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버리며 _
오늘도 기어이 버리고 왔다. 진작에 처분했어야 하는 건데 끌고 또 끌다가 이제야 버릴 각오가 생겼다. 버릴 테면 그저 버릴 것이지 각오는 또 뭔가. 하나에서 열까지 어떻게든 의미를 부여하려고 발버둥 치는 성격 탓일까. 옷 하나 버리겠다고 아침부터 소란이 이만저만 아니다.
오늘 버리고 온 녀석들도 정을 떼어 내느라 여간 고생한 게 아니다. 옷장 옆에 전신 거울을 세워 두고 하나 둘씩 옷을 몸에 대본다.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다른 옷들과는 얼마나 어울리는지 거울에 비친 모습을 바라보며 연신 입술을 빼죽거렸다. 어색하게 ‘역시, 이건 안 되겠어.’ 내뱉고는 이내 던져버리기를 한 시간, 어느새 제법 버릴 옷들이 많이 쌓였다.
버려진 옷들을 무심한 듯 바라보았다. 흰색 티셔츠 녀석이 목이 좀 늘어난 거 가지고 내팽개치는 거냐며 아우성쳤다. 딱 들러붙는 청바지 녀석도 어디든 찰떡 같이 비위를 맞추어 주는 건 자기밖에 없다며 버리면 후회할 거라고 했다. 소리 없는 녀석들의 아우성을 한바탕 듣고 나니 못내 아쉬워 회생시킬 녀석들이 있는지 수북이 쌓여있는 옷더미를 다시금 들쑤셔보았다. 엎치락덮치락 또 한 시간, 그렇게 버리고 나니 후련했다. 동시에 버릴 것을 매번 사고 또 사는 어리석음에 실소가 터져 나왔다.
오래 전에 산 옷인데 남모를 추억이 오롯이 담겨있어 버리지 못했던 옷, 대놓고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산지 얼마 안 되었거나 비싸게 주고 사서 본전은 해보리라 버리지 못했던 옷,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대놓고 신통치 않았지만 입기에는 편하고 좋아 버리지 못했던 옷. 사연도 가지가지다. 하지만 버려야 한다. 아니 버려야만 했다. 어물쩍어물쩍하다가 보다 잘 어울리는 옷들을 마주할 기회를 놓치고 만다.
버릴 옷들에 골몰하며 감상에 빠져있는 사이 문득 옷을 사고, 입고, 버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사람을 만나고, 지내고, 헤어지는 일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핸드폰을 열어 지난 한 주 동안 전화나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이들이 누구인가 훑어보았다. 크게 세 부류였다. 아무리 버리려고 해도 버리지 못하는 부류, 내 쪽에서는 버려도 상관없지만 그 쪽에서 날 버리지 않아 연락이 지속되는 부류, 마지막으로 그 쪽에서는 날 버려도 상관없지만 내 쪽에서 차마 버리지 못해 연락이 이어지는 부류이다.
첫 번째 부류. 버리려는 양쪽 주체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서로를 버리는 것 자체가 어려운 관계, 가족이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지만 나의 속내를 드러내기 제일 불편한 사람들. 서로를 잘 알고 있지만 또 너무 모르고 있기도 한 사람들. 너무 고맙고 사랑하지만 사무치게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수도 없이 관계를 끊어내겠다고 소리치며 발악을 해보지만 이내 잠잠해져 돌아오기를 수차례, 헤어지고 낡아 그만 입어도 될 것 같은데 또 더할 나위 없이 편한 옷이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던 티셔츠 몇 장이 떠오른다.
두 번째 부류. 이제는 내 쪽에서 관계를 정리하고 싶거나 연락이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 생각하는데 그 쪽에서 근근이 연락이 오는 경우다.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에 분명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계속 만나도 서로에게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이기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서로의 필요를 좇아 연락해서 도움을 받을 뿐 더 깊은 관계를 만드는데 에너지를 쏟으려 하지 않는다. 세일기간에 운 좋게 저렴한 가격이라 사 두었는데, 막상 입으려니까 그리 예쁘지도 않고, 다른 옷들과 쓰임새가 겹쳐 손이 잘 가지 않는 옷과 비슷하다고 할까.
세 번째 부류. 내 쪽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관계를 지속하고 싶어서 연락을 하는데 그 쪽에서의 반응이 달갑지 않은 경우다. 나의 연락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지 없을지 내 쪽에선 알기가 어렵다. 살짝 감을 잡을 것도 같지만 상대의 마음에 나의 어떠한 부분이 불편함을 주었는지까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솔직히 이런 사람들에게 애써 연락하는 게 썩 내키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부담감이나 간절함에 짓눌러 견디지 못하고 또 연락을 하고 만다. 옷 자체는 참 예뻐서 잘 받쳐 입으면 좋은데 갖추어 입을 다른 옷이 없거나 체형이나 머리 모양과 잘 어울리지 않아 자주 입지 못하고 있는 옷들과 닮아있다.
사람과 옷을 무리하게 연결 짓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옷을 고르고 나서 제대로 입지 못한 채 버리고 또 새 옷을 사야만 하는 난처한 상황에 마주할 때마다 이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 불편한 마음의 정체를 찾아 차근히 글로 옮겨보리라 다짐하고서 그새 잊고 있었다. 그러다가 토요일 아침, 또 한바탕 옷과의 사투를 버리고 난 후 그 때 그 마음이 되살아나고야 말았다.
옷과 사람, 둘 다 겉보기와 실제가 다르다는 게 같다. 옷은 겉으로는 그럴싸해 보이지만 직접 몸에 닿는 순간 실체가 드러난다. 까다로운 옷 같은 경우는 매장에서 입어볼 때까지는 괜찮다가 집에 가지고 와서 다른 옷들과 입어보려고 할 때 못내 어색함을 풍겨낸다. 사람도 외관이나 말투로 어떤 부류인지 짐작해볼 수는 있지만 특별해지는 ‘관계’의 맥락으로 들어갈 때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옷보다 사람의 실체를 깨닫기까지의 시간이 조금 더 오래 걸린다는 것, 그리고 옷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그 관계를 정리하기까지 적지 않은 감정이 소모된다는 것이다.
한 고비를 넘어선다. 몇 번 입기를 반복하면 옷은 몸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체형에 맞춰 옷의 모양이 바뀌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옷들과 적응도 잘하면 여기 저기 어울려 쓰임새 좋게 잘 입을 수 있게 된다. 이 고비를 넘어서면 1,2년은 거뜬히 입고도 남는다. 하지만 갑작스레 살이 찐다거나, 옷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지거나 회복이 불가능한 훼손이 생긴다면 이마저도 어려워진다. 피치 못할 ‘상황’을 만나면 이 옷과의 인연도 지속할 수 없게 된다.
‘상황’이 판을 뒤집는 것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는 상호간에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도 이해하고 넘겨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여느 아침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기가 막힐 만한 ‘상황’들이 도처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둘 중 누가 더 나쁘다고 말하기 모호하지만 서로가 되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받는 상황이 되면 그동안의 믿음과 신뢰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고 만다.
버리기. 옷이든 사람이든 어떻게든 품을 떠나는 시기가 오게 된다. 옷장을 열면 나름 여러 벌의 옷이 걸려있지만 정작 입는 옷은 몇 가지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대적인 옷 버리기 작업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입지는 않는데 옷장을 차지하고 있는 옷은 아침에 옷을 고를 때마다 마음의 부담감을 준다. 입기 싫은데 입어봤자 어울리지도 않는데 언젠가 한 번 쯤은 입어줘야 할 것 같은 미안함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게 싫어 주기적으로 손이 가지 않는 옷들은 비워내고 또 비워내기를 반복하곤 했다.
옷에 비해 사람은 버리는 과정이 조금 더 복잡하다. 한 쪽에서 버린다고 해서 버려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한 쪽이 놓으려 할 때 다른 한 쪽이 붙잡으면 어떻게서든 관계의 명맥은 이어진다. 하지만 이 역시 마음의 부담감을 지속하는 일이다. 부담스럽게 연락을 하는 쪽도 부담스러운 연락을 받는 쪽도 마음의 불편함을 가지고 간다. 그러다가 둘 다 더 이상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바람이 사라질 때 비로소 서로가 서로를 버릴 수 있게 된다. 이 때 너와 나는 ‘끝’이라는 의식이나 절차따위도 필요하지 않다.
옷은 버리기까지의 과정이 고단할 뿐이지 한 번 버리고 나면 굳이 미련 따위 남지 않는다. 옷의 사정이든 나의 사정이든 이미 떠나보낸 옷이니 애써 아쉬워하거나 그리워하지 않는다. 더 잘 어울리는 옷을 다시 사면 그만이다.
사람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금껏 적지 않은 사람들을 버려왔건만 그때 마다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 그게 너의 사정이었든 나의 사정이었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버리는 것에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그 때 너를 붙잡았어야 하는 건지 너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지 지금에 와서 더 잘 어울릴 사람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일까.
옷과 사람이 닮아있다는 말, 그저 나 혼자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것은 아닐까. 어울리지 않으면 그저 버리고 또 새롭게 사면 그만일 옷과 같이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버리고 또 새롭게 사귀면 그만이라고.
“넌 나와 잘 안 맞는 것 같아.” 그렇게 버림받던 날, 나 또한 당차게 너를 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으로부터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시리도록 처량한 내가 보인다. 꾸역꾸역 폐옷 수거함에 옷을 구겨넣으며 또 새로 사면 그만이라고 중얼대고는 정작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무관심했던 내가.
옷과 사람은 같지 않다. 그러나 옷을 대하는 것처럼 사람을 대하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 옷을 사고 버리듯이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적당히 가벼워지는 건 어떨까. 옷을 사고 버리면서 제법 잘 어울리는 옷을 만나게 됨과 같이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