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차 공모전 응모작 : 누군가에게 주는 글 (사랑은 아른다운 것)

by 적극적방관자 posted Dec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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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한 평생을 사는 데 필요한 것들엔 무엇무엇이 있을까?

얼핏 의..주를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들은 다소 막연한 개념이기도 하고 먹는다는 식을 제외하면 의복이나 집은 있으면 좋되 먹거리만큼 절실한 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이브는 옷도 집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먹거리 널린 동산에서 벌거벗고 살았다.

물론 부끄러움 느낄 다른 눈 없고 사철 따뜻했을 그들이 살던 낙원과 혹한의 겨울이 존재하는 요즘의 지구는 다르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똑같이 벗고 산다면 까짓, 집 없이 동굴같은 데서 기거할 망정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기에 말이다.

물론 의나 주를 의복이나 집 등 좁은 의미로만 보지 않고 털 없는 인간이 무엇이 됐건 체온을 유지하고 약한 신체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행위로까지 넓힌다면 그 필요성이 다소 증폭되기는 하겠지만. (그렇더라도 먹거리와는 그 비중이 사뭇 다르다)

그 다음으로 생각나는 건 공기와 물 아닐까?

창조주로부터 조건 없이 모든 만물에 주어진...

그러나 이것들(먹거리나 공기, )은 딱히 인간의 생존에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말 못하는 동물들도(저들끼리는 의사소통을 하겠지만) 이것들을 생존의 조건으로 이용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경우에만, 인생에만 필요한 그 무엇은 없을까?

다소 생뚱맞을지 모르나 사랑이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동물들도 사랑을 한다고? 물론, 동물들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숨 쉬는 것들이 짝짓기를 한다.

하지만 그것은 종족번식을 위한 본능적인 행위이지, 인간의 사랑처럼 오묘하고 불가사의한 감정이 동반되는 고도의 정신적 행위라고 할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육체의 교접외에 정신적 교감까지를 요구하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한 경우가 없지 않으나 보통 사랑으로 잉태되고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다.

가족과 주변의 사랑 속에 성장해서는 사랑을 주고 받을 배우자를 찾는다.

선남선녀의 만남이 있는가 하면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대와 희희낙락하기도 하며 눈에 뭔가가 씌여 철천지 웬수를 사랑해 놓고 스스로 발등을 찧기도 한다.

드물게는 사랑을 빙자한 사악함에 농락되어 피눈물을 흘리고 창창한 인생을 파탄내는 경우도 있다.

복수의 염을 태우며 아픔을 극복하는 당찬 경우도 있지만 자학에 빠져 스스로의 삶을 수렁 속에 내던지는 안쓰러운 경우도 종종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종교적 사랑으로 무장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희생을 강요당하더라도 한 없이 내주고도 웃을 수 있겠지만 본래 태어나기를 이기심과 탐욕으로 채워진 인간이 예수나 석가모니의 사랑을 갖기가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니겠다.

바람직 하기로는 맞는 부분이 안 맞는 부분보다 훨씬 많은 짝을 만나 욕심은 줄이고 이해의 폭은 넓혀가며 살아가는 것이겠는데 이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설령 운 좋게 맞는 짝을 만났더라도 사는 동안 수 많은 암초와 복병을 헤쳐 나가야 한다.

이런 외부의 위험을 피했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또 하나 내부의 적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죽을 듯한 열정에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했든, 밋밋하고 잔잔하게 사랑을 이어왔든 그 것이, 그 지고지순의 가치가 그만 심드렁해 질 때가 있다는 것이다.

삶이 하찮게 여겨지고 무엇때문에 이리 아등바등 사나 싶어져서 사랑도 지겨워졌는 지, 사랑의 지겨움이 삶의 권태를 불러왔는 지 알 수 없지만 그것들은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삶을 압박한다.

삶이 권태로울 때 사랑이 청량제 노릇을 해 주면 좋겠는데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사랑은 식상할 대로 식상해서 더께만 더할 뿐 신선함을 주지 못한다.

해서 사람들은 지난 사랑을 찾는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을 회상하는 것이다.

신선했든, 가슴아팠든 가지 못한 길에 행복의 파랑새가 있었다고 믿어버리고 그 것으로 피곤한 삶의 위안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함 생각해 보자.

철 모르던 시절, 풋풋한 사랑이 아릿하더라도 어차피 그 사랑도 세월을 먹으면서 더께가 쌓여 무거워졌을 거란 걸.

시간이 멈춰 버린 사랑은 아무런 위로도 줄 수 없는 박제일 뿐이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다.

찢어지고 깨어진 상처가 깊을 수록 후유증도 오래 간다.

그 후유증이 비 오면 도지는 신경통처럼 삶이 권태로울 때 슬며시 아쉬움으로 위장하고 나타나 평상심을 흔드는 것이다. 

오해 말아야 할 것이 행복의 파랑새는 첫사랑에, 지난 사랑에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는 슬기로움에 있다는 점이다.

그렇더라도 사랑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절대 필요한 숭고함이다.

마치 내일은 없는 것처럼 쟁취에만 열 올리던 사랑을 반환점을 돌면서 서서히 베품을 알게 되고 종국엔 가족, 친지들의 사랑 속에 삶을 마감하기 때문이다.

한치 예쁠 것도 없는 노부부가 들녘에 서서 손이라도 잡고 황혼을 바라보는 그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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