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분 응모작 -아름다운 동행 外 1편

by 짱명희 posted Dec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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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동행

 

 

내가 벌써 나이를 먹었다는 실감을 해본다. 주위에 둘러보니 어린 아이가 자라 숙녀의 티를 내면서 가까이 다가와 인생 상담을 청하면 기쁜 일이지 마음이 조금 무거운 느낌이 든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던 조카가 대학생이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갔는가. 지난 온 나날들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활동 범위가 넓어서인지 구태여 혼자라는 말이 걱정스럽지 않았다. 이제는 차츰 변해가는 모습에 걱정이 앞선다. 황혼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노년의 풍성함을 누군가와 꿈꾸어 본다.

 

6시 내 고향을 즐겨 본다. 시골에 젊은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흰머리로 장식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살아가시는 정겨운 모습을 보게 된다. 주름진 이마 사이로 피어나는 미소는 서로에게 신뢰와 저녁노을처럼 마음을 붉게 태운다. 부끄럼 없이 뽀뽀를 하면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의 단면을 털어 놓는다. “다시 태어나도 이사람, 언제나 이 사람과 함께라고 힘을 주어 말하는 인상적인 말이, 서로에게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 주고 지탱해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좋은 일도 굳은 일도, 수많은 시간들이 후회 없다는 아낌없는 말씀이었다. 동고동락하면서 지내온 삶들이 그래도 즐거웠던 모양이었다.

세파에 시달려 고왔던 아름다운 모습도, 풍파에 씻겨 버렸을지언정 오랫동안 퇴색되지않는 마음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생이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만약 청춘 남녀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은 채, 시들은 꽃에 입을 맞추는 용기어린 마음이 있을까 싶다. 그것은 함께 살아온 인고의 사랑이 필요할 것이라 믿는다.

 

아침마다 운동을 하러 갈 때면, 할아버지께서 자전거 뒷좌석에 할머니를 태우시고 혼자 거동하기 조차 불편하신 몸으로 불안하게 운동장에 나타나신다. 난 유심히 할아버지 할머니께 시선을 고정시킨다. 노년의 나의 모습을 연상하면서…….

나도 황혼이 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같은 모습을 하고 함께 늙어갈까? 찾아오는 백발은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법. 당신들을 통해 미래의 나의 모습과 비교해본다. 운동장에 자리를 잡으신다. 무엇을 하시는지 보았다. 화투놀이로 주거니 받거니 하루의 따분한 일상을 달래고 계셨다. 누가 승자인자 패자인지 따지고 싶을까? 살아온 세월을 마주하면서 보내는 시간의 즐거움이라 믿는다. 화투놀이에서 인생 공부를 하는 것 같았다.

한참동안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으셨다. 부모님처럼 걱정이 되었다. 편찮으실까? 아니면 돌아가셨을까? 연세가 많으시면 매일 되풀이 되는 일은 둘 중에 하나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엇갈린 생각 속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안부를 물어보았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순간 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짝꿍 할머니는 어떻하고. 할아버지의 빈자리는 누가 채워줄까? 그 넓은 자리를 메워줄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할머니의 슬퍼하시는 모습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떠나가신 할아버지께서는 할머니의 애틋한 사랑에 저승에 가서도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찾고 계실 것 같았다. 운동장 한 구석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함께 했던 인생이야기가 들리는 듯 했다.

 

 

 

 

내 인생에 값진 보석



  

단순함, 지루함의 연속이었다. 눈을 비비고 새벽 창을 두드리면서 나를 재촉해 보았지만 항상 그 자리 그 마음이었다. 이런 뱀의 똬리처럼 억매인 것을 어떻게 풀어갈까? 나의 화두였다. 그래 내 마음을 환기시켜보자. 친정 부모님을 모시고 있는지라 어른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길가는 연세가 많으신 어른들이 항상 눈 속에 꽉 메워 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독거노인 자원봉사자로 지원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초대받는 일은 축복받은 일인 것 같았다. 첫 방문지는 산 밑에 혼자 계시는 할머니와의 인연이었다. 지팡이에 의지한 채 대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계셨다. “새댁을 기다리고 있었네.” 웃으시면서 내 손을 꼭 잡아 주셨다. 사람의 따뜻한 체온, 가슴에서 젖어오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주름진 손에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순박한 정이 묻어났다.

 

어두컴컴한 골방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모습을 떠올리면서 왠지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께서 들려주신 인생이야기 할아버지, 자식을 먼저 보내시고 혼자 삶의 고독감이 이런 것인가 싶었다. 오고가는 풋풋한 이야기 속에서 세상은 어쩌면 모두가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승꽃 사이로 피어오른 거치른 피부는 오랫동안 할머니의 고단한 삶의 여정 같았다. 훌훌 겹겹이 입은 옷을 벗기면서 나약한 몸에서 내 자신의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따뜻한 욕탕에 할머니를 담갔다. “아휴, 시원해하시는 말씀 속에서 내가 왠지 속이 후련했다. 할머니의 등을 밀어 드리면서 마음속에 쌓인 나의 앙금을 걷어내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다른 사람을 위해 뭔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수행하는 기분도 들었다.

 

길더란 손톱도 예쁘게 정갈하게 다듬어 드렸다. 방안 분위기를 좀 젊고 발랄하게 해드리기 위해 장미꽃을 몇 송이 침실 곁에 꽂아 드렸다. 방안은 할머니의 황혼의 아름다운 빛과 함께 막 피어나는 인생의 꽃과 같았다. 할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님이 자꾸 스쳐 지나갔다. 세상 할머니는 모두 우리 어머니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장을 가서 간단하게 식자재를 샀다. 할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쇠고기 국을 정성껏 끓였다. 같이 마주하면서 먹는 밥상은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았다. 맛있게 잡수시는 모습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어머니의 젖꼭지를 빨면서 좋아하던 어린 시절 그 느낌인 것 같았다.

 

할머니와의 하루 뭔가 함께 나눌 수 있고, 즐거워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할머니께서 감사하다.” 라고 하시는 말씀은 되돌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하루를 봉사하고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다는 기분이었다. 물질적으로 살 수 없었던 아름다운 마음의 풍요로움이었다. 나도 누구와 함께 공유할 수 있고 더불어 살 수 있음에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삶의 단조로움도 나눔으로서 여유로움으로 변화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할머니와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인생의 보석을 찾은 것 같았다. 이제는 영원히 할머니와 함께 친구, 어머니, 동반자로 남겠다고 나와의 굳은 약속을 해본다. 앞으로 모든 어른들에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넘어가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할머니의 주름살만큼 진한 삶의 향기를 느껴본다.

 

 

이름: 장 명 희

전화:010-6886-1954

메일:jangsyn20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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