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없이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울먹거리더니 토하는 것처럼 비가 쏟아지길래, 그 날은 꼭 무슨 일이 있겠구나 싶었다. 엄마가 까치는 손님을 불러오는 길조라고 했었고 그 날은 까치를 많이 보았다. 그래서 꼭 무슨 일이 있겠구나 싶었다. 까치와 소나기와 엄마는 거짓말 하지 않았다.
완벽한 타인이 우리 집에 찾아왔다. 이름은 워낙에 학교에서 유명했기에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은 별로 의미가 없었다. 그 애에 대해서 내가 아는 건 세 글자 뿐이었지만 나에 대해서 그 애는 단 한 글자도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로에 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밖에서 누가 쫓기기라도 하는 것 처럼 다급하게 초인종을 눌러대길래 문을 열었다. 서울은 위험한 도시였기 때문이다. 가로등이 몇 백개가 켜져 있고 수 천 명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가게와 아파트가 콩나물 처럼 자라나는 도시였지만 서울은 위험했다. 존재 하나쯤 사라지는 건 별 일이 아니었고 또 그러한 것들이 수용되는 게 너무 당연한 세상이었다. 나는 항상 그 사실을 걱정하고는 했었다. 그래서 문을 열었지 다른 게 아니었다. 그 사실을 배우기에 공포만큼 확실한 건 없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그 사실에 관해서만큼은 무지하기를 바래왔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문 앞에 서 있는 그 애에게 무슨 말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들어오라는 부름도, 무슨 일이냐는 물음도 그 애를 다치게만 할 것 같았다. 그 애는 울 것 같다기보다는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어서 무슨 말이라도 했다간 그대로 주저앉아 땅으로 꺼져버릴 것처럼 취약했다. 잘못하면 새까맣게 바스라지는 샤프심처럼 그 애는 야위었다. 추운 건지 무서운 건지 화가 난 건지 온 몸을 덜덜 떨며 나를 내려다 보는 그 애가 이상하게 나를 무섭게 했다. 지금 당장 문 앞에서 죽어버릴까 봐서. 그래서 그 애의 겁에 질린 얼굴을 말 없이 쳐다보기만 했다. 그 애의 웃음기 싹 빠진 얼굴은 화장한 것처럼 눈 주위가 새빨갰고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이 푹 젖어 무거워져 있었다. 내가 기억하던 얼굴은 이렇게 텅 비어있지 않았다. 나와 눈을 마주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우산도 없었는지 머리며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졌다. 그 애가 서울에 소나기를 몰고 온 것만 같았다.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뻗은 그 애의 검은 머리카락에서 갓 걷은 빨래와 빗물과 달큰한 비누 냄새가 뒤섞여 났다. 추운 길을 얼마나 오래 달린 건지 얼굴 군데군데가 새빨갰다. 이 추운 겨울밤에 겉옷 하나 없이 흰 반팔 티셔츠와 검은 반바지만 걸치고 있는 그 애의 하얀 손목에는 붕대가 피도 안 통하게 감겨 있었다. 마치 잘리려는 걸 억지로 갖다 붙여놓은 것 처럼. 그게 끊어지면 죽기라도 할 것 처럼 절박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여러가지가 말해주었다. 그 애는 지금 정상이 아니라고.
그 애는 형식적으로는 휴학 중이었다. 아니면 자퇴를 한 것이었나. 몇 학년이었는지 잠시 같은 반이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아서 그 애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다. 그 애는 없어질 것 처럼 미약한 존재감으로 꾸역꾸역 학교를 다녔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교실에 아무도 모르는 빈자리가 생겼다. 그 탓에 그 애에 관해 온갖 소문이 돌았지만 나는 딱히 그런 소문을 만들지도, 듣지도, 전하지도 않았다.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런 가십거리보다 중요한 일이 많았다. 이를 테면 지금 당장 내가 숨은 쉬고 있는가 같은 것들이었다. 어떻게 여태까지 살아있나 하는 문제들이 매일 머리를 아프게 하던 날들이었으니까. 그 시기 자극적인 맛을 좋아하는 몇 마리 미꾸라지들이 만드는 그런 소문은 큰 가치가 없었다. 살이 오를 대로 올라 그 애를 골초에 폭주족으로 만들었다 순식간에 그마저의 온기도 잊었다. 미역국이 냉장고 안에서 식는 것 처럼. 그 미역국의 온기가 지니는 소중함이 얼마인지는 중요치 않았던 것이다. 그 애의 얘기를 할 뿐 그 애의 얘기는 들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중요한 차이였다.
그 애가 말라 비틀어지고 갈라져서 피가 나는 울긋불긋 부르튼 입술을 움찔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제발 나 좀 도와줘. 제발. 말하는 것조차 쓰라려 보였다. 나는 그제서야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 애를 집안으로 밀어넣고 문을 닫았다. 혹시라도 쫓아오는 무언가가 그 애를 잡아채기 전에. 그 애는 종잇장처럼 끄는 대로 끌려왔다.
자세히 보니 그 애는 울고 있었다. 참으려고 해 보는 듯 했으나 앙다문 입술 사이로 끅끅이는 소리가 비집고 나오더니 조절이 안되는 듯 숨이 히끅거렸다. 그 모습이 우는 것보다 훨씬 안쓰러웠기에 나는 그 애를 식탁에 앉히고는 말했다. 그냥 울어. 그 애는 눈물을 참으면서도 계속 현관을 흘끔거리며 내 얘기를 잘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애의 손을 꾹 잡고 다시 말했다. 여기는 아무도 못 찾아와. 그냥 울어. 그 애는 그제서야 나와 눈을 마주쳤고 숨을 흡, 들이키더니 참았던 울음을 내질렀다. 간헐적으로 무언가 말 하려는 것 같았다.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살아보려고, 좆같아도 숨은 쉬려고… 문장도 어구도 단어도 아닌 말들이었지만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응응, 맞아. 네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 애는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나는 그렇게 서럽게 우는 사람을 본 일이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등이 어찌나 들썩대던지 과호흡은 아닐까 싶었다. 하얀 반팔 티셔츠 밖으로 드러난 팔에 피와 멍이 울긋불긋했다. 언뜻 보면 수채화 물감을 엎지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애가 우는 동안 나는 냉장고를 열었다. 온기를 잃어버린 미역국 하나가 달랑 놓여 있었다. 혼자 사는 열일곱의 냉장고는 풍요롭지 않았지만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비가 양동이 가득 물을 쏟은 것 처럼 내리는 이 겨울 새벽에 제대로 된 옷도 우산도 없이 모르는 애 집에 찾아온 애가 밥을 제대로 먹고 왔을 것 같지는 않았다. 밥솥을 열어보니 고향집에서 올라온 엄마가 지어주고 간 밥이 딱 다섯 톨 남아 있다. 이럴 때만 밥이 없지. 천장 높은 곳에서 햇반을 꺼내 익숙한 손길로 쭉 찢고 전자렌지에 돌렸다. 뒤에서 그 애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미안해, 라고 하는 말에 뒤 돌아보았다. 그 애는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상태로 이 집에 찾아왔으면 미안하다는 말 보다는 고맙다는 말이 더 맞다는 사실을. 나는 그래서 괜찮아보다는 천만에라고 대답했다. 그 다음 가스레인지에 차가운 미역국을 올리고 강불에 끓였다. 식은 미역국은 저마다의 가치와 기억이 있다. 따뜻하게만 하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 소중함이었다. 이를 테면 얼마 전은 내 생일이었다. 이 미역국이 담고 있는 소중함은 그것이었다. 나의 생일. 식는다고 그 가치가 없어지진 않았다.
저녁식사는 생각보다 금방 완성되었다. 덜 끓었나 싶었지만 그냥 내 마음이 급했다. 우는 걸 멈춘 그 애는 처음 봤을 때 처럼 텅 비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힘 없이 앉아 있었다. 그 애 앞에 햇반으로 지은 고봉밥을 얹어주자 눈이 아주 조금 커지더니 숟가락으로 가득 떠서 하얀 볼이 미어지도록 밥을 쑤셔넣는 모습에 순간 웃음이 터졌다. 밥맛이 없다면서 몇 술 깨작거리다 말 것이 내 예상이었기 때문이다. 밥 먹는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얼굴에 상처가 더 많았다. 하네뮬레 캔버스 같은 얼굴에 누군가 밑그림도 없이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았다. 가장 값싼 붓으로, 물도 없이 그냥 성의 없게 주욱 주욱 그은 붉은 선들이 가득했다. 누구인지 알고 싶어졌다. 그저 하나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 깨끗한 인격에 이렇게 끔찍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
그 다음날 나는 오랜만에 할머니를 뵈러 갔다. 부산광역시 추모공원까지는 언제나 택시를 타고 갔다. 택시비가 아깝지 않은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에. 엄마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할머니를 보러 갈 때면 항상 중학교 때 교복을 입고 찾아갔다. 중학교 다닐 당시에도 잘 입지 않았던 마이와 넥타이까지 꼭꼭 차려입고 두 손을 모으고 앞에 서 있는다. 그 날 나는 할머니의 사진을 닦고 꽃병 물을 갈면서 말을 걸었다. 진짜 이상한 손님이 왔었어. 이상하게 까치도 많고 그날 갑자기 여우비가 쏟아지데. 그래서 뭔 일이 있겠구나 싶었는데 진짜 이상한 손님이 오더라. 어떤 사람이였냐면...
김 생 강
열 일 곱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