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차 수필부문 응모- 퇴근길외 1편

by 야실이 posted Aug 1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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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근길.

 

 

 

"어디에요?"

", 지금 역에서 내려서 걸어가고 있어."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에는 피곤함이 담겨 있었다.

 

"쭉 걸어오고 있어요."

"."

 

통화를 끝내기가 무섭게, 나는 마음이 급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옷을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잰 걸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단지 옆으로 이어진 길로 접어드니 밑으로부터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곧게 뻗은 길 밑으로는 길게 이어진 하천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밤 12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군데군데 걷거나 뛰는 사람들이 눈이 띄었다. 그 여유로운 모습에 다리에 힘이 빠지는 것 같아 눈길을 돌려 앞만 보고 걸었다. 길 위에는 나 이외는 아무도 없었다. 가로등을 지나칠 때마다 하루살이들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뿐.

 

지금 나는 남편을 마중하러 가고 있다. 올해 초, 갑자기 회사를 퇴직한 남편은 한동안 전전긍긍하더니 봄이 시작될 무렵부터 지인의 회사에 나가고 있다.

물론 정년퇴직이라는 게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한 번은 겪는, 당연한 일로 어느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보다 빨리, 뜻하지 않는 이유로 그만두게 되다 보니 무척 당황했다.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직 큰아이가 공부하고 있다 보니 당장의 생활마저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퇴직하기 전에 다른 곳을 알아보고 수입이 연결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는데, 현실이라는 게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나마 알아본 일자리는 내년 여름이나 되어야 한다니 거의 일 년을 쉬어야 한다는 사실이 아마도 남편은 막막했을 것이다.

손에 쥔 것은 없어도 자존심 하나로 버티고 살아온 남편, 당장 먹을 것이 없어도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하다못해 한 이불을 덮고 사는 나에게도 꼿꼿하게 자존심을 세우곤 한다.

 그뿐인가? 아이들에게는 자상하다 못해 속이 빈 것처럼 무엇이든 해주는,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을 위해 쓸 여유가 없어 언젠가부터는 남편 모습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워진다.

사계절 내내 한 켤레의 구두로, 그것도 낡아서 비라도 오는 날이면 양말이 젖어 수선 집에서 창을 갈아 신고, 남방도 목 부분이 달아 해져서 세탁소에서 바꿔 달아 입고, 소매 부분은 수선조차 할 수 없어 접어서 입고, 청바지는 해진 부분을 짜깁기 해서 입고.

"내 성격도 참, 한 번 마음에 드는 옷만 죽어라고 입으니."

아이들 앞에서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어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당신의 성격 탓으로 돌리고. 그러니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그 속이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러다가 찾아낸 방법이 내년 여름까지 살아가기 위해 지인을 도와주기로 했을 것이다.

"월급은 예전과 좀 달라. 그러니까 내년 여름까지는 긴장하고 살아야 할 것 같아. 될 수 있으면 맞출 수 있도록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다행이라며 나를 안심시키는 남편을 보며 자꾸 미안해졌다. 이럴 때 내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그렇게 불안하지만 다시 시작된 남편의 직장 생활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지인의 회사가 서울 강남에 있는데 퇴근 후, 술 한 잔 하다보면 집으로 오기 위해서는 전철이나 광역버스 막차를 타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한 시간 반 정도를 버스나 전철을 타고 안산에 도착하면 시내버스가 끊겨 택시를 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택시비가 할증요금이 붙어 집까지 거의 오천 원 정도 나오는데 예전 같았으면 좀 비싸다 싶어도 그냥 타고 왔겠지만 지금은 걸어오는 것이다. 역에서 집까지 거의 40여 분 동안을 걸어서.

"택시비가 할증이 붙다 보니 너무 많이 나와. 그리고 운동도 할 겸 걷기로 했 어. 좋던데?"

어느 날, 땀으로 흠뻑 젖은 채 집으로 들어온 남편의 머쓱한 표정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남편의 늘어진 어깨도. 그리고 그날 밤,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의 얼굴을 보며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하던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을 해야 하고, 그런 현실이 답답해 술 한 잔을 마시며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또 혼자 터덜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의 지친 발걸음 때문에.

 

다음 날부터 나는 남편이 역에 내릴 시간쯤이면 통화를 하고 마중을 간다. 혼자 걸어오는 길을 함께 걸으며 지친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런데 정작 남편은 내가 너무 많이 걷지 않도록 혼자서 한참을 걸은 후에야 나오라는 말을 한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설렘이나 기다림을 품지는 않았지만 남편과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서로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보게 되고 다독여주게 된다. 그러면서 내일에 대한 희망도 갖게 된다.

 

한참을 걷다 보니 길 저쪽 앞에 낯익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내가 손을 흔들었지만 저쪽에서는 아무런 답이 없다. 그래도 나는 서운해 하지 않는다. 거리가 너무 멀어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남편은 손을 흔드는 나를 보고 웃었을 것이다. 어린 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한기( 寒氣 )

 

 

춥다. 일기예보에서는 날이 풀렸다고 하는데, 휴대폰 화면에도 영상임을 보여주는데도 나는 춥다. 그래서 처음으로 내복을 입고, 얇은 조끼도 입고 있는데 이가 딱딱 부딪칠 만큼 춥다. 날이 지날수록, 그 날이 가까워질수록.

오늘은 작은 아이의 미래 시어머니가 될 분과 만나기로 한 날이다. 올해 서른인 작은아이는 가을쯤 결혼을 생각하는 듯 하다. 결혼의 대상은 작은아이가 대학원 때부터 만나왔으니 햇수로 5년 째 되어가고, 작년부터 구체적으로 결혼이야기가 나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는 선뜻 답을 못했고. 그 이유는 암묵적으로 남겨질 나 때문이리라 짐작했다.

엄마, 나는 결혼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 하는 건 싫어. 그래서 나는 내가 모은 돈으로 결혼한다고 했어요. 그동안 키워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늘 내 치마꼬리만 붙들고 파고 들던 아이는 어느새 어른이 되어있었다.

나는 좀 있다 결혼하고 싶어. 가족여행도 다니고 안니 합격하고 나면 같이 즐기다가 가고 싶은데.“

모범생에 우등생인 언니의 그늘에서 자라면서 자잘한 일탈로 다름을 보여주더니 이제는 언니에게 용돈을 보내주는 앙증맞은 그늘을 펼친다.

엄마, 이제 그만 참고 살아요. 솔직히 아빠는 엄마한테 할 말이 없어. 그냥 엄마가 참아주니까 할 소리 못할 소리 다 하는 거야. 어젯밤에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방에서 나가려다가 꾹 참았어. 그러면 또 엄마한테 난리 칠것 같아서. , 나 없으면 더할 텐데. 어떻게 해?“

집안의 막내로 받는 것에 익숙한 마음이 언젠가부터는 지울 수 없는 상처와 먹먹한 아픔을 다독여준다.

재수를 선택하고 대학생이 된 후, 가장 큰 걱정은 통학이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거의 두 세 시간은 족히 걸리고, 첫 강의 시간인 9시에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 540분 버스를 타고 전철을, 다시 스쿨버스를 버스를 타야 한다. 그 뿐인가? 집에 올 때는 퇴근시간과 겹쳐 세 시간이 넘을 때도 있다. 그러니 하루에 5시간 정도를 버스, 전철, 때로는 시외버스를 타고 다녀야 했다. 그러면서도 지각은 물론 결석도 하지 않았고 4년 동안 성적장학금을 받아 든든함을 주었다.

친구들 대부분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아이 또한 기숙사 생활을 원했지만 나는 같이 지내자는 말로 나를 어르고 달랬고 그 속에는 경제적인 어려뭄이 있다는 것을 아이 역시 큰아이와 자신을 뒷바라지 하는 게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이상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툭 하면 내릴 곳을 놓쳐 낯선 곳에서 헤매기도 하고 가끔은 전철에서 졸다가 눈을 뜨면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다리를 베고 자기도 하고 때로는 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 한번쯤은 너무 힘들어 중간에서 내려 속을 비워내기도 했었다. 미안했다. 아이는 웃음으로 들려주었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졌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아이는 몸은 힘들지만 그 과정을 버티어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 결과로 아이는 교수님의 믿음을 얻어 대학원도 등록금 전액 장학생으로 다닐 수 있었고 졸업 후에는 전공을 살려 연구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회사 내에서 최단기간의 주임승진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거기에 나름대로 자식 키운 소소한 즐거움을 맛보라며 용돈은 물론 일상에 필요한 것들을 안겨주곤 한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의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이 또한 알고 있으리라. 내가 기대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걱정하지 마.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는데. 앞으로도 잘 살 거야. 그리고 결혼이라는 게 때가 있는 거야. 그저 미루는 게 능사가 아니야. 솔직히 엄마는 네가 늦게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그건 내 욕심이고, 가 되면 너도 네 삶을 살아야지. 그러니 둘이 잘 의논해 보렴. 그리고 그 친구도 정식으로 인사 시키고.“

그 날 부터였던 것 같다. 몸에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한 때가.

그동안 아이를 통해 그 친구에 대해 알아가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서부터는 그 댁 어른들과 동생을 그려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급작스럽게 남편에게 그 친구 이야기를 꺼내고, 그날 저녁 정식으로 인사를 오고, 이틀 후인 오늘, 시어머니 될 안주인과 내가 만나기로 했다.

아이는 그동안 회사가 판교에 있어서 남편이 타던 자가용으로 출, 퇴근을 했었는데 한 달 전에 회사가 잠실로 옮기게 되고, 그 때부터는 버스와 전철로 출, 퇴근을 하는데 그 시간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지옥철을 실감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여름이 벌써부터 걱정된다는.

어쩌면 이런 흐름이 아이의 결혼을 예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댁이 될 남자 쪽의 집안은 본인 입으로 은수저 정도는 된다는 말처럼 잘 산다고 한다. 강남의 아파트에서 살고, 아버지는 나름 중견 기업의 부사장으로. 엄마는 강남과 지방에서 유치원을 운영하고, 여동생은 쇼핑을 취미로 할 만큼 아무 걱정 없는. 식구 수대로 자가용이 있고, 부모님은 툭 하면 해외여행으로 여유로운 즐거움을 누리고, 명품이 일상이 되는. 나와는 딴 세상에 사는 이야기였다.

내가 마음에 든 이유는 돈이 많다고 거들먹거리지 않는 거야. 오히려 자기 외모 꾸미는 걸 무관심해. 무릎 나온 바지에 구멍 난 티셔츠도 아무렇지 않게 입어. 한 번은 같이 다니는 내가 창피해서 중간에 옷집에 들어가 사 입은 적도 있어. 그리고 자기가 타는 차는 경차야. 기름 값도 적게 들고, 주차비도 싸다면서. 그런데 나한테 쓰는 건 아깝지 않다고 해. 그래서 좋아. 는 엄마 닮아서 감성적인데 그 친구는 놀랄 만큼 이성적이야. 그래서 가끔 조언도 받아.“

나도 좋았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가진 것을 힘으로 으스대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마음도. 자기들만의 기념일이나 아이의 생일, 또는 아이가 힘들 때면 기분 전환하라며 안겨준 선물들, 옷이나 백의 가격을 확인하고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평생 가져보지 못한 명품이 나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아이에게는 삶의 설렘이 되리라는 기분 좋음으로.

그 친구 엄마는 내가 밝아서 좋다고 하셔. 요즘 아이들하고 좀 다르다고. 그리고 결혼하면 살 아파트도 보여주셨어. 내년 가을에 입주예정이래. 내가 모은 돈으로 결혼자금으로 쓸거 라고 했더니 웃으시며 기특하다고 하셨어. 모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됐다고 하시네. 그러니까 엄마는 괜한 걱정 하지 말아요.“

나도 안심했다. 있는 집이라 혹시나 이것저것 격식을 차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빈손으로 아이를 보낸다는 게 염치없는 엄마가 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냥 아이의 대견하고 기특함을 알아주는 넉넉함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보통 일상과는 좀 다르게 화장도 꼼꼼히 하고, 머리 손질도 배가 되는 시간으로 신경을 썼다. 처음으로 마주할 시어머니 자리와의 만남은 가만있어도 이가 떨릴 정도의 한기 때문에 나는 입을 앙당 물어야 했다. 난생 처음 앉은 일식집에서 어여쁜 그 친구의 어머니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어색한 손길로 놓여지는 음식을 집어 먹으며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씹어 삼켰다. 그동안 내 몸 속에 쌓여있던 한기를.

닮았다. 그 친구의 솔직한 웃음이. 그 엄마의 부담 없이 열어주는 마음을. 가진 게 많은 이의 위력이 아닌 느긋한 삶의 여유를. 모자간의 보이지 않는 흐름 속에 선명한 닮음처럼 나와 딸 사이에도 그런 닮음이 있으리라.

저는 은우 어머님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집에서 아이들을 돌봤다는 말에 은우가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자랐다는 게 참 좋았어요. 그래서 은우가 좀남다른 것 같아요.“

고마웠다. 감사했다. 그동안 나를 지켜보는 그 누군가에게, 아니 하늘에게 쏟아 붓던 원망이. 돌처럼 굳어있던 탓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숨 쉴 여유조차 주지 않는, 끈질기게 발목을 붙잡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예순의 나이인데 만원 한 장을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허기진 삶, 거기에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늘 가슴 속에 품고 살아야하는 절망적인 삶, 그 모든 걸 안고 살아가는 이유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면서도 힘듦이 조여 오면 세상을 탓하고, 하늘을 원망하곤 했었다. 가슴 저 밑으로부터 따뜻함이 전해져오는 가 싶더니 코끝이 싸아해지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저는 우리 아이가 결혼하면 저와는 달리 당당하게 살았으면 싶어요. 그래서 대학원 공부도 시켰답니다. 고리타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우습게도 아이에게 희생 비슷하게 했어요.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채우고 보태주세요.“

이제야 깨닫는다. 하루하루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날을 보낸 날들이. 보잘 것 없어 보이던 내 삶이 그래도 괜찮았다는 것을, 그렇게 바라던 풍족한 삶을 나는 누리지 못했지만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한 만큼 내 딸에게 그 바람이 전했다는 것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서 점점이 흩뿌려지는 눈발이 빛을 내며 내려앉았다.

 아이의 환한 웃음으로. 그 친구의 정겨운 눈빛으로. 그 어머니의 쾌활한 목소리로. 헛헛한 가슴에 품는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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