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부문- <첫 눈> 4편

by 라파엘라 posted May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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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눈


 내 인생에서 처음 만난 눈은 언제였을까? 아이를 키우다보면 문득 나의 처음은 어땠을까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우리는 처음의 기억들을 자주 잃어버린다. 태어나 처음 뒤집기를 한 날, 첫 걸음마를 한 날, 처음 엄마하고 말한 날. 어떤 위대한 인간이라도 그런 것들을 기억할 순 없으리라. 자신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겠지. 그 이름은 바로 엄마.’

엄마! 나는 언제 처음 눈을 보았어?’라고 먼 훗날 소은이가 물어본다면 나는 이 글을 더듬더듬 찾아 보여주고 싶다. 우리의 기억은 옅어지지만 글은 영원히 남아있으니, 할 수만 있다면 소은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들을 기록하여 활자로 새기고 싶다. 우리의 행복했던 기억도, 슬펐던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 퇴색되기 마련이니까. 소중한 순간을 사진처럼 찍어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면 욕심인걸까?

다음 주면 두 돌을 앞둔 소은이가 오늘 처음으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만났다. 2018222, 나의 천사 소은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 처음 세상에 쌓인 함박 눈. 조리원을 나와 집에 돌아왔을 땐 계절은 이미 봄이 되어 봄바람이 살랑 살랑 불고 있었고 올 해 겨울은 유난히 따뜻하여 눈 구경을 하기 어려웠다. 내가 사는 동네에 딱 한 번의 눈이 왔는데 밤새 살짝 내리다 이내 흩어져 버려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펑펑 내리는 눈이 유독 참 반가웠다.

 “소은아, 우리 눈 보러 갈까?”

 강아지처럼 깡충깡충 뛰며 좋아하는 아이의 모습을 상상했건만, 아이는 처음 보는 눈이 낯선지 주저주저하다 발걸음을 옮긴다.

 “소은아, 우리 눈 밟아볼까?”

 “뽀드득, 뽀드득. 예쁜 소리가 나!”

 한 발, 한 발 내딛는 조심스런 발걸음. 그렇게 하얀 눈밭에 소은이의 발자국이 남는다. 작고 앙증맞은 발자국. 그렇게 소은이는 한 발 한 발 세상을 향해 나아가겠지. 하얀 종이에 검은색 글자처럼 뚜벅 뚜벅 걸어갈 것이다.

 “소은아, 우리 눈 만져볼까?”

 소은이가 조심스레 손을 내민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단풍잎 같은 작은 손으로 솜사탕같이 흰 눈을 만져본다. 처음 만져보는 눈. 차가운 감촉. 찡그린 얼굴. 미간을 찌푸리더니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그리고 바로 나를 향해 내미는 두 팔.

 “안아달라고?”

 고개를 끄덕끄덕.

 “그래, 우리 소은이가 눈이 차가웠구나!”

 나는 딸아이를 번쩍 안아 내 품에 안았다. 찬 바람에 얼음장같이 얼어붙은 내 손도 소은을 안으니 햇살처럼 따뜻해졌다.

그렇다. 아이는 이렇게 처음 눈을 밟는 심정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걷다가 때로는 내게 안겨 울고 때로는 뒤도 돌아보고, 언젠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릴 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은이가 이 세상 모든 것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고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 오늘 소은이가 만난 새하얀 첫 눈처럼. 첫 만남이 조금은 낯설고 두려울지라도 계속 걸어 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길에 언제나처럼 엄마가 두 팔 벌려 서 있다는 믿음을 주고 싶다.



곰돌이 단유법을 아십니까?


 곰돌이 단유법은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꽤 유명한 단유법이다. 배고픈 곰돌이에게 엄마 쭈쭈를 주어서 이제 더 이상 쭈쭈가 안 나온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이다. 나는 집에 있는 곰돌이 인형을 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정했다. A4용지에 귀여운 곰돌이 얼굴을 그리고 갈색 색연필로 열심히 색칠도 하니 그럴듯한 곰돌이가 완성되었다. 곰돌이 밑에는 일곱 개의 네모 칸을 정성스레 그려넣었다. 그렇게 일주일동안 이제 배고픈 곰돌이에게 엄마 쭈쭈를 줄 거야. 소은이는 이제 우유를 먹을 수 있으니 배고픈 곰돌이에게 엄마 쭈쭈 주자!’라고 말하며 네모 칸에 엑스표를 해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일주일이 흘렀다.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모유 없이 잠도 못자는 소위 엄마 껌딱지아기인 소은이에게 이게 통하다니! 믿지 않았던 동화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었고 길고도 힘들었던 모유수유의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일주일이 지나 곰돌이에게 쭈쭈를 주는 날이 되자 소은이는 쿨하게 그러자고 했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오히려 엄마와 아빠였다. 단유하고 3일이 지난 저녁. 나와 남편은 마주보고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남편도 나도, 같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다시는 젖 먹는 예쁜 천사의 얼굴을 볼 수 없다니... 너무 슬프고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살면서 다시 못 올 그 순간이 얼마나 그리울까. 단유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게 되는 소중한 것과의 이별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에게도 이루 말할 수 없는 허전함을 주었다. 아이가 한 단계 성장해나가는 것은 그만큼 부모에게서 한 발 더 떨어진다는 걸 의미하는 것 같아 대견하면서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13개월 15일간의 여정. 돌이켜보면 모유수유는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인다는 건(그것도 나처럼 젖양이 적은 사람에게는) 엄마가 되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스런 일이었다. 출산 후 갑자기 오른 혈압으로 혈압약을 복용하면서 초유를 마음껏 먹이지 못했고 미안한 마음에 더 모유수유를 오래 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모유는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았고, 설상가상 100일 무렵 소은이는 분유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기에게는 모유나 분유가 생명줄인데 모유는 부족하고 분유는 먹지 않고... 그야말로 어찌해야할 바를 몰랐다. 예민해진 아기는 앙칼지게 울어대고 밤낮으로 잠도 푹 자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독하게 마음을 먹고 모유를 끊으라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건 힘든 만큼 행복과 보람도 컸기 때문이다. 모유수유는 엄마와 아이가 교감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었고, 엄마로서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가 내 품에 안겨 모유를 먹는 모습을 보면 육아로 힘들었던 몸과 마음이 다 치유되는 듯했다. 젖을 먹다 쌔근쌔근 잠든 모습을 보면 그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마치 작은 새 한 마리가 내 품에 파고 들어 노래를 부르는 느낌이랄까. 아기는 솜털처럼 보드라운 뺨을 가슴에 부비고 앵두같이 도톰한 입술을 가슴에 파묻었다. 소은이의 심장이 파닥파닥 힘차게 뛰는 것을 느끼며 나도 살아있음을 느꼈고, 새근새근 내뱉는 따뜻한 숨결은 나를 새롭게 숨 쉬게 했다. 생글생글 웃는 까만 눈동자를 보면 어느새 내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지고, 바둥바둥 날개짓 하는 작은 손은 내게 어서 이리 오라 손짓하는 듯했다. 그 손짓을 어떻게 거부할 수 있겠는가!

 흔히 모유수유는 엄마가 아기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양날의 검처럼 모유수유로 인해 육아가 몇 배는 더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단유 후 소은이는 거짓말처럼 잘 자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침까지 통잠을 자는 기적을 보여주었다. 밤새 평균 10번씩은 깨던 아이가 깨지 않고 자다니! 우리 부부에게 있어 육아는 단유 전과 단유 후로 나누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 며칠 뒤면 두 돌이 되는 소은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 쭈쭈를 본 척도 하지 않는다. 모유를 먹고 자랐다는 걸 아예 잊은 듯이 관심도 없는 딸아이를 보면 새삼 서운하기도 하지만 어쩌랴. 아이는 지금도 한 발자국씩 성장하고 있는 것을

 


한 생명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 3시에 유모차를 밀고 길을 나섰다. 집에서는 누워 자지 않는 소은이 덕분에 늘 같은 시각에 외출을 하는 우리. 다음 주면 두 돌을 앞두고 있는데 녀석, 참 대단하기도 하지. 소은이는 언제쯤 편하게 누워 잘 수 있을까? 남들은 신생아 때나 적어도 돌 무렵이면 끝나는 고민을 나는 여전히 하고 있으니 남들이 보면 이해를 못하겠지만 이게 우리의 현실인걸 어쩌나.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나는 세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 경험해보지 않은 것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 것. 둘째, 자식은 결코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셋째, 이상과 현실은 정말 다르다!!

 한 생명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모든 아이들의 얼굴이 다르듯 키우는 과정도 다르다. 아이가 육아 서적에 나오는 것처럼 모범 답안처럼 자란다면 얼마나 좋겠나. 소은이가 뱃속에 있을 때 열심히 읽었던 육아 서적들은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 현실과는 너무 달랐다. 누구에게나 자식을 키우며 힘들고 어려운 점은 있겠지만 우리 부부에게 있어 가장 힘들었던 건 바로 이었다. 잠에 있어서 소은이가 정말 특별한 아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소은이는 갖난 아기부터 소위 말하는 등 센서가 있었다. 등이 바닥에 닿으면 울어재끼기 시작해서 바닥에 내려놓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등 센서24시간 꺼지지 않았고 심지어 잠을 잘 때도 계속 되었다. 13개월까지 엄마 젖을 먹으며 잠이 들었던 딸아이는 엄마의 젖꼭지가 입에서 떨어지면 그걸 귀신같이 알고 울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이 넘도록 소은이를 부둥켜안고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있기 일쑤였다. 그렇게라도 잠이 들어 아침까지 잔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은이는 13개월이 되도록 통잠을 자지 않았다. 한 번 잠들면 아침까지 보통 10번은 깨서 울었다. 그럴 때마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소은이를 안고, 업어 재웠다. 13개월이 넘도록 밤낮으로 소은이를 재우기 위해 안거나 업거나 아니면 유모차나 카시트를 태워야했다. 그러면서 남편과 나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었다. 예민했던 딸 아이는 청소기나 드라이기 소리 없이는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밤마다 청소기를 켜두거나, 소은이가 깰 때마다 드라이기를 틀며 소음을 견뎌야했다. 그것뿐이랴? 포대기부터 아기띠, 힙시트까지 남들은 2~3개면 충분한 육아 장비들이 우리집에는 10개가 넘었다. 수면 교육으로 유명한 육아 서적들도 안 읽어본 게 없었고, 전문가에게 수면 상담까지 받아보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소은이를 재우기 위해 그저 새벽마다 아파트 단지를 유모차로 빙빙 돌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차를 몰고 나가는 수밖에는.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힘든 시간이 집을 옮기고서야 끝이 났다. 밤마다 나갈 때까지 악을 쓰며 울던 소은이가 이사를 하고 밤에 누워 자기 시작한 것이다. 20개월 만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잠자리가 바뀌자 소은이는 거짓말처럼 울지 않았다. 나가자고 악을 쓰지도 않았다. 참으로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었다. 우리의 상황을 잘 알던 지인들은 우스갯소리로 집 터가 안 좋았던 게 아니냐고 할 정도였으니. 물론 소은이가 잠드는 데까지는 2시간, 많게는 3시간도 필요하지만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는 정말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직도 소은이는 낮에는 밖에 나가야 잠을 잔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눕혀서 재워봐. 울다 지쳐 잠든다니까.” 누가 안 해봤을까봐? 수면교육을 한답시고 밤새도록 아이를 울린 적도 있었다. 너무 울어서 목이 쉬고 열이 나서 다음날 아침 소아과에 달려간 적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이런 것들이 부질없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육아에는 정답이 없고, 아이를 키웠다고 해서 그것이 다 같은 경험이 아니라는 것. 아이는 결코 부모 맘대로 되지 않을뿐더러 육아의 현실은 육아 서적에 나오는 이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의 사전에는 둘째가 없지만, 혹시나 둘째가 나온다 해도 지금과 똑같지 않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다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인정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해낼 때까지




가족의 재탄생



구부(舅婦)’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자주 사용하지 않아 낯설게 느껴지지만 구부란 바로 시아버지와 며느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나에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자상한 시아버지가 있다. 오늘은 각별한 우리 구부 사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얼마 전 나는 딸아이를 출산 후 임신중독이 와서 혈압이 높이 올라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극심한 두통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혈압약 복용으로 인해 모유수유를 할 수 없어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거기에 임신성 소양증까지 오면서 예정된 날짜에 퇴원을 하지 못했고 조리원에서도 예정보다 더 오래 머물며 몸을 추슬러야 했다. 내 몸은 회복이 너무 느렸고 자연히 최소한의 시간만 아기와 함께 있었다. 아기는 정말 예뻤지만, 내 몸이 아프니 아기를 잘 안아주지 못했다. 그러자 그만큼 미안함이 커지고 두려움이 쌓여갔다. ‘집에 가서 과연 내가 아기를 잘 돌볼 수 있을까? 혈압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하는 막막함이 커질 무렵 시아버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아무리 아기가 예쁘고 사랑스러워도 내 몸이 아프면 아기에게 온 마음을 다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한 거라며, 내 몸 회복이 먼저라고……. 그 말씀이 얼마나 마음에 위안을 주었는지 모른다. 당시 아버님은 매일 나의 안부를 물어보시고, 당신 딸처럼 나를 걱정해주셨다. 아버님의 위로와 응원 덕분에 나는 조금씩 좋아졌다.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그 날은 모처럼 아버님께서 먼저 내게 전화를 하신 날이었다. 아버님은 내가 혈압이 안정되고 있어 이제 한 시름 놓았다며 오늘은 기분이 좋아 오랜만에 모임에 참석하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 하셨다. 아버님께서는 집에 다 왔다고 하시며 통화 말미에 사랑한다!’라는 말을 해주셨고, ‘저도요!’하고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마침 어머님 생신이라 집으로 전화를 드렸다. 생신 축하 메시지를 스케치북에 적어 딸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어 보냈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슬며시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전화를 드리니 한참 만에 어머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그런데 어쩐지 어머님의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어제 밤 교통사고가 나서 지금 병원에 와 있다…….”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느꼈다. 어제 밤, 집 앞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하셨다고 했다. 그 시간 그 장소라면 나와 통화를 마치고 난 직후가 아닌가! 아버님께서 내게 사랑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다. 병원에서 딸아이를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시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마구 쏟아졌다. ‘아직 소은이를 한 번 안아보지도 못하셨는데…….’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남편에게 넘겼다. 아버님은 결국 전치 8주의 진단을 받으셨고, 한 달 넘게 병원에 입원해 계시다가 얼마 전 퇴원을 하셨다. 다행히 수술도 잘 끝났고 지금은 병원을 오가시며 물리치료를 받고 계신다. 아버님께서 병원에 계시는 동안 나는 아버님과 SNS계정을 만들어 그곳에 육아일기를 올렸다. 아버님은 갓 태어난 손녀딸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시며 병원에서의 적적함을 달래시곤 했다. 내가 사진과 함께 아버님께 드리고 싶은 글을 적어 올리면 아버님께서는 정성어린 댓글을 달아주셨다. 나는 그걸 보며 때론 힘을 얻기도 하고, 때론 웃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도 아버님도 바깥을 자유롭게 나가지 못하는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는 SNS로 통하는 구부사이가 된 것이다. 가족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혈연·인연·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라고 나와 있다. 딸아이가 나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면 아버님은 나와 인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다. 나는 혈연 못지않게 인연이 맺어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아버님의 사고를 겪으며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20182, 딸 아이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였고, 열흘 후 아버님의 사고로 인해 내가 얼마나 아버님을 사랑하는지 다시금 알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가족의 재탄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오늘도 아버님과 딸아이가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우리 가족 모두의 건강을 빌어본다



코코 나무 한 그루


 “엄마! ~~! ~~박줘!” 

 세 살 딸아이가 그림책에 나오는 수박을 보고,수박을 사달라고 조르기 시작했다.마침 집 앞 동네 마트에서 벌써 수박이 나왔다고 할인 문자를 보내온 참이라 당장 전화를 걸어 수박 한 통을 주문했다.

 “딩동!”

 30분도 지나지 않아 현관 벨이 울리고 딸아이가 그토록 원하던 수박이 도착했다.올 해 들어 처음 먹는 수박. 5월에도 수박이 나오는구나.수박을 보니 벌써 여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커다란 수박을 반으로 자르고,가운데 부분만 딸아이를 위해 따로 잘라내어 통에 담았다.빨간 속살에 검은 씨가 콕콕.달달한 수박 국물이 쟁반 위로 뚝뚝 떨어졌다.껍질은 남겨두고 속살만 칼로 요리 조리 잘라내다 보니 어느새 동그란 수박 모자가 만들어졌다. ‘,이거 소은이 보여주면 좋아하겠다! 끝까지 파 볼까?’

숟가락을 들고 수박 속살을 박-- 긁었다.파고 또 파고,그렇게 한참을 파야 겨우 하얀 속살이 얼굴을 내밀까말까.쉽지 않네.한숨을 푹 쉬는데 갑자기 눈 앞에 코코 얼굴이 아른거렸다.

 코코는 수박 먹기의 달인,아니 달견이었다.얼마나 수박을 잘 먹는지 수박 한 조각을 잘라주면 수박의 하얀 속살까지 깨끗하게 먹어치우고 초록색 껍질만 얇게 남아 있곤 했다.코코에게 수박 먹기는 식은 죽 먹기였는데.녀석,올해 그 좋아하는 수박 한번 못 먹고 떠나버렸네.갑자기 수박 위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사랑하는 우리 집 막내딸, 13살 강아지 코코는 45일 식목일에 하늘나라의 별이 되었다.코코가 떠나기 전 날,코코는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물 한 모금조차도 넘기지 못하는 모습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기만 했더랬다.왜 그 때 수박 먹일 생각을 못했을까? 전화 한 통이면 30분이면 구할 수 있는 수박을…….아니지.그 때는 수박을 구하려고 해도 못 구했을 거라며 핑계 아닌 핑계를 대본다.이럴 줄 알았다면 작년 여름,딸아이에게 그랬던 것처럼 수박의 가운데 맛있는 부분만 똑 떼어 코코에게 실컷 주었을 것을.맛있는 부분은 우리가 쏙 빼먹고 코코에게는 껍질 부분만 주었던 것이 못내 미안하고 가슴 아팠다.그때였다.슬픔이 봇물처럼 터져 내 가슴에 밀려왔다.코코와 함께한 행복한 순간들을 애써 떠올려보려 했지만 더 많이 안아주지 못한 것,더 많이 산책시켜주지 못한 것,함께 여행 한번 가주지 못한 것들이 마음 한 켠에 남아 나를 슬프게 했다.

 생각해보면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다. 지나고 나면 후회스럽다.옆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고,지나고 나면 못해준 것들이 떠오른다.이 쉬우면서도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매번 잊어버린다. 그래서 계속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사는 게 아닐까.코코를 떠나보내며 자식에게는 더 좋은 엄마,남편에게는 더 좋은 아내,부모님께는 더 좋은 딸이 되겠노라 다짐했지만 돌이켜보면 하루 하루 육아에 버거워 이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코코가 가르쳐 주고 간 건 이게 아닌데…….

 코코는 착하고 상냥한 강아지였다.얼마나 순했으면 간종양으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으르렁 한 번을 한 적이 없었다.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심했을 거라던 수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에게 아픈 걸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그저 힘이 좀 없어보였을 뿐.코코는 알았던 것이다. 자기가 힘들어하면 곁에 있는 가족이 슬퍼할 거란 것을.그래서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도 씩씩하고 담담하게 우리 옆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처음 코코가 우리집에 왔던 날이 떠오른다.동그랗고 까만 눈,손바닥안에 쏘옥 들어갈 만큼 작은 몸.

 “!”하고 외치면 앞 발을 내밀어 손을 잡아주고,“!”하고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면 발라당 몸을 뒤집어 배를 보여주던 애교 많은 코코.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낯선 사람도 잘 따라가고,누구에게도 사납게 짖어본 적이 없었다.산책을 나가면 다른 강아지가 무서워 우리 뒤로 숨고,안아달라고 응석을 부리던 겁 많고 여린 아이.고구마를 먹으면 반짝 반짝 두 눈이 빛나며 입꼬리가 빙그레 올라가 웃는 얼굴이 되곤했다.그 모습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는지.가끔 강아지가 맞을까 싶을 정도로 인내심이 많아 기다려!”하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먹지 않고 기다리던 영특한 강아지였다.그렇게 코코는 엄마,아빠의 귀여운 막내딸이 되어 우리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언니와 내가 결혼을 하고 각각 한 명의 자녀를 낳을 때까지.코코는 그 모든 걸 지켜봐 주었다.그리고 이제는 하늘나라에 가서 영원히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반려견이 세상을 떠나면 하늘나라에 먼저 가서 주인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다.언젠가 내가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에 가면 코코가 나와 나를 반겨주겠지? 그때까지 코코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은 생명이 있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그것이 강아지든,사람이든.모든 삶은 소중하고 귀하고 아름답다.그러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아야하고,한번 맺은 인연은 후회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한다.

 코코가 떠나던 날,나는 딸아이와 마주앉아 꽃잎으로 된 코코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예쁜 꽃잎이 떨어지는 것이 아쉬워 친정엄마가 말려 두신 것이었다.한 장 한 장 곱게 말려진 꽃잎을 종이에 붙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사람에 비하면 꽃의 생명은 너무나 짧지만 꽃이 지닌 아름다움은 영원하듯 코코도 비록 이 세상을 떠났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영원히 살아있을 거라고.그렇게 우리 마음 속에 코코 나무로 다시 태어난 코코는 지금 우리 집 액자 속에서 오늘도 나를 보며 빙그레 미소 짓고 있다


강진경

sorin1984@naver.com

010-8029-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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