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한국인] 28차 창작콘테스트 응모 (수필) _ 소주 한 잔과 두부 한 모

by 빈공책점하나 posted Feb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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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한 잔과 두부 한 모


달이 하늘에 걸리고 밤이 마당에 널리면, 나는 아버지를 떠올리곤 한다. 나의 아버지는 없이 산 세대치곤 제법 체격이 좋으셨다. 말끔하게 정돈된 수염과 상고머리를 하고 네모나게 각진 안경을 쓰셨다. 또 외모도 걸출하였고, 목소리도 낮아서 도저히 시골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아버지는 그랬다. 아버지는 줄곧 그림을 그리셨다. 도화지에 선명하게 선 몇 개를 긋고 물감으로 색을 입히셨다. 별거 없는 시골마을, 별로 그릴 것조차 없는 곳에서 아버지는 늘 고래를 그리셨다. 바다를 헤엄치는 고래와 돌고래의 모습들은 아버지의 꿈이나 청춘 같았다. 젊은 시절에 나를 낳고도 아버지는 꿈을 꾸신 것이다.


허나,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1997년 겨울, 아버지는 할머니와의 마찰로 집을 나오셔야 했다. 수중에 돈 한 푼이 없었고, 우리는 서울역 거리를 방황했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잡고 허름한 달동네를 향했다. 그 겨울 아버지의 손을 통해 느낄수 있었다. 아버지의 마음에 품었던 바다가 회색의 도시에 밀려나가는 것을.


고난은 연달아서 찾아왔다. 도시라고 하여 일자리가 녹록한 것은 아니었다. 경제 불황이 닥치고 집에 쌀 한 톨, 김치 하나가 없었다. 아버지는 매일 막노동을 하셨다. 그나마 일자리도 찾기 어려운 때지만, 새벽같이 나가 밤늦게 돌아오셨다. 1년을 지하방에 갇혀, 라면에 절어살았다. 해가 지나 다시 겨울이 오자, 아버지는 꺼내 놓은 스케치북을 하나하나 찢어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아버지의 바다는 그렇게 사라졌다


우리는 몇 년을 없이 살았다. 옷 한 벌이 아쉬워 버려진 옷을 궤고 빨아서 입었다. 옷 수거함을 몰래 열어서 옷을 빼어 입기도 했다. 생활이 그렇게 나아지지는 않았다. 어찌어찌 학교에 들어갔지만 준비물 사달란 말을 꺼내보지도 못했다. 참 세상이 야박하게도 동생이 갑자기 아파서 큰 수술을 몇 차례나 해야 했다. 훤칠하고 말끔했던 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느새 도시가 들어섰다. 순수했던 시골 청년은 피곤에 절어 도시의 톱니바퀴가 돼버렸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살기 위해 일했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었다. 하다못해 지하 방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9살 때부터 혼자 밥을 차려먹었다. 그렇다고 그 삶이 썩 나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어린 시절엔 또래 모두가 골목골목을 누볐다. 비록 집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있지는 않았어도 외로움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는 그 시절 알 도리가 없었다. 나의 천진난만한 시절의 행복은 아버지가 버려야 했던 바다 대신인 것을.


세월은 물살을 거세게 하여 우리 가족을 멀리 데려 왔다. 나는 아버지가 마음에 바다를 처음으로 품었던 나이가 되었다. 일만 하셨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몸 하나 성치 않았다. 아버지의 등은 좁아지고, 허리는 약간 굽었다. 수염이 희어지고 머리칼 몇 가닥이 빠졌다. 청춘이라는 것이 아버지에게서 빠져나갔다. 아버지는 몸이 아파 매일 밤 술잔을 기울이셨다. 몸 성치 않아도, 뭐라도 하셔야 한다며 매일 아침 문을 나서셨다.

저만치 지는 노을이 바닥에 깔리는 시간, 아버지는 늘 손에 소주 두 병과 두부 한 모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나를 옆에 앉히고 소주 한 잔을 잔에 따랐다. 매일매일, 아버지의 술 주정을 듣는 것이 썩 좋진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를 앉히고 소주 한 잔을 들이켜는 시간이 내내 좋다고 말했다. 서울에 돈 한 푼 없이 와서, 몇 년을 고생한 아버지는 살아오면서 느낀 온갖 것들을 늘어놓으셨다. 아버지는 과거 이야기를 할 때면, 꼭 술을 한 병 더 여셨다. 그리고 이런 밤에 같이 술 한잔 기울일 친구가 없다며 씁쓸하게 웃으셨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다. 아버지의 몸에는 더 이상 청춘도 바다도 없었다. 회색으로 절은 도시의 낯빛만이 남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소주 두병과 두부 한 모를 사 오셨다. 아버지의 술 주정을 몇 년간 같이 한 탓인지, 이제는 그것이 지겨워졌다. 나는 이런저런 이유로 아버지와의 시간을 외면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혼자 술 한 잔을 따르시고 아쉬운 한숨을 내뱉으셨다. 나는 소주와 두부가 있는 그 시간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내가 아버지의 소주와 두부를 이해한 것은 얼마 전 일이다. 몇 년을 공부하고 준비해오던 꿈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가 꿈을 버렸던 그 나이가 되어서, 나도 내가 품은 꿈을 놓게 되었다. 어쩌면 포기하지 않는 것이 옳은 길일지도 모른다. 허나 허공에 구름같은 꿈을 쫓기에는, 나는 담력이 없었다. 

포기를 하고 나서, 그것이 뭐라고 마음이 아쉬웠다. 인생에서는 분명 그것보다 아름답고, 빛나고, 가치 있는 것들이 남아있다. 어쩌면 흐리멍덩한 꿈이라는 것보다야 나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포기하니 마음에 빈 공간이 생겼다.


그제서야 나는 아버지의 소주와 두부가 보였다. 소주와 두부는 마음에 품은 바다, 꿈, 그림쟁이가 되고자 하였던 아버지의 아쉬움이었다. 아버지는 매일, 겨울밤 포기한 것들을 마음에 묻으셨던 것이다. 꿈이라는 놈이 성질이 고약하여 어느 때면 고개를 내밀기에, 아버지는 소주 한잔과 두부 한 모로 그것들을 묻으셨던 것이다. 얼마나 아쉬웠을까, 잃은 꿈과 청춘이.


훤칠하고 잘생긴 시골 청년은 나이가 들어 청춘을 잃고, 꿈을 버리고, 자식들을 길러냈다. 푸른 바다를 품었던 얼굴에는 도시의 잿빛이 들어차고, 크고 강한 등은 좁아지고, 사랑했던 친구들은 떠나가고, 남은 것이라고는 소주 한 잔과 두부 한 모.



이렇게 가슴 시리는 밤이면, 나는...

소주 한 잔과 두부 한 모가 사무치게 그립다.




응모자 : 김종현

이메일 : starlightsor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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