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오스

by 리타 posted Nov 14,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다리를 다쳤다. 정확히 말하면, 산책 중 나무데크에서 한 단 아래 오솔길로 접어들다가 마침 물이 질퍽한 화단으로 발을 헛딛었고, 그왼쪽 발이 그만 미끄러지면서 몸에서 나는 것이라고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소리를 들었다. 내 몸으로부터 나오는,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치는 것과도 같은, 어쩌면 지나치게 잘 마른 장작을 도끼로 쪼갤 때나 날 법한 `쩍`이나 `딱` 같은단호하고도 매몰차게 결별을 고하는 소리. 순간 `망했구나` 생각했다, 발목이 `똑` 하고 부러진 줄로만 알았다.

다행히 발목뼈는 무사했고 인대도 안녕했으며 복숭아뼈가 조금 부러졌을 뿐, 거동이 불편한 채 생활하는 건 뜻밖의 선물이었다. 분명히 밝혀두건데나는 결코 메조키스트가 아니다. 불편하고 답답함이 어느 샌가 스쳐 지나치던 나의 내면, 잃어버리고

놓친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바뀌어 가는 고마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계속해서 정크푸드만 주워먹다가 한땀한땀 정성들여 준비한 슬로푸드로 배불리는 따뜻한 녹작지근함, 분기탱천 휘젓고 다닐 적의 넘치는 에너지와 행동으론 결코 채워질 수 없는 내 안의 내밀한 욕구가 충족되어지는, 해서 무언가 절단나는 소리 그 `비포애프터`가 은근 기대되어지기까지 하는 다소 변태스러운 기쁨까지 누리게 되었다는. 내 안의 모든 거짓과 위선(모르면서 아는 척, 없으면서 있는 척, 아니면서 그런 척, 싫으면서 좋은 척, 불행하면서 행복한 척)과 교만에 아디오스! 똑부러진 결단을 요구하는, 꾸역꾸역 억누르며 가두어 왔던 내 안의 모든 순수한 욕구들을 더는 가둘 수 없음을 알리는 내면의 아우성, 황잉꽝링!



Articles

2 3 4 5 6 7 8 9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