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작

by 햐수 posted Jun 09,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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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친구

 

   내게는 특별한 친구가 둘 있다. 명자와 현이.

그들도 나를 특별하다고 생각할까?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들을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은 나도 알 수 없는 그들에 대한

나의 행태 때문이다.

 

   그들에게 별나게 공을 들인 것도 아니고,

특별하게 마음을 두고 있다고 서로 확인한 것도 아닌데, 부모나 형제가 그렇듯 마음 한자리에 있다.

우리는 거칠 것 없는 이십대 초반 삼년을 같은 곳에서 지냈다.

 

   달랑 사십 명으로 개교한 간호전문대학에 입학했다.

6층짜리 건물 두 개 동()중, 한 동()의  5층이 학교, 6층은 기숙사인 학교였다.

그 외에는 온통 병원운영 관련시설이었고, 어떤 시설은 병원 직원과 기숙사생이 공유했다.

병원과 학교는 서로 자기네가 주체라고 했다. 셋집 같았다.

이제 돌이켜보니, 그 좁은 공간이 오히려 재미를 주었던 것 같다.

무엇이나 저절로 공유가 되었다.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지하 식당가서 밥을 먹는다.

그 다음, 1층 예배실로 올라와 아침 예배를 드리고, 6층 기숙사로 올라간다.

수업도구를 챙겨 5층 강의실로 내려오면,

같은 공간에서 9시부터 저녁 530분까지 강의가 이어진다.

   그 후에 주어지는 사소한 선택권.

1, 먼저 기숙사에 들러 책 놓은 후 저녁식사 후 산책을 한다.

2, 그냥 식당부터 들러 식사 후 기숙사로 와 닦고 쉰다.

 

   귀사(歸舍)시간은 9시이다. 귀사시간 전까지는 외부활동이 가능하다.

9시가 되면 기숙사 출입문이 딸깍 잠긴다.

그 후 공부방에서 점호를 겸한 저녁 예배가 있다.

그 의식이 끝나면 거의 10시 안팎. 소등 시간은 10시.

공부방만 빼고, 나머지 숙소는 불을 켤 수 없다.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 때문에 평소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어야한다

는 논리에 밀려,

우리는 그 이십대 초반을 매일 소등시간에 깔려서 잤다.

 

   예배실에 있는 고무나무 잎사귀에 낙서가 발견되면,

그것이 누구의 흔적이라는 것도 곧 가릴 수 있을 만큼 우리는 집중마크 당했다.

 

   미국출신 독신 여선교사이신 오십대 중반의 학감과

 전도사 출신으로 남편과 사별한 사십대 중반의 사감,

그리고 대개 미혼 또는 독신이었던 교수진들

그리고 병원장과 겸임하는 육십 대 남자 학장.

 

   기독교개론이라는 교과목이 추가로 있었고,

다른 학교와 차별적으로 인간발달과 성장이라는 교과목이 비중 높게 다뤄졌다.

인간을 다루는 직업은 인간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이해해야 한단다.

 

  그래서 인간성장 발달단계별로 현장 실습도 나가야 했다.

신생아, 영아, 유아, 취학 전 아동, 취학아동에서 성장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병원 신생아실, 보육원, 학교, 산업선교회 등 단계별 현장으로 가서

그들을 관찰하고,

같이 놀기도 하고,

느끼고 취재도 해야 했다.

 

   전인적인 간호와 더불어 정직하고 사려 깊은 간호사로 키우고 싶은 것이

초대학감의 교육 방향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밖으로 튀고 싶었다.

 

   학감은 학생과의 면담을 자주 요청했다.

시험성적이 나올 때면 의례히 5분 단위로 면담 일정이 게시판에 붙는다.

   맨 처음 학감과 면담할 적이 기억난다.

아무래도 외국분이니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천천히 설명했다.

학감은 대답이 납득이 되지 않으면 계속 조근조근 이어서 질문을 했다.

   "그렇지만 , 그래서, 그래도.”

    , 공부 안 해 성적이 떨어졌는데 뭐라 할 말이 있겠느냐고요.’

  답답하다짜증이 나서 이말 저말 빨리 얼버무렸다.

  , . . 알았어요.” 하고 면담이 빨리 끝났다.

  그 때 터득한 학감과의 면담기법빠르게, 빠르게, 아주 빠르게

졸업 때까지의 노하우 중 가장 쓸모 있는 것이었다.

    

   식사 시간은 연중,

아침은 07:30, 점심은 12:30, 저녁은 17:30.

해가 긴 여름날, 귀사시간은 훌쩍 넘고, 외출은 할 수 없고, 허기가 몰려온다.

누군가 나서서 각방마다 돌며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받아 쪽지에 적는다.

그리고 해당 금액을 챙긴다.

우리의 간식 운반용 비닐백에 쪽지와 돈을 가지런히 넣어가지고 옥상으로 나선다.

옥상계단입구에서 한 명은 경비를 서고, 백을 든 다른 한 명은 옥상으로 올라간다.

일층 건물 모퉁이에 있는 병원 구내매점 슬레이트 지붕을 조준해서,

끈을 슬슬 풀며 백을 내린다.

지붕위에 백이 안착하면 끈을 잡고 들었다 놨다를 반복한다.

손놀림에 따라 비닐 백 속의 돌이 지붕을 두드린다.

  “!!!!”

매점아저씨는 신호를 감지하고 빠르게 가방을 낚아 쪽지와 현금을 확인한다.

해당 물건을 백에 담고는 위를 향해 수신호를 보낸다.

수신호와 동시에 백은 잽싸게 위로 끌어올려진다.

 

  ‘비닐백이 밤마다 학생기숙사에서 구내매점으로 내려온다는 제보에 의해

그 백을 압수당해도 그 게임만은 언제나 우리가 승자였다.

 

   임상실습 때에도, 그 날의 실습행위 외에는 일체의 간호행위를 허용하지 않아,

바쁘던 기존 간호사로부터 뒷 담화를 들은 일.

   누군가 면회를 오면 병원 현관에서부터 제지를 당해,

 기숙사에 적을 두고 있는 한, 남자를 구경하기도 여의치 않았던 기억.

 그저 우리끼리만 덩어리져 놀아야 했다.

 

   시간이 필요 없는 어떤 날, 침대 위에서 찬송가를 펴놓고,

1장에서부터 한 장씩 넘기며 찬송가를 부르면, 아래 1층 침대에서 명자 왈,

 , , 향숙아, 너는 어쩜 그렇게 목소리가 좋니?

찬송가 1장에서 끝장까지 불러도 안 쉬는 목소리를 주셨니? 축복이다.”

한가득 눈에 웃음을 싣고 빙글거리며,

   “거짓말 아니야. 난 우리 합창단 언니랑 화음 맞추는 게 너무 힘들어.

그 바이브레이션에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차라리 너랑 하는 게 훨씬 쉬워, 진짜야.”를 강조한다.

 

   현이는 바로 내 머리맡,  2층 침대에 산다.

그렇게 삼년을 지냈다.

일단 난처하다 싶으면 하얀 얼굴이 무방비 상태로 발갛게 되는 친구.

환갑이 지난 지금도 색깔이 좀 옅어졌을 뿐 붉어지는 건 변함없다.

 

   아아, 이제야, 그 친구들이 왜 특별한 지 정리가 될 듯하다.

그것은 우리가 만날 때 사용하는 언어의 역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그 때부터 말할 때는 서로 집중하는 버릇이 있었다.

서로 마주보면서,

   “으응, 그렇구나~, 그랬어?, 너는? 그랬었구나, 잘했어, 잘했어.

그래, 너라면 당연 그랬을 거야. 이해가 된다. 나는 그렇단다, 너는?”

이런 교감으로 출발했던 거다.


  아마, 거기에 서로의 위안이 되어서 일 듯.<>



신천지를 간다.

      

   환갑을 바로 지난 나.

그 동안 어떻게 보냈나.

어떻게 보냈을까?’

, , 환갑 지났거든.’

   이것은 나보다 일고여덟 살 덜 된 무리가 주류인 그룹에서,

나의 다름을 인정해 달라는 경고성 발언이다.

그 것도 어쩌다 장난기가 발동할 때뿐, 정작 내 나이가 몇 인지는 기억에 없다.

매년 변하는 나이에 적응하기 힘들어,

굳이 나이가 필요할 때는 알아서 계산하라고 아예 연식(年式)으로 말해준다.

 

   작년은 환갑이라는 상식이 곧 내 나이로 통하는 고마운 해()이기도 했지만,

 36년간 머물렀던 직장의 문을 닫은 해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가족에 대한 의무방어는 이제 공식 종결이다.

 

   나는 이제 자유인이다.

   ‘나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 관성의 사고도 이제 집어 던진다.’

 

   마트에 들렀다. 넘치는 매실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초록빛깔에 튼실하고 깔끔하다. 10kg 한 상자를 덜컥, 설탕도, 3kg짜리 포장으로 2개 사고.

   ‘매실장아찌 담그는 법!’, 이제 컴퓨터가 바쁘다.

   ‘매실 씨 쉽게 빼는 방법이 방법은 말처럼 쉽지가 않고.

이어지는 검색. 검색. 따라하기. 따라하기.

컴퓨터를 들며날며, 마트를 들며날며

씨를 말끔하게 뺀 상태로 장아찌 담그기 미션 종결.


   ‘어머님이 해 주시던 고추장아찌 생각이 나서,

 마누라보고 해 달라했더니 그 맛을 못 내네.'

가정식 백반 자리에서 듣던, 몇 년 전 선배의 말이 언뜻 떠올랐다.

또 마트를 들며날며, 컴퓨터를 들며날며 고추장아찌를 완성했다. 맛도 훌륭했다.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장아찌의 행렬.

양파, 마늘 그리고 피클. 백김치까지.

컴퓨터에 있는 레시피는 훌륭했고,

나도 그쯤은 따라할 수 있는 상식이 있는 사람이고.

 

   어릴 적 풀 먹인 이부자리의 느낌이 생각났다.

침구를 세탁한 후 냉동실에 있던 오래 된 쌀가루, 제빵용 밀가루를 털어내어

풀을 먹이니 뽀송뽀송한 느낌이 새롭다.

 

   텔레비전에서는 건강식단이 차고 넘친다.

매일 먹어야 할 것도 많다. 그런데 그것들이 꼭 필요하단다.

자색 채소들을 실컷 강조하더니 <가지>가 나온다.

어릴 적, 밭모퉁이에서 따서 손으로 쓱 문지르고, 뚝뚝 꺾어먹던 가지.

혓바닥을 시커멓도록 질리게 만들던 가지. 그 후 한동안 가지는 영양가도 없고 칼로리도 없어

 다이어트 식품으로나 제격이라 하더니만, 어느새 안토시안이, 폴리페놀이 다량 함유되어 좋단다.

   흔한 나물, 볶음 외에 다른 방법은 없을까?

   ‘여태껏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느낌가는대로 한다!’

   가지를 4등분으로 도막치고,

2mm 굵기로 길쭉하게 썰어 팬에 기름 없이 뒤적여 구워 접시에 놓는다.

식용유를 달궈진 팬에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는다.

구운 가지 위에 볶은 다진 마늘과 깨와 올리브유를 듬뿍 친다.

마늘 장아찌항아리에서 발효액을 따라 그것으로 간을 한다.

마늘장아찌 발효액이 오리엔탈 소스느낌이다.

   “맛 굳~!”

이 후, 거기에 토마토를 익혀 덧입히고, 치즈를 뿌려 이렇게 저렇게 맛을 탐한다.

 

   원 플러스 원으로 딸려온 식재료들을 손질해

햇볕에 말려 저장용으로 말리다 보니, 또 거기로 꽂힌다.

애호박도 말리고, 가지도 말리고, 무우 말랭이도 만들고.

햇볕을 따라 꼬들꼬들 말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햇볕은 참으로 쓸모 있는 자원이구나. 그러면서 서너 달이 훌쩍.

 

   이제 비울 만큼 다 비워진 것 같다.

그래, 이것은 그냥 생활일 뿐 다른 무엇은 없을까.

이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아니어도 된다.

어디에고 나를 묶어두어야 마음 놓이던 그 느낌은 어디로 간 것일까.

 

   인터넷을 뒤진다. 여기저기.

  ‘내 생애 첫 작가 수업.’

기성 작가와 함께 하는 창작동화교실이란다.

1주에 2, 한 회당 3시간 강의, 40()이다. 연말까지 꼬박 이어진다.

특별한 요건도 없고, 선착순이라네. 일단 강의를 신청했다. 가볍게 통과.

 

   내일이면 첫 강(). 심기가 불편해 진다.

그런데 동화라, 어떤 게 있지? 동화를 읽어 본지 얼마나 된 걸까?

아니 동화를 읽어 본 적이 있기나 한 거야?

 

   첫 시간. 아니나 다를까. 각자의 소개와 더불어

기억에 남는 동화에 대해 간단히 얘기해 보란다. 가나다 순서로. '강'씨가 없네.

그러면 딱 거렸네, 내가 첫 번째네.

   “. 동화를 접한 지가 하도 오래 되놔서,

걸리버 여행기, 어린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등이 생각나네요.”

얼마나 머쓱한지 그리고 동화에 대해 얼마나 미안하던지.


   그 날부터 수개월을 도서관과 더불어 살았다.

작가를 따라가며 읽기도 하고,

권장도서 목록을 따라가며 읽기도 하고,

출판사를 훑으며 읽기도 했다.

젖 먹는 아이에게 들려주는 동화에서부터

청소년 소설에 이르기까지 대상도 제각각 인 이야기를.

   표현도 다양하고 발상도 다양하고 형식도 다양하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그 세계는 이미 충만한 것 같았다.

강좌가 끝날 무렵, 압력에 밀려 창작동화를 한편 썼다.

그리고 읽는 사람으로 남기로 정리했다.

 

   그럼에도 나는 그 주변을 맴돌고 있었나보다.

무심결에 또 다른 글쓰기 강좌를 신청한 것이다.

할 수 없지. 작가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비우고 한 번 해 보는 거야.’라면서 걸음을 뗀다.

 

   첫 강()이 끝날 때,

작가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잘 아는 내 이야기부터 밑자락에 깔면서,

A4용지 한 장 정도로 써서 메일로 보내란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따라 하기로 한 나는,

다음 강의 바로 이틀 전에 미션을 완료했다.


   이어지는 과제

   ․ 묘사하기 연습(A4용지 1장 내외).

     -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 또는 사물을 글로 묘사하기

     - 가족이나 친한 친구 등 잘 아는 사람에 대해 묘사하기

     - 익숙한 대상(사람, 동물 등)의 행동이나 습관 묘사하기

 

   둘째 강의시간에 내준 과제물도 거뜬하게 제출했다.

한 가지만 생각하기로 했다. 강의가 재미있고 역동이 붙기 시작한다.

 

   어느 틈에, 내 배의 돛은 올려 있었고, 나는 이미 뭍에서 떠나있었다.<>


고향숙, nrhs1845@daum.net, 010-8721-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