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by 유성 posted Jun 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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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화포에 내 모습을 그려내려 했다.
그러나 내가 바라본 나란 사람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동떨어진, 그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 어색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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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는 내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좋다고 했다.
나는 그래서 내 눈이 그 사람을 온전히 비추어줄 정도로 크고 맑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은 위기의 순간마다 기지를 발하는 내 모습이 듬직하다고 하셨다.
나는 그래서 내 등이 대낮의 태평양처럼 넓고 따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나의 입담을 좋아했고, 또한 언제나 그들의 깊은 속마음을 들어주기를 원했다.
나는 그래서 내 입이 평소에도 미소를 머금은 깔끔한 신사의 입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귀는 현자의 지혜로운 말에 세월을 흘려보낸, 덕분에 약간은 쳐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노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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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거울 속에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내가 알고 있는, 혹은 예상한 사람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그의 눈은 크고 맑기는커녕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여우의 것과 같아서, 그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의 꾀에 홀라당 넘어가버릴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에 내 스스로를 간파당하는 기분이여서 그의 눈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거울 속에 존재하는 그의 풍채는 보통사람의 것보다 큰 것은 사실이었으나, 전혀 듬직해보이지는 않았다.
그의 어깨는 벌어졌으나, 굳건해 보이지 않았고, 그의 허리는 앞에서 보면 올곧았으나, 옆에서 보면 활대처럼 구부정해있었다.
나는 그 풍채가 내뿜는 기만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그의 풍채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나를 경멸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그의 입과 귀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입과 귀였기에, 그가 무슨 말을 하던지 간에, 내 혼잣말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던지 간에 큰 신경을 쓸 이유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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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남자의 모습만큼은 닮고 싶지 않아서, 거울 앞에 앉아 그의 모습을 꼼꼼하게 화포에 옮겨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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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심 끝에 이 작품의 제목을 「영악한 남자」라고 지었으나, 다른 사람들은 화포 속 이 남자에게서 어떤 면모를 볼지가 궁금하여 「무제」로 출품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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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품 후, 화포 속의 남자는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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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거울을 바라보아라.
그 곳에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과 다른 사람이 서있다면 그대는 순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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