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차 수필 공모합니다! 센스있는 우리들 외 1편

by 보노우직 posted Oct 10, 202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제목: 센스 있는 우리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평등이라는 가치를 가장 소중한 가치라 여기며 산다.
2020년 대한민국의 사는 우리들은 과연 양성평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양성평등이란 간단히 정의하자면 동등한기회와 권리를 차별 없이 성별 모두에게 보장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양성평등이라는 단어를 머리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단순히 성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거나 각종 고정관념에 휩싸여 사는 이들을 요즘 찾아보긴 힘들다. 하지만 온전히 가슴으론 이해 못 하는 것이 아직 현실인 것만 같다. 분명 이전 세대에 비해 가치관과 행동 등이 비교적 유연해지고 자유로워졌지만 오늘날까지 선택적 차별같은 문제점은 남아있다. 그렇기에 더욱 모순적인 행동과 사건들이 뉴스에서 만연할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하지만 너무 슬퍼할 필요는 없다. 양성평등이라는 개념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깨닫는 데도 수십 년이 걸렸고 또 시간이 흐른다면 가슴으로도 이해할 우리 대한민국이니까! 후퇴란 없다.!

 

 

성차별은 뭘까?”

내 소개를 하자면 올해 21살로 장발을 고집하는 작가지망생이다. 보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고 쉬는 날에는 친구와 수다 떨러 카페 가기를 즐긴다. 취미는 그림을 그리거나 혹은 음식을 요리하여 누군가를 먹이는 것을 좋아한다. 방금 텍스트를 읽으며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는 않았는가? 맞다 사실 난 건장한 남성이다. 대부분의 이들은 텍스트를 읽으며 보다 섬세하고 기민한 젊은 여성을 떠올렸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것이 성()적 고정관념이다. 좋게 말하면 이미지 떠올리기란 단어를 쓸 수도 있지만 이 글에선 삼가야겠다. 물론 필자가 남자라는 것을 맞춘 이들에겐 보다 편견 없는 독자라 칭하겠다.
앞서 소개했듯 난 글쓰기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글은 시공간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에 매력을 느꼈고 그 자리에서 작가를 지망하게 됐다.
난 몇몇 사람들의 직업적 편견으로 인해 누구보다 스트레스를 자주 받았었는데 그들의 괴이한 논리를 소개해보겠다. “글은 여자가 감성적이니까 잘 쓰지 않나?”“ 남자도 작가 같은 일을 하나?” 참 이 대사는 수 백 번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난 남녀 간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며 확연히 알 수 있다 생각한다. 단지 생물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말이다. 성별로 인한 평균 신장의 차이 근육 량의 차이에 따른 물리력의 강도와 같은 차이 말이다

단지 그뿐이다. 난 지금까지 다른 방면으로 남녀 간의 차이를 정의한 자료들을 본 적도 없고 있더라도 그다지 신뢰하진 않는다. 만약 그들이 던진 고정관념이 정답이라면 헤밍웨이와 안데르센같은 작가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여럿 남자 예술가들을 부정하는 꼴이 된다. 예시를 극단적으로 들었지만 그만큼 성차별과 고정관념은 근거 없는 궤변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또 다른 일화를 소개하자면 내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수험생 시절 친구들과 대화를 해보면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넘친다. 내 친구들은 헤어 디자인 학과, 간호학과 등의 목표를 결정했지만 단지 성별 때문에 지원을 고민했었다.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그들은 독서실이 끝나고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고민을 털어놨었다

난 그 친구들을 향해 웃음을 지으며 당당히 말했다네가 가고 싶다면 그게 길이지 인마"  “ 난 가끔 메이크업도 하는데 그럼 난 남자가 아니냐?” 이 평범한 조언(?)을 들은 친구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고 마음을 굳혔다. 물론 이 일화는 나름 어른스러운 조언을 한 나만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현재는 나와 대화했던 두 친구 모두 해당 학과에서 조금씩 꿈을 키우고 있다. 이 글을 보는 누군가도 고정관념과 성차별 때문에 진로를 고민한다면 당당히 무시하고 도전해보라 말하고 싶다. 왜냐면 그대들보다 훨씬 먼저 편견에 맞서 싸운 이들이 말하듯 편견은 그냥 시샘일 뿐이니까! 그대들은 무한한 가능성과 젊음을 가졌으니까!

 

 

그런데 너네 왜 싸우는 거니?”

학창 시절 같은 반 남자 친구들과 여자 친구들 사이엔 특이한 논쟁이 붙은 적이 있었다.
어느 때 처럼 평범한 쉬는 시간 남자 친구들과 여자 친구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듯 보였고 사건의 전말은 SNS 게시물로부터였다. SNS의 게시글 중 남성이 이행하는 병역의 의무와 여성이 이행하는 출산의 의무 중 어떤 것이 힘든 가?라는 투표 글이 올라왔고 반응은 뜨거웠다. 비교할 수 없는 주제이지만 그 게시물엔 이상하게 서로의 의견을 제시하는 온라인 토론이 시작되었고 우리 반 친구들은 그것을 오프라인 토론으로 이어갔다. 난 어느 입장도 취하지 않는 관객의 입장이었고 친구들은 정말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남성의 군대는 현역이 아니면 문제가 없다는 의견부터 여자는 비혼 주의자면 문제가 없지 않나? 하는 무의미한 논쟁 말이다. 결국 이 무의미한 토론은 서로의 성별의 비난하는 것으로 변질되었고 남성 토론자 한 명이 여성의 생리를 언급하며 막을 내렸다. 토론을 참여하고 관전한 모두가 어색하고 답답한 순간이었다. 난 이 토론을 관전하며 이것이 온라인으로만 접하던 젠더 갈등의 실상인가? 하며 왠지 모를 서글픔이 들었다. 그저 서로의 고충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생각이 나를 스쳤다. 갑자기 친밀하던 반 친구들이 낯설게 느껴지고 불편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난 성별끼리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해

앞서 말했듯 난 단지 성별의 차이로 인해 많은 것이 다르다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신체적 차이에서 기인하는 성별 간의 공감대와 앞선 세대에서 전수한 문화를
이번 세대가 어떻게 해석하고 풍조를 만드느냐가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남녀 간의 차이점이 아닌 생활양식으로서 나타나는 문화의 차이점이라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의 성별에 대한 문화를 이해하고 학습하려는 노력이 필수적이며 문화의 다름을 인정하려는 태도가 중요할 것 같다. 그것이 내가 토론을 지켜보며 내린 결론이었다. 문화에서는 많은 것들이 파생되기 마련이다. 언어, 행동, 관습, 습관 등 모두가 문화에 전유물이며 그것들은 가치관을 형성하고 성격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보다 이성에 대해 속 시원히 토론하고 공부하려는 기회들이 점차 늘어나야 한다. 교육과정 중 실시하는 상투적이고 억압적인 성교육 방식 대신 보다 실리적이고 유의미한 교육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여성과 남성의 고충만을 나열하고 배우는 방식이 아닌 그 현상에 대해 속 시원히 이해하고 토론하며 서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수업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불과 몇 년 전 성과 관련된 수업 시간은 너무나 강압적이고 지루해 대부분의 수업에 집중해본 적이 없었고 특정 성별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던 수업 방식도 싫었다. 용기를 내 질문이라도 하려는 아이에겐 답을 정해놓고 면박을 주기 일쑤였으며건강한토론을 하는 것조차 꺼려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시간을 숙제 시간혹은 취침 시간이라 부를 정도였다. 물론 나는 기존의 성과 관련된 교육에 대해 맹목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닌 교육의 방식도 시대에 맞춰 진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더욱이 학창 시절에 이뤄지는 교육은 청소년기에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정부와 교육부가 더욱 유심히 재고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자면 학교에서 활동하는 또래 상담가와 같은 아이들을 집중적으로 양성하고 프로그램을 활성화시킨다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

과 관련된 이야기는 보다 예민하고 민감한 주제이기 때문에 또래 집단은 나름 신선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명패뿐인 학교들이 많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교내에서의 교육을 통해 또래 상담가를 잘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와 같은 경우도 이성과 관련된 고민의 대다수를 친구들에게 털어놓고 상담하기 하기 때문에 보다 원만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또한 창제 시간이나 여러 자투리교과 시간을 활용하여 학교에서 자유로운 성 교육과 토론이 이뤄지도록 한다면 성차별과 고정 관념에 관련한 문제들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 단언한다.

 

 

저희 그냥 사랑하면 안 될까요?”

나는 우리 젊은이들이 보다 유연하고 자유로운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성차별과 고정관념에 대한 문제와 토론은 전 세대에 걸쳐 일어나지만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10대에서 20대이기 때문이다. 문제 개선 의식도 높지만 그만큼 사건 사고도 자주 일어난다. 이성에게 가장 호기심이 많은 나이일뿐더러 성별 간져야 하는 책무와 특징이 도드라지는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려면 제도적 해결책 보다 젊은 층 들의 개인적 의식 고취가 필수적이라 느낀다. 우린 수십 년간의 투쟁과 담론들을 통해 양성평등에 대한 이론을 끊임없이 학습하였고 모두의 머릿속엔 가이드라인이 그어져 있다.

그 안전선을 밟고 잘 지나다니기만 하면 우리 모두가 자유롭고 편안할 수 있다. 그뿐이다. 물론 누구나 알 듯 이론과 실제는 다르지만 내가 가진 그릇된 고정관념과 성차별의식으로 결국 상처받는 건 누군가가 아닌 그대의 가족과 애인이 될 수 있음을 꼭 기억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후퇴는 없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가 있을 뿐 우리의 임무는 보다 자유롭고 평등한 문화를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 그것 하나뿐이다. 그 작은 변화는 당신으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꼭 기억하고 실천하자!

 



제목: 어린 미술가 


"재하고는 친하게 지내지 마 알았지?"

 

어릴 때 내가 친구 부모님에게 엿들은 최고의 대사였다난 어릴 부터 세상이 회색으로 보였다회색은 검정과 흰색의 중간처럼 보이 검정에 더 가까운 서글픈 색이다매일 싸우던 부모님 같이 내 눈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것을 사팔뜨기라 불렀다. 내게 눈을 맞추고 대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말하기와 관련된 테스트는 늘 바닥을 쳤으며 생활기록부엔 사교성이 떨어진다는 표현이 다른 고급스러운 붉은 문장들로 대체되어 있었다체구도 작았던 나는 교복을 입고 있어도 초등생처럼 보이곤 했고 친구들은 항상 나를 보면 뜻 모를 웃음과 귓속말을 속삭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때부터 나에겐 다른 이들의 못난 점 만을 쉽게 발견하는 세 번째 눈이 생겼다세 번째 눈은 흑백 필터였지만 그 누구보다 좋은 선명도를 지녔다. 난 곁눈질을 하며 고된 학교생활을 버고 가장 잘했던 과목은 눈에 띄지 않는 법과 수군거림을 음악으로 듣는 법이었다. 그 과목은 항상 전교권에 속했다.

 

"재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네? " 손 안 씻나 봐 이상해

 

청소년기 아토피로 인해 가장 많이 듣던 명대사였다잔인하리만큼 차가운 대사들이었고 그들은 예술가같이 창의적 표현을 구사했다. 내 아토피는 특히 하체와 엉덩이 쪽이 심해 수업 시간은 늘 뒤로 가서 내용을 필기했고 특유의 엉거주춤한 자세는 친구들의 즐거운 대화 소재였다더운 여름날에는 진물과 씨름하며 늘 여분의 옷들을 구비해 뒀고 체육시간 또한 그리 반갑지 못했다

아토피와 겨루기 위해 난 여러가지 준비를 했었다. 꾸준히 청결을 유지하고 각종 항생제 연고와 알약 그리고 운동까지모두 해보았지만 매일 KO 패 당했다집 근처 병원들은 늘 같은 진단을 내밀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보이지 않는 주먹은 나를 링 위에 올라설 수 없게 만들었고 숨이 헐떡였다

 

“세상이 온통 검정빛으로 보여 내가 선글라스를 쓴 건가?”

 

 포기 상태인 날들이 이어졌다. 피와 진물 범벅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할 용기가 나지 않았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운동 약도 더 이상 흰색 물감이 되지 못했고 이젠 친구들의 놀림 따위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조명하나 없는 캄캄한 터널은 어둡고 외롭기만 했다터널 속 정체모를 누군가는 나에게 도화지를 찢으라 명했고 나는 그 의견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끝을 의미했다. 도화지를 찢기 전 물감이 튀지 않게 주변을 정리하고 고해성사 같은 작품 일기를 하나 작성했다. 하지만 도화지를 찢는 선택이 필연적이었다는 화가에 에 힘을 싣기 위해 갈 곳이 있었다. 나는 대학병원에 입원고 권위자의 엄중한 심사를 통해 소생 불가 판을 받는다면 내 결정이 훗날 이해 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소생 불가 판정 대신 흰색 판결문을 받았고 그것은 회색 눈물로 내 눈을 뜨게 했다. 검사 결과에서 수년간 날 괴롭 실질적 가해자가 드러났고 그 놈은 밀가루 알레르기였다. 복잡한 가정사 덕에 주로 인스턴트음식을 먹는 내 환경을 교묘히 이용했고 신분을 숨긴 채 나를 괴롭혔다. 그것은 철저한 지능 범죄였으며 난 그 녀석을 고발했다. 

 

"세상은 검정은 아니고 그래도 회색이지"

 

너덜너덜한 검정 도화지 소생하기 시작했다. 꾸준한 운동과 채식 위주의 식습관은 찢어진 도화지를 꿰매기에 훌륭했고 좋은 서적은 도화지의 검정칠을 벗겨냈다. 나에겐 다른 의미에 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엉거주춤한 자세는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허리를 꼿꼿이 편 반듯한 학생의 모습이 되었다. 더 이상 그들의 조롱을 음악으로 듣지 않았고 체육시간 또한 두렵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상처인 세 번째 눈은 "남은 두 눈에 밝은 것을 더 많이 담을 것 "이라는 유언과 함께 눈을 감았고 그것을 마음에 새겼다.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색깔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싶어

 

깊은 흉터를 뒤로 한 채 두 눈으로 마주 본 세상은 참 알록달록한 색이었고 내가 경험하고 생각했던 물감들을 통해 세상을 채색고 싶었다. 고교시절엔 도움 반 친구의 도우미와 요양원을 방문해 주기적으로 활동했지만 뭔가 원하던 색깔이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에 내 팔레트를 살펴보니 글쓰기와 준수한 목소리라는 물감이 구비되어 있었다. 글쓰기는 어릴 적부터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오랜 벗이었고 내 목소리는 군 장교 출신인 아버지를 닮아 나름 굵고 선명했다어떤 도화지에 채색을 해야 조화롭게 표현될지 고민했고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글쓰기 물감은 각종 희망의 글 창작대회라는 도화지에 흩뿌렸고 그것은 나에게 작가라는 꿈으로 화답해 주었다목소리 물감은 눈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해 책을 녹음하는 낭독봉사 도화지에 채색하기로 결정했다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봉사인원을 선발하는 오디션 일정이 대학교 시험 날과 겹쳤. 고심 끝에 나는 성적 장학금이라는 아버지와의 약속을 깨고 오디션을 보러 갔다. 기말고사 날 정장을 입고 시각장애인 도서관으로 향한 내 모습은 우스웠지만 용맹했다그 특이한 열정을 알아본 위자는 높은 경쟁률 속 나를 유일한 남자 화가로 선택했다. 도서 녹음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활짝 핀 벚꽃을 보며 난 생각했다

그때처럼 악의 순환이 찾아와도 절대 도화지를 찢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터널은 언젠가 지나갈 것이고 계절은 변하기 마련이니까인생은 우리에게 고통과 희망을 번갈아 주는 장난기 많은 친구이니까!

 

 



이름: 정우진 

연락처: 010-6894-5015, 010-3923-5766 , 010-8630-6869

이메일: kcgf3566@naver.com 


 

 

 

 

 

 

 

 

 

 

 

 

 

 

 

 

 

 

 

 


Articles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