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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4 19:55

<넘기 위해서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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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벽이고, 현실은 들판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 넘을 수 있어 보이는 벽.
그리고 원하지 않더라도 드넓게 퍼져있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어 보이는 거대한 들판.
나는 이 두 개념을 때로는 증오하며, 한편으로는 사랑하고 있다.
-
벽은 언제나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 홀로 우뚝 서있다.
벽은 들판에 이는 바람에 따라 형태를 바꾸기는 했지만, 단숨에 뛰어 넘을 수 없는 높이는 자신의 숭고함과 우월함을 드러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
누워있던, 서있던, 앉아있던, 천천히 걷던, 숨 가쁘게 달리던, 들판은 언제나 사방팔방 뻗어져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을 거닐고 있을 때에도 들판은 나를 벗어나지 않고 언제나 감싸주었다.
나는 이 들판을 거닐며, 한 송이의 꽃을 찾아 누리는 소소한 기쁨을 좋아했다.
-
벽을 넘어서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벽에는 짚고 올라갈 한 치의 틈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저 높은 곳을 향할 사다리도, 벽을 부숴버릴 망치도 없었다.
저 벽을 넘기는커녕 오를 수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들자, 벽은 넘을 존재가 아닌 지켜보며 후회할 존재라고 타협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지만, 닦지 않을 염치는 있었다.
-
타협이라고 칭한 투항 후에 드넓은 들판을 거닐 의욕이 없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드러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들판은 자신의 존재를 와상으로 삼는 것을 허락지 않았고, 때문에 한 무리의 늑대들을 풀었다.
늑대들은 각기 다른 특징을 띠며 나를 좇아왔는데, 그 중 가장 두려운 늑대는 잿빛 털을 두른 늑대였다.
잿빛 늑대는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노라면 무섭게 나를 덮쳐왔다.
때문에 나는 잡아먹히지 않으려 조금씩이라도 계속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
늑대들의 추격에 익숙해진 나는 이동하며 주의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늑대들을 찾으려 분주했던 눈동자는 높디높은 벽을 발견했다.
그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옮겨진 것은, 늑대들이 나를 좇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본능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 아니하고서야 굳이 절망 앞으로 다가갈 바보는 없으니까.
-
벽은 저번과 같이 넘을 수 없는 높이를 내세워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절망감에 휩싸인 나는 그 자리에 뿌리내린 나무마냥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곧장 나무꾼에 의해 베어졌다.
잿빛늑대와 그 무리들의 출현에 달아나야했으므로.
늑대들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내 살을 찢기 위해 위협적으로 다가왔으므로 어느 방향이던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살기위해 펄쩍 뛰어올랐고, 기존에는 분명히 없었던 파여진 틈에 매달렸다.
오르기조차 불가능해보이던 벽에 매달린 나는 늑대들에게 좇기는 중이라는 것도 잊어먹은 채 환호성을 질러댔다.
환호성을 들은 늑대들은 뒤로 물러서며 추격을 멈추었고, 그들이 물러나는 소리에 뒤돌아본 나는 잿빛늑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
하지만 그 이상, 벽을 오르기란 불가능했다.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신체의 모든 힘이 빠져나갔으므로, 나는 다시 들판으로 내려와 늑대의 추격에 대비한 걸음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
아무리 노력해도 벽을 넘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만약 이 벽을 넘는 순간이 온다면,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리라는 것도 잘 안다.
벽은 언제나 넘을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
그렇지만 벽을 오르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높이에 욕지거리가 나올지라도, 오를 수밖에 없는 굴레에 갇히게 해준 이 벽이 고맙다.
-
들판을 벗어나려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만약 이 들판에 멈춰서는 순간이 온다면, 들판은 온통 늑대들로 가득하리라.
그렇게 들판은 언제나 벗어날 수 없고, 쉴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
그렇게 들판의 법칙에 순응하며 평생을 움직일 용의가 생겼다.
그렇지만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쉴 수도 없는 들판에 욕지거리가 나올지라도, 매 순간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굴레에 갇히게 해준 이 들판이 고맙다.
-
삶이 그렇다.
벽을 넘기 위해, 들판을 거닌다.
언제까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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