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회 수필 창작 콘테스트 참가작] 장마

by 이예니 posted Dec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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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여다보기 무섭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다정하다가도 무심하고, 

무심하다가도 다정한 네게.

너는 이미 여러번 전했다고 한 마음이, 네 온도가 변한 것 같을 때마다 

네게 걸어가는 걸음 걸음이 떨려올 때가 있다. 


너와는 선후배 사이로 만났다. 사실 강의 시간에 널 보지 않았어. 네게 갑자기 관심이 생긴 것도 아냐.

그런데 너무 빨리, 네가 내게로 쏟아졌다. 내가 막을 새도 없이 그냥 쏟아져 내렸어. 소나기는 곧 장마가 됐어.

계속 네 생각이 내리더라. 그렇게 내 시간이 온통 젖었어. 아무리 햇볓을 쬐도 건조해지지 않더라.

그래도 도망가고 싶었어. 아픈 장마가 몇 차례 날 지나가서, 아직 마음 구석구석이 축축했거든. 눈물자국 처럼. 


너도 겁을 내더라. 너도 긴 장마를 거쳐 내게 왔으니까. 한걸음 딛는 것도 무서워했어. 아슬아슬 지붕 위를 걷는 것처럼. 

네가 고양이라면, 그 높이가 덜 무서웠을까. 그래 넌 무섭다고 했어. 외로움에 사무쳐했다. 지금도 그래.

넌 내가 자꾸 웃으니 뭐가 재밌냐 물었다. 네가 좋아 웃는다고 말하면 넌 또 구름을 몰려. 내 위에서 멀어져. 

장마라도 좋아. 다만 좀 더 높은 상온 이면 해. 이번 겨울은 특히 너무 추워서.

넌 무서우면 우박을 내려. 빗방울 보다 딱딱해서 입꼬리가 자꾸 굳어져. 그래도 나는 웃고 싶은데. 

나도 네 눈치 말고 우리 사이의 운치를 즐기고 싶다. 그러니 좀 더 온도를 높여줘. 내게 포근히 내려줘. 

 

네가 행복한 먹구름 이길 바래. 나는 행복한 바다에 있을게. 

물이 증발하고 뭉쳐지고 다시 내리고 또다시 증발하는 그 순환을 가속해서,

짙은 눈물자국과 무서움 모두 덮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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