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차 공모 수필 공모 [isn't she lovely? / 상하지 않는 날 것의 감정]

by 김생강 posted Mar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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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n't she lovely?



어릴 때 부터 수영을 못했다. 어릴 때는 물 밖에 들어갔다 나오면 한바탕 울고 난 것처럼 쳐지는 게 싫어서 키판을 들고 깔짝대는 게 전부였지만 크고 나니 다른 것들이 싫어졌다. 남성 강사가 주었던 수치스러운 눈길과 그 모든 말과 실수를 가장했던 기묘한 손길 같은 것들이. 거의 아무것도 입고 있을 수 없었던 내 더러운 몸을 그렇게 보는 그 강사의 뭐라고 집어 말할 수 없는 수치스러운 ‘그것’ 때문에 나는 수영을 못했다. 그래서 어디에 빠져도 결코 헤엄쳐나올 수가 없었다. 해운대에도, 학교 건물 앞 얼어붙은 호수에도, 우울에도, 짝사랑이라는 한없이 유치한 감정에도.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어릴 때 부터 고착되어 있던 자학과 자책과 혐오와 불안은, 한없이 더 깊은 수심으로 나를 부르기만 했다. 여기가 네 집이라고. 현실이라고. 헤엄칠 줄 모르는 나는 깔아뭉개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 전날 밤 몸부림치다 죽은 나의 익사체가 있었다. 그걸 마주하는 삶이었다.

어릴 때부터 동화를 믿지 않았다. 어차피 공주라고 해봤자 다 똑같은 바보들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를 너무 쉽게 믿어버리는 순진함은, 낯선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뭣같은 용기는, 유리알같이 예쁜 얼굴은 다 거짓이었다. 무엇보다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첫 눈에 반했다 어쩐다 하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가 가장 비현실적이었다. 사과 한 입이나 물레바퀴 바늘 따위에 있지도 않은 운명이라는 게 팔려넘어간다는 건 너무 예쁜 거짓말이었다. 내가 공주였다면 진작에 새엄마고 왕실이고 도망쳤다고, 나 따위가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헛된 기대도 안한다고 다짐했었다. 그게 동화든 삼류 일본 로맨스 영화든 궁극적으로는 잘 팔리는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별 같잖은 도피와도 같은 웃기는 상술이였다.

그 잘 팔리는 거짓말에 오롯이 속아버린 것은 끔찍했던 열여섯의 여름이었다. 더위를 먹었었는지도 모른다. 해괴한 곳에는 해괴한 마음으로 간다는 철칙 때문에 새로 가게 된 그 해괴한 학교에 너무 해괴한 마음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8월 16일 아침에 교실에 앉아있는 내 앞을 지나쳐가던 그 선배의 향수냄새가 갑자기 내 마음에 어떤 해괴한 파장을 일으켰는지는, 정말 모르겠다. 하지만 익숙한 냄새였다. 어딘지 마음을 포근하게 하는, 조 말론. 신기하게도 괴로울 정도로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이었다, 특이한 걸음걸이며 어딘지 초점 없는 눈이며 살짝 벌어진 입이며 단추 하나 풀지 않고 하복을 갖춰입은 모습들이. 웃으면 조금 덜 무섭겠다고 혼자 그런 이상한 생각을 다 했다. 어쩐지 쉽게 웃을 것 같지 않지만, 웃는 모습이 조말론 향수랑 정말 잘 어울리겠다. 시원하고 달콤하고 잔향이 진하게 남는 게 그랬다. 그래서 한 번 바람 빠지게 웃었다. 다른 의미는 아니었다. 첫 눈에 반했고 이런 건 정말 아니었다. 기어코 아니었다. 맹세코 아니었다. 코 끝에 남은 그 향이 왼종일 나를 괴롭게 했어도 괴로운 건 괴로운 거지 사랑이 아니었다. 문득 떠오르고 금방 다시 까먹는 그 뿐이었다. 다만 그 문득이라는 것은 순간 단위였고 금방이라는 것은 세월 단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자면, 나는 무모하게도 뛰어들었던 것이다. 내겐 지나치게 과분한 그의 넓고 깊고 어두운 세계에, 인생 내내 혐오해왔던 수영을 하러.

징그러운 감정이었다. 디즈니 영화 같은 클리셰로 인해 갑자기 나와 선배는 나름의 청춘 로맨스 코미디 영화의 주연들이 되었지만 선배에게 난 여주인공이 아닌 단역이었고 나에게 이 영화는 로코가 아닌 첩보물이었다. 선배의 조말론 미소를 어떻게든 지켜내기 위한, 내 세계보다 선배의 세계가 훨씬 중요했기에 했던 나름의 발악이었다. 그는 나에게 단 한순간도 조금이라도 의지하는 법이 없었기에 그마저도 보잘 것 없는 짓이긴 했으나 안 그러기에도 곤란한 지경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끔찍하게 여기던 나는 손목에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붉은 줄들이 타들어가는 것 같아도 일단은 두 팔로 배구공을 쳐댔다. 그 때문에 상처는 덧났고 생각보다 좀 끔찍하게 아팠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 같은 것의 가치는 애초에 없었고 나의 존재엔 무게가 없었으니까. 나는 겨울이어도 어떻게든 선배는 봄이어야 했다. 나는 아파서 혼자 울지언정 선배는 웃어야 했다. 아프고 힘든 건 항상 나여야 했다. 선배가 살고 있는 불행이 어디든 선배는 행복할 자격이 있었고 그래야만 했다. 그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어둠이란 어둠은 내가 다 가져오고 싶었다. 내 세계는 죽어갈지언정. 잠식되어 웃을 수 조차 없을지언정. 고작해야 기숙사 대항전에서 한 번 하고 마는 배구가 선배의 인생을 구하지야 않겠지만 이기면 잠깐이라도 좋을 테니까. 웃기야 할 테니까. 조말론 향수도 그렇고 웃음도 그렇고, 볼 수 있을 테니까. 게다가 그 하찮은 단 하나의 별 것도 없는 승리가, 내가 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선배가 유일하게 원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마저도 나는 주지 못했다. 3패 후 마지막 경기까지 처참하게 패하자마자 울지 않으려고 얼마나 눈을 부릅떠야 했는지.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 짓은 극단적이고 옹졸했으며 처절했고 그저 찌질할 뿐이었다. 나는 말하기도 곤란할 정도로 그를 좋아했지만 이런 짓은 이 영화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고 선배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고했다고 나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 느낌이 이상한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칠 때 마음 한 구석에서 어딘지 깨지는 소리가 났다. 포기해, 김생강. 누군가 내 마음 속에 속삭였다. 선배 같은 사람이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너한테 기대겠어? 다 필요 없잖아. 사실, 정말 누구한테 의지해야 할 건 너잖아? 결국엔 덧날 대로 덧나버린 손목의 상처를 부여잡고 그날 아무도 모르게 한참을 울었다. 이건 아니였다. 나는 익사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죽을 것이었다. 마음이 먼저, 그 다음엔 어쩌면 몸이.

사랑 받고 싶은 만큼 주면 되는 줄 알았다. 실은 그의 별 것도 아닌 조말론 따위가 내가 바라는 전부가 아니였다. 살아 있는 것 조차도 버거워서 밤마다 악몽에 쫓기고 우울에 잡아먹혀 끅끅이는 내 옆에 조용히 다가와 괜찮냐고 딱 한마디 해주길 바랐다. 가끔씩 꿈에서 그래줬던 것 처럼 새벽 3시에 찾아와 짖궂게 웃으며 뭐 어때, 그냥 다 씹고 도망가버리자 라고 해 주길 바랐다. 가끔은 날 보면서 알 듯 말 듯 입꼬리를 올려주길 바랐다. 내 손목을 잡고 다 괜찮으니까 제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혼이라도 내 주길 바랐다. 나는 아주 보편적이고 전형적이며 진부한 사랑을 바랐다. 몇 수 앞이 보일 정도로 뻔한 개수작들을 바랐다. 적어도, 내 척추기립근만에 의지하여 눈물을 쏟는 나를 혼자 토닥이는 일만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자꾸 탓을 하고 싶어졌다. 왜 나를 좋아해주지 않는데, 와 같은 아주 유치하고 답도 없는 불편한 질문들을 꾹꾹 삼켰다. 정말로 알고 싶었던 건 단순했다. 알면서 이러세요? 기실 이 말이 가장 묻고 싶었다. 다 알면서 음료수 사주세요? 다 알면서 메시지 말투는 그렇게 다정하세요? 다 알면서 이것저것 물어보세요? 다 알면서 내 이름만 성 떼고 희서야 불러주세요? 알고 있었냐고 물어보는 나의 말에 응, 알고 있었어 하며 머쓱 웃던 선배는 곧 미안하다고 했다. 선배는 알고 있었다. 고로 그 행동에는 의미가 사라진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선배의 그 미지근한 온도를 사람들은 착하다고 표현하더라. 선배는 잔인하게도 착한 사람이였다. 더럽게도 착한 사람이였다. 좋다는 말에 “네가 싫어" 도, “여자로 안 보여" 도 아닌 “좋은 동생 같아" 라는 말로 사람을 돌려보내고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람이였다. 나에게 남은 것은 결국 크기만 달라졌지 같은 것 뿐이었다. 더 큰 혐오, 더 큰 자학, 더 큰 불안. 과분한 사람을 좋아했다는 중죄에 대한 벌이였다. 입에 담기엔 너무 쓰고 마음에 담기엔 너무 달아서 삼키지도 뱉지도 못할 사람이었다.

선배는 나의 인격체의 단면에서 가장 이상한 모습만을 본 사람이었다. 내 모든 형태의 우울, 불안, 공황과 가장 정신병자같은 사고방식의 불쌍한 목격자였다. 얘기할 때 유난히 목소리가 아래로 깔리는 것이라던지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행동에서 철철 흐르던 마음에 대한 피해자였다. 어쩌면 나는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잔인한 폭력을 휘둘렀던 것이 아닐까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선배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날에는 그 문제에 대해 더 곰곰히 생각했다. 선배가 아는 나는 그 어느 누가 봐도 좋아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 만개의 순간이 모인 시간들에 걸쳐 자명해진 사실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나 같은 게 감히, 하는 후회가 방 안에 조용히 메아리쳤다. 선배가 목격했던 모습은 내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마 그는 나를 싫어하게 됐을 것이었다. 혐오하게 됐을 것이었다. 내가 나를 혐오하는 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시작은 클리셰 범벅인 하이틴 로맨스처럼 했어도 결말은 호러였고 그건 꼭 선배가 아니더라도 언제나 똑같았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그럴 자격이 될 거라는 그런 기대는 내게 금기였다. 선배에게는, 선배도 나도 몰랐던 잔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잔향은 조 말론 향이 아니었다.

가끔은 그게 궁금하다. 내가 선배에게 보여주지 않은 단면을, 선배는 보았을지. 우울함도, 인조적이고 과한 쾌활함도 깨질 것 같은 불안함도 아닌 그저 열여섯의 김생강을. 밥을 먹을 때, 수업을 들을 때, 앉아서 졸 때 그런 열여섯의 나를 선배는 본 적이 있을까.내가 보여주지 않은 것 외에도, 선배는 봤을까. 언젠가 누군가 선배에게 “희서 있잖아, 걔 어때?” 하고 물어보게 되면 선배는 그렇게 얘기해줄까. 아아, 걔?


“Isn’t she so lovely?”





상하지 않는 날 것의 감정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깨닫는다. 내 세계에도 겨울이 존재했구나, 하는 것을. 겨울이 살을 에고 토악질을 부르고 볼을 터뜨릴 것만 같이 후려칠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그 해 겨울만 나에게 다정했다는 것을. 그 해 겨울만 그렇게 따뜻했다고. 그 해 겨울에만 이상한 꽃이 피었다고. 한없이 다정했던 기나긴 겨울이 계절 한 바퀴를 다시 돌아왔지만 작은 온기조차도 없었다. 전력을 다 해 나의 겨울을 지켜줬던 네가, 계절 한 바퀴를 지나고 이제 없다는 뜻이다. 너는 왜 그랬을까. 끊임없이 구토하고 뺨에서 피가 나는 잔인한 추위를, 왜 혼자 두 명 몫을 견뎠을까. 그 애가 입꼬리를 억지로 찢어 웃을 때 대체 뭐에 눈이 멀어 나는 보지 못했나. 너에게만 모질던 겨울 끝에 네가 살아있었던 이유가 정말 나라면, 나는 그 죄책감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도대체 너는 어떻게 살아있니. 무채색의 바다 틈에 홀로 빛나던 샛노란 가방을 메고 꼿꼿이 선 단단하고 위태로운 너의 뒷모습에 대고 그렇게 물은 적이 수만번이였지만 마음 아프게도 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사고로 서울로 급히 가던 덜덜 떨리던 뒷모습도, 배구공을 들고 숨을 몰아쉬던 뒷모습도, 8교시 화학 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있던 뒷모습도 답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살아 있니? 어떻게 사는 거야? 너 괜찮아? 질문의 형태는 매번 달랐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네! 하는 맑은 표정, 다시 앞을 보자마자 입술을 꾹 깨무는 너. 새빨간 립스틱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입술의 피딱지. 그것만큼 적나라한 고통은 없다. 너는 그렇지 않아도 깨지기 쉬웠는데. 어느 곳에 함부로 내놓기도 두려울 정도로 약했는데. 그런 주제에 오만 괜찮은 척 밝은 척은 더럽게 잘해서 새까만 너의 사고회로 속까지 물이 가득 차 있는데도 기어코 울지 않았다. 바들바들 흔들리는 두 다리로 겨우겨우 서서 있는 힘껏 눈을 부릅뜨고 웃고 있는 그 모습은 본 사람만 안다. 그게 겨울이다. 그게 그 애의 겨울이였다. 눈송이 따윈 없고 환한 겨울 해 따윈 없는, 날 것의 겨울이였다. 그 애를 보는 것은 독립영화를 보는 것과도 같았다.

너는 왜 나 같은 말종의 세계를 지켰어? 세상 모두가 내가 말종임을 알고 있었으니 묻고 싶었으나 끝내는 묻지 않았던 말이였다. 내 세계를 너는 대체 왜 온 힘으로 지켰어? 그것을 묻기 전에 나는 어떻게든 끝을 내야 했다. 이 겨울이 계속되었다간 너는 끝내 부서지고 만다. 그러면 나는 진짜 말종이 되고 만다. 어떻게든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너는 그 길었던 세 달의 겨울 동안 혀를 거치지 않은 채 위로 밥을 쑤셔내렸고 무의식중에 아무 표정도 짓지 않을 땐 죽여달라고 빌기라도 하는 것 처럼 처절했다. 배구는 역시 괜히 가르쳤다. 고작해야 배구공이 네 목숨이라도 되는 것 처럼 무릎을 산산조각 내는 모습조차 날 것이였다. 그 코트 위에는 너만이 싸우고 있었다. 단 1 점의 실점에도 너는 어디를 세게 얻어맞은 표정이였다. 배구는 말종인 나의 세계의 전부였으니, 그것마저도 넌 지키고 싶었어?

네 마음이 그 모양인데, 다른 사람 위로할 여력은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오는 거니. 네가 단단한 목소리로 ‘괜찮아요' 라고 단 한마디만 해줘도 다 괜찮은 게 돼버렸다. 현실 밑에 어떤 것이 깔려있는지를 아는 사람처럼 너는 ‘힘 내!’ 라는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고 오직 그렇게 한없이 견고하게 괜찮다고만 말해서 진짜로 모든 걸 괜찮게 만들었다. 죽은 건지 산 건지조차 알 수 없는 눈으로 날 뚫을 듯이 쳐다보면서 웃지도 않고 딱 네 음절 뱉었다. 그게 전부였지만 그게 마법이였다.

네 흉터를 못 본 게 아니다. 네 흉터가 잠깐이라도 눈에 스치는 순간이면 따뜻한 물로 씻어서 물기를 닦고 한 줄 한 줄 연고를 발라주고 싶다. 왜 그랬어? 같은 위로를 빙자한 추궁은 버리고. 상처에 입이나 맞춰대는 별 쓸데없고 간지러운 짓도 버리고. 그냥 그저 묵묵히 팔을 꼭 잡고 연고만 발라주고 싶다. 그 다음 미역국을 끓여 네가 밥 한 톨 없이 그릇을 비울 때까지 지켜본 다음 소파에 눕혀 이불을 세 겹 덮어주고 손바닥으로 눈을 감기고 싶다. 네 흉터를 못 본 게 아니다. 네 흉터가 잠깐이라도 눈에 스치는 순간이면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못 본 척 밖에는 없었다. 그래서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와 식탁 위에 가방을 던져두고 피아노 덮개를 열었다. 전례없는 포르티시모로 내려쳤다.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속으로 끊임없이 잔인하게 추궁하면서. 내 나름의 걱정이기는 했다.

나의 모든 물음에 답을 줬던 건 겨울의 끝자락에서였다.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 애가 겨울의 끝자락에 답을 준 건지, 그 애의 답이 겨울을 끝낸 건지. 오묘한 타이밍이였다. 정답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너와 같은 형태로 주어졌다. 축제 날 책상을 어설프게 붙여 만든 무대에서 이상한 색채의 조명을 받고 마이크를 잡고 서 있던 너는 피아노 반주 위에 그렇게 말했다. 다 뭔 소용이야. 이런 나도 아직까지 살아있잖아. 나 안 죽었잖아, 팔은 아직 쓰라려도 안 죽고 잘 살아있잖아. 다 뭔 소용이야, 다 뭔 소용이야. 너에게도 나에게도 그 말의 의미는 컸다. 뭔 소용이야, 부르고는 끝났다는 듯 슬핏 웃는 너의 모습에 나까지 안도했다. 괜찮구나. 무릎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지 않았다. 이제 끝났구나. 죽기를 기도하는 처절한 모습도 아니였다. 다 지났구나. 간만에 보는 진짜 웃음이다. 이제 봄이구나.

너와 나는 겨울에만 존재했지만 그래도 꿈에 나온다. 차가운 겨울 공기에 희뿌연 입김을 만들던 모습이, 특유의 비누 냄새를 짙게 남기면서, 사람들 사이에 있는 날 바라보던 새까맣고 동그란 눈빛이 했던 모든 적나라한 날 것의 생각을 짚어본다. 몸에 딱 붙는 검은 타이즈를 구석에 버려놓고입던, 무용 담당 교사가 혐오하던 품이 많이 남는 새하얀 티셔츠에 까만 반바지 속에 유연하게 움직이던 모든 몸짓이 떠오른다. 거울에 비친 하얀 팔을 떠올린다. 그 애는 날 것이였다. 그리고 곧 날 것이였다.

내가 목격한 가장 밝은 형태의 처절함에게,

사랑해.






김 희 서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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