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지도 먹지도 않고, 이틀 내리 잠만 잤다. 얕은 가수면 상태에 빠져서도 발끝에 산들산들 찬바람이 와 닿는 것을 느꼈고, 얼굴에 오후 햇살이 내려앉았다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겨울이지만 겨울답지 않게 춥지 않은 날씨에 내 몸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특정한 지병이 있는 사람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 자고 일어나니, 다시 태어난 것처럼 몸이 개운했다. 피곤이란 게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눈은 반짝반짝 빛났고, 피부는 윤기가 흘렀으며 몸무게는 1킬로가 줄어있었다.
자, 여기서 부터가 문제다. 내 몸에 카페인을 집어넣어 금단현상을 멈출 것이냐. 아니면 이 기분 좋은 느낌을 최대한 오래 즐길 것이냐. 카페인이 있어야만 책을 읽든 글을 쓰든 무언가에 집중 할 수 있고, 각성 상태가 되어 금단현상인 가슴 두근거림 현상이나 머리 아픈 것이 없어졌다.
요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플라스틱 통에 든 커피를 사 마셨는데, 무엇에든 중독이 잘 되는 나는 이 커피를 하루에 3개에서 6개까지 마셨다. 6개까지 마신 날이면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 말똥말똥했고, 그 다음날 낮에 몸 안에 든 카페인이 모두 해독 될 때까지 내리 잠만 잤다. 마치 내 몸에 독극물을 집어넣어 잠시 정신을 차린 후 다시 기절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다.
무언가에 중독이 잘 된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허하여 의존성이 있다는 것이지만, 이렇게 몸에도 안 좋은 카페인과 당을 꾸준히 채워 넣는 것을 보면 나는 바보가 틀림없다. 분명히 몸에 안 좋은 신호가 나타나고 나서야 끊을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자는 고요한 새벽, 달짝지근한 커피를 홀짝이며 글을 쓰고 있으면 세상을 다 얻은 듯 행복하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때라는 걸 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밤을 즐기는 나에게 아버지는 항상 말씀하신다. 작가든 피디든 변호사든 밤에 안자는 여자들 유방암 걸린다고. 밤에 제발 잠 좀 자라고. 걱정하여 하시는 말씀 인건 아는데 나에게는 불안만 유발하는 말일 뿐이다. 이미 내 의지로 밤에 자긴 글렀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야행성인 것도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것인지, 엄마와 나는 똑같은 주기로 밤에 안자고 낮에 자는 패턴을 반복한다. 낮에 여기저기서 전화와 문자 메일이 오는데, 나는 요즘 읽고 있는 나쓰메 소세키의 한눈팔기란 책 위에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 놓고 잔다. 오른쪽으로 돌아누우면 코앞에서 핸드폰이 붕붕 거리며 진동한다. 얕게 잠들어 있다 해도 나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내 잠긴 목소리를 남에게 들려주기 싫기 때문이다. 벌건 대낮에 자고 있다는 것도 사실 창피스러운데, 목소리까지 허스키해져 자칫 이상한 여자로 비칠까봐. 아예 받지 않는다. 자는 동안 전화가 오면 사람들이 내 면전에 대고 붕붕 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 같다.
이봐. 전화 받으라고. 자냐? 이 시간에?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기가 부끄럽다. 나도 내가 부끄럽긴 한데, 생활을 개혁할 굳센 의지가 생기지 않는다. 어쩌면 좋을까. 소세키의 책 한눈팔기에 나온 지식인처럼 내 입장에서만 나를 변명하고 사는지도 모른다. 다행이 현재 내 주변에는 나를 욕하고 지탄할 사람이 없으므로. 내가 이렇게까지 마음대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책 없는 나를 사랑하신다는 주님. 한 마리 가축을 키우는 것보다 더 마음에 천불이 일텐데도 나를 키워주시고 보호하시는 우리 부모님. 나는 신세만 지다 갈 팔자인가 싶다가도 정신을 번쩍 차리고 무언가를 읽고 있으면, 난 지금 내 할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그것이 먹고 살기 힘든 사람 눈에 잉여짓으로 보일지라도. 오늘도 나는 내 할 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