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추억 ㅡ1 ㅡ

by 빡샘 posted Feb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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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년 의    추 억


-  묻고 싶은 한마디 -


'난 성미형이 제일 궁금하더라...'


이제 막 오십줄에 접어든 사내들이 

삼겹살을 구으며 하릴없이 첫사랑 

얘기들을 주고 받던 터였다

첫사랑이 있었는지 누구였는지도

모르겠다며 

빈 술잔만 내려보던 한욱이 불쑥

말을 내뱉었다

' 그 왜 있잖여...키크고 부반장도 했었던..'


성미형!..

서울서 전학을 왔다던 그녀는

모든게 우리와 달랐다

또르르 굴러가는 서울 말소리와

흰색 블라우스에 양갈래머리를 했던

그녀는 돋보이는 존재였다


' 지금 강원도 어디에 산다던디...'

역시 그랬구나!..


어릴적 겨울은 어찌 그리 춥고 

눈은 또 그리 많이왔던지

하지만 개구장이들에게 겨울은 

나쁘지만은 않았다

골목길 언땅을 발 뒤축으로 파서

구슬치기를 하거나

집뒤 논밭에 하얗게 내린 눈위를

뛰어다니며 눈싸움을 하고

눈집을 만들기도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썰매타기를 제일

좋아했다

길 밑의 논에 얼음이 꽁꽁얼으면 

아버지께서 멋지게 만들어주신

썰매를 가지고 가서 동네친구들과

시합을 했다

가느다란 철사를 밑에 댔던 여느 

썰매와 달리 건축일을 하셨던 아버지는

손가락만한 굵은 철사를 매어서

속도감이 괭장했다

썰매타기는 나의 자랑이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머리에 김을 모락모락 피워가며

썰매타기에 집중하던 내 눈에

흰색 스케이트가 보였다

TV서나 보았던 스케이트를 직접 본건

처음이었다

놀람도 잠시

양반 다리를 하고 꼬챙이를 내리찍던 

나를 비웃듯 스케이트는

우아하게 춤을 추듯 나를 지나쳐갔다

' 이것이 나으 나와바리를 함부로..'

여지껏 동네에서 마땅한 적수를 찾지못했던

나는 이를 악물고 뒤를 쫒았지만

앉은뱅이와 학다리의 대결이었다

몇번의 거품문 추격에도 불구하고

스케이트는 따라잡히기는 커녕

금새 한바퀴를 돌아 내 옆을 지나갔고

나는 스케이트의 긴 다리만 야속하게

바라볼뿐이었다

처음으로 맛본 아픈 굴욕이었다

그때 문득,..

스케이트의 등 뒤로 나풀거리던

눈에 익은 양갈래머리가 보였다

'설마!..'날렵한 긴 다리..성..미형


나는 논 구석으로 황급히 썰매를 몰아

얼굴을 돌리지않고 잽싸게 일어섰다

제발 그녀가 나를 앉은뱅이 썰매장수를

알아보지 못했기를 바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이후 

나의 자랑이었던 썰매는

몇년을 창고에서 먼지만 이고살다가

어느해 겨울 아궁이 땔감으로 사라졌고

그해 겨울의 기억은

아직도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다

양갈래 머리를 했던 그녀는

겨울왕국의 안나였고

난 난쟁이 올라프였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

' 안나, 6학년 겨울에 만났던

앉은뱅이 올라프를 기억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