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실장님 외 1편 응모합니다.

by 이남주 posted Nov 28, 201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아, 실장님


21, 미필, 졸업예정. 남자가 방황하기 좋은 시기. 긴 방학 기간에 무엇을 할지 고민을 하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잠시 서울에 있는 누나 집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대학에 입학해 자취를 할 때에는 누나를 볼 시간도 없고 동네에 아는 사람이 없어 외로웠지만, 고향 친구 한 명이 같은 오피스텔에 살게 되어 적적하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오류동으로 간 첫 날, 친구를 불러 집 근처에 있는 횟집과 중국집을 겸하는 퓨전 식당으로 갔다. 농촌에서 온 촌놈들이 회도 모르면서, 먹으면 좋지 않다는 비가 오는 날 우럭 2마리 만 오천 원 이라는 글자를 보고, 회를 주문했다.

주방에서 회를 썰던 사람이 테이블을 세팅하고, 서빙까지 하는 모습을 보고 친구와 나는 의아해했다. 그렇게 나온 우럭과 함께 술을 계속해서 마셨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와 계산하러 일어나보니 유리창에 홀서빙 구함이라는 문구가 보였다.

주륵주륵 내리는 빗소리, 술냄새가 진동하는 입. 해보고 싶었다. 술에 취해서 인지 몰라도, 웬지 이 가게에서 일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산하며 사장에게 아르바이트 구하냐고, 내일 당장 나오겠다고 이야기하고 다음날 출근하게 되었다.

월급은 160만원. 오후 12시 출근, 오전 12시 퇴근. 보수는 괜찮았으나, 12시간 근무가 마음에 걸렸다. 어차피 두 달 쉬는 것 보다는 무어라도 하는 것이 나아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은 간단했다. 주문 받고 서빙하기. 또 아르바이트생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이 전부 직원이었다.

월 매출 1억이 넘는 가게라 굉장히 바빴다. 12시간 동안 사람을 대접하니 힘에 부추기까지 했다. 횟집 주방장을 실장님이라고 불렀는데, 자기 말로는 동부이천동이라는 부자동네에서 일하다가, 지인 부탁으로 이 후진 동네 횟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회 써는 실력을 봤는데, 사실 잘 몰랐다. 실장 대타로 온 주방장이 사시미를 든 모습을 보니 확실히 실장이 실력이 있는 사람인 것을 인정했다. 아라이 아줌마나, 시다바리인 나를 잘 다뤘다. 손님에게 깨지고 오면 웃고 있어도 기분이 나쁜 것을 알았고, 아줌마가 나에게 그만 둔다고 말했을 때, 이제 아줌마 그만둘 때 되었는데, 라고 먼저 눈치를 챘다.

한 달 동안 계속 작은 주방 안에 있으니, 저절로 실장에게 마음이 열렸다. 매일 비싼 회를 사장 몰래 몇 점 씩 먹여주고, 다른 직원들은 식사로 자장면을 먹었는데, 나는 회덮밥 아님 미소시루를 직접 끓여줘 밥을 먹였다. 실장도 나를 좋아하는 눈치다.

월급날 실장도 월급날 이었나 보다. 고기집으로 데려가서 나에게 갈매기살을 먹였다.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다가, 학교, 군대, 취업 등 앞으로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물어봤다.

사실 나는 시나리오 작가, 영화 감독이 되고 싶었다. 목표는 졸업 전 등단이었지만, 매 공모전마다 탈락하고 있고, 핑계지만, 글 쓸 시간이 없고 열심히 써 본 글도 없다고 말했다. 이 과를 나와서 어디에 취직해야 할지 말해주는 사람이 한명도 없고, 윗 선배들은 군인 아님 백수가 대부분이라 뭐라 물어보기도 그랬다. 과 임원이니 동아리 회장이니 너무 바쁘기만 하고 얻는 것이 없다고 투덜대니, 내 말에 공감했다. 당장 학교 그만두고 회 써는 기술을 배우란다. 주먹도 크고 깡이 있어 물고기 목은 잘 칠거라며 농담을 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나고, 다시 한번 실장과 둘이 술을 마시게 되었다. 불과 일을 그만 두기 일주일 전쯤 이었는데, 그걸 기념하며 술을 마셨다. 진짜 그만두냐고 계속 일을 하라며 농담을 던졌지만, 나는 근심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 차라리 군 휴학을 하고 군대에 다녀와 졸업할까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던 때이다. 정말 일을 계속 할까요? 일식 배울까요? 라고 물어보니 정색하며 화를 내고는, 너 진짜 하고 싶은 것이 뭐였냐고 물어봤다. 시나리오 작가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걸 계속 기억하고 있으란다. 중졸, 고졸 중국집 실장들, 사고쳐 퇴학당한 배달원들을 말하며, 낮은 곳에서 일하라고 대학에 온 것도 아니고, 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방황하냐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란다.

그러곤 마지막 출근 전 날, 실장이 나를 불렀다.

너 남주 임마, 내일 이후로는 다시는 가게에 오지마. 손님으로도 오지 말고 누나 집 와도 가게는 쳐다도 보지 말고 가라.”

정말 이렇게 말했다. 사실은 조금 서운했다. 다른 직원들 보다 정이 많이 쌓였는데 가게에 다시는 오지 말라니. 왜냐고 물어보니, 이유가 있었다. 어느 이유로 오든 내가 흔들릴 거란다.

에이~ 안그래요 멋있는 척 하지마세요

라고 말하고, 마지막 출근 하는 날이 왔다. 일을 마치며 퇴근할 때 평소와 달리 고생하셨다고 하지 않고, 서로 눈인사만 주고 받았다.

눈 감았다가 눈 뜨면 출근하고, 진상 손님들이 많아 굉장히 힘들었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가게를 떠올릴 때면 실장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작은 아빠뻘 이지만, 재밌게 일했고 마음을 다 잡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럭에 소주를 먹고 싶다.

 

떠오르다



얼마 전 문학의 밤이라 불린 졸업작품전이 끝났다. 2년간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들이 막을 내린 것이다. 앞으로 한 달 간의 수업이 어떨지, 내가 나태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콘셉트의 짧은 영상이 관객들에게 박수를 받을 때, ‘이상이라는 역할로 마지막 무대에 주인공으로 올라 누군가에게 감동을 줬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물론 나 혼자의 힘도 아니었고 함께해준 친구들, 교수님들께도 감사했다. 그 날 학교 기숙사로 와 잠을 청했지만, 늦은 새벽까지 잠에 들지 못했다. 전날 기분 좋은 떨림으로 잠을 못 잔건 사실이지만, 모든 것이 잘 끝났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2년이 아쉬워서 일까.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장안대학교. 낯선 타지 생활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다.

버스는 어떻게 타야할 것이며, 지하철은 어떻게 환승하는 것인지, 친구들은 어떻게 사귀어야 할지. 교수님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잘 보일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과 함께 첫 강의를 듣고 남자 신입생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중국음식점에서 음식이 늦게나와 첫 강의부터 지각해 야단날까 무서워했던 일이 기억났다. 1학년, 2학년 다니며 경험한 일들이 내 머리를 스쳤다. 밤을 새서 과제를 하고, 다 들킬 일이지만 몰래 수업을 도망가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지냈지만 2년이 조용히 지나간 것 보다는 훨씬 의미 있었고, 아직 어리지만, 1년 사이 금방 성장한 것 같다. 새내기 때 어려웠던 복학생 선배들이 2학년 졸업생이 되니 동기라는 사실이 웃겼고, 후배들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지금도 낯간지럽지만 그 말이 나를 더 자극시킨 것 같다.

2년 동안 함께 했던 사람들이 한 달 후 모두 자기 길을 찾아 떠난다. 나처럼 군대에 가지 않은 남자들은 군대에 갈 것이고, 나머지는 취업을 하거나, 편입 혹은 3-4학년 과정을 밟아 더 공부를 한다고 들었다. 다들 집이 멀어 늦게까지 놀지 못하고, 모난 성격 때문에 원만하게 지내지는 못했지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동안 좁은 강의실에서 부딪히던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워 잠에 들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듣기 싫었던 강의도, 보기 싫었던 교수님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자주 보지 못하니까, 남은 한 달을 소중히 생각해야겠다.

요즈음 나뿐만 아니라 동기들이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 만이 볼 수 있다라는 책이 내 방 책장에 꽂혀있던 것을 보며 자랐다. 심오한 제목 때문인지, 책을 펼쳐보지도 꺼내보지도 않았지만, 아침에 일어나며, 방에 와 잠이 들 때 항상 저 문구를 읽었다. 내가 글을 읽을 수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고향에 내려갈 때 마다 저 문구를 본다. 저자가 궁금해 검색해보니 김수덕 수필가의 작품이란다. 본문 중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 만이 볼 수 있다. 새벽이 오리라는 것을 알아도 눈을 뜨지 않으면 여전히 깊은 밤중일 뿐이다. 라는 문구가 있다. 새벽, 이 글을 쓰는 시간 나에게 가장 와 닿고 앞으로 나 말고도 나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준 사람들에게도 바치고 싶은 문구이다. 미명은 지났고, 이제는 환히 비출 여명이라는 것을.


응모자:이남주

전화번호:010-5384-4826

이메일:promulgat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