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차 창작콘테스트> 당신, 나의 복숭아 나무/ 다이빙

by 박자몽 posted Mar 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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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나의 복숭아 나무

 

내 어릴 적엔 당신이 깊게 박혀 빠지지 않는 뿌리처럼 느껴진 적이 있다. 메마른 땅 위에 뿌리를 내려 그 세월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었더랬다. 당신은 늘 그 자리에서 따스한 햇살을 쐬며 웃었더랬다. 때로는 바람을 동반한 비바람을 맨 얼굴로 맞았더랬다. 바람에 패여 무성해진 당신의 주름이 나날이 깊게 패일 때 당신을 온 몸으로 느낀 적이 있었다.

나는 해가 갈수록 짙게 당신의 뿌리의 단단함을 느꼈다. 무성히 뻗은 가지가 서로 뒤엉켜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 든건 아닌지, 어린 날에 수줍은 소녀로 시집와 살아간 세월 뒤로 내 어릴적에는 볼 수 없던 당신의 인자함과 고단함이 보인다. 당신은 작은 몸으로 여섯의 자식을 낳아 키웠다. 그 자식들은 당신의 뿌리를 먹고 자란 줄기가 되었다. 내 어느덧 서른이 되어 세상을 견디고 있는 요즘이면, 단단한 표정에 가려 울긋불긋 핏줄이 뻗은 당신의 연한 피부가 느껴진다. 당신도 나보다 작고 여린 소녀였을 것이다.

당신은 나의 복숭아나무와도 같았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단단하고 옹골차다. 당신은 자식과도 같은 달콤한 열매를 지키기 위해 늘 그 자리를 맴돌았다. 내 어릴 적 당신이 사는 시골에 가면 당신은 잘 영글은 큼지막한 복숭아 하나를 물에 씻어서 나에게 주었다. 복숭아를 크게 한입을 베어 물면 과즙에 흰 옷이 모두 물들었었다. 당신이 가꾼 복숭아 밭 과수원은 나에게 그 어느 곳보다도 재미있고 신기한 놀이터였다. 무더운 여름, 경운기에 싣고 가던 수많은 복숭아 포대들 속에 꽃가루인지 복숭아의 가루인지 모를 것들에 연신 재채기를 했었다. 덕분에 나는 철이 되면 비싼 값에 팔리는 복숭아를 원 없이 먹었더랬다. 당신 덕분이다.

당신은 벼농사와 과수원을 하며 육남매를 키웠더랬다. 내 살지 않았던 적에 당신은 갓 난 배기를 안고 젖을 먹이며 씨를 심었겠지. 그 아이의 칭얼거림에 나지막이 자장가를 읊조리며 복숭아를 솎아주고 봉지를 씌웠더랬지. 내새끼처럼 잘 영글도록. 당신이 마음이 복숭아나무 끝에 달려 대롱대롱 매달렸다. 어릴적 내가 보던 복숭아 나무는 마침내 당신과도 같았다. 며칠전 당신의 막내 자식이 늦은 장사를 갔다. 비록 당신은 없었지만 그간 당신이 했던 모습이 겹쳐 보여 다행히 많은 눈물은 훔치지 않았다.

당신의 등에 업혀 손가락을 빨던 아이들은 어느새 한 가정을 꾸려 다른 누군가의 복숭아나무가 되어가고 있었더랬지. 당신이 먼 길을 떠나고 난 뒤 이제야 자식들은 당신의 단단함을 알았다. 눈을 감으면 밀려오는 당신의 주름진 얼굴과 파마머리가 그려진다. 천천히 묻어나오는 잔잔단 당신 살결의 냄새와 오랜 시간 농사로 성치 않은 당신의 손가락. 한 손에 들어오던 당신의 작지만 단단한 어깨. 여전히 눈물 감으면 높다란 파도처럼 수없이 밀려온다.

나에겐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었더랬다. 무척 슬픈 마음을 안고 당신에게 전화를 하면 웃으며 말없이 들어주던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힘이됐었다. 유달리 고단한 하루의 끝을 안고 향했던 날, 당신이 내어준 밥과 된장찌개 하나면 그 마음이 달래지곤 했다. 당신의 온기만으로도 모든 것이 치유되던 날들이 가득했었다. 내가 당신보다 커지고, 당신은 서서히 작아질 무렵, 단단한 당신이 조금씩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때가 있었더랬다. 당신의 주름이 깊게 패고 허리가 굽어 당신이 조금씩 작아질 때 즈음 나는 마음이 아닌 눈으로 먼저 느꼈더랬다. 나는 당신과 함께 할 날이 영원하지 않음을 느꼈다. 나는 온 마음을 다해 더욱 많이 표현하고, 자주 찾아갔다. 어느 날 전화기가 울렸다. 그렇게 당신은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먼 길을 떠났다. 모두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당신과의 이별은 감당하기 버겁기만 했다. 내 당신에게 나의 커다란 마음을 더 깊이 전하고 싶었는데, ‘당신은 나의 단단한 복숭아나무라고 말이다.

당신이 일궈온 풍요로운 땅을 이제 내가 밟고 있다. 투박하지만 단단한 당신 손의 감촉이 더욱 애잔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느닷없이 찾아온 당신과의 이별은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을 뜨겁게 차오르게 한다. 그러나 당신을 슬픔 보다는 그리움으로 남기고 싶다. 사람이 삶을 끝내는 순간 자신이 태어났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비록 당신의 젊은 날은 본 적 없지만, 그릴 수는 있다. 수줍은 그 시절, 잘 영글은 복숭아 같은 모습과 같겠지. 그 모습 그대로 당신이 가장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기를.


다이빙

 

두려워하지 마. 내가 먼저 해볼게. 나를 보고 따라하면 돼.’

이것 봐. 엄청 재미있어. 너도 해봐. 할 수 있어. 뛰어내려!’

한 바위 위에서 떨고 있는 나를 향해 친구는 소리쳤다. 높은 바위 위에서 내려다본 물이 깊이 고여 있는 웅덩이는 공포 그 자체였다. 저 곳을 향해 맨몸으로 낙하하는 일이란 내겐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코에 물이 갑자기 들어가서 숨을 못 쉬게 되면 어쩌지?’ ‘저 물 속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잖아. 만약 거대한 바위라도 있으면 어쩌지?’ ‘내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으면 어쩌지?’ 수만 가지 생각에 좀처럼 다이빙을 할 수 없었다.

주변에서는 나를 향해 응원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나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먼저 뛰어 내린 친구는 물 안에 편안하게 몸을 띄우며 나를 향해 응원했다. 수많은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지르며 뛰기도 했고, 몸을 공중에서 돌며 낙하하기도 했다. 마치 더 높은 점수를 받으려는 듯이 묘기를 하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 순간이 아니면 영영 다이빙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순간의 공포가 영원한 공포로 남을 것만 같았다. 이런 생각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용기를 가져왔다.

하나

.

!

첨벙!’

나는 푸른 물속을 향해 뛰어들었다. 몸은 생각보다 깊이 빠져들지 않았고, 나는 반자동으로 숨을 내쉬며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다이빙 전에 했던 수만 가지 생각들이 깨져버리는 듯 했고, 발만 동동 구르던 내 모습이 머쓱해지기도 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다이빙에 대한 두려움을 깨버렸던 나의 첫 다이빙이었다. 차갑지만 시원한 물의 감촉은 여전히 생생하다.

이후 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면 다이빙을 전문으로 하는 곳에 다이빙을 즐기기도 했으며, 두려움을 덜어내고 조금 더 깊은 바다의 모습을 보기 위해 장비를 차고 다이빙을 즐기기도 했다. 여전히 물속은 두렵지만 막상 그 안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했다. 그렇게 나의 다이빙은 대담해 지고 더욱 깊은 곳을 향해 발을 뻗고 있었다. 이런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잠시 첫 다이빙의 순간으로 돌아간다. 만약 내가 그 순간의 두려움을 깨지 못했다면 지금의 경험과 추억도 없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나는 늘 그 순간을 회상하며 나에 대한 용기와 믿음으로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간다.

다이빙을 하기 전의 물속은 공포로 가득하다. 설령 맑은 물이라고 해도 그 깊이는 쉽사리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단 1초의 선택으로 새로운 경험을 하곤 한다. 여전히 수많은 여행객들은 유명한 다이빙 관광지를 찾아 그 속을 향해 돌진한다. 짐작할 수 없는 공간이 주는 공포를 새롭고 짜릿한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 시절 발만 동동 구르던 나 또한 그랬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온전히 겪음혹은 경험으로 그 순간을 완성하기 위해 다이빙을 했다. 나의 삶에 있어서 도전이 아닌 하나의 경험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이빙은 나의 경험이 되었다. 다이빙을 즐기는 사람도 두려움을 깨고 도전한 경험으로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두려움이 깨지는 순간만큼 짜릿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러한 갈래의 길은 때로는 공포와 두려움을 동반하여 찾아오기도 한다. 우리는 그 길에서 나를 세우고 보다 나은 길로 가기 위해 예측할 수 없는 길로의 모험을 하기도 한다. 마치 맨 몸으로 예측할 수 없는 곳에 몸을 던지는 다이빙과도 같다.

스무 살의 나는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사회 속으로 온 몸을 던졌다. 겪지 않았을 때는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것 투성이었다. 그러나 막상 다이빙을 한 후 눈을 뜨고 살피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밀려오는 파도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대기도 했다. 미처 하지 않고, 겪지 않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마주하는 고난이 쉽게 살아가는 것보다 때로는 더욱 달콤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의 다이빙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또 다른 두려움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내 생의 가장 첫 다이빙을 했던 순간처럼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북돋우며 말이다.



이름/ 박지해

이메일/ qkrwlgo0711@naver.com

전화번호/ 010 9496 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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