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제가 24살입니다>

by 유성 posted Jun 2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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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마음으로 항해를 떠난 꿈의 배는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잔인했던 현실이라는 이름의 폭풍우에 가로막혀 난파되고 말았다.

선장의 첫 여행이 좌절로 돌아갔을 때, 그의 나이 겨우 1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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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바다에 배를 띄운 것은 그로부터 2년 후였다.

그러나 이전 모험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탓일까, 그 모험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삐걱거렸고 배가 다시금 바다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모험’이 아닌, ‘이동’을 목적으로 한 출항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선장은 2년간의 이동에는 성공했지만, 그의 두 번째 모험은 지레걱정에 집어삼켜져 시작도 못한 채 끝장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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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다시 한 번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두 번째 모험(모험이라 쓰고 이동이라 읽는다.)이 끝난 뒤로 3년 후였다.

선장은 지난날의 실패를 거울삼아 자신을 도와줄 수많은 선원들로 배를 가득 채웠고, 선원들 대다수가 유능했으므로 그들의 도움으로 바다를 영원히 모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걱정되었던 기후도 선장 편이었으므로 모든 것이 완벽해보였다.

배의 움직임은 여러 사람들이 노를 젓는 만큼이나 원하는 곳에, 원하는 속도로 도달할 수 있었기에 선장은 항상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기대했던 만큼 모험은 매일 매일이 의미 있었고 신이 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모험에 지친 선원들이 생겨났고, 모험에 임한 마음가짐의 깊이가 다른 만큼 떨어져나가는 선원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결국 유능한 선원들로 가득했던 배는 선장 홀로 남게 되었고, 얼마가지 않아 또다시 배는 난파되었다.

그의 어깨에서 달콤한 노래를 흥얼거리던 앵무새조차 자신을 져버리고 날아 가버렸으니, 무기력감에 둘러싸여 바다 깊은 곳에서 홀로 익사할 뻔했던 선장이었다.

깊은 바다에 외로이 빠졌다 겨우 살아난 선장의 나이 23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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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밑바닥, 아니 그보다 깊은 심연에 빠졌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다시는 배를 바다에 띄우기는커녕 배를 다시금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운명의 부름이, 핏줄에서 요동치는 오래전부터 야기된 그의 삶의 목적이 바다로부터 그를 불러내고 있었으므로, 그가 다시금 배를 만들게 된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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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번 모험에 임하는 태도는 기존의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과하지도, 그렇다고 절대로 부족하지는 않을 정도의 준비과정을 통해 배를 띄울 채비를 마쳤고, 선장은 네 번째 모험을 위해 출항하였다.

앞서 말했듯이 네 번째 모험을 준비, 임하는 태도가 기존과는 달랐는데,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람을 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기존의 모험에서는 원하는 곳에 다다르기 위하여 물리적인 힘, 즉 노를 저어 이동하였다면 이번 모험에서부터는 원하는 곳에 다다르기 위하여 대기를 가득 채우려 하는 분주한 공기의 움직임에 순응하기 시작했다.

또한 선장은 바람에 순응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자신의 펜대 끝에서 바람을 창조하는 행위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이번 모험의 원동력은 그가 의자에 앉아 있는 순간에서부터 비롯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뼛속까지 선장이자, 뱃사람이었기에, 바람을 자유자재로 불러일으킬 수 있다면 영원한 모험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이었다.

그의 손에 쥔 펜대의 끝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것,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행위가 이번 모험의 요지였다.

모험의 성공 여부를 떠나서 느낌이 좋다고 생각하는 선장이었다.

의자에 앉아 세상을 향해 덤비는 바람을 불러일으키고는, 뱃머리로 이동해 그 바람의 한 중간에 있노라면 그는 스스로가 살아있다는 것을, 숨 쉬고 있다는 것을 그 어떤 행위보다 격렬하게 느끼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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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의 모험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또다시 폭풍우가 불어올 수도 있고, 해적의 침략에 굴복할 수도 있으며, 또한 예기치 못한 당황스러운 상황에 미처 대비 하지 못하고 침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시금 배를 만들어 모험을 시작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와 모험의 목적, 즉 원동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간의 침몰은 실패가 아닌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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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뱃머리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튀기는 물방울을 맞으며 앞으로 다가올 풍파에 지레 겁먹지 않은 채, 위풍당당하게 모험을 지속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선장의 나이 24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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