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나들이

by 장군 posted Dec 2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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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나들이

                                           

 

11월 늦가을의 짙고 깊은 단풍이 나를 온순하게 보듬어준다.

시기적으로 혼자 여행하고 사색하며 독서하고 글쓰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늦가을은 자기생활을 돌아도 보고, 반성과 계획 고민과 기대가 겹치는 계절이기도 하다.

이제는 나도 계절나이로 인해 더 이상 내가 고민하거나 상처 받기가 싫다.

내 생각나이는 아직도 젊고 한여름의 무더위이다.

내년에는 보다 더 활력적인 삶의 맥을 찾아, 나이에 반비례하는 열정적인 또 다른 나를 찾을 것이다. 그러기위해서는 더 많이 공부하고 배워야 한다.

해남 땅끝 두륜산줄기인 위봉산의 암자 성도사를 찾았다.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바위산이 절경속 비경(秘境)이다. 성도사는 백제시대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대웅전은 거대한 바위와 동백나무숲 사이에 앞산의 여의주 바위가 숨겨놓은 천혜의 요새중에 요새 명당요새이다.

바위산과 오래된 동백나무숲의 정경(情景)은 평소 내가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니던가. 위봉산 정상부근의 커다란 바위 아래 터잡은 사찰 성도사는 그냥 그대로가 바로 처마끝 제비집이다. 그 제비집 앞뜰이 다도해이니, 상상보다도 더 운치있고 아름답다.

가까이서 떠다니는 듯한 남해바다의 다도해는, 내가 배를 타고 섬 사이를 항해하는 듯하다.

동백나무터널 바위에 앉아 남해 다도해와 위봉산 바위산의 넘치는 아름다운 절경의 생생함을 메모한다. 글을 쓰기 위한 움직이는 소재들을 스케치한다.

그사이 남해 바닷바람과 두륜산 산바람이 번갈아 나의 의지와 열정을 더 북돋아 준다. 그래서 두 바람 모두 계절에 비해 포근하고 시원하다.

산새들을 위한 식사인 듯 암자의 담장기와 끝에 놓인 빨간 감 몇 개가 마치 활짝 핀 동백꽃 같다.

요즘 수필을 공부한다는 욕심과 핑계로 얼마전부터 메모하는 습관과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 그리고 형상(形狀)에 대한 나만의 자의적인 해석과 판단을 의식적으로 해본다. 다행이다 생각보다 재미 있으니,

오늘도 무념(無念)에서 무언가를 생각해 내려하니 어지럽고 생각자체가 뒤틀린다.

노란단풍모자를 쓴 초등학교 저학년정도의 여자 어린아이가 엄마와 할머니의 손을 잡고 탑 앞에서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엄마에게 내가 공부를 하고 있다며 대답하는 듯 묻는다.

할머니는 아마도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시는 선생님인가 보다라고 하신다. 엄마는 아이에게 무엇이든 저렇게 열심히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며 너도 나중에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한다고 아이에게 일러준다. 아이는 다시 나를 본다. 순간 나는 얼른 모자를 고쳐 쓰면서 머리를 더 깊이 묻었다. 이참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처럼 멋있게 흉내라도 내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혹시나 저 아이가 내게 말이라도 걸어오면 어쩌지 하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조바심에 힐끗 어린아이의 눈치를 본다.

나는 곁눈질을 하면서 멋진 폼(form)으로 더 열심히 쓰는 척을 했다. 저 아이에게 좋은 추억으로 실망을 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나도 오늘 저 아이에게서 열심히 공부하는 선생님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다시보는 같은 풍경임에도 다르게 보이고,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나 혼자만이라도 참 신기하고 그럴듯하다.

아름다운 비경과 나만의 사색(思索)에 취하다보니 반나절이 반시간 같았다.

쉬엄쉬엄 산을 오를 때 보다 더 여유를 갖고, 느리고 느린 걸음으로 산에서 보물을 찾듯이 한 걸음 한 걸음 생각하는 걸음으로 하산한다. 너무도 조용해서 일까, 내가 밟는 낙엽소리에 나도 놀라고 낙엽도 놀란다.

오늘 어린아이와는 말 한마디도 하지는 않았지만, 무언의 약속을 한 것이다. 미래의 나는 공부하고 글 쓰는 청춘노인일거라고. 물론 시간이 그냥 만들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서산으로 지는 해에 밀린 남해바다 섬들이, 저녁맞이를 위해 돌아보고 돌아보면서 점점 더 내게서 멀리 떠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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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홍  010-9331-6261    rkh4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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