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 꽃아>
‘봄이야, 피어날 때야.’
여느 꽃처럼 나뭇가지에서 자연스레 나오지 않았다. 나무 기둥의 두껍고 거친 껍질을 뚫고 나왔다. 활짝 핀 나뭇가지 위의 꽃들 사이에서 기둥 사이의 붉게 진 몽우리를 보면서 말해주고 싶었다.
‘힘내, 지금이야. 하지만 조금 늦어도 괜찮아. 져버린 꽃들 사이에서 네가 더 빛날 테니까.’
마라톤 경기를 보다보면 눈에 띄는 선수들이 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등수 안에 들어오는 선수들과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선수들로 나눌 수 있겠다. 물론 순위권 안에 들어 수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명예를 얻는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더 뭉클하고 마음이 쓰이는 것은 꼴등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인 것 같다. 많은 선수들이 통과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 않는 결승선에서는 하나 둘 관중들이 떠나버린다. 몇몇 관중들만이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다가 마침내, 마지막으로 들어오는 선수를 보며 응원하고 격려한다. 결승선도 마지막 선수가 통과하기까지는 그 자리에 존재한다.
산책을 하다 본 벚꽃 몽우리들이 그랬다. 벚나무의 가지마다 활짝 핀 꽃들을 보며 예뻤고, 감탄했고, 사진에 남기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이상하게도 자연스레 나뭇가지가 아니라, 거친 기둥 껍질 사이를 비집고 뻗어있는 작은 몽우리들이 보였다. 나뭇가지 보다 껍질 사이를 뚫고 나온 너희들이 분명 더 힘겨웠으리라. 껍질에 막혀있느라, 나오기 위해 애쓰느라 이렇게 늦었으리라. 조금 더 서두른다면 이 몽우리들도 아름다운 벚꽃 무리에 합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져버린 꽃들 사이에 활짝 핀 늦은 꽃은 훨씬 더 빛날 것이다.
‘힘내자. 봄이야. 네가 필 때까지 봄은 있을거야. 그리고 나도.’
<벚꽃의 변천사>
‘피어났을 때도 꽃이고
지고 떠난 자리에도 꽃이고
떨어져 안착한 풀에서도 꽃이네‘
우리는 모두 씨앗으로 또는 모종으로 시작이 되어 몽우리를 맺는다. 각각의 시간은 다르겠지만 몽우리는 피어나 꽃이 되기 마련이다.
약 3주정도 되는 벚꽃의 시기가 지나가면서 점점 벚나무는 꽃잎을 잃어갔다. 꽃잎은 바닥이고 풀 위고 어디에든 떨어졌다. 꽃 받침만 남은 벚나무는 초록 잎으로 덮여가고 있었다. 한 꽃잎이 바람과 함께 떨어지는 것을 봤는데, 빙글빙글 회전하며 햇빛에 비치니 마치 팔랑거리는 나비 같았다. ‘저거 나비야?’라고 엄마에게 물으며 한참을 봤더랬다. 그 꽃잎은 떨어져 철쭉더미 위에 안착했다. 아직 덜 핀 철쭉더미 위의 벚꽃잎을 보니 ‘꽃’같았다. 초록 이파리 위에 얹혀있는 하얗고 분홍색의 꽃잎들이 철쭉이 피기 전 철쭉더미들을 빛내주고 있었다. 반대로, 꽃잎을 잃어버린 벚 나무를 보았는데 ‘꽃’같았다. 꽃잎이 떨어진 벚꽃받침은 더 진한 붉은 빛의 별모양 꽃으로 남아있었다.
‘어머, 벚꽃아 너는 피었을 때도 꽃이더니, 떠나간 자리도 꽃이고, 떨어져 안착한 곳에서도 꽃이구나’
참 예쁘구나 생각했다.
봄이 시작되며 몽글몽글 생겨났던 몽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 기본 생활을 배우고 나에 대해 공부하던 그 모든 시간들을 지나서 꽃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인생의 꽃이라고 불리우는 20대를 다 보내면서,
‘이제는 꽃이 지는 구나, 아무것도 못해보고..’라는 생각이 있었다.
‘아직도 나를 다 알지 못하고, 아직도 내 미래를 정하지 못했는데, 아직도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벌써 내 인생의 꽃이 지는구나’ 생각했다.
이 봄, 이제는 나무에서 찾기 어려워진 벚꽃을 보며 위로의 마음을 얻는다. 꽃이 진다고 끝이 아니다. 벚꽃처럼 사람도 한번 피어 끝이 아니라고, 꽃이 진 후에도 꽃을 피울 수 있다고 생각이 되어졌다. 아니, 꽃이 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 피어난다고 생각해야겠다. 나라는 꽃은 떠나간 자리에서도 꽃이고 떨어진 자리에도 꽃이라고,
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꽃이라고.
성명: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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