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차 한국인 창작 콘테스트 수필 공모 ]제목: 동상이몽 [同床異夢] 1편

by 보노우직 posted Apr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동상이몽 [同床異夢]


참여하는 사람은 주인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손님이다. - 도산 안창호- 

난 이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투표와 참정권에 대한 가장 간단하고 명확한 정의인 것 같다. 특히 도산 안창호 선생이 해서 그런지 더욱 정감 가는 명언이다. 선거에 관한 내 이중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선거의 필요성과 참정권의 역사에 대해 끊임없이 배웠다. 딱히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주로 역사와 관련된 과목에서 많은 이야기를 학습할 수 있었고 그것들은 무려 시험 범위에 포함됐으므로 열심히 외우거나 이해해야 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시험에 출제된 여성 참정권의 역사에 관한 문제를 맞혔을 때 기뻐했던 기억이 있을 뿐 입으로 외웠던 선거에 대한 중요성과 참정권의 역사는 와 닿지 않았다. 한국의 역사를 배울 때도 난 참정권이 보장된 시대에 살아가고 있어 그들이 견뎠던 무게를 숫자로만 이해하고 체감했다. 하지만 그들이 줬던 메시지는 단 하나로 연결되었다. 국민들이 선거와 정치에 관심을 가질수록 보다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내 간단한 깨달음 같은 것이었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합리적이고 공정하다는 의미는 인종 나이 성별 학력을 떠나 우리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사회를 의미한다.

 " 내 머릿 속 깨닫음들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내 깨달음은 머리만 가득했다. 학창시절에 난 바지통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학생이었고 반의 중간 자리가 잘 어울렸던 학생이었던 것 같다. 선거할 시기가 다가오면 후보자로 나온 애들은 나를 모두 옛 친구처럼 귀하게 대해줬고 투표가 끝나면 처음 본 친구가 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항상 반복되는 시나리오에도 매년 속았다. 부끄럽지만 나를 더 옛 친구처럼 대하는 친구들에게 투표했었고 그들이 생기부에 이력 같은 것을 채우러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으면 허탈감과 무기력함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역에 따라 연령대에 따라 선호하는 정당이 다르 듯 무언가 그들이 내 이야기를 더 귀 기울여 주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녀공학 때는 무조건 같은 성별에 한 표를 선사했고 다른 친구들도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일부 어른들이 특정 정당만을 강요하는 연설 혹은 훈수를 들을 때면 유연한 사고를 하지 못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지만 누구보다 내가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고 비난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후보자의 공약과 생각을 종합해 합리적이고 유연한 지도자를 선출해야 하는 것은 모든 이가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 매년 속았던 내 투표"
매년 속는 투표가 싫었지만 당선된 친구에게 직접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고 무효 표를 던지자니 지금까지 배웠던 참정권의 역사가 내 손을 가로막았다.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실제 공약이 얼마나 이행됐는지를 분석하고 비판하지만 학창시절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학창시절에 했던 선거는 조금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학생이 당선된 친구들의 고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당연지사라 생각했다. 학창시절에 선거에 대해 줄곧 문제점을 생각했던 나는 너무나 모순적이게도 직책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반장이나 부반장을 하는 친구들은 바지통이 넓거나 좁거나 둘 중 하나였고. 나 같이 바지통이 어중간한 친구들은 드물었던 것 같다. 무언가 학급 내에서 반장을 맡으며 내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었고 평범한 학생들을 대표해 반장을 한다는 영웅심리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것이 내 소박하지만 원대한 로망이었다. 그렇게 남자 중학교에서의 2년이 지나갔고 최고 학년이 되었다. 
 
"내 가득한 질문에 답을 할 시간이 찾아오다"


 3학년이 되어 본 교실에는 제법 아는 친구들이 많았고 내 생각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온 것 같았다.  또 그 시기에 우연히 광해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광해 안 이병헌 배우의 연기는 내가 가진 지도자가 가져야 할 역량과 가치관에 불을 질렀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반장 선거에 줄곧 다른 친구들 이름을 불렀던 나는 후보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태어나서 그렇게 떨렸던 적이 없었다. 평소에 내 모습과 성향을 아는 친구들은 선뜻 손을 들어 후보를 등록한 것에   놀란 눈치였고 나를 포함해 후보는 총 4명이었다. 나머지 3명의 친구들은 반장 경험과 체육부장 등 다수의 경험과 노하우가 있어 보였고 그것이 그들을 반짝반짝 보이게 했다. 투표 전날 친구들에게 메신저로 뽑아 달라 부탁할까 했지만 뭔가 내키지 않았다. 냉정하게 4명 중 가장 당선될 확률이 낮아 보였고 내게 남은 유일한 기회는 짧은 연설시간 뿐이었다. 연설문을 꾹꾹 눌러쓰고 어색해 보이지 않도록 대본을 모두 외웠다. 강조해야 할 부분에 악센트, 그리고 시선처리까지 어른 흉내를 부쩍 내며 연습했다. 연설문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내 평범함은 물과 같아서 평소엔 조그만 그릇에 담겨 숨어 있다가 반장으로 당선된다면 비범함이라는 그릇에 담겨 모양이 변한다는" 내용의 연설문이었다. 특별하진 않지만 진심을 담았고 세심하기보단 투박했다. 연습한대로 말끔히 연설을 마치고 친구들의 수근거림과 함께 투표가 시작됐다. 나는 투표용지에 그 어떤 때보다 단호하게 내 이름 석 자를 당당히 적어서 제출했고 투표 결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기 힘들만큼 긴장했다. 후보 모두의 득표수는 비슷했으나 내가 운이 좋게 근소한 우위를 점했다. 후보자들과 모두 친하지 않던 친구들이 내 연설에 응답해준 결과였고 의외의 인물이 당선돼서 그런지 나와 친구들 모두 놀란 표정이었다.  그렇게 내 로망이었던 반장생활이 시작됐다.

" 왕관에 관한 환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학급반장은 그리 많은 직무가 있지는 않았다. 가끔 친구들을 대표해 칭찬 혹은 야단을 맞고 가끔 회의에 참석하는 정도의 직무였다. 많은 활동을 하지 않고 반장이라는 직책을 가지니 감투가 더욱 무겁게 느껴졌고 부담스러웠다. 나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친구들과 같은 향기를 풍기기는 싫어 할 일을 직접 만들었다. 아이들의 의견, 불만사항 등을 무기명으로 듣는 투표를 주기적으로 진행해 이 결과를 바탕으로 선생님과의 활발한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또 가장 먼저 등교해 친구들의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의자를 내려주었고 반 친구들이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이것이 내가 꿈꾸던 반장의 모습이었다. 남들보다 뛰어나진 않지만 모두의 의견을 경청하고 한 스푼 정도의 성실함과 따뜻함을 더 가진 사람 말이다. 물론 내가 그런 인물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반장이라는 접시가 나를 성실함과 따뜻함이라는 그릇에 담는 것 같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난 2학기에도 친구들의 은근한 지지를 받으며 연임하였다. 물론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질문과 관심을 표현해 그에 대해 반감을 품는 친구들도 분명히 있었다. 리더의 자리는 외롭고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배운 뜻 깊은 경험이었다. 그렇게 난 중학교를 졸업하고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학업에 열중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너무나 분주했기에 반장 혹은 다른 선거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할 시간이 없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했던 다짐이 있었다. 2학년 무렵 광화문에서 타오르는 촛불 혁명을 보며 우리 국민의 투지와 선거에 중요성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유혈사태가 없었던 민주적 절차에 대해 감동했었다. 정치 성향을 표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투표권을 갖기 위해 우리 국민들의 했던 투쟁과 희생을 숫자로만 배우고 이해했던 나는 그들이 걸어갔던 발자취와 무게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 투표를 할 것을 스스로 맹세했다.
 
" 온갖 호기심이 가득했던 20살의 나"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나는 다양한 버킷리스트가 존재했지만 단연 1순위는 선거였다. 어릴 때 국회의원 선거나 대통령 선거가 열리는 날이면 부모님 꽁무니를 쫓아가 사진을 함께 찍었고 투표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뤄지기에 내가 커가는 모습을 기록하는 좋은 방법이었다. 이제는 같은 유권자로 부모님과 사진을 남기 고픈 소망이 있기에 버킷리스트 상위권에 자리잡았다. 또한 흡연과 음주 등의 유흥 문화를 즐기지 않아 성년이라는 단어가 크게 와 닿지 않았고 직접 국민의 일환으로서 투표한다면 내 나이의 무게를 체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20살 때는 선거가 열리지 않았고 올해 4월 15일에 열리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내 생각을 정리하자면 선거라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채색하는 화가를 고르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그들이 펼치는 공약과 시행했던 정책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화가를 결정해야 우리 대한민국이 더욱 조화롭고 멋지게 색칠 되리라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몸소 느낀 선거의 중요성이며 특별하지 않는 깨닫음 같은 거였다.



                                                                   
                                                                  성명: 정우진  이메일: kcgf3566@naver.com 연락처: 010-6894-5015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