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댁

by 너털웃음 posted Jun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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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댁은 늦은 아침밥을 한술 뜨고 호미와 낫을 챙겨들고 밭으로 나갔다. 따가운 햇빛이 눈을 시리게 했다. 긴 차양이 달린 모자를 눌러썼다. 오늘도 옥전에는 할아버지가 되어버린 작은 시동생이 이미 나와 있었다. 인기척을 하였으나 못 들은 체 처다 보지도 않았다. 오장육에서 울화통이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꾸엮꾸역 참았다.

서울댁은 여든여섯 허리 굽은 할머니가 되었다. 스무살에 보릿고개 가난에 기울어진 가세에 충청도 서산으로 시집을 왔다. 5남매 가운데 맏딸이었는데 입이라도 하나 들자고 등떠밀려 시집을 오게 되었는데 경찰이었던 아버지가 사직하고 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서울댁은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학식이 높았다.
시가는 시아버지 시어머니와 손아래 올케와 시동생 둘이 있었다.결혼하고 분가 해 나갈 때까지 뒤치닥거리를 다했다.시집와서 슬하에 육남매를 낳아 모두 제 짝을 찾아 떠났고 한 평생 자식들을 위해 허리가 굽어 지도록 흙과 싸웠다.
시집살이는 힘들었다. 시집와서 보니 남편은 병약하기 만 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육남매를 낳았으나 남편은 마흔도 되지 않아 지병으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시동생과 올케의 뒷바라지도 힘들었다. 시동생 둘은 결혼을 했고 시아버지는 그때마다 땅 마지기의 전답을 내주어 분가를 시켰다. 모두 한 마을, 인동으로 결혼을 했다.
남편이 병약한 것을 중매쟁이가 숨겼다. 남편이 세상을 뜨자 시아버지는 남아 있는 전답도 살고 있는 집도 며느리 서울댁 앞으로 이전 해 주지 않았고 자식들이 어리다고 손자들 앞으로도 이전을 해 주지 않았다. 그 내심에는 어린 자식들을 두고 재산을 처분하여 외간 남자를 만나 떠나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고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어느날 갑자기 시아버지도 세상 뜨고 말았다.
서울댁은 육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냈으나 제대로 뒷바라지 해서 결혼시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더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거두어 들인 농산물은 철따라 자식들 한테 올려보냈다.

서울댁은 먼저 나와 일을 하고있는 시동생이 먼저 "형수님! 식사는 하고 나오셨소?"하고 인사말이라도 걸어오기를 내심 기다려도 끝내 말이 없자 알아 듣지도 못하는 애꿎은 옥수수대만 툭툭 때렸다.
어느날 갑자기 밭에 간 서울댁은 옥답에다 중간 중간 말둑을 박고 비닐줄로 밭을 이등분 해 놓은 것을 보고 머리 속이 하애졌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서울댁은 이제 죽을 날도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을 만큼 살았으니 그동안 가슴 조바심으로 안고 왔던 집과 전답을 자식들 한테 물려주기로 하고 절차를 밟으려고 하니 시아버지의 자식들로 부터 상속포기서를 받아야된다고 했다. 그러나 포기서를 써 주기는 커녕 분가 해 나갈 때 받아간 재산이 적었으니 미상속으로 남아있는 집과 전답을 공평하게 더 달라는 거었다. 그러나 서울댁은 남아있는 재산은 당연히 장손의 몫이니까 절대로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자기 몫 만큼의 땅에 농사를 짓겠다며 말뚝을 박고 줄을 쳐버렸다. 유독 작은 시동생만 더 고집을 부렸다.
이런 갈등을 보고있는 장손인 서울댁 큰 아들은 어머니를 설득하여 일부재산을 떼어 주고 상속을 받자고 중재에 나섰다. 허나 막내 작은 아버지는
다른 것은 필요 없고 서울댁 형수가 살고 있는 집과 옥전을 달라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말도 안되는 고집에 장손은 어머니께서 세상을 뜨시면 법대로 처리 할수 밖에 없다고 내심 작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와중에 인동이 점차 개발 바람이 불어 토지가 수용된다는 소문까지 나서 가격이 오르니까 소극적 이였던 시동생과 출가외인이 된 고모까지 한 발 걸치러고 해서 도저히 해결 책이 없게 되었다.
서울댁은 화가 났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자식들이 다 모인 설날 시동생들도 참석한 자리에서 윗대 "제사는 지내지 말라"는 선포를 해버렸다. 제사 날이면 큰 아들 며느리 고생만 시키니 기일이 되어도 다른 자식들도 작은 시동생도 오실 생각 마시라고 대못을 땅땅 박아버린 것이다.
정오가 지나자 입이 마르기 시작했다.서울댁은 굽은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낫을 지팡이 삼아 밭가로 나가 오이넝쿨에서 조금 굽어진 물외 두 개를 따왔다.
"아이고 날이 너무 덥다. 작은아버지! 여기 물외 한 개 잡수고 하슈!" 그래도 칼 자루는 시동생이 쥐고 있으니 배알이 뒤틀려도 비위를 맞춰야 된다는 것을 알고기 때문이다.
"예, 먼저 잡수시요" 하고 일을 계속했다.
서울댁은 얼굴도 가물가물한 남편이 원망스럽기만 했다.자식들만 낳아 놓고 서둘러 저세상으로 간 남편이 야속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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