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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09 15:58

그리운 아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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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전 우정사업 진흥회에서 편지쓰기 대회 안내문이 왔었다. 문득 너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가야, 지금 네가 내 몸에 없다는 현실이 날 괴롭히는구나. 임신 중절수술까지 하고 내가 교회 다닌다는 것이 왠지 죄스럽게 여겨지는구나. 미안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날 이해해 줄 수 있겠니? 냉혹한 사회적 현실이 우릴 갈라놓는데 어떻하겠니? 이 세상은 '기형아'를 출산하기엔 너에게도 나에게도 큰 아픔과 고통인 것을. 널 낳는다면 너와 나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따가운 눈초리와 손가락질을 피할 수 없을 거야. 너에게는 마음의 상처만 안고 살아가게 될 거야. 난 너의 그런 모습을 보며 살 수 없단다.  그렇게 살다 결국은 주위사람들의, 아니 가까운 식구들조차 널 타 양육기관에 보내려 할꺼야. 그런 것은 생각하기조차 싫구나. 

 5주째 접어들었다는 진찰 결과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하지만 X-RAY와 CT촬영때문에 의사와 의논하니 '기형아' 출산률이 높다며 수술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구나. 순간 아찔했어. 널 갖게된 기쁨도 잠시 난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든 느낌이었단다. 도무지 의사의 말을 믿을 수 없었어. 그래서 난 다른 산부인과에 갔었지.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심정 이었단다. 내가 널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했겠니? 그래서 한 군데 더 찾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날 밤은 잠을 청하지 못했단다. 아기가 살아 숨쉬건 형태도 갖추지 않은 수정란  상태의 아기이건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까? 며칠을 고민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도 의사 선생님이 '기형아'라고 확답하는구나. X-RAY부분이 허리였고 그러면 아기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구나. 진료를 받고 내가 어떻게 병원 문을 나올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순간 주저앉고 말았다. 이젠 북받쳐 올라오는 울음도 나오지 않고 무엇에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지. 의사가 수술은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구나. 아이가 커지면 아이나 나에게 위험부담도 크다고 하신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

 이번에도 첫 번째 임신처럼 '수술' 해야 한다니. 병원 세 군데 중 두 군데서 수술하라고 하니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 정말 힘든 시간들이고 많은 고통을 버텨내야 했단다. 그 결과는 허리 통증을 낳았고 요사이는 그 통증이 심해 잠조차 자기 힘들 정도란다. 요통만 아니었다면 병원 가는 일도, 가서 X-RAY찍는 일도, 없었을 것을. 그런데 그 걱정이 정작 지금은 현실로 나타났구나. 나의 실수가 널 이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게 했어.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얼마나 예뻤을까? 귀엽고 앙증맞았을까? "아기가 코와 눈, 얼굴은 엄마, 아빠를 닮았네요."라고들 이야기 했겠지? 또 6개월이 지나면 부푼 내 몸을 보며 아기의 태동도 느끼고 있었을테지. 말기가 가까워 오면 '어떻게 생겼을까?' 두려움 반, 기대 반에 부풀어 있었을 텐데.

 널 갖게 된 후 기쁨도 잠시 고민도 많이 하고 울면서 기도도 했단다. 한 생명을 포기하기엔 너와 나는 너무도 힘들었어. 너에게 칼을 데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 번쩍이는 불빛에 냉랭한 표정의 의사와 간호사들. 생각하기 조차 싫은 수술실 풍경이구나. 그런 환경을 너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자책감에  몇 날 며칠 밤을 눈물로 보냈어. 그뿐이겠니? 맨 처음 가진 아기도 풍진이라는 이유로 임신 3개월 만에 수술해야 했거든. 임신 중에 풍진을 앓게되면 80%는 기형아를 출산하게 된다는 구나. 시댁에서 이 소식을 접하자마자 결론은 수술 하라는 것이었어. 난 차마 할 수 없었어. 그 때도 병원에서는 포기하지 말라 했었어. 힘들겠지만 양수검사해서 더 정확하게 진찰해 보자고 의사선생님이 그러셨는데---. 그러셨는데---.  그 다음 날부터 난 '기형아'를 가졌다는 이유로 시댁식구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었어. 하루하루가 사는 게 아니었지. '기형아'를 모르는 시어머니는 물어왔지만 난 차마 대답할 수가 없더구나. 그 옆에서 큰 형님이 "병신 자식이요." 라고 대답했지. 끓어오르는 분노, 배신감이 마음 저 밑바닥부터 솟구쳐 나왔어. 아니 어느 어머니가 '기형아'를 갖고 싶겠으며, 낳고 싶은 어머니가 어디 있겠니? 몇 날 며칠을 수술하라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기도했단다. 교회를 다녔기 때문일까? 수술하기 전 마지막으로 주님께 묻고 싶었다. 주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정작 방법이 수술뿐이겠습니까? 다른 사람은 아이만 잘 낳는다는데 왜 전 이래야 합니까? 제가 과거에 무슨 잘못이 많아 한 생명을 죽이고 난 죄책감에 시달려야 합니까?  도와 주세요. 아이를 살릴 방법은 없습니까? 끝없는 의문들을 주님께 묻고 또 물어보았어. 끝까지 버텨 기형아를 낳아 모든 현실을 감당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한 생명을 죽이고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나? 결국 방법은 두 가지 였지만 결론은 하나였어. 친정 식구와 시댁 식구들의 의견은 수술이 방법이었어. ' 기형아'를 식구로 받아들 일 수 없다는 거야. 이런 잔인한 현실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드는 거야. 수술대 위에 누운 난 마취약이 들어가기 전까지 그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스쳐지나갔지. 몇 시간이 지났을까? 나와보니 내가 맞이한 것은 참담한 현실과 친정 어머니 뿐이더구나. 시댁식구 누구하나 수술하는데 와 보지 않았지. 아기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는 나에게 원인은 '풍진' 결론은 '수술' 뿐이었단다. 나의 첫 번째 임신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단다. 다른 사람은 임신만 하면 아기를 잘 낳는다는데---. 정말 나에게는 아기를 갖는다는 건 힘든 일이었나 보다.

 지금은 그나마 어렵게 낳은 정혜언니가 예쁘게 잘 자라 나의 곁을 지키고 있구나. 쌔근쌔근 자는  정혜언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가 태어났으면 얼마나 예뻤을까를 상상해 본단다. 어쩌다 이런 청천벽력 같은 일이 있어날 수 있을까? 나의 실수만 아니었던들 지금쯤 뱃속에서 예쁜 형상으로 잘 자라고 있었을텐데.

 예쁜 정혜언니처럼 너도 태어나면 예뻤을 거야. 그리고 힘찬 울음소리로 너의 탄생을 맞이했겠지. 첫 돐 지나면서 아장아장 걷는 모습과 재롱피우는 모습도 보았겠지. 그 모습들이 지금은 그리움으로 나에게 다가온다. 정혜 언니는 지금 말도 제법하고, 혼자 놀기도 한단다. 단 한가지 말을 안 듣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단다. 아마 네가 태어났으면 욕심많아 질투도 했을지 모르지.

 수술 후 벌써 보름이 다 되어 가는 구나. 긴 터널 속을 빠져나와 세상에 던져진 기분이야. 이 세상 어디에 있든지 밝은 모습으로 나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구나. 다음 세상에 태어날 땐 좋은 인연으로 다시 만나자꾸나. 잠시나마 너와 내가 자식과 부모로 만난 인연이었다는 것을 난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이 하늘 어디에선가 다시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렴. 그리고 이 세상엔 없지만 멀리서나마 널 위해 기도하마.



                                                                             2001. 4. 19.

                                                                  널 그리워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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