집에 있는 사람들이 직원과 우리를 흘깃흘깃 쳐다보기 시작했다. 김민수는 그런 시선들이 매우 불쾌한듯, 시선을 벽쪽에다 고정시킨 채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컵이 나오고, 그는 마시기 시작했다. 아직도 짜증이 났는지, 연거푸 5잔을 마시고도 표정이 안 풀렸다.

혼자서 한병을 다 마시고 나서야, 그제서야 김민수는 취하기 시작했는지, 눈이 반쯤 풀린 상태로 말을 꺼냈다.

“선생님… 안 마십니까? 안 마시면 저 혼자서 다 마실 거예요… 어? 방금 끄덕이셨죠? 저 정말 다 마십니다, 후회하지 마세요.”

그가 두번째 병뚜껑을 따면서 계속 이어갔다.

“선생님… 저는 제 직업이 싫어졌어요. 제 성격이 싫어졌어요. 제 인생이 싫어졌어요. 제 가족이 싫어졌어요. 제 환자들이 싫어졌어요. 제 삶이 싫어졌어요. 제… 제… 그냥… 그냥 이 세상이 너무나도 싫어졌어요 선생님…”

그가 말을 마치고, 술잔에다가 술을 따랐다.

나는 그저 그를 바라봤다.

그가 술잔을 들이키고 나서, 다시 이어갔다.

“선생님… 저는 제가 대단한 사람인줄 알았어요. 남들을 초월한 그런 존재인줄 알았죠. 남들은 변해가지만, 저는 문제없을거라 생각했어요.”

그가 빈 술잔에다 술을 다시 따르며, 쭉 이어갔다.

“선생님… 그러나 전 틀렸었어요… 저는 이제 더이상 정신과 의사인 김민수가 아니에요. 그냥 술집에서 술을 퍼마시는 정신병자일 뿐이에요… 이젠 이거말곤 더이상 답이 없는것 같아요…”

그가 밧줄을 손에 쥔 채, 쓸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그저 그를 바라봤다.

그가 술잔을 다시 한번 들이키고 나서, 또 이어갔다.

“선생님… 애초에 제 선택이 틀렸던 걸까요? 제가 가업을 물려받는게 아니었을까요? 저는 이 직업을 선택했으면 안됬던 걸까요? 저는 제 환자들에게 헛된 희망을 준 거였을까요? 저는… 저는 살아선 안 됐던 걸까요?”

그가 빈 술잔을 꽉 잡은 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을 쏟아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에게 오래된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이건?”

그는 딱히 관심없는듯한 눈빛으로 명함을 받았다. 그러나, 뭔가가 이상한듯,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잽싸게 명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술을 멈추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이… 이거 어디서 나셨어요? 설마… 당신 혹시…”

나는 그저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아아… 아아아…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나는… 나는 틀리지 않았군요… 아아… 감사합니다…”

그는 내 손을 꽉 쥐며, 눈물을 흘리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어갔다.

나는 그저 웃으며, 그의 손을 쥐어줬다.

한참을 울고 나서, 우리는 술집을 나왔다. 그의 손에는 밧줄과 손전등 대신 낡은 명함 한장이 있었다.

그는 상쾌한 듯, 병원으로 다시 향했다.


끼익-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김민수와 나는 이번엔 어떤 환자일지 궁금해하며, 방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문이 열리고, 대기실에서 본 악필인 아저씨가 들어왔다. … 아저씨일까? 확실하진 않다. 심한 노안이거나, 아니면 젊은 티가 채 가시지 않은 아저씨다.

김민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새로 온 환자를 스캔하듯이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의 머리에는 곳 곳에 새치가 나 있고, 팔다리는 앙상했으며, 얼굴에는 살이 없고, 눈은 마치 다른 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으며, 다크서클은 광대뼈까지 내려왔다. 마치 예전의 김민수처럼.

나는 이번에는 환자가 신기하기도 했고, 신경쓰이기도 해서 방을 나가진 않았다. 김민수도 나의 행동에 크게 신경 안 쓰듯, 환자에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지상윤씨 맞으시죠?”

그는 고개를 떨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환자는, 5초간 가만히 있다가 입을 열었다.

“유령이… 보이는것 같아요…”

김민수는 흥미로운 듯한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그를 재촉했다.

“그렇군요. 혹시 그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실수 있나요?”

지상윤이라는 환자는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올리며, 오른쪽 벽을 향해 가리켰다.

“여기에… 있어요… 그 놈이…”

그는 금방이라도 뛰쳐나갈듯한 다리를 왼손으로 압박한 채, 이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유령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처음부터 유령이었는지, 나중에 유령이었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사람이었는지.”

그는 다리를 더욱 누르며, 계속했다.

“처음 만났던건 어느 가게였어요. 저는 그때 사업이 잘 안되가지고, 자살할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죠.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정신차리니 제 앞에 웬 처음보는 사람이 앉아있었어요. 저는 그를 째려보며 꺼지라고 말했죠. 하지만 그는 그저 가만히 저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저는 포기한 채, 술이나 홀짝이며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취해가면서, 말을 하다보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곧바로 친해졌죠. 지금 생각해보니, 주변 사람들이 계속 저희를 쳐다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군요.”

김민수의 표정에서 흥미가 사라졌다. 그리고 심각함만이 남았다.

환자의 두 팔이 마치 소름이 끼친다는 듯이 떨렸다. 그는 물 한잔을 마신 뒤, 계속했다.

“3년동안 어울리면서 불편했던 적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와 대화를 나누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었죠. 저는 놀랍게도, 3년동안 단 한번도 그의 이름을 물어본 적이 없어요. 왠지 물으면 안될것 같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전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서, 그에 관해 당신에게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환자는 뭔가 죄송한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같이 계단을 내려가다가, 제가 발을 헛디뎌서 앞에 있는 제 친… 유령에게 부딪히기 일보 직전이었어요. 저는 그를 피할수 없는 상황이어서, 그저 눈을 질끈 감고 있었어요. 어깨와 허리에 심한 통증이 온 후에, 눈을 떠보니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어요. 서서, 그저 저를 바라보기만 했어요. 아아, 그때 그의 눈을 봤어야 해요. 그 냉혹한 눈빛을. 심장까지 얼어붙을것 같은 그의 잔인함을. 그의 눈에는, 죽음만이 존재했어요. 저는 그때, 그가 사람이 아니란걸 깨달았습니다.”

그의 숨은 거칠다 못해 과호흡 증세가 왔다. 원래라면 김민수는 과호흡 증세를 멈춰줘야 하지만, 그는 뭔가에 홀린듯 계속 재촉하였다.

“계속하세요, 계속!”

김민수의 숨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는 그 사고 이후에도 날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 저는 그의 눈이 너무나 무섭습니다. 아무리 그가 똑같다해도, 아무리 그가 변하지 않았다해도, 전 아직도 그 눈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발 그를 없애주세요 선생님, 제발 그를 사라지게 해주세요. 저에게 그는 더이상 친구가 아닙니다. 그저 고통일 뿐이에요.”

환자는 ‘그’가 있는 위치를 가리키며 김민수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김민수는 뭔가 충격먹은듯,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생님… 저 괜찮아 질수 있는거 맞죠? 저에겐 이제 믿을게 선생님 밖에 없습니다…”

김민수는 그의 말을 들은 채 만 채 하며 답하였다.

“예… 물론이죠.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 준비가 필요하니, 다음주에 오세요.”

그러자 환자는 긴박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다음주요…? 선생님, 부탁입니다. 저는 더 이상 저 자와 단 1분도 있기 싫습니다. 선생님이 제 기분을 모르셔서 그래요. 제발 부…”

“다음주라고 했잖아!!!”

갑자기 김민수가 화를 버럭 질렀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아마 프런트까지 들렸을 것이다.

환자는 몹시 당황한듯,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아...알겠습니다… 다음주에 오겠습니다…”

환자는 고개를 꾸벅이고, 한시라도 빨리 여길 벗어나고 싶은지, 방문을 향해 뛰어나갔다.

김민수는 머리를 쥐고 고개를 돌렸다. 마치 나를 외면하려는 듯이.

몇십분이 흐른 뒤, 드디어 김민수는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제가 잊어버린거라면 정말 죄송합니다만…”

그는 아직도 날 외면한 채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 성함이 뭐죠?”

“선생님, 대답해주세요.”

….

“발성장애가 있으십니까? 그런거라면 걱정마세요, 제가 치료해드릴 수 있습니다.”

…..

“혹시 제가 불편하신건가요? 그럼 부디 말씀해주세요, 최선을 다해 고치겠습니다.”

……

“선생님, 아니… 당신은 누구인가요?”

나는 그저, 그를 바라보았다.

“아아… 아아아아…. 맙소사….”

그가 내 눈을 바라보고, 마치 변사체를 본것처럼 눈을 가렸다. 아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닌가.

“저리 치워! 그 눈 저리 치우라고!! 아아, 맙소사! 이런 소름끼치는 존재랑 6년이나 함께했다니, 이런 역겨운 일이 있을수가!”

그는 나를 혐오스러워하는 표정과, 나와 함께했던 자기 자신에게 드는 자괴감으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져갔다. 그리고선, 방을 뛰쳐나가서 문을 잠궜다.

나는 도망치듯 달아난 그를 뒤쫓아갔다. 하지만 문 앞에서 나는 멈추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 만약 내가 이 문을 지나가지 않으면 그는 날 사람이라 믿어줄까? 날 인간이라 믿어줄까? … 다시 한번 전처럼 지낼수 있을까?

나는 그저 문 앞에 서 있었다. 그가 다시 문을 열고 날 반겨줄거라 믿고, 그저 서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까마귀가 울기 시작하고, 해가 사라졌다.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다시 돌아올거야.

그러나 그 순간, 안좋은 생각이 내 머리를 지나갔다. 아주 옛날의 기억이다. 6년은 됐다. 그가 나와 만나기엔 너무 멀리 갈 뻔했던 때였다. 심장이 가쁘게 뛰고있다. 아니, 가쁘게 뛰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문을 천천히 통과하고, 거기에 김민수가 있기를 빌었다. 그러나 야박하게도, 내 앞에는 김민수 대신 칠이 반쯤 벗겨진 벽이 있었다.

나는 상황이 긴박하다는걸 깨닫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곳으로 달려갔다. 아무런 생각도 할수 없었다. 그저 내 두 다리만 믿고, 숲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니, 난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난 인간이 아니다.

김민수는 그걸 깨달았다.

그러나 내가 인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내가 유령이라도 상관없다.

나는 그저, 그와 다시 한번 만나고싶다.

만약 그가 나를 잊더라도 그저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가 나 때문에 괴로워한다면, 나를 잊고 그저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 누가 뭐라해도, 그저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나에겐 할 일이 있다.

우선 김민수부터 찾아야한다.

아무리 숲이 넓고 시체들이 많다고 해서, 그를 못찾을 내가 아니다.

일단 술집부터다. 예전의 그는 그때도 술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우거진 풀들을 헤치며, 나는 곧장 술집으로 향했다.

술집에서 꽤나 떨어졌는데도, 술냄새와 마른 오징어 냄새가 여기까지 풍겨온다.

나는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모두 즐거운 얼굴로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울한 내가 있었다.

샅샅히 뒤져봤지만, 김민수는 술집에 없었다. 그가 술을 끊었다는 말이 사실이었나보다.

나는 깊은 마음속 저편에서 약간 기쁜 마음이 솟는 내 기분과, 그럴때가 아니라는 내 이성이 충돌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술집에서 나와서 그가 있을 만한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맨 처음 만났던 곳. 우리가 조우했던 곳. 우리의 인연이 시작 됐던 곳. 나는 그 곳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우거진 풀들을 헤치며, 숲에서 가장 큰 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한번에 너무 많은 힘을 썼는지, 나는 지친채 도착하였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김민수다.

김민수는 김민수다. 하지만 더이상 김민수는 아니다.

내 눈앞에 김민수가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표정에는 절망이 가득했다.

그의 눈속에는 괴로움만 존재했다.

그의 발밑에는 손전등과 낡고 찢어진 명함 한장만이 떨어져 있었다.

그의 목에는

밧줄이 걸려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결국 이렇게 될줄 나는 예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일이 벌어지니, 조금 괴롭다.

아니, 조금이 아니다. 많이 괴롭다.

많이도 아니다, 꽤 괴롭다.

꽤도 아니다, 굉장히 괴롭다.

굉장히도 아니다, 과하게 괴롭다.

아아, 이 심정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어떻게 설명해야 이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질까.

가슴이 찢어질것 같다. 심장이 터질것만 같다. 머리가 정지한것 같다.

아아아아, 아니야. 이런 것들로는 전혀 설명할수가 없어.

이 부분은 그저 공백으로 나둬야 한다. 그 어떤 단어로도 이 기분을 설명할수 없을테니.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날 누가 죽여줬으면 좋겠다.

누가 날 다시 한번 죽이면, 그를 만날수 있지 않을까.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난 이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어졌다.

나에겐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단 하나도. 내 몸조차 나에겐 없다.

나는 수만가지의 표정이 섞인 채, 김민수가 잠든 나무의 뒤쪽으로 향했다.

그 곳에는 썩은 밧줄 하나와, 뼈밖에 안남은 시체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옛날에 뼈 하나가 있었다. 그 뼈는 꽤 키가 큰 편이었다. 아마 180쯤 됐을 거다. 그 뼈는 잘생기지도, 못생기지도 않은 편이었다.

그 뼈는 회사원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흔해빠진, 마음이 병든 회사원들 중 하나였다.

그에게는 특출난 재능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남들보다 공부를 잘하던 것도 아니었고, 남들보다 잘생긴 것도 아니었고, 남들보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평범한 생활을 보내고, 평범한 인생을 지내고, 평범한 삶을 지키던 그에게, 평범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마음이 병들어버린 것이다.

그 뼈의 주변에는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영원히 평범할것만 같았던 그는, 평범하지 않게 되었다.

그가 말을 걸면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가 밖을 나가면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그가 일을 하면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결국, 그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가 찾은 곳은, 어느 한 정신병원이었다.

그가 처음 들어가서 만난 것은, 한 간호사였다. 그녀는 농땡이를 피우고 있었다가, 나에게 들키고 핸드폰을 숨겼다.

접수를 하고 앉아서 기다리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의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 몰래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 계속 웃고있는 사람, 몸을 계속 떨고 있는 사람.

그러나 모두 평범하진 않았다.

그리고 이젠 그 자들에 더해, 언제나 이상한 사람이 추가로 왔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방에 들어갔다 나오고, 이윽고 그의 차례가 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한 남자를 만났다. 꽤나 젊은 의사였다. 아마 20대 초반 정도 됐을 것이다. 키는 그보다 조금 작았지만, 건장한 체구였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품위 있었고, 말투는 온화하며 예의가 넘쳐 흐를 정도였다.

그는 그 의사에게서 구원을 느꼈을 것이다. 그 의사에게서 빛을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매일매일 의사에게 가서, 대화를 나눴다.

대화를 나눌때마다, 그는 조금씩이지만 점점 예전처럼 돌아오는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있으면, 다시 한번 평범했던 삶으로 돌아갈 것만 같았다.

… 평범했던 삶?

그는 갑작스럽게 깨달았다.

그가 치료를 받을수록, 그는 예전으로 점점 돌아갈 것이다.

그가 치료를 안받는다면, 그는 계속 이상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었을까?

평범함과 이상함만 존재했던 그에게, 다른걸 고를수가 있었을까?

그는 결국, 어느 숲으로 들어갔다.

그 곳은 굉장히 어두웠으며, 조용했다.

숲속에는 까마귀 울음소리가 가득했으며, 오징어 썩는 냄새가 났다.

그는 거대한 나무 아래에서, 잠들었다.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잠을. 아니, 다시는 깨어나지 않았어야 했을 잠을.

정신 차리니, 그는 서있었다. 마치 오래된 꿈을 꾼 것처럼, 그는 예전처럼 돌아온 것 같지만, 전혀 우울해하진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현실을 직시해버렸다. 나무에는 또다른 그가 있었다. 그것의 왼손에는, 낡은 명함이 한장 쥐어져 있었다. 그는 명함을 빼내서 확인했다.

김민수. 정신과 병원장. 010-1234-5678. 찾아오시는 길.

잊을수 없는 이름이다. 그에겐 신보다 이 자가 더 신처럼 느껴졌다. 신은 구원을 해준다고 말은 하지만, 이 자는 정말로 구원을 해줬기 때문이다.

그는 명함을 들고, 의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몇걸음도 때지 않았는데, 그는 의사를 만났다. 그의 시체가 걸린 나무의 뒤에서.

그는 굉장히 행복해하며 그에게 달려가려는 찰나에, 그의 뒤에 있는 잔인한 현실을 기억해냈다.

그는 조용히 돌아가서, 의사의 뒤에서 나타났다.

의사는 그의 기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은 초췌했으며, 더이상 건장하지도 않았고, 그의 눈은 죽기 직전이었다.

비록 그와 더 이상 대화는 못나누지만,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금까지 의사가 그를 구원하였다. 이제는 그가 의사를 구원할 차례다.

그는 의사를 이끌고, 숲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의사가 다시는 이 곳에 오지 않게 하겠다고 결심하였다.


하지만 이젠 전부 쓸모 없다.

의사는 죽었다.

나의 빛은 죽었다.

김민수는 죽었다.

이젠 꿈에서 깰 시간이다.

즐거웠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다.

나는 이 꿈을 절대로 잊지 않을거다.

나는 내 뼈 위에 누웠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있으면, 김민수가 나를 깨워서 다시 한번 그때처럼 지낼것만 같다.

나는 이미 충분한 행복을 누렸다.

한번 산것만으로도 충분한데, 두번이나 살았다.

좋은 인생이었다.

나는 추억에 잠긴 채,

잠들었다.

내 뒤에서 김민수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그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