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부문 응모작 - 새해 소망 외 1편

by 비니 posted Jan 06,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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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소망

흔히 사람들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된 욕구엔 대표적으로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식욕, 성욕, 수면욕. 그에 따라 인간이 생존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렸을 경우 위의 세 가지 욕구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었다. 증상은 둘 중 하나였다. 겉잡을 수 없이 욕구가 커지거나 혹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예 사라져버리거나. 그리고 내 경우엔 어느 순간부터 먹는 즐거움을 잃어버렸고 무자비한 수면욕과 성욕을 얻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던 시절이 있었다. 눈을 뜨면 아침인 게 싫어서 자꾸 눈을 감고, 눈을 감고. 어쩔 수 없이 등교하기 위해 일찍 눈을 떠야 하는 날엔 정말 죽어 버렸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기 일수였다. 아이들과 같이 있으면 즐거운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결코 즐겁지 않았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만 믿고 들리는 것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것이 한편으론 다행스러웠지만 그것을 비집고 들어오는 우울함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시간이 아니라면 매일을 울면서 보냈다. 살기 싫단 생각조차 안 들 만큼 처절하게, 치열하게.

 

우울증이 조울증으로 변하게 된 건 기나긴 우울증을 겪는 도중 자연스레 생긴 것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웃어야 했고, 밝아야 했고, 즐거워야 했으니 내가 미쳐버리는 건 당연한 것이었다. 아마도 가면성 우울증이 심했던 탓이 아닐까. 그것이 요즘 드는 생각이었다. 아니면 이렇게 해서라도 즐거웠으면 하는 나의 무의식적 바람이었던가. 나의 경우에는 조증 삽화 기간보다 울증의 기간이 더 길었다. 그건 아마 오래된 우울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처음 겪은 조증 삽화 기간의 나를 본 내 주변의 모든 이들은 하나같이 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누구의 우울증은 다 나았다고. 심지어 나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세상이 모두 내 편인 것 같았고 나는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두가 날 사랑하는 것만 같았다. 새로 만난 담임 선생님이 좋았고 조금 거슬리지만 같이 다닐 친구들이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같은 집단에 소속된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핸드폰을 열면 연락할 사람이 언제든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때 나는 행복해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한 번 더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내가 조울증에 걸렸구나.

 

조울증이란 걸 알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앞으로의 인생이 절망적으로 느껴진다거나 한탄스럽지 않았다. 그저 낙담했을 뿐이었다. 애초에 한 번 무너진 정신력은 아주 작은 손상에도 큰 데미지를 입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조금 달리 하고 가치관을 다르게 하기로 하였다.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지려고 하였고 사람들이 주는 애정을 받는 척만 하였다. 진심으로 기뻐하지 않았다. 연기는 언제나 쉬웠다. 정확히는 쉽지만 어려웠다. 천재가 아닌 이상 그때 그때 해야 할 반응을 생각해둬야 하는 것은 조금 번거로운 일이었다.

 

여전히 칼을 보면 살갗을 베는 상상을 했고, 강가에 다다르면 가만히 물가의 옆으로 가 그곳에 발을 담그는 상상을 했다. 알약을 보면 모조리 손에 털어 입에 집어넣어 보고 싶었고, 고층으로 가면 뛰어내리는 상상을 했다. 약속이 없는 휴일만 되면 굶으며 잠만 자는 것은 아직도 버리지 못한 습관이었고, 간헐적으로 행해지던 그 행위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느껴지는 극심한 현기증을 즐기기도 했다. 죽을 때의 기분을. 나는 습관적으로 찾았다. 속으로는 언제나 그런 나쁜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나는 우울증이 아닌 가면성 우울증으로 우울증을 시작했으니까. 우울함을 숨기는 건 내게 습관이었고, 당연한 것이었다. 누구보다 치밀했고, 완전했다. 마실처럼 다녀온 한 번의 상담에서도 나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게 제 원래 성격이에요.'라고.

 

그러기에 나는 '시한폭탄'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렸다. 언제 타이머가 작동될지 몰랐고, 아마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시한폭탄을 멈추기 전에 이미 시간이 다 가버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바랄 뿐이다. 제발 제 타이머를 작동시키는 일이 없게 해 주세요. 두 번의 실패는 내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자신이 없다. 나를 더 단단하게 붙잡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운이 조금 좋은 편이었다. 내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아야 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언제든 버선발로 달려가면 받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불안한 건 여전했다. '만약에 연기를 하는 습관이 정말 이 사람들 앞에서도 실현된다면 어떡하지?'라든가 혹은 '나를 짐처럼 생각하면 어떡하지?'라는 두 개의 딜레마. 딜레마 속에서 나는 늘 불안에 떨었다. 그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이런 내 자신이 싫었고 안쓰러웠고 미안했다. 나를 주변인으로 둔 그들에게 진정으로 사과를 건네고 싶었다. 너희는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를. 하지만 정말 역설적이게도 나는 여전히 그사람에게 의지하고 있고 나를 걱정해 주는 그들을 놓지 못한다. 아마 영영.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다. 가면성 우울증이든 조울증이든 모두 내가 죽을 때까지 안고 가야 할 숙명같은 아이들이었다. 앞으로 얼마나 견딜 수 있을진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온갖 굴곡으로 얼룩진 내 인생을 대하는 요령을 터득하게 되었고 이미 모든 것에 적응을 끝낸 단계였다. 더 이상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제까지 가면을 써야 하는 건진 모르겠지만 더 이상은 바뀐 계절과 함께 아프지 않았으면, 그게 내 작은 새해 바람이다.





네가 나를 울렸던 만큼 나는 성장했고, 유독 내게만 무심했던 네게 화를 내고 혼자 속앓이를 하며 나는 비로소 성숙해졌다. 너는 내게 안 본 사이 왜 그렇게 차가워졌냐며 치를 떨었지만, 사실 나는 차가워진 것이 아니었다. 네가 성장하지 못한 채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네가 준 아픔을 견뎌내며 성숙해진 것이었다. 한때 정말 온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네가 괴로워하는 걸 보며 마음 속 어느 한 구석이 살살 아려왔지만 한편으론 네가 지금의 혼란을 겪음으로써 그때의 내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네가 봄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길래 그렇게 간절히 봄이 오길 기다리냐고. 차마 그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설명할 순 없어 나는 그 언젠가의 너처럼, 그저 머쓱하게 웃어 넘겼다.


사실, 내게 봄이란 오롯이 너다.

일반적으로 타인들이 가지는 봄의 의미는 아마도 따스하고 포근한, 그런 상징적인 것들이겠지만 내겐 유독 시리고 먹먹했던 네가 나의 봄이자, 봄을 간절히 소망했던 이유라면 이유였다.


또 다시 봄이다.

창 밖의 아리따운 꽃들과는 별개로 네 가슴 속에 잔뜩 피어난 열꽃들을 부디 잘 견뎌내 주었으면, 

네 말마따나 서로 행복한 얼굴로 다시 마주할 수 있길 바라며, 

나는 그렇게, 봄을 맞이한다.



이름 : 이예빈

연락처 : 8052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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