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육강식 약육약식] 1편

by 천천히걷자 posted Nov 1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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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앳된 함박눈도 녹아 사라지고 
살갗을 찢을 듯한 추위도 사그라졌다. 봄이 두 주먹으로 뉘었던 몸을 성큼 일으키려는 눈치다.
태양도 태업을 멈추고 다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쨍하니 빛을 뿜는다. 
신록의 설렘이 다시금 찾아오려고 하나 보다.

내가 다닐 학교는 제법 시설이 좋은 곳이였다. 적당한 편의시설, 저렴한 학생식당.
과하지 않은 학생 수 까지. 신설 학교라서 그런지 강의실은 TV에서나 보던 
계단식 부채꼴형 강의실이였다. 

그렇게 학부생이 된지 첫날의 일이였다. 강의실에 들어와 좌측 뒷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강의명은 사회심리학이라는 교양과목이였다. 조금 있으니 사람들이 빽빽히 자리를 매꿨다.
그러고는 교수가 들어왔다. 반 쯤 까진 대머리에 검정 반 뿔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교수의 모델 그대로였다.

교수는 들어오자 마자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XXX 이라고 합니다." 곧이어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적기 시작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우리가 배울 강의에 대해 잠깐 이야기 하고 마치겠습니다. 먼저 묻겠습니다."
"약자와 강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것 같습니까? 아는사람?" 

누군가 손을 들어 말했다. "당연히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의견 고마워요. 자, 여러분들의 90%는, 아니 거의 대부분은 강한 사람이 승리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죠? 하지만, 하지만 혁명은 결국 누가일으키는 거죠? "
"대부분의 혁명은 약자쪽에서 발생됩니다." 인간의 숲을 보며 말했다.

"또한 그 혁명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역사에는 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한쪽은 영웅으로, 다른 한쪽은 불나방으로."
"자, 만약 불나방이 되었다 칩시다. 패잔병이된 불나방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평생을 밑바닥에서 피고름 가득한 두 발로 가시밭길을 걸어온 자들입니다."
"이들이 패배했다한들 또 다른 혁명을 일으키지 않을까요?"
"너덜너덜해진 몸뚱아리로 자신들의 이상세계를 위하여 또 다시 집결하지 않겠습니까?"
교수는 날카롭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 혁명은 전보다 더욱 더 견고해질겁니다. 실패확률이 줄어든다는 말이죠."
"그럼 어떻게 될까요, 결국 이 끝없는 싸움의 끝은 약자의 승리로 장식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이 주제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는 책상을 '탁' 치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다음 강의 때 뵙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러고는 교수는 몸을 돌려 강의실을 나갔다.

내 생각은 좀 달랐다. 내가 알던 사회는 
약자들은 서로를 물고 뜯기 바빴으며 누군가의 피로 온몸에 칠갑을 한채
더 나은 약자가 되려고 할 뿐이였다. 

서로의 썩은 부위에 쇠붙이를 밀어넣는 그들은 마치 지옥을 연상시키는듯 했다.
강한자는 더 강한자의 먹이가 되고 약한자는 더 약한자의 육신을 집어 삼킨다.
끝없는 동족상잔의 그림이 그려진 뫼비우스의 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다.

그렇게 그 강의를 듣게 되고 3개월이 지나, 강의 평가기간이 왔을때,
나는 그 강의에 제일 낮은 점수를 주었다.
허구의 이야기를 진실인 것처럼 학생들에게 환상을 안겨주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최 건
010-8976-4825
nil02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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