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나간 놈

by 응코 posted Mar 2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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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나간 놈>


 멀뚱히 서서 잔소리를 들었다. 이내 지루한 느낌에 이리저리 몸을 움직였다. 아니, 사실은 속이 찌릿거려서 그리했다. 배배 꼬인 속이 움찔거려서. 자꾸만 나서려는 어린 애를 타이르고는 목소리를 쥐어짰다. 간신히 대답하는 모양새는 우스울 것 같아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부끄럽고 화가 났다. "나도 알아." 라고 뚝, 얘기하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차마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그렇게 했다간 조롱당할 것이 분명했다. "네가?". 귀에서 웅웅-. 파르르 떨려오는 눈꺼풀과 메여오는 목이 원망스러웠다. 은근슬쩍 자리를 피해 기어 나오는 울음을 씹으려 했는데 꼬리가 잡혔다. 속상해서 쇳소리가 나왔지만 너는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안도하는 한숨을 내쉬곤 벽에 기대 멍하니 목소리만 들었다. 차가운 벽은 날 위로하는 너의 손 같아서 입꼬리가 눈치 없이 올라갔다. 내 표정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불같이 소리 지르더니 이내 매캐한 담배 연기가 허공에 스르르, 피었다 사라진다. 목이 따가워 기침을 했는데 어디서 말대꾸냐며 으르렁거리는 너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정신 나간 놈.' 너야말로 나에게 조롱받아 마땅하잖아. 나에게 미움받을 만하잖아, 안 그래? 그렇게 묻고 싶었는데 넌 어느새 내 옆을 지나 방으로 가버렸다. 아니, 숨었다. 역시 너도 내가 무서운가 보구나? 하하, 정신 나간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