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마당

오늘:
2
어제:
41
전체:
304,596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04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00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2016.06.14 19:55

<넘기 위해서 거닐다>

조회 수 52 추천 수 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이상은 벽이고, 현실은 들판이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의 힘으로 뛰어 넘을 수 있어 보이는 벽.
그리고 원하지 않더라도 드넓게 퍼져있어 도저히 벗어날 수 없어 보이는 거대한 들판.
나는 이 두 개념을 때로는 증오하며, 한편으로는 사랑하고 있다.
-
벽은 언제나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 홀로 우뚝 서있다.
벽은 들판에 이는 바람에 따라 형태를 바꾸기는 했지만, 단숨에 뛰어 넘을 수 없는 높이는 자신의 숭고함과 우월함을 드러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
누워있던, 서있던, 앉아있던, 천천히 걷던, 숨 가쁘게 달리던, 들판은 언제나 사방팔방 뻗어져 있었다.
두 눈을 감고, 칠흑같이 어두운 세상을 거닐고 있을 때에도 들판은 나를 벗어나지 않고 언제나 감싸주었다.
나는 이 들판을 거닐며, 한 송이의 꽃을 찾아 누리는 소소한 기쁨을 좋아했다.
-
벽을 넘어서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벽에는 짚고 올라갈 한 치의 틈도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저 높은 곳을 향할 사다리도, 벽을 부숴버릴 망치도 없었다.
저 벽을 넘기는커녕 오를 수 있는지조차 의구심이 들자, 벽은 넘을 존재가 아닌 지켜보며 후회할 존재라고 타협하기 시작했다.
눈물이 흘렀지만, 닦지 않을 염치는 있었다.
-
타협이라고 칭한 투항 후에 드넓은 들판을 거닐 의욕이 없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드러누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들판은 자신의 존재를 와상으로 삼는 것을 허락지 않았고, 때문에 한 무리의 늑대들을 풀었다.
늑대들은 각기 다른 특징을 띠며 나를 좇아왔는데, 그 중 가장 두려운 늑대는 잿빛 털을 두른 늑대였다.
잿빛 늑대는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노라면 무섭게 나를 덮쳐왔다.
때문에 나는 잡아먹히지 않으려 조금씩이라도 계속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
늑대들의 추격에 익숙해진 나는 이동하며 주의를 살피는 습관이 생겼다.
늑대들을 찾으려 분주했던 눈동자는 높디높은 벽을 발견했다.
그 곳으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옮겨진 것은, 늑대들이 나를 좇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본능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 아니하고서야 굳이 절망 앞으로 다가갈 바보는 없으니까.
-
벽은 저번과 같이 넘을 수 없는 높이를 내세워 나를 주눅 들게 했다.
절망감에 휩싸인 나는 그 자리에 뿌리내린 나무마냥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나무는 곧장 나무꾼에 의해 베어졌다.
잿빛늑대와 그 무리들의 출현에 달아나야했으므로.
늑대들의 날카로운 이빨들이 내 살을 찢기 위해 위협적으로 다가왔으므로 어느 방향이던 움직여야만 했다.
나는 살기위해 펄쩍 뛰어올랐고, 기존에는 분명히 없었던 파여진 틈에 매달렸다.
오르기조차 불가능해보이던 벽에 매달린 나는 늑대들에게 좇기는 중이라는 것도 잊어먹은 채 환호성을 질러댔다.
환호성을 들은 늑대들은 뒤로 물러서며 추격을 멈추었고, 그들이 물러나는 소리에 뒤돌아본 나는 잿빛늑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
하지만 그 이상, 벽을 오르기란 불가능했다.
매달려 있는 것만으로도 신체의 모든 힘이 빠져나갔으므로, 나는 다시 들판으로 내려와 늑대의 추격에 대비한 걸음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
아무리 노력해도 벽을 넘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만약 이 벽을 넘는 순간이 온다면, 벽은 더 이상 벽이 아니리라는 것도 잘 안다.
벽은 언제나 넘을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
그렇지만 벽을 오르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높이에 욕지거리가 나올지라도, 오를 수밖에 없는 굴레에 갇히게 해준 이 벽이 고맙다.
-
들판을 벗어나려 아무리 발버둥 쳐 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만약 이 들판에 멈춰서는 순간이 온다면, 들판은 온통 늑대들로 가득하리라.
그렇게 들판은 언제나 벗어날 수 없고, 쉴 수 없는 존재여야 한다.
그렇게 들판의 법칙에 순응하며 평생을 움직일 용의가 생겼다.
그렇지만 벗어나지도 못하면서 쉴 수도 없는 들판에 욕지거리가 나올지라도, 매 순간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굴레에 갇히게 해준 이 들판이 고맙다.
-
삶이 그렇다.
벽을 넘기 위해, 들판을 거닌다.
언제까지나.

Who's 유성

profile

결과보다는 과정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마당에 수필을 올리실 때 주의사항 file korean 2014.07.16 745
119 불사조 不死鳥 file 뻘건눈의토끼 2015.12.28 1478
118 부평 성모병원 비뇨기과에서 초음파 검사 결과를 듣고 정수엄마 2019.06.08 814
117 보고싶은 유승자선생님 정수엄마 2020.10.13 591
116 여편네-1 2 이재성 2014.12.28 546
115 나의 삶, 나의 고뇌 정수엄마 2020.11.07 524
114 지적장애2급과지적장애3급의연애차이 1 file 깜윤아내 2014.11.26 477
113 정혜아빠에게 정수엄마 2020.11.11 474
112 글쓰기와 장인정신(匠人精神) file admin 2014.06.24 440
111 그리운 아가에게 정수엄마 2020.11.09 436
110 사이버문단(文壇) file korean 2014.07.16 426
109 저에게 용기와 남편 병과 맞서 싸울 힘을 주세요. 정혜엄마 2022.10.03 369
108 미국 서부시대 file 뻘건눈의토끼 2016.01.09 284
107 꿈이열린 서해바다 1 카리스마리 2015.08.10 273
106 한때 잃어버렸던 나의 꿈들... 5 뻘건눈의토끼 2017.02.03 270
105 돌아가신 할아버지, 송전탑은 살인자 바닐라 2015.10.30 270
104 충고(忠告)와 조롱(嘲弄) file korean 2014.07.16 263
103 잔인하고도 더러운 세상 2 뻘건눈의토끼 2015.10.01 230
102 자유로운 영혼 ^^ 토끼가... (완성시킴...) 1 뻘건눈의토끼 2018.04.23 227
101 흑인인권운동 file 뻘건눈의토끼 2016.02.25 224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