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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1 15:53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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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도 시골도 아닌 어중간한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 사실 도시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한 10년 가까이 살았는데, 진정한 고향은 아니었지만 그곳에서의 경험과 여러 가지 일들에 정이 많이 들었던 터라 마치 태어나 자란 고향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게 되었을 무렵 섭섭한 느낌도 적잖이 들었지만 마음속 한편으론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간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흥분감도 적잖게 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새로 이사 갈 집은 우리 가족이 예전부터 많이 기대하고 있었던 집인데, 어느 날 우연히 신문에서 광고를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새 집과의 인연을 맺어 준 것이었다. ‘쾌활하고 깔끔한 시골 주택바로 그 간단한 문장 하나가 우리들의 관심을 끈 것이다. 아버지께서 어머니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토론해 보신 결과, 오랫동안 배기가스와 공장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 냄새를 들이마시는 것도 좋지 않거니와 지금 사는 곳은 진부하고 싫증나는, 한낱 장난감 같은 건축물에 불과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파트에서만 살았으니 이제는 시골에 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지역에 가기 위해서 몇몇의 존재들을 희생시켜야만 했다. 새 집으로 이사 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안타깝다 하더라도 새 집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 테니 걱정 말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난다. 내 남동생이 다니고 있었던 태권도 학원,(태극 1장을 배웠다며 앞에서 발차기를 하던 동생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오만원이나 들여 열심히 키우고 있었던 소라게 다섯 마리, 커다랗고 무성한 잎을 자랑하던 크고 작은 화분 속 식물들 그리고 주말만 되면 언제나 항상 갔던 단골식당들과 장로교회가 모두 기억 속에서 점차 증발해 버렸다.

내 불쌍한 동생은 태권도를 그만 두기 직전에 품 띠를 땄지만(물론 실력이 아니라 돈으로 말이다) 한번 매 보지도 못하고 나오게 되어서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우리의 가엾은 어머니는 옆집 살던 아줌마와 친하게 지냈는데 이사할 때 인사 한번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하셨고, 나 역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늘 산책하며 오후를 즐겨왔던 푸르른 공원과 헤어져 섭섭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은 그 모든 것들을 추억 속에 던져버릴 만큼 새로 이사 갈 집의 기대와 희망이 거대했기 때문에 그런 사소한 감정들은 그리 큰 타격을 주지 못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집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우리는 그렇게 하나하나 소중한 추억들을 과거 속에 던져버렸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다 4, 따스한 봄이 피어나는 날 마침내 이사할 날이 다가왔고 우리는 드디어 꿈에 그리던 환상의 집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다. 내 동생은 흥분에 겨워 차 안에서 펄쩍펄쩍 뛰었고, 다정하신 아버지 역시 그런 동생을 꾸짖으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계셨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가장 기대하고 있었던 사람은 바로 나였고 애초에 그 집으로 이사 가자는 제안을 한 사람도 바로 나 자신이었으므로, 나는 하늘을 날 듯이 기분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꿈속에서 내가 원하는 모든 금은보화를 전부 얻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이사 온 집은 그야말로 완전히 시골주택이었고 주변에는 깨끗한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싱싱한 잎을 가진 초록빛 나무와 아름다운 나무의 매혹적인 열매를 먹고 자란 밝고 명랑한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지저귀고 있었고, 이 마을의 거리는 황홀한 꽃들로 가득했다. 거리마다 집집들이 사이좋게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집 사이사이에 꽃과 나비가 하나가 되어 태양의 빛을 따뜻하게 어루만지고 있었다. 우리는 낯설고 생경하지만 새롭고, 신비하지만 단꿈 같은 이 세계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이 기억난다.

나도 이렇게 좋고 깨끗한 마을일줄 상상도 못했단다. 정말이지 우리는 너무나도 운이 좋은 게 틀림없구나.”

그 옆에서 어머니도 잠에 취한 듯 몽롱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그래요, 여보. 이곳은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 꿈의 세상이 틀림없어요. , 이렇게 예쁠 수가......”

엄마는 이 멋진 풍경을 감상하시고 끝내 말씀을 잇지 못하신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며 살며시 미소 짓던 나와 동생은 서로 눈짓을 교환하고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도 이 마을의 아름다움에 완전히 사로잡힌 것이 분명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면서 활짝 피어있는 개나리의 매혹적인 향기도 맡아보시고 폴폴 나무 근처를 유희하며 날아다니는 나비를 잡으려고 뛰어다니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때까지 본 엄마의 모습과는 많이 상반되는 몸짓이었다. 그만큼 기대 이상이었던 집이셨나 보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론 나도 이 매력적이고 천국 같은 풍경에 넋을 잃고 마음을 뺏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드디어 레드카펫이 펼쳐진 소중하고도 기대했던, 꿈결 같은 우리의 집을 코앞에서 우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담벼락은 이미 빽빽이 둘러싸인 담쟁이덩굴에 의해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고,(그것이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면서 나에게는 무척이나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지붕은 우박과 비에 의해 오랫동안 감춰진 비밀의 껍질이 벗겨진 것처럼 맵시 있는 자태를 드러내며 우리 앞에 굳건히 서 있었다.

창문과 대문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오래된 시골집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도 전혀 촌스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한층 더 세련돼 보였다. 우리는 비로소, 마침내 그 고귀하고도 품격 높은 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위대한 집 내부의 순간에 첫 발을 내딛었다. 벽지는 뜯겨지고 사라져 없었지만 벽은 나무가 분명했다. 나무집이라니! 얼마나 오랜 기간 동안 나무집이 그립고 그토록 고대해왔는지 모른다. 10년이 지난 낡은 나무임이 틀림없지만 낡고 빛바랜 오래된 나무일수록 질이 좋다고 하시던 할머니 말씀이 생각난다. 나는 기쁨에 겨워 벽이 닳고 닳을 만큼 사방을 문지르고 다녔다.(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옷 더러워질라!”하고 엄포를 내리긴 했지만 말이다) 바닥재 또한 선명한 참나무 빛깔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군데군데 갈라진 곳도 있었으나 어차피 한 번 더 보수공사를 할 예정이라서 상관없었다. 거실은 운동장처럼 넓고, 부엌은 엄마의 마음에 쏙 들었으며, 방은 총 네 개가 있었는데 하나같이 아늑하고 따뜻했다. 2층의 넓은 방은 부모님 안방으로, 1층의 베란다 있는 방은 동생의 원룸으로, 책상과 침대가 딱 붙어 거의 완벽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은 나만의 방이 되었다. 부엌은 너무 좁지도 넓지도 않게 딱 알맞았고, 설거지를 편하게 이용할 수 있게 세면대 면적이 아주 넓었다. 게다가 가스레인지는 놀랍게도 최근 개발된 신식 전기 가스레인지였다. 우리는 그 점에 대해 매우 만족했다. 거실과 베란다 모두 사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모든 것이 착착 들어맞는, 한마디로 완벽한 집 그 자체였다.

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집 안 구석구석을 구경했는데, 하나도 빠짐없이 훑어보았다고 만족했을 때 문득 딱 한 곳, 다락방을 찾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생각났다. 다락방은 이런 시골집에 빠져서는 안 될 유일한 안식처이자 비밀공간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다락방이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나의 예감은 역시 예상대로 틀리지 않았다. 다락방은 역시 천장에 위치해 있었고 계단을 내리자 삐걱거리는 기이한 신음소리를 내며 내려왔다. 다락방 안은 컴컴하고 어두웠고, 벌써부터 음침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실 처음엔 무서워서 그냥 내버려두고 나가버릴까 했지만, 그저 기분 탓이었을까? 다락방에 올라가 전등을 밝혀보니 사실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넓지도, 좁지도 않은 다락방은 텅 비어 있어 쥐 한 마리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자주 쓰지 않는 물건들은 다락방에 방치해 놓으면 그만이었고, 가끔씩 다락방에 올라가 잠을 청하는 것도 일종의 좋은 방법인 것 같았다. 방법이야 어떻든 이 방을 깨끗이 청소해 놓으면 다양한 용도로 활용이 가능할 것이다.

새 집을 전부 빙 둘러보니 왠지 결과가 만족스레 뿌듯했고, 우리 가족이 이런 천상의 집을 선택했다는 것 또한 뿌듯했다. 기대 이상으로 커다란 집을 갖게 되어 뱃속에 포만감이 일 정도로 말이다. 이 집을 정말 잘 선택했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고, 어딘지 익숙한 풍경에 이끌리어 마치 이곳이 전에 살던 집처럼 느껴졌다. 나의 옛 집, 고향 말이다. 정말 고향 같았다.

이제 앞으로 해야 할 일은(귀찮지만) 청소와 짐 정리 그리고 수면이다. 청소하는 동안에는 그리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짐 정리는 워낙 까다로운 터라 시간이 더디게 흘러갔다. 사방에 먼지가 휘날렸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작업해야 할 지경이었지만, 그런 세세한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급하게 마무리했다. 우선 짐을 정리하고 잠을 자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어놓고 우리 가족은 각자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아직도 진정되지 않은 심장을 달래고 잠을 청해보려 했지만 헛수고였다. 새로운 집에 이사 왔다는 흥분감에 눈은 도저히 감겨지지 않고 다음날 해야 할 일들만 머릿속에 떠오를 뿐이었다. 내일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계속해서 짐 정리만 해야 할까, 아니면 집 하나하나 돌아가면서 (신고식)떡을 배달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동네 아이들과 친해져 함께 놀아야 할까? 이런 즐거운 고민과 상상들로 하여금 잠 못 이루고 긴장된 채 밤을 지새운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도저히 눈이 떠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벌써 하루가 지났다니, 꿈만 같았다.

지붕 위로 아침 햇살이 힘차고 용맹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일곱 시였다. 서둘러 잠옷을 갈아입고 거실 밑으로 내려갔을 즈음 내 동생은 전날 밤의 대청소가 피곤했는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방 안에 들어가서 잘 것이지 왜 밖에 있담 하고 생각하지만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 게 내 동생은 유난히 잠꼬대가 심하다. 침을 흘리고 누워 있는 그 모습이 애처로워 차마 흔들어 깨울 수가 없었다. 대신 어머니 아버지께 다가가 아침 식사를 차려달라고 청해볼 생각이었지만 그것도 그만 두고 말았다. 여덟 시 반이 넘었는데도 두 분 모두 주무시고 계셨던 것이다. 결국 나만 일찍 일어난 셈이 된 것이었다. 일찍 일어나서 빨리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 고요한 정적 속에 나 혼자만 깨어 있게 된 것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 혼자 아침밥을 차려 먹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요리를 시작했지만 그것조차도 헛수고라는 것을 깨닫고 가족들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사실 나는 여자치고는(어쩌면 성차별 발언일지도 모르겠으나) 요리를 통 못하는 편이다) 그동안 나는 짐 속에서 나의 보물들과 소중한 물건들을 찾아냈다. 이사하는 도중에 몇몇 개 찌그러진 것들도 있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나머지 몇몇 개는 그나마 쓸 만한 것들이었다. 매일 아침 바닷가로 나가 하나하나씩 주워 모았던 조개껍데기들, 놀이터에서 놀다가 발견한 반짝이는 금빛 장식품들, 식빵 봉지를 묶을 때 쓰는 철사 줄까지 모두 옛 시절 가지고 놀던 장난감들이다. 이제 와서 이런 모든 것들은 거의 쓸모가 없게 되었다. 쓸모 있을 줄 알았지만 생각해보니 아무짝에도 쓸 데 없고 별 볼일 없는 물건들이었다. 옛날에 살던 집의 그리움과 그 그리움의 향기가 갑자기 순식간에 몰려오는 파도처럼 한꺼번에 몰려와 코끝을 적셨다. 새 집에 이사 와 새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그리 무척이도 몇 년 전 그때가 그리운 걸까? 그 그리움의 원천과 이유를 모르겠다.

2층에서 발소리가 울렸다. 가족들과 함께 오래 지내다 보면 발소리만 듣고도 누구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법이다. 아버지께서 일어나신 것이다. 이제 아침밥을 먹을 때가 온 것 같다. 그런데 엄마는 전혀 일어나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위층에서 아버지의 애원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 일어나서 밥 먹자, ? 밥 먹고 또 청소해야지.”

그러나 엄마는 여전히 코만 골고 있을 뿐, 일어날 기미는 눈곱만큼도 없다. 열시까지 주무실 작정인가 보다. 결국 아버지께서 내려와 혼자 밥을 차리셨다. 반찬은 생선 통조림과 플라스틱 통에 담아온 배추김치로 대신해 그럭저럭 괜찮은 밥상이 차려졌다. 식사하는 내내 다들 아직도 가시지 않은 흥분으로, 아무도 말하지 않은 채 침묵 속에서 묵묵히 밥만 욱여넣었다.

밥을 먹고 나자 이제 밖에 나가 경치 구경 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면 혹여나 옛날의 그리운 그 곳이 기억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말이다. 아버지께 여쭤보았으나 허사였다.

이제 우린 하루 종일 집 청소만 해야 한단다. 나가고 싶더라도 조금만 참아.”

끔찍하고 기나긴, 지루하고 고루한 청소가 끝나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자 슬슬 안일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자연적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 바로 안일함만의 매력이다.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비추고 눈이 감기면서 권태가 다가오며 나른해질 무렵, 밖에서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우스갯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언제 왔는지 키 작은 꼬마 녀석들이 울타리에 줄줄이 서 있다. 뭘 하나 싶어서 봤더니 저마다 바지를 홀라당 까놓고 오줌을 갈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버릇없는 남자애들 어서 썩 꺼져라 하고 욕하려다 자세히 보니 전부 여자애들이었다. 같은 여자라서 그런 것도 있고 집 앞에서 무례한 행위를 저질렀다는 것에도 있고 아무튼 모든 분노가 뒤섞여 그만 소리를 빽 지르고 말았다.

야 이놈들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러자 꼬맹이들은 고개를 돌리더니 혀를 삐쭉 내밀고 눈을 까뒤집고 열심히 줄행랑을 치는 것이었다. 미처 올리지 못한 속옷을 달랑거리며 뛰어가는 것이 꼭 닭 한 마리가 물똥을 찍찍대며 튀기고 가는 모습과 비슷해 순간적으로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나중에 저 망할 꼬맹이 녀석들을 모조리 잡아다가 닭백숙처럼 만들어버려야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다 이내 사라졌다. 왜냐하면 내게 가까이 다가온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옆집 아저씨였기 때문이다. 옆집 아저씨는 이런 곳에 사는 사람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험악하게 생겨서 평민이라기보다는 조폭에 가까웠다. 그는 내게 완전히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다가와서는,

네가 누군데 감히 우리 귀엽고 소중한 딸들을 괴롭히니? ?”

하고 껌 뱉듯 침을 튀기며 내뱉는 것이었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해서 얼떨결에,

아니, 쟤들이, , 아니, 우리 집에, 오줌을 싸잖아요!” 하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그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는 삿대질 즉 일명 질을 실컷 할 기회다 싶어 온갖 욕설과 비방을 쏟아내려다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냐하시고 가까이 다가오시자 콧방귀를 뀌더니 태도를 180도 돌변해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 제 애들이 그냥 사소한 장난 좀 쳤다고 얘가 허허.......”하고 얼버무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가 차고 어이도 없어 멍하니 구름 가득한 하늘만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집 뜰 뒤쪽으로 달려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평화롭고 행복할 줄만 알았던 낯설지 않은 집이, 우리가 그토록 꿈을 꾸고 상상 속의 오선지 위에 그리던 환상의 집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무례하고 무섭게 보였을 줄이야! 하지만 아버지께선 별로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셨다. 그 험악한 조폭 아저씨랑 몇 마디 말을 나누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리고 반갑게 악수를 건넸다. 조폭 아저씨는 자못 겸손한 태도로 말을 이으며 무슨 말씀을. 앞으로 제가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는 이내 돌아갔다. 어이가 없었다. 조폭 아저씨가 뒤뜰 너머로 사라지자마자 나는 아버지께 달려가 방금 전 있었던 자초지종을 해명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저 애들 장난일 뿐이라고, 신경 쓸 것 없다고 하시면서 도리어 그 여자애들과 친해지는 게 좋지 않겠냐 하고 너털웃음을 터뜨리실 뿐이었다. 물론 아버지 말씀대로 그렇게 대수롭지 않은 일 가지고 분개할 필요도 없거니와, 무엇보다도 좋은 집에 이사 왔는데 이웃들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집에서 누구보다도 예민한 사람이었고, 겉으로는 행동이 굼뜨고 둔하지만 사실 마음속은 상처를 쉽게 입는 연약한 소녀였던 것이다. 그 일 후로 크게 신경 쓸 일도 아니다 싶었는데 자꾸만 머릿속에 떠오르곤 했다. 그 여자애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고 때때로 한바탕 싸움이라도 벌이기 싶은 심정이 가슴속에서 우러나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천국 같은 집에 친한 이웃 한 명 없다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앞으로의 시골 생활을 더욱 풍성해지게 노력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어느덧 이삿짐 정리는 종말을 맞았고 드디어 넓디넓은 집 안에서 마음껏 뛰고 놀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혼자서 놀고 있는 동생을 남겨둔 채 이름하야 떡 돌리기, 즉 신고식을 치르러 집집마다 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신고식을 치러야 한다지만, 떡 돌리기는 너무 촌티 나고 고루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절로 떠올랐다.

첫 번째는 주택 중 가장 끝에 자리 잡은 집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어두워 보이는 집이었는데 초인종을 누르자 2층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흉가라 생각했건만,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어 다행이었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시간은 제법 길었다. 1분 가까이 기다렸지만 쿵쿵대는 소리만 들릴 뿐 가까이 올 기미가 보이질 않는 것이다. 그래도 용케 아래로 내려와서 문을 열어주었다. 안경 쓴 남자였는데 머리카락이 꽤 길어서 약간 백수 같은 느낌이 나기도 했다.

뭐야.”

아주 간단하고 짧은 한마디.

....... 제가 여기 새로 이사 왔는데요, 떡이라도 하나 드시라고.......”

나는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항상 이번에는 당당하게, 당차고 씩씩하게 맞서야지 생각하면서도 막상 앞에 서면 부풀었던 풍선 쭈그러지듯 더욱 쪼그라질 뿐이다. 백수같이 생긴 남자는 기분 나쁘게 씩 웃으며 냄새 나는 이를 드러냈다. 그러더니 들고 있던 시루떡을 순식간에 낚아채 문을 급속도로 닫는 것이었다. 나는 돌아서면서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다. 재수 없는 놈이라고.

다음 집은 나름대로 깨끗해 보였다. 지붕에 까치집이나 벌집 하나 없었다. 울타리가 있었는데 반짝반짝 윤기가 나는 것을 보니 매일 손질하는 것 같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파마를 한 아줌마였는데, 방금 막 나갈 채비를 끝마쳤는지 뚱뚱한 몸에 어울리지 않게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자세히 훑어보니 화장이 얼굴 위를 광범위하게 덮고 있지 뭔가. 마치 연필이라도 박으라는 듯이 말이다. 아줌마는 이글거리는 듯 무서운 표정을 짓더니 내가 떡을 가져왔다고 하자 태도를 급히 바꾸어 어머, 그러니? 저기다 좀 놔두고 갈래?”하고는 현관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어디 급한 데라도 가는 모양이다, 하고 생각했다. 사실, 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누구라도 금기를 깨고 하는 일이 있지 않은가. 아까 못생긴 아줌마가 문을 열어놓고 갔기에 아무도 몰래 슬쩍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잡동사니들이며, 립스틱과 화장품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옷장이 곳곳마다 존재하고 옷장 속에서 뿜어져 나온 각종 코트와 치마 등이 사방으로 휘날려 있었고, 거실 선반 위에 소름끼치게 생긴 인형 하나가 있었는데, 허름한 옷차림이며 움푹 꺼진 시커먼 눈동자를 가진 그것이 이 집 안의 이질감을 더욱 조성시켜주었다. 이건 도대체 사람 사는 집이 아니다, 싶어 코를 쥐어 쥔 채 밖으로 뛰쳐나와 한참을 걸어 다녔는데도 아직도 냄새가 나는 걸 보니 여간 지독한 게 아니었나 보다.

나는 고약한 악취를 뿌리치고는 다음 세 번째 집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어 준 사람은 초췌하게 생긴 남자아이였다. 나랑 나이가 비슷해 보였는데,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나 모니터만 들여다보는지 유난히 눈 밑이 검고 짙었다. 방금 전에 보고 지나쳤던 백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제법 길게 늘어뜨린 풍성한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아마도 몇 년 동안 머리를 깎지 않아서일 것이다.

누구세요?”

그 남자애가 순간적으로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는 바람에 나도 하마터면 존댓말로 대답할 뻔했지만 냉정을 되찾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 우리 집이 새로 이사를 왔는데, 새로 이사를 왔으니 신고식, 아니 떡 배달을 해야 된다는 생각에 너희 엄마랑 아빠 좀 드시라고 떡을 가져왔어. 좀 먹을래?”

이 어색한 상황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말을 끝내자 나 자신이 너무 하찮고 초라하게 느껴져 순간적으로 갑자기 확 쪼그라진 느낌이었다. 그 남자애는 내 말을 듣더니 우습게 보였는지 아니면 자기 자신이 오히려 더 어색하고 머쓱했는지 떡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사는 주민들은 모두 하나같이 괴상하고 특이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인가 보다, 라고 생각했다.

이상한 집들을 차례대로 돌아가며 떡 배달을 마쳤을 무렵, 어느새 땅거미가 지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그 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부모님께 말해드렸다. 그러자 부모님은 아주 재미있는 사람들이구나 하시며 오늘은 쉬고 내일 가서 만나봐야겠다 라고 하시었다. 설마 진심일까 싶었지만 그 다음날 부모님은 마을 주민 회관에 가셔서 주민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기 시작하셨다. 내 동생은 지루한지 몇 번 들락날락거렸다가 사탕과 과자를 한 움큼 집어서는 밖으로 나가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정말 지루하고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웃기도 하고 소리 지르기도 하는데 나는 그것이 모두 사람들의 무상한 세월 낭비며, 노닥거리는 허무이며, 온갖 위선적이고 허위에 가득 찬 곳에서 나누는 허례허식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2

 

부모님의 끊임없고 지속적인 마을 사람들과의 교류로 몇몇 사람들과는 친구처럼 친해지기도 했고, 몇몇 사람들과는 그저 대면 대면한 관계를 유지할 뿐이었다. 정작 가장 사이좋고 정답게 지내야하는 옆집과는 그렇게 순조롭지 않았고, 그 옆집의 옆집과는 그나마 마음이 잘 통해 자주 놀러가기도 했다. 그러나 도시에서 실현하지 못한 일을 시골에서는 가능할 것이라고 믿던 나는, 아파트에서 키우지 못한 강아지를 시골에서는 키울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즉 나는 사람들과 어떻게든 친해져보겠다는 생각보다 하루 빨리 동물을 키우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가령 어떤 동물을 키우는 게 좋을까, , 고양이, 돼지도 무관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개와 닭을 키우고 싶었다. 시골에서는 가축과 관련된 동물들을 키우기 쉽기 때문에 아버지께선 닭을 선호하셨다. 그리고 아버지께 닭을 키우고 싶다는 얘기를 들려드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느 날 세 마리의 병아리를 사오셨다. 처음에 상자 안에서 삐악 삐악 소리를 내고 있는 귀여운 병아리를 봤을 때, 병아리에서 중병아리로, 중병아리에서 건장한 닭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머릿속에 그려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와 내 동생은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노란빛 병아리를 여러 번 보듬고 껴안고 만져댔다. 그러나 그것이 큰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아직도 병아리를 키우게 된 사실이 믿겨지지 않아 눈을 말똥말똥하게 뜬 채로 밤을 지새웠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전날 밤까지 삐악거리는 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없고 싸늘하게 식어 광채를 잃은 섬뜩한 시체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엄마는 집 환경이 병아리의 조건에 맞지 않아 죽은 것이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만져 대서 죽은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뒤로 얼마 뒤, 아버지께선 새로 닭 여러 마리를 데려오셨다. 비록 샛노란 해바라기 빛 병아리는 아니었지만 거의 다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삐악 소리를 내는 중병아리였다. 닭처럼 큰 게 병아리 소리를 내내, 하고 비웃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후로 그 소중한 병아리들을 정성껏 보살폈고 어느덧 늠름한 닭이 되어 마당을 오고고거리며 돌아다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닭들에게도 싫증을 느껴 금방 시들해지고 말았다. 처음엔 닭들을 껴안기도 하고 먹이를 주면서 나름대로 재미도 느꼈지만 차차 애정이 사그라지더니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만 새로운 신종 동물을 원하게 되었다. 결국 또다시 부모님께 간곡히 부탁해야 하나 싶었는데 부모님께서 내 마음을 알게 되셨는지, 아니면 다른 동물 하나를 더 키우고 싶으셨는지 아는 지인에게 가 개를 두 마리 받아오셨다. 시골에 살면 빠져서는 안 될 동물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왔다니 그때 얼마나 기뻤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한 마리는 아직 어린 새끼였고 또 한 마리는 조금 더 성장한 새끼였다. 진돗개와 시베리안 허스키였는데 진돗개는 그 전 지인이 너무 만져서 손을 많이 타서인지, 아니면 우리가 멍청하게도 집 안에 들여놓지 않고 바깥 흐린 날씨에 놔둬서 비를 너무 많이 맞은 탓인지,(어느 쪽이든 둘 다겠지만) 데리고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죽어버렸다. 생명의 가치는 크기에 따라 결정되는 것인지, 아니면 희귀성이나 보존성, 소장 가치로 따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이유에 한해 결정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몇 주 전에 죽은 병아리와는 다르게 슬프게도 동물을 잃은 상심이 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쓸쓸했지만 다행히도 개가 한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여서 남은 강아지 한 마리를 정성껏 보살피고 돌봐주었다. 이 시베리안 종류의 개는 저 세상으로 간 진돗개보다 더 자란 상태에 와서 다행히 도중에 죽거나 몸이 약해지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행복했다. 그렇게 얼마간은 양육하는 동물 덕에 행복했으나, 역시 모든 상황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일만은 없지 않기에 며칠 후 또다시 불행이 닥쳐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아직 어려서 어른들 문제에 관여하여 끼어들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인내심을 발휘하여 저분들이 어떤 토론을 하는가, 무슨 얘기를 하며 저렇게 열을 내는가 싶어 잠자코 귀 기울여 들어보았다. 그러나 그 일도 그새 시들어져 다른 일에 관심을 두고 어른들이 하는 말들은 무조건 모두 재미없고 시시닥거리는 놀음에 불과하다고 여겨 아예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후에 알고 보니 그 일은 집 외부 공사 변경에 관한 문제로 차질이 생겨 일어난 다툼이었다. 집 바로 옆에는 전봇대를 설치하면 안 된다, 왜 강물이 흐른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흐르지 않고 시멘트만 가득하느냐, 벽에 갈라진 금이며 낡은 곳들이 너무 손상이 많다 등의 끊임없는 질문과 견해와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사람들은 열띤 어조로 과장해 부풀려서 말했고 분위기 또한 더욱 열띤 형태를 띠게 되었다. 물론 그 중에 부모님도 참여해 있었다. 부모님은 집 내부와 외부 문제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셨다. 실제로도 그랬다. 처음엔 모든 공간이 깨끗하고 청결해 보였으나 생활하면 생활할수록 더욱 누추하고 지저분하게 보였다. 주도면밀하게 살펴보니 보수공사가 되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계속해서 구멍이 뚫리는 배수관과 세면대, 정작 있어야 할 곳에 없고 엉뚱한 벽에 붙어있는 초인종 감지기, 지나다니는 길에 방해되는 기둥 등 모든 일상생활에 방해되고 이동하는 데 불편한 장애물과 시설들이 사방에 함정처럼 설치되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우리 집은 따뜻하게 돌아가는 보일러가 팰릿보일러여서 괴상하게 개밥과 흡사한 원료를 넣어야만 했다. 너무 쓸데없고 실용적이지 않은 기계라 우리는 몹시 화가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을 소장에게 항의했는데, 소장은 오히려 손해배상을 해주기는커녕

고소하려면 고소하시든지!”

라고 대들고는 완벽하게 무시해버렸다. 그 때문에 소장과 우리들의 사이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모처럼 기대했던 집에 온갖 역경을 딛고 찾아왔지만 집 설계자는 다시금 우리를 실망시켜준 것이다. 나도, 동생도, 부모님도 모두 너무나 허무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희망과 기대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별로 상황이 좋지 않음을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수의 이웃들과는 친하게 지내셨다. 하지만 다수의 이웃들과는 서로의 경계심만 더욱 짙어질 뿐이었다. 그리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또래의 애들과, 나보다 나이가 적은 애들과,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애들이랑 사이가 좋아지기는커녕 적의와 복수심만 더욱 돈독해질 뿐이었다. 처음엔 그저 사이가 좋은 듯했다. 만나면 아는 얼굴이라 인사하고 함께 웃으며 어울리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앉아 놀기도 했다. 그러나 등 뒤로 돌아서는 나보다 나이가 적은 몇몇 애들이 멍청하게 보이기도 했고 그 애들은 나에게 거추장스럽고 짜증나는 태도를 보이곤 했다. 나는 초반에는 나보다 나이가 아래인 어린 녀석들만 우습게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동등한 애들마저 마음가짐이 착하기보다는 도리어 신경질적이고 우울해 보여 결국에는 서로를 이간질하고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그 애들이랑 사이가 멀어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었고 그 중 인상 깊었던 사건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때가 8월이었던가, 무척이나 덥고 뜨거웠던 날로 기억한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할 일에 바빠 남의 일에는 눈곱만큼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물론 나도 한창 닭장 건축이며, 마당 정리며 밭매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할 일이 많았다. 어쩌면 그것으로 하여금 나의 극도로 예민한 신경을 더욱 자극하여 주었는지 모른다. 시골이라 그런지 햇빛은 보란 듯이 타 죽을듯한 뙤약볕을 내리쬐었고, 나는 그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모자를 쓰고 호미로 힘겹게 밭을 일구고 있었다. 산 속이라 그런지 유난히 바위가 많았고,(땅을 팔 때마다 나오는 것은 돌멩이나 돌덩이가 아니라 바위였다) 흙을 걷어낼 때마다 나오는 수많은 바위를 일일이 걸러내며 만들었다. 특히나 그 바위들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하고 괴롭혔다. 마당을 만들겠다고 그 크고 무거운 바위들을 옆에다 일일이 던져버렸으니 말이다. 제각각 크기와 무게가 달랐지만 적어도 각자 5킬로그램씩은 되는 것 같았다. 그 들기도 버거운 돌들을 아버지와 나는 팔뚝의 힘줄이 튀어나오도록 던져 옮겼다.

나와 내 동생, 그리고 아버지는 그렇게 힘들게 가꾼 밭 위에 상추며 깻잎, 열무 등 갖가지 식물과 채소들을 정성껏 심었다. 언젠가 물을 듬뿍 먹고 굳건하게 자라나서 그것들을 따 먹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그렇게 괴로운 노동을 마치고 나서 마을 회관에 가는 길이었다. 마을 회관은 쓸데없이 넓고, 어둡고, 조용했다. 얼마나 어두운지 예전에 마을 언니와 함께 컴컴한 어둠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가 박쥐를 발견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때 내가 본 생물은 정말 박쥐였다. 쥐도 아니고, 돼지도 아닌 진짜 박쥐 말이다. 그때의 놀라움과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몇 년이 지난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눈앞에 실제로 아른거리는 듯 또렷하게 보이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그 어둠침침하고 으스스한 마을 회관에 들어섰다. 마을 회관은 넓어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넓은 것은 아니었고 보통 수준이었는데 놀이방이 있었다. 우리들의 유일한 쉼터는 놀이방뿐이었다. 놀이방은 아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편이라 그런지 항상 불이 켜져 있었고 밝았다.(불이 전부 꺼져 있고 쓸쓸할 때도 있었지만 말이다) 나는 그 환한 놀이방에 들어가 다른 애들과 함께 어울리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나이불문하고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어린 애들보다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 또래들과 더 어울렸다고 생각되었다. 나는 그날도 한 여자아이와 내 동생과 함께 신나게 놀다가 시간이 지나고 그만 싫증이 나자 다른 방으로 옮겨 갔다. 사실 그 방은 어른들이 사용하는 당구치는 방이라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아이는 내키지 않는 나와 동생을 끌고 들어갔다. 거기에서 뭔가 불쾌하고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무언가가 굉장히 불안했다. 당장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나도 모르게 들어가 즐기기 시작했다. 그 여자아이는 당구를 치자며 나에게 당구를 가르쳤고, 나는 그대로 어른들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잘난 체하며 당구를 즐겼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완전히 아마추어였고 그 여자아이 역시 아버지에게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가르쳐주었던 초보자였던 것이다. 그 여자아이는 나에게 당구 막대기를 내밀며 한 번 쳐 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여자아이가 시키는 대로 막대기를 받아들고 분필 같은 것을 막대기 끈에 문지른 다음, 그럴듯해 보이는 자세를 취하고 어른들처럼 멋이 나는 동작을 선보였다. 그러자 그 여자아이는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며 좋아하지 뭔가. 매우 만족했다는 투로 나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 자세가 바로 내가 원하는 모습이야!”

나는 왠지 모를 괜한 뿌듯함을 느끼고 땀을 흘리면서 힘차게 당구를 쳐댔다. 시간은 부질없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황혼이 짙어가고 있었다. 아마 그때가 그 여자아이와의 가장 순조롭고 한결같던 날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여자아이와 함께 열심히 그리고 신나게 당구를 하다 기쁜 마음으로 웃으며 당구장을 나왔다. 그렇게 행복하게 즐기고 아무것도 모른 채 집에 돌아갔다.

집에 들어가니 얼마 안 있어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그 아버지는 바로 우리 옆집에 살고 있던 옆집 이웃이었다. 여러분이 기억할지는 모르겠으나 처음 이사 왔을 때의 그 험상궂고 불친절한 아저씨 말이다. 그 조폭 같이 생긴 아저씨는 우리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께 무슨 말들을 해 댔는데 나는 그때 목욕을 하고 있어서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시원하기만 했었다. 그런데 목욕을 다 하고 씻고 나오자 별안간 천둥소리 같은 벼락이 떨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께서 나와 내 동생을 큰 고함으로 불러 세우시더니 갑자기 커다란 목소리로 혼을 내시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이러하였다. 왜 당구장 안에 들어가 당구를 하고 당구장 문을 닫지 않은 채 나왔느냐, 왜 당구를 했으면 정리를 잘 하고 나올 것이지 당구공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느냐, 그리고 왜 당구를 마음대로 건드리고 허락도 받지 않고 했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저씨가 이 일로 말미암아 굉장히 화가 나셨으며, 분노로 치를 떨었다 고 하는 것이다. 특히 당구장 문을 닫지 않고 그냥 나온 것에 어마어마한 증오와 원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 한참 동안 우리 집에서 떠들어댔다. 부모님은 또 그것에 대해 적극적인 수긍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나의 의견은 들어주지 않은 채, 들어도 무시한 채 그 험악한 아저씨의 폭언만을 듣고 나의 견해는 열띠고 타오르는 토론 속에 잊혀져갔다. 그렇게 나는 해명할 기회도 없이 어처구니없게 꾸지람을 듣고만 있었다. 겨우 내가 분명히 문을 닫고 나왔다고 설명하자, 그들은 도리어 믿지 않고 더욱 혼쭐만 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내 동생은 너무나 억울했고, 속상했다.

그 사건 후 그 일로 인하여 영원히 그 여자아이와의 인연이 끊어졌다. 사이는 점점 더 악화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계심과 복수심만 더해져 갔다. 우리는 그 일 후로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끔씩 한두 번 만났으나 점차 뜸해졌고 결국 다시는 함께 모여 놀지 않았다.

 

그 해 이런 일뿐만이 아니라 이런 일들과 비슷한 일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만큼 또래 아이들과 어린 아이들과 나이 많은 아이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니, 좋지 않았다기보다는 최악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리라.

하루는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바비큐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집을 한 채 사놓고 주말에만 찾아오는 일명 주말 파들과 각종 고기라면 환장하는 애들이 모여 저마다 접시 하나씩 가지고 식사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돼지고기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구워지고, 마을 이웃들은 각자 접시에 덜어 과식과 폭식하기 시작했다.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한 장면을 직접 보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아저씨들은 모두 채소 없이 고기만 먹었고, 된장 없이 쌈장만 듬뿍 찍어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아줌마들의 입가에 묻은 돼지고기 조각들이 악취를 풍기자 내 측은한 코는 썩는 것 같았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어른들의 끊임없는 음식 섭취보다는, 끔찍하고 기름기가 절절 흐르는 살찐 돼지새끼 같은 뚱뚱한 애들의 태도가 더욱 심각했다. 그 구역질 나오는 애들 중에 유난히 (고기를)밝히는 초고도 비만이 있었다. 그 비만이 옆에 있어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 더 이상 배불러서 못 먹겠다.”

그러자 그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비만이,

그래? 난 이제 시작인데?”

라는 충격적인 말을 꺼내면서 나는 순간 구토를 뿜어낼 뻔했다. 그 녀석과 나의 거리가 얼마나 차이가 많이 나는지 나는 그제서 깨닫게 되었다. 내가 아무리 신장에서 20센티미터를 빼도 내 몸무게가 되지 않는 허약한 약골임을 알지만, 그 비만이 그토록 기름지고 퉁퉁한 초고도비만일 줄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충격적인 일 이후 나와 그 비만의 사이는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일은 단지 시작일 뿐, 나는 그 비만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과의 거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멀어지게 되었다. 이 마을에서 한 세 달 정도 살았을 때였나, 엄마는 우리 집 안에서 피아노를 다른 애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중 두 명, 즉 코 질질 흘리는 어린 장애아 한명과 세상 모든 만물은 전부 자연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미친 여자애가 언제부턴가 우리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진짜 우리와 동거하는 것이었다. 그 애새끼들의 애비가 아내랑 이혼해서 우리에게 돈을 대주고 몇 주간 키워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파렴치하게 말이다. 엄마는 또 그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인 뒤, 그 두 애새끼를 데려와 우리 집에 살게 하였다. 그때부터 모든 피의 지옥과 웅장한 사투가 시작되었다.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망할 두 망나니가 우리 집으로 들어와 밥을 우걱우걱 퍼먹었다. 나에겐 그 퍼먹는 모습조차도 토악질이 나오게 더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 애들에게 증오심과 앙심을 한가득 품고 있었다. 식탁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입가에 더러운 음식물 찌꺼기를 묻힌 애들이 일어서서 또 실컷 뛰어 놀려고 했다. 나는 그 애들을 당장에 쫓아내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차마 그러질 못했다. 아마 그것이 역대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 애 중 한 명, 즉 많이 모자란 자폐아 남자아이는 알라 뽀끌라또는 알라 뿌끌라라는 요상한 말을 지껄이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그 말을 늘어놓는 정신이상자였다.(도대체 신 알라를 욕하는 것인지 아닌지....... 영원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다.) 그 정신이상자의 누나 즉 제주산 흑돼지 같이 생긴 여자애가 내가 정성을 다해 키우고 있는 사슴벌레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러고서는(다행히 박살내진 않았지만) 하는 말이,

자연 거야! 자연 거야!!”

자연 거라는 말은, 즉 우리가 키우는 사슴벌레는 원래 자연에서 난 것이니 자연으로 다시 돌려보내라는 일종의 질 중 하나였다. 감히 그 계집애가 우리에게 사슴벌레를 자연으로 돌려보내라고 질을 해 댄 것이었다. 나는 그때 한순간 그 여자애를 돌로 쳐 죽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솟아올랐지만, 역류하는 분노를 억누르고 간신히 화를 가라앉혔다. 내 동생도 마찬가지로 그 계집애를 단번에 홧김에라도 죽이고 싶은 마음이었겠지만, 당연히 그러면 안 된다는 규율을 알고 있었기에 그러지 않았다. 우리뿐만이 아니었다. 어머니도 너무 힘들어 하셨다. 매일 그 천방지축 날뛰는 개망나니 같은 애들을 먹여주고 보살펴주어야 하니, 매일 혹사당하는 것과 같이 힘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홀로 지기 힘든 버거운 노동을 어머니께서 하시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쓰라리고 아팠다. 그래서 언젠간 저 애들을 꼭 쫓아내리란 다짐을 굳건히 맹세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일뿐만이 아니라 다른, 더 화딱지 나는 일들도 무척 많았다. 대표적인 것을 예로 들어 이야기하자면, 8월인가 9월인가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애들은 항상 우리 집에서 자지 않고 저녁 때 돌아가 자신들의 숙소에 거처했는데, 그날만은 달랐다. 애들 아비에게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는지, 이날은 이 애새끼들이 감히 우리 집에서 자고 간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냐고 반박을 했으나, 콘크리트 벽에 황토를 던지듯 불가피하고 소용없는 일이었다. 가만히 내버려 두고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 필연적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살인욕구가 어김없이 튀어나왔으나, 꾹 참고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 애들은 우리 집에서 자고 가려고 하였으나, 다행히도, 정말 다행히도 계획이 바뀌어 다시 자기네들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정말 십년감수한 날이었다. 천만다행이었다. 하루 만에 폭삭 늙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으나 하느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리고 그 애들은 진짜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참았다.

 

 

 

 

3

 

이런 여러 아이들과의 좋지 않은 일들이 셀 수도 없이 많았으나, 전부 일일이 기록하고 세어놓지 않아서 여기 전부 기록하는 것은 무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짜증나는 애들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해 두고,(한 남자애와 여자애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도 있지만 그건 잠깐 보류해 두겠다) 다른 훨씬 더 악심을 품게 되는 이야기들을 죽 늘어놓아 보련다.

 

7월이었나, 시간 감각이 거의 없어 날짜가 정확하지 않다. 그때는 우리가 이사 온 지 한 달째였으니 아직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적응되지 못했을 때였다. 그때 아버지 어머니는 여러 문제들로 인하여 많이 바쁘셔서 신경이 굉장히 날카로워져 계셨다. 그런데 하필 그때 우리의 화를 돋게 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 마을에 이사 온 사람들 중에 계속 눌러 앉은 주민들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인간들이 허다했다. 정작 집을 사놓고는 가끔씩 주말에만 놀러왔다 가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런 파렴치한 인간들을 대놓고 주말 파라고 부른다. 그 주말 파들이, 매주 찾아오면서 지나다니는 길에 방해가 되게 자동차를 대 놓았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불같이 화를 냈다. 왜 차를 길가 한복판에다 세워 놓느냐, 왜 밤마다 아이들 잠도 못 자게 시끄럽게 떠들어 대느냐, 왜 시커먼 연기 때문에 기침 나게 고기를 밑도 끝도 없이 구워 대느냐 등 이러한 문제들이 비난을 꿰뚫고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물론 항의자 중에 부모님도 빠질 수는 없었다. 내 부모님은 이런 일들에 관하여 매우 분개하셨다. 어머니께서 격앙된 어조로 말씀하신 것도 기억이 난다. 그 주말 파들과는 물론 주민들과도 최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싸움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나는 그때 어려서 뭘 잘 몰랐고 내 동생도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저 상황이 좋지 않게 돌아가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도 그때 한창 애들과의 사이가 최악이었으니 말이다. 날 괴롭히고 약 올리는 아이들도 허다했고, 근처에서 신경 거슬리게 귀찮게 구는 아이들도 군대같이 많았다. 그중에 미친 정신병자같이 날뛰는 남자애 한 마리가 있었는데, 똑같은 정신이상 여자애와 늘 함께 돌아다니면서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급기야는 여자애가 그 남자애와 결혼을 하겠다는, 뜬금없는 헛소리까지 하지 뭔가. 아무튼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은 이제 그만 떠올리고 싶다.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며, 이제는 모두 종결됐으니.

 

나는 그때 한창 인터넷 마을 카페에다 만화를 올리고 있었다. 복사용지에 연필로 그린 아이들 장난 만화 말이다. 나는 한동안 만화 그리는 일에 정신이 팔려서 시간만 나면 만화를 그려 카페에 올리곤 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나의 만화를 보더니 재미있다며 항상 다음 화를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나는 기분이 좋았으나 그때 아버지께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셨다. 내가 그린 만화가 다른 사람의 만화를 완전히 모방한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도 틀림없는 옳은 말이었다. 실제로 모방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러자 사람들은 시들해졌고, 나 역시 잔뜩 품고 있던 김이 한순간에 빠지고 말았다. 나는 그래서 그 일 후로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이제는 흥미도 없거니와, 그릴 시간도 없어서다.

 

옆집 조폭 아저씨는 우리가 키우는 개에 대해 늘 불만이 많아서 툭하면 시비를 걸곤 했다. 개가 한밤중에 짖어 대서 시끄럽다 등등 온갖 자질구레하고 거슬리는 말들을 늘어놓아 항상 부모님의 심기를 불편케 했다. 나는 그 깡패 아저씨를 어떻게 해 보고 싶었으나 역시 이번에도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을 알고 있었기에(사실은 겁이 많아 말도 걸어보지 않은 주제에 말이다) 벌벌 떨고만 있다가 어느 날 마을 회관에서 어떤 일로 하여금 울음을 터뜨리게 되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나를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더욱 속상해서 매일 훌쩍이며 돌아다녔을 것이다. 게다가 하필 그날은 내 생일이었으니 말이다. 그 순 날강도 아저씨는 그로부터 얼마 뒤 게장 식당을 차려서 장사를 해 보려고 하였으나 우리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했다고 한다. 우리는 아주 잘 되었다며 기뻐했다. 그렇다, 우리는 그 꿈의 지역에서 산 지 1년도 되지 않아 집을 버리고 떠났다. 저 멀리, 머나먼 도시로 말이다. 도시가 지겨워서 시골로 떠나왔건만 여기도 완전한 시골이 아님을 깨닫고 다시 도시로 돌아간 우리가 참으로 하찮게 느껴진다. 부모님은 이참을 수 없는 시골을 못 견뎌 이사를 가려고 하신 것이었다. 물론 나와 내 동생도 그랬다. 부모님은 집을 판매하려고 내놓으셨는데, 운 나쁘게도 어떤 미친 여자가 집을 사서 법적 소송을 건 것이었다. 그 일은 너무나 끔찍해서 입 밖으로 내놓기가 싫다. 물론 아직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몇 년 째 계속되고 있는 짜증나고 화나는, 불쾌한 사건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이만 여기서 끝내려고 한다. 사실 우리는 그 집에 이사 가기 전에도 자주 주민들을 만났지만, 이제 그 주민들과는 대부분 인연을 끊은 지 오래고 이제는 한두 명만 만나 이야기를 나눌 뿐이다. 어머니께서는 그 한두 명과 함께 식사하는 걸 좋아하시지만 나는 영 마땅찮고 시원치가 않다. 왜냐하면 모든 마을 사람들과 아예 연을 끊어버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난 이제 시작인데?’ 비만의 어미와도 말이다. 물론 나는 그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 없다. 어머니께서만 가끔씩 만나실 뿐이다. 우리 집을 사들인 그 미친 여자와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싸움이 끝나리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그 시골집이라 믿었던 폐가를 떠날 때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우리는 트럭과 자동차에 짐을 싣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뒷좌석에 타 무표정한 감정으로 멍하니 차창 밖만 바라보았다.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그저 이 지겹고 지긋지긋한 마을을 떠나게 되어 마냥 좋기만 했었다. 그런데 내 동생은 달랐다. 그리운 집을 떠난다고 눈에서 눈물을 흘리지 뭔가. 그만큼 이 집에서의 추억과 소중한 기억들이 안타까운 거였던 것인지 모른다. 우리가 떠날 때, 밖에서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그 조폭 아저씨도 인사를 한 것으로 기억한다. 동생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고, 나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 하루속히 이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전세로 사들인 아파트에 도착했고, 짐을 풀고 난 다음, 씻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과 달리 마음이 평안해져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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