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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만이 차를 받아 창동 아파트 단지를 돌아 나오고 있을 때, 화사한 원피스 차림의 한 여자가 손을 들었다. ‘이크! 오늘 출발이 괜찮구나생각하며 그가 차를 붙이고 보니 여자 옆엔 박스 포장이 되어 있지 않은 TV수상기가 함께 있었다.                          

그리 커 보이진 않았지만 여자 혼자 힘으론 좀 무겁겠다 싶은 생각에 재만은 핸드브레이크를 채우고 차에서 내렸다. 택시 뒷문을 열고 TV를 넣으려던 여자가 재만의 친절에 쌩끗 미소를 보였다. 커다란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은 가려졌지만 무릎 위로 껑충한 타이트원피스차림이 그녀를 20대 아가씨로 소개하고 있었다.                    

도발적으로 앞자리에 올라 탄 여자가 선글라스를 머리 위로 밀어 올리며 물었다. “아저씨. 인천까지 얼마쯤 나와요?” 운이 좋은 거였다. 오후반 첫손님부터 장거리라니! “한 팔천 원 가량 나올 테지만 왕복요금을 부담하셔야 하니 만 오천 원은 주셔야 합니다.” “…” “좋아요. 가세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던 여자가 재만의 혹여 하는 우려를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사실 재만은 내심 왕복요금을 못 받더라도 갔다 올 생각이었다. 여자에게는 재만에게 그런 생각이 들게 할 만큼의 충분한 매력이 있었는데 왕복요금 운운한 건 순전히 입에 밴 직업정신 탓이었다. 그런데 일이 되려니까 님도 보고 뽕도 따게된 거였다.                             

단지를 빠져 나온 차가 본격적으로 속력을 내기 시작하자 숄더백을 뒤져보던 여자가 담배 있느냐고 물어 왔다. 재만은 일순 뜨아했지만 차가 신호에 걸리자 곧 담배 두 가치에 불을 붙여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자를 찬찬히 보았다. 원피스 밖으로 가지러니 뻗은 두 다리며 봉긋 솟은 가슴이며가 상당히 육감적이었는데 오후의 화사한 햇살이 그녀의 젊음을 더욱 싱그럽게 치장하고 있었다.                      

뭐 하는 여자일까? 처음 본 택시기사에게 아무렇지 않게 담배를 달라는 걸 봐서는 여염집 처자나 학생은 아닐 듯 한데그의 이런 상념을 여자가 오디오나 듣자며 내뿜은 담배연기와 함께 뭉개버렸다.                                                            

오디오에선 마침 조영남의 지금이 흘러 나왔다. ‘지금은 재만의 18번이기도 했다. 가끔 동료들과 노래방이라도 갈라치면 그는 여지없이 지금을 불러 젖히곤 했는데 앙코르는 동료들보다 도우미들에게서 나오곤 했었다. 노래가 수준급 이어서라기 보다는 그의 잘생긴 외모와 건장한 체격 덕이었다. 지금 이 경우도 아마 그러리라.                        

그가 오디오를 따라 지금을 흥얼거리자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 “아저씨, 이 노래 조영남의 지금이죠?”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는 나이답지 않게 별걸 다 아네하고 생각했다. “아저씨, 내가 뭐 하는 여자인가 궁금하죠?” 꽁초를 밖으로 퉁기고 여자가 본격적으로 말을 건네왔다. “사실 택시비 만 오천 원이 만만한 건 아닌데요, 아저씨가 잘 생겨서 큰 맘 먹은 거예요.” 여자는 말 끝에 상큼한 미소를 달았다. 사실 그랬다. 어떤 땐 노래방 도우미들이 그를 놓고 서로 암투를 벌이는 희극적인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으니까.                                  

근데 아저씨, 아무에게나 그렇게 친절해요?” 그녀가 샐쭉 핀잔조로 물었다. 아마도 일부러 차를 내려서 TV를 실어 준 걸 말하는 것이리라. 첫 대면임에도 스스럼이라곤 전혀 없는 여자의 도발이 어이없으면서도 은근 바랬던 지라, 내친김에 그도 반말 비슷한 어투로 농을 쳤다. “에이, 설마? 아가씨가 워낙 미인이어서 무의식적으로 친절이 나온 거지. 근데 참 뭐 하는 아가씨셔?” ‘웃다 말고 여자가 정색을 했다. “아저씨, 나하고 사귈래요? 사귈 것도 아닌데 직업은 왜 물어요? 재미없어요. 그런 거 알면.” 하긴, 말해 놓고 그도 아차 싶긴 했다. 여자의 행동으로 보아 내숭과는 거리가 먼 것 같고 당당하게(?) 밑천을 보이기는 했어도 그렇고 그런 직업을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랬으리라.

한동안의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에 차는 도심을 빠져 나와 경인고속도로에 접어 들었다. “아 상쾌해!” 무안해진 차내 공기를 바꾸기라도 하려는 듯 여자가 차창을 활짝 열고 손을 내뻗었다. “! 무슨 짓이야, 위험하게!” 순간 당황한 그가 소리를 질렀지만 여자는 놀람도 없이 묵살해버렸다. 기실 여자는 손을 옆으로 뻗은 게 아니라 위로 올린 거였으므로 그가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고속으로 주행하는 차, 활짝 열린 차창으로 들어 오는 바람은 가히 위력적이었다. 소리도 소리지만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세찼다. “진서예요.” 이내 차창을 닫은 여자가 속삭이듯 이름을 밝혔다. 뭐 그리 핀잔을 준 건 아니지만 제 딴엔 조금 전 했던 말이 걸렸던 모양이었다. 미안하긴 재만도 마찬가지여서 부러 무뚝뚝하게 소리 질러 미안혀. 재만이구먼했다. “난 스물둘. 아저씬 몇 살이에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여자가 물었다. 이름을 말해 주었음에도 아저씨라고? 혹 반말에 기분이라도 상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기왕에 내친 걸음이었다. ‘에라! 될대로 되라’ “서른넷짧은 재만의 대답에 서운함이 담겼다. “! 고작 서른넷인데 그렇게 사투리를 쓰니까 왕창 늙다리 같잖아욧!” 여자가 제대로 핀잔을 주었다. ‘아하! 그거였구나. 그래서 이름을 알고도 아저씨라 한 거구만.” 이렇게 생각하니 맹랑한 아가씨의 치기가 몸살 나도록 귀여웠다.                                                                      

이상한 일이었다. 5년 넘게 택시를 운전하는 동안 그에게는 적지 않은 유혹이 있었다. 대개 밤 늦은 시간에 한 잔 걸친 외로운 아줌마들이 하룻밤 유혹의 손길을 뻗쳐오곤 했었다. 역시 그의 잘생긴 외모와 건장한 체격 덕분으로, 그런 경우 그는 당당한 갑의 위치를 점유할 수 있었고 열 계집 마다할 성정이 아니었음에도 아주 아니다 싶으면 차려지는 밥상을 굳이 걷어차기도 했었다. 다는 아니지만 술값에 호텔비는 물론, 헤어질 때 두둑하게 사납금까지 넣어주던 사모님 과()도 두엇 있었고 가정 팽개치고 집요하게 연락해 오는 바람에 혼쭐이 났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일은 갑의 위치가 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하하하그의 입에서 느닷없이 공허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그의 웃음에도 불구하고 진서의 샐쭉함은 풀리지 않은 채로 차는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인천 시내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그냥 그녀를 목적지에 데려다 주면 안 되는데 싶은 조바심이 드는 순간, “우리 저기 갈래요?” 진서가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엔 앗싸 노래방이란 촌스런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안 그래도 오는 내내 오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 중 제가 아는 두어 곡을 따라 부르던 그녀였다.                           

시간이 이른 탓 이어선지 그다지 크지 않은 노래방은 한산했다. 훈남이긴 해도 재만이 진서 또래일 수는 없었다. 게다가 진서의 싱싱함은 충분히 떠꺼머리종업원의 질투심에 기름을 붓고도 남아서 안내는 뒷전이고 재만을 위아래로 견제하느라 바쁜 떠꺼머리를 진서가 째리고 나서야 그들은 방에 들어설 수 있었다.                                                                

맥주와 안주 나부랭이를 시키고 나자 진서가 조영남의 지금을 지정한 뒤 마이크를 재만에게 건넸다. 1절을 조용히 듣던 그녀가 2절에선 다른 마이크를 잡고 재만과 입을 맞추었다. 그새 종업원이 가져온 맥주로 그들은 마치 자기들의 의기투합을 자축이라도 하듯 잔을 부딪치며 은밀한 눈길도 교환했다. 젊고 발랄한 아가씨답게 진서는 잘 놀았다. 그렇게 잘 하는 건 아니었어도 못하는 노래가 없었고 노래에 맞춰 춤도 곧잘 추어댔다.               술 기운 탓이었을까? 재만이 노래할 때는 알게 모르게 재만에게 제 몸을 은근히 부딪거나 안기거나 하면서 흥을 돋우었고 제가 노래 부를 때 재만이 앉아 있으면 어떻게든 끌어내 놀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재만이 키스라도 할라치면 슬쩍 몸을 빼곤 해서 재만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                 안주는 거의 놔둔 채로 맥주가 바닥나고 밖이 소란스러워질 즈음 그녀는 아쉬워하면서도 그만 나가자 했다. 진서의 사랑스러운 몸짓에 혼을 빼앗긴 재만이 더 해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는 고집을 접지 않았다. 이대로 끝내고 싶진 않았지만 재만이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어 보였다.

먼저 나와있던 진서가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재만의 팔짱을 끼었다. 이건 또 무슨 시추에이션일까? 둘 다 제법 얼큰해져 있었고 밤도 어지간히 이슥해져 있었다. 재만의 주량으로 볼 때 운전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단속을 받으면 여지없을 만큼은 마신 상태였다.                                 ! 그녀의 하는 짓은 정말 재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런 기막힌 센스라니! “아무 일 없이 술만 깨고 가는 거예요!” 못 박으며 그녀가 그를 앞장세워 들어간 곳은 길 건너편에서 네온사인을 깜빡이고 있는 모텔이었다. 재만의 정말? 하는 눈길을 그녀 역시 고개만 끄덕이는 것으로 받았다. 계산을 하는 동안 재만 등뒤에 몸을 숨겼던 진서는 그러나 방에 들어오자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팜므파탈로 돌변했다.                     

제가 한 말을 애써 지우기라도 하려는 듯이 발 뒤꿈치까지 들어가며 적극적으로 재만의 입술을 탐했다. 집요하게 빨고 물고 하는 통에 재만은 미처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재만의 입술이 아릿해질 즈음 비로소 진서는 입술을 떼고 손을 뒤로해 자신의 원피스 지퍼를 내렸다.           

브래지어와 팬티가 아직 남아있는 채로 진서의 벗은 몸은 다소 취기가 오른 재만의 눈에 그대로 신의 선물로 들어왔다. 브래지어를 밀어 낼 듯 과하게 솟은 가슴은 작은 몸과도 묘하게 잘 어울렸고 굴곡을 이루며 둔부로 흘러내린 허리선은 그대로 조각이었다.              

숱하게 오입을 했던 그였지만 이제껏 이런 몸은 보지 못한 것 같은 착각까지 들 정도였다. 바지 혁대를 풀고 남방을 벗긴 건 멍하니 홀려 그대로 굳어 버린 재만이 아닌 진서였다. 게슴츠레한 불빛 속에서 진서는 남자의 단단한 가슴 한 쪽의 돌기를 찾아 살짝 깨물었다. 그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새어 나와 미처 상황파악이 덜 된 아랫도리를 채근했다.                                                  

헐크가 된 남자가 작고 여린 여자의 몸을 번쩍 안아 침대 위에 누이고 성급하게 자신의 몸을 포갰다. 그러나 비너스의 나신은 숱한 오입의 경험을 비웃듯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의 뜨거운 입술이 봉긋 솟은 진서의 젖무덤 위에서 앙증맞은 젖꼭지를 어르다 한 입 베어 물었다. 이윽고 진서의 입에서도 뜨거운 숨이 토해졌다. 재만이 다시는 기회가 없기라도 할 것처럼 진서의 두 젖무덤을 온통 자신의 타액으로 도배질을 하고서야 자신의 팬티가 살짝 젖어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진서도 그때는 이미 재만의 달구어진 심볼에 길을 내줄 채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들의 분탕질이 몇 번이고 열락을 반복하는 동안, 시간도 쉼 없이 흘러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때로는 신음으로, 때로는 몸부림으로 남자의 욕망을 분출시키던 요부가 기분 좋은 피로를 담배연기로 날리고 있는 남자 옆에 누워 땀으로 번들거리는 남자의 가슴 위에 손가락으로 낙서를 하고 있다.  진서는 자신에게 내어 준 재만의 한쪽 팔이 참 편안하다 느끼는 한 편으로 일말의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임신의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한 것이다. 열락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을 때는 애써 외면하고 있던 것이 열락의 끝, 공허함이 밀려오면서 슬그머니 함께 온 것이다. 주기로 보면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 주기에 대한 믿음과 처음 본 순간부터 이상하리만치 빠져 든 남자에 대한 대책 없음이 이런 만용을 부추겼던 것이다.       

안에 하면 안돼요.” 뒤늦은 자각으로 열락 중에 남자의 귀에 대고 당부하긴 했었다. 하지만 늦었다. 열에 들뜬 여자의 속삭임은 되레 남자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역기능으로 작용했을 뿐이었고 한 번 그러자 그 뒤로는 거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몸 안에서의 분출이 새롭고 강렬한 쾌락을 동반해 진서로서도 싫지만은 않았기도 하고.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참 이상했다. 이름이 재만이란 것과 34세의 나이, 택시기사의 직업을 가졌다는 것 외에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남자도 자신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름과 나이뿐이지만. 무엇보다 초면이었는데 어떻게 이처럼 빠져들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고시절의 그 일 이후로 비교적 자유롭게 성을 즐겨오긴 했어도 함부로 몸을 내돌리며 살진 않았다. 애초 결혼 따위는 생각이 없던 터라 돈이 있건 없건 필이 동하면 아무 남자와도 거리낌 없이 잠자리를 함께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몇 번의 만남을 통해 남자의 매력이 자신을 완전히 휘감는 전제가 있어야 했다. 그러고도 어느 남자와도 관계를 오래 지속하진 못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들 중 누구도 진서의 화기를 제대로 다스린 이가 없었던 탓이다. 얼마 가지 못한 남친과의 결별도 그래서 일어났다.                                

또 하나, 아무리 끌려도 유부남과의 관계는 철저히 피했었다는 점인데, 무슨 고상한 도덕심이기 보다는 괜스레 본처란 여자의 악다구니를 듣고 머리채를 잡히는 불상사는 감내하기 싫었던 때문이었다.                                                     

그런데 무엇에 홀린 건지 이 남자와는 초면에 그것도 스스로 몸을 열었던 것인데 정작 문제는 몸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미 남자는 진서의 마음 속에 상당한 영역으로 들어와 있었다. 대부분의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진서 역시 잘 생기고 체격 좋은 남자에게 매력을 느끼곤 했다. 남자도 그런 조건을 갖고 있었고 진서도 처음엔 그것에 끌렸었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닌 모양이다. 그만큼 잘 생기고 체격 좋은 남자는 과거에도 있었으니까.         남자는 아마도 결혼을 했을 것이고 애도 하나 둘쯤 있을 것이다. 해서 미상불 원치 않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건 스스로 세운 원칙에도 위배됨을 의미했다. 내가 무슨 일을 벌인 거지? 이 남자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혹 헤픈 여자와의 운 좋은 오입 정도로 생각하고 있진 않을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그녀는 심한 자괴감과 수치심으로 얼굴이 달아 올랐다.                                     

그런데 순간 남자가 보통 바람둥이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스스로의 자괴감에서 빠져 나오고 싶은 마음과 가당찮은 질투심으로 진서는 그만 남자의 젖꼭지를 힘껏 꼬집어버렸다. “아야!” 아늑한 여운을 만끽하고 있던 남자의 입에서 비명이 튀었다. 자기처럼 열락의 여운을 만끽하리라 생각했던 여자가 갑자기 표변해 도끼눈을 째리는 바람에 재만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런 재만에게 진서의 독살이 쏟아졌다. “이 순 바람둥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자들을 이렇게 후렸어요?” 진서의 강짜가 턱 없다 생각하면서도 가슴 한 켠이 싸해진 재만이 말없이 진서의 머리를 끌어와 자신의 가슴 위에 누이고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사실 재만도 한가로이 열락의 여운을 음미하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전 같지않게 심사가 복잡했다. 별것 아닌 만남이 심상치 않은 인연으로 전개되고 있었는데, 처음 날라리처럼 보였던 여자가 시간이 지나면서 꽤 괜찮은 여자로 들어오더니 갈 데까지 다 가서 더 볼일 없어야 할 지금, 되레 곁에 두고 아껴 주고픈 사랑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첫 눈에 반한다는 건 드라마나 소설 속에만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인연이 자신을 찾아 온 거였다. 하지만 자신은 유부남이고 두 아이의 아빠이며 여자와 어울릴만한 나이도 아니었기에 그저 평소의 숱한 오입과 조금 다른 정도로만 여겼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지금 이런 안쓰러움과 애틋한 심경,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용솟음치는 가당찮은 욕심이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것이다. 오입의 경험도 남 못지않고 지금 아내도 두 번째인, 그 방면에선 나름 베테랑으로 자부하던 터였다. 그런 그였기에 우연히 만난 여자에게 이렇게까지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스스로도 어이 없었다.           재만이 난생처음 계산 아닌 순정으로 혼란스러워 할 때 여자의 눈물방울이 가슴을 적셨다. ‘이 여자도 혹?’ 무언가로 세차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릿한 통증이 스쳐갔다. 진서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도대체 말도 안 되고 이루어질 수도 없는 고약한 사랑이란 게 자신들에게 찾아 왔음을. 그렇게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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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다리 2020.03.04 11:37
    표현이 섬세하면서도 현실적인 감정의 흐름... 재미있는 글 잘 읽었네요. 풍부한 감정으로 잘 다스려 나간다면 훌륭한 작가가 되겠습니다.
    재미있는 글 많이 올려 주세요. 고마워요.
  • profile
    뻘건눈의토끼 2020.03.12 17:36
    재만이 난생처음 계산 아닌 순정으로 혼란스러워 할 때 여자의 눈물방울이 가슴을 적셨다. ‘이 여자도 혹?’ 무언가로 세차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릿한 통증이 스쳐갔다. 진서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도대체 말도 안 되고 이루어질 수도 없는 고약한 사랑이란 게 자신들에게 찾아 왔음을. 그렇게 그들은 한동안 말없이 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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