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는 마법에 걸린 듯 반짝거렸다. 어두워질수록 더욱 빛났다. 울긋불긋 크리스마스 등불로 장식한 회색 빛 샌프란시스코의 고풍건물들이 마치 얼굴단장을 하고 나서는 여자들처럼 설렘의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들과 계속 어깨를 부딪쳤다.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다운타운으로 쇼핑을 나오다니, 어리석은 짓이라 생각했다. 5시도 채 되지 않았는데 해는 떨어지고 어둑어둑 해졌다. 여기저기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 사람들의 웃음소리, 대형 스크린 속에서 드럼을 치며 춤추는 장면의 흥이 거리로 넘쳐 흘러내렸다. 유니온 스퀘어 광장은 온통 축제 분위기였다. 8층 건물의 메이시 백화점은 2 백여 개의 빨간 크리스마스화환을 창문에 걸어서 추운 겨울에 불꽃이 피어나는 듯 보였다. 사람들의 물결에 떠밀리다시피 백화점 건물 안으로 들어섰을 때,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걸음사이로 내 눈을 확 끌어당기는 것이 있었다. 빨간 스웨터를 입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노인의 뒷모습이었다. 멀리서도 선명하게 눈에 띄는, 너무나도 내 눈에 익숙한 빨간 스웨터였다. 나는 백화점의 쇼핑 인파를 밀어제치고 자석에 끌리듯 뒤따라 뛰어올라갔다. 마치 20년 전 세상을 떠나신 우리 아버지의 뒷모습 같았다. 그러나 어느새 빨간 스웨터의 자취는 사람들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여기저기를 둘러보아도 다시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예기치 않았던 장면에 나는 넋을 빼앗겼다. 황당한 일이 아닌가. 무슨 환영이라도 본 듯이 뒤따라가다니. 성탄절 상품들 빽빽하게 들어선 틈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이 얼어붙었다. 크리스마스캐럴은 신나게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뺨은 상기되어 홍조를 띠고 모두들 기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스쳐지나갔다. 나는 고장 난 시계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한참을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빠지고 주저앉을 것 같았다. 백화점 위층 커피숍으로 허둥지둥 올라갔다. 그곳도 소란했다. 사람들의 대화소리는 화려한 크리스마스장식들처럼 자유분방하게 들렸다. 향 짙은 커피로 정신을 차려보려 했으나 모든 감각이 기억과 하나가 되어 아버지의 모습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선명하게, 기억은 계속 이어지면서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나를 끌어당겼다. 나는 시간을 되돌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혼자서 미국으로 떠나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셨다. 지금 생각하니 그것은 당연지사이다. 이제 와서야 미혼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