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by 유성 posted May 30,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A는 아직까지 자신만의 목소리가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는, 그저 제자리에 서서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소리를 질러댈 뿐이었고, 그런 그에게 자신만의 특색 있는 목소리로 타인에게 의견을 요목조목 전달한다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

A에게는 크나큰 불만이 있다.

바로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그가 바라보는 세상은 그랬다.

어떤 이는 굵직한 목소리를 내세워 당차게 자신의 입장을 표현했고, 또 어떤 이는 감미로운 목소리로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통상적으로 보면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목소리의 주인공도 그 끔찍한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고 있었다.

물론 그의 전달 과정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A였다.

-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만 있는 A가 얼마나 자신만의 목소리로 그의 생각을 노래하고 싶어 하는지는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

A는 관심에 목말라있다.

“나를 봐줘요! 나도 내 색깔을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소리는 칠판을 긁는 목소리의 주인공보다 더욱 형편없어서 아무도 A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무리 찔러도 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A의 메마른 사상을 냉소적인 현실이 한껏 비틀어줬고, 그 결과 기대하지 않은 사념을 불러일으켰다.

그 안타까움에 탄식을 자아내던 A는 난생 처음 자신의 목소리가 나왔고, 자신의 목소리로 처음 내뱉은 단어는 ‘씨발.’이었다.

-

어쨌든 간에 A는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평범한, 특색이 딱히 없는 목소리였다.

처음에는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얻은 듯한 A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소유한 무기가 별 볼일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별 다른 수가 없었다.

A는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그리고는 뒤돌아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씨발.”

Who's 유성

profile

결과보다는 과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