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차 창작콘테스트 공모

by 인서 posted Dec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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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못생김 추가요

 

생신 축하드립니다.”

아니, 웬 생신? 나한테 벌써 이러면 안 되지!

 

봄에 태어난 내게 사람들은 꽃봉오리 가득한 프리지어 다발을 선물로 안겨주곤 했다. 봄빛 아래 젊은 나는 청순함과 천진난만이라는 프리지어 꽃말처럼 화사하게 반짝였을 것이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빛은 이제 잡티와 늘어난 모공, 여기저기 튀어나온 흰 머리카락들을 적나라하게 비춰 준다. , 외면하고픈 잔인함이여!

1년 중 유독 생일 즈음에 사람들은 내 얼굴에 관심을 둔다. 기미가 늘었다,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관리 좀 받아야겠다는 말을 무시로 던진다. 작년보다 일 년만큼 더 못생겨졌다는 걸 깨달았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나도 모르게 화장이 짙어진다. 하지만 이내 두꺼운 화장이 답답하고, 어색할 만큼 뽀얗게 된 얼굴과 목선의 경계는 민망하다. 민낯으로 예뻐지고 싶다. 잡티를 없애준다는 광고에 혹해서 미백 화장품을 사들인다. 늘어진 턱선을 올려보느라 귀를 위로 잡아당긴다. ‘아에이오우를 반복하느라 입 근처 근육에 난데없는 긴장이 감돈다.

조급해진 마음에 피부과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의사는 심드렁하게 말한다.

한번 시작하면 계속하셔야 해요. 시술하면 아무래도 피부가 예민해져서 하다 말면 시작 안 하니 못합니다. 돈 많은 사모님이면 하셔도 됩니다만.”

양심적인 의사인 듯싶고, 지속해서 할 자신도 없어서 마음을 곱게 접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설 내가 아니다. 저렴한 피부 관리, 11팩을 실천에 옮겨보기로 한다. 며칠 뒤면 1+1로 사들여서 많기도 한 마스크 팩은 서랍 공간만 차지한다. 외모 관리에 간헐적 노력을 기울이는 나의 게으름을 자책한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봄이 지나면 화장품을 바르기도 귀찮은 여름이 온다. 잠시 더위에 지친 몸을 쉬다 보면 곧이어 꼼짝하기도 싫은 추위가 따라오지 않는가! 이러다 사방에 생동하는 봄빛이 비치면 앞다투며 새싹이 올라오듯 마음도 급해지는 이치다. 학생 시절, 평소 공부를 안 하다가 시험 기간이 닥치면 벼락치기로 했던 그 꾸준함과 다를 바 없다.

어느 날, 아주 빠른 시술법을 알게 되었다. 스마트폰 카메라의 다양한 기능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사진 보정! 모드 설정만 잘하면, 잡티와 주름이 지워진 매끈한 여인이 탄생한다. 처음 그 기능을 알게 되었을 때 열심히 셀프 카메라로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감탄했다. 어쩜 이렇게 피부가 하얗고 매끈할까? 하지만 눈을 사진에서 떼고 거울을 바라보면 괴리감에 서글퍼졌다. 게다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선글라스 안쪽 피부에는 확장된 모공이 보이고 눈주름도 선명했다. 선글라스 밖 피부만 보드랍고 팽팽! 대조되는 모습에 심술이 나서 애플리케이션을 꾸짖는다.

바보 같기는! 선글라스 안쪽 보정은 못 하냐?”

그러고는 모드를 슬그머니 조정해 본다. 문득 과해지니 내 전매특허인 보조개까지 사라졌다. 울부짖고 싶어진다.

이건, 이건 아니잖아!’

이렇게 마음에 허무함을 선사하니 결국, 이 시술도 권할 바 아니다.

마흔을 앞두고 우울의 늪에 빠져있던 무렵이다. 오른쪽 뺨에 손톱 크기의 거무스름한 반점이 생겼다. 서둘러 피부과를 찾아갔지만, 의사는 그럴 수도 있다는 무심한 반응. 제거해 달라고 하니 1년 정도 지나면 서서히 없어질 거라며 인위적으로 빼긴 어렵다 한다.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 보니, 나이가 들면서 피부가 저절로 좋아진 경우는 사춘기 지나며 여드름이 없어졌던 사례를 제외하고는 한 번도 없었단 말이다! 하지만 의사는 항의 한마디 할 틈도 주지 않고 다음 환자에게 가 버린다. 그 색소침착 하나로 훨씬 못나진 것 같아서 속상했다. 다행히 며칠 후에 허물 벗겨지듯 없어졌는데 아쉽게도 약간 흔적은 남았다. 예전만은 못해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바로 며칠 후엔 눈에 검열반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내가 못 볼 걸 보는지 검열이라도 하겠다는 것인지, 병명조차 괘씸했다.

대개는 50대 이후에 생기는데 좀 일찍 찾아왔네요.”

라는 건조한 의사의 말에 더욱더 속상했다. 없애고 싶었지만, 안과에서는 손대지 말라 한다. 성형은 물론, 온갖 점과 털도 원하면 다 해결해 주는 요즘 세상이지만 나에겐 무정하다. 남들은 예뻐지게 도와주고 나한테는 그냥 살라 하고, 너무 하지 않은가?

그런 예만 있겠나! 육아 과정에서 아이들이 신나서 좋다고 휘두르던 손톱에 얼굴이 수없이 긁혔다. 요리하다가 기름이 얼굴과 손에 튀기도 하고, 무심코 건드린 뾰루지는 검버섯처럼 남는다. 이렇게 조금씩 흠결이 누적되면서 세월이 흐른다. 늙음과 못생겨짐 앞에서 맥없이 흔들리다가 현실에 적응하기를 반복한다. 괜히 억울한 마음에 허세도 부려본다. 아무리 아름다운 연예인도 나이 들면 마찬가지라고, 그 와중에 혹여나 외모 하향 평준화가 실현되지 않겠느냐고.

, 나는 누굴 닮아가려나? 김희애? 헤헤!’

하지만 스스로 허언임을 알기에 곧 시무룩해진다. 거울을 보며 한쪽 눈을 찌그러뜨려 보고, 코를 눌러보고, 입 모양도 삐딱하게 만들어 본다.

이러면 더 못났구나, 이렇지는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가!’

거울 본 김에 표정도 여러 가지로 해 본다. 화가 뭉크의 절규처럼 두려운 표정도 해 보고, 화가 이순구의 웃는 얼굴도 흉내 내본다. 어딘가에서 읽은 너희들은 못생겨서 항상 웃어야 한다.’라는 문구도 떠오른다. 점점 못생겨지는 걸 상쇄시키기 위해서라도 밝은 미소 지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빙그레 웃으며 거울 속 내 얼굴빛을 가만히 살펴본다. 살아온 시간이 담긴 생김새가 꽤 대견하고 괜찮아 보인다. 예전보다 온화한 모습이 비치는 듯도 하다.

그래, 이건 좋은 변화지.’

마음도 덩달아 느긋해진다. 나도 도종환 시인의 시에서처럼,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인가 보다.

 

올해 생일에는 프리지어 꽃다발이 아닌 프리지어 화분을 받았다. 꽃이 서서히 마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샛노랗던 꽃은 퀴나크리돈 골드빛으로 바뀌었다. 쪼글쪼글했지만, 생각보다 예뻤다.

나이가 들어 못생겨진다고 느끼는 건, 젊음에 비추니 그렇지. 모든 단계에는 그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꽃과 잎이 완전히 마르고 나면 구근을 캐서 보관했다가 다시 심을 생각이다. 그 생명의 아름다움을 모두 소중히 관찰하리라!

 

 

2. 사십 대의 옷장

 

3월 중순, 갑자기 찬바람과 함께 눈이 쏟아져 내렸다. 이번 겨울이 유난히 포근했던 터라 진즉 드라이클리닝까지 마치고 보관해 뒀던 겨울 코트를 다시금 꺼낸다. 며칠 따스하다 갑자기 오소소 추워지는 오락가락한 날씨가 이어진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에,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 하고 옷장을 연다. , 이 옷장의 주인은 누구인고? 한쪽엔 아이들이 입지 않는 무채색 후드집업과 티셔츠가 가득. 작년엔 잘 입더니 올해는 스타일이 별로라면서 혹은 작아졌다며 입지 않는데, 멀쩡한 옷을 버리기는 아까워 여기에 걸어 놓았다. 운동하거나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 가볍게 입겠다는 심산이다. 한쪽 구석엔 언제 다시 입을 날이나 있을지 묘연한 정장과 빳빳하게 다려진 셔츠가 여러 장 걸려있다. 그걸 입고 연단에 섰던 내게 집중되던 조명과 눈빛, 긴장으로 스미던 땀도 떠오른다. 매끄러운 H 라인 스커트를 만지작거리며 과연 아직도 내 몸에 들어갈지 살짝 궁금하지만 입어보지는 않기로 한다. 청순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하늘하늘 새하얀 블라우스도 있다. 이 옷은 기운이 없는 날엔 금물! 생기가 넘치는 날에 단순한 장신구와 함께 입어야 제격이다. 또 한쪽엔 어두워진 안색에 힘을 실어보고자 샀던 화려한 주황색 실크 블라우스가 있다. 이런 반짝이는 옷을 사다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었나 보다. 몸매에 긴장감을 실어주는 청바지도 있다. 배에 힘을 꽉 주고 팽팽하게 단추를 채워야 한다. 반면, 쓱 걸치면 그만인 세상 편안한 루스핏 헐렁 바지도 있다. 아마도 남들보다 비교적 많이 가진 의상이라면 플레어스커트다. 예쁘기도 하지만 여기엔 입어본 사람만 아는 편안함이 있다. 아무도 못 보는 책상 밑에서 가부좌가 가능하다는 사실. 게다가 볼록한 뱃살과 납작해진 엉덩이 라인을 슬쩍 감춰주기도 하는 보물이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지 내 몸에 맞게 늘어나거나 체형을 편안히 감춰주는 옷에 자꾸 눈길이 간다. 바지나 스커트의 허리라인을 고무줄로 해 놓은 게 점점 늘어나고 딱 맞는 재킷보다는 오버사이즈 카디건이 정겨워지니 말이다. 정체성이 모호한 뒤죽박죽에 맵시는 점점 자리를 잃어가니,

이 옷장의 주인은 숨기 좋아하는 변덕쟁이 카멜레온이라오.”

라고 해야 할까?

문득 몇 해 전에 사 놓았던 미니스커트가 눈에 띈다. 꺼내어 들어보니 얼핏 자그마한 청색 방석 같다. 요 민망한 녀석을 들여왔던 날을 떠올리니 살짝 부끄럽다.

20대 시절, 샌님 같은 기질이 있어 미니스커트를 입어보지 못했다. 더 나이가 들면 정말 손도 대어보지 못할까 봐 입어봐야겠다는 욕구가 솟아났던 건 40대 초반 봄. 김두식의 책 '욕망해도 괜찮아'를 보면 중년 남성 내면에 남아있는 소년에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는 재미난 표현이 있다. 중년 여성 내면에 남아있는 소녀에는 의상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오기가 충전된 4월의 맑은 봄날, 청바지 전문매장을 방문했다.

어떤 거 찾으세요?”

직원의 질문에 이상스럽게도 사기가 꺾인다.

, 저기, 청 스커트.”

옷걸이에 매달린 짤막한 청 스커트가 눈에 들어온다. 마치

아줌마, 나 여기 있어요. 더 늙기 전에 입어봐야죠!”

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용감하게 고 작은 옷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런데 막상 입고 집을 나서려니 머뭇거려진다. 남들이 보고 거북해하진 않을까 싶다. 매장에서 그걸 집어 들었을 때, 매장에 있던 직원 아가씨가

저도 그 옷 입어요.”

라고 했다. 착용하고 나온 나를 보고는

딱 아래만 보면 대학생인 줄 알겠어요.”

했던 말도 떠오른다.

제가 입는 걸 왜 아줌마가 탐내시나요? 아줌마한테는 영 안 어울리거든요?”

실제로 전하고 싶었던 심중 불만은 이게 아니었을까?

내가 뭘 입고 다니는지 신경 쓰는 사람은 없어, 아무려면 어때!’

라는 호기도 부려보지만, 마음이 썩 편안한 의상이 아님은 분명했다. 어쩌면, 이 나이에 이런 거 입어도 되는 건가? 하는 내면의 저항감이 가장 불편했던 것 같다.

불현듯 언젠가 여름 해변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짭조름 가득한 해운대를 거닐다가 한 젊은 커플을 봤다. 아가씨는 가슴골을 꽤 많이 드러내고 허리 라인이 잘록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귀엽고 상큼해 보였다. 젊은 시절에 그런 멋을 부려보지 못한 나. 놓쳐버린 시절이 억울할 것까지는 없지만, 슬그머니 부러웠다. 그런데, 만약 중년 여인이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면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입안이 쓰다. 결국 청미니스커트, 미련이 남아 버리지는 못하고 그렇다고 입지도 못하는 옷이 되어 옷장에 모셔지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작년에 입었던 원피스도 짧아 보인다.

아니, 작년엔 무슨 자신감으로 이런 옷을 입고 거리낌 없이 돌아다녔지? 아이들 옷도 입고 나갔다가는 어리게 보이려고 애쓰는 애처로운 아줌마처럼 보이려나? 번쩍이는 구슬 장식. 예쁜가? 아니야, 이건 아직 나에게 과해.’

옷장은 이런 내 마음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아직은 젊은 것 같아 버리지 못하는 미련, 어느덧 늙어 보이는 모습에 대한 당혹감, 내려놓고 싶은 마음과 붙잡고 싶은 마음 등, 이랬다저랬다 환절기 못지않은 사십 대의 모습을 꾸역꾸역 담았다고나 할까? 지금처럼 어영부영 살다 보면 내 옷장은 계속

이건 뉘 옷장인고?”

하는 모습일 것 같다. 나의 개성 맞춤형 옷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결부터 살펴봐야겠다. 이러다 청미니스커트를 입고 나돌아다닐지도 모르지만, 내가 살고 싶은 모습을 고민한 후에 입는 건 분명히 다르다.

하지만 나의 옷장, 아직은.

, 입을 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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