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22회 창작 콘테스트 수필 응모

by 쌍호 posted Apr 0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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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병아리, 허울좋은 집 2편을 수필부문에 응모하고자 합니다.

수고하십시요.

햇병아리


입학식이다. 단상을 중앙으로 입학생은 앞으로, 맞아주는 재학생은 뒤에 섰다. 신기함과 설렘을 담은 부모님들과 신입생 병아리들은 서로 떨어지지 못한다. 행사사진을 찍는 일을 해야 하는 나의 눈에는 아이들의 정렬된 모습이 예뻐 보일 듯싶은데 서로들 손을 놓지 못해 지렁이 기어가는 줄을 만들어낸다.

식행사를 알리며 마이크에서 “1학년 차렷소리가 들린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 다시 크게 불러도 누구도 대답이 없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부르는 소리라는 것조차 인식을 못 한다. 앞에 계시던 담임선생님이 대답하는 거라고 말해주니 대답이 나오기 시작한다.

빈 가방에 실내화 가방을 준비물로 들고 학교란 이름표만을 인식한 입학생처럼 논산에서 여백 시간을 채우고 공사 중이라 입소식도 없이 훈련장으로 들어오라는 방송에 맞춰 자석에 끌려가는 철가루처럼 짧은 머리들 속으로 사라진 아들이 생각났다.

아들은 방학에 맞추어 휴학 신청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군대 이야기를 피하는 듯 친구들과 어울리며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이틀을 남겨놓고 마지막이라며 친구들의 배웅 속에 머리를 깎고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출발하기 전날 가방에 준비물을 챙기며 군대에서 속옷은 편해야 한다면서 체형이 같은 친구가 자신의 사이즈를 알려 주더라며 입을 열었다. 아들을 먼저 군대 보낸 지인이 물품에 이름을 적어야 하니 펜을 꼭 챙겨주라던 말이 생각나 펜을 넣어주며 한 번 살피라니 넣을 게 딱히 없단다.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급여도 주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나라가 주는 물건을 써야 하는 나라의 아들이니 가져갈 것은 없나 싶다.

나는 고등학교시절에 군인도 경찰도 멋있게만 보이던 시절에 군대 생활체험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극기 훈련이라고 여름방학을 이용해 같은 도내에 있는 육군부대에 가서 스스로 군인 복장을 챙겨 입고 군인들의 훈련을 체험했다. 몸치인 나는 군화도 매지 못해 처음 보는 친구들한테 물어가며 군대 비상식량을 처음 보듯 새로움에 보낸 하루조차도 힘들었던 기억이다.

힘든 하루의 기억이 아니라도 친구들과 함께 즐거워하며 성인식을 치르고 어른이 된 것처럼 자신을 내세워가는 젊은 혈기의 아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조차도 자신의 맘대로 할 수 없게 되는 사실을 애석해하면서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배워가며 나라 지키는 일꾼으로 잠시 데릴 아들로 빌려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해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짧은 머리가 이유는 아닐 것 같은데 감기에 걸린 몸으로 입소식에 참가하고자 군에서 휴가 나온 친구와 마지막 저녁마저도 밖에서 반 밤을 보내고 왔다. 훈련을 받으러 가는 몸이니 푹 쉬고 갔으면 싶건만. 조금은 걱정이 되는 듯 수긍을 해가는 아들을 보면서 눈물보이지 말자며 나를 다독였다.

모든 사람이 군대 얘기의 서두에 요즘 군대는 너무 좋아졌다라고 말한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얘기를 해도 내 발에 채이기 전에는 그 아픔을 못 느끼듯이 모든 젊은이가 행하는 절차에 무엇이 이리도 눈물을 만들어 내는 것인지. 모두가 해내는 일이라면서 당연히 받아들일 법도 한데 헤어지는 입영소 안에는 없던 신이라도 만들어 자식을 부탁하고 싶은 절박한 눈물들로 출렁이는지, 입학생 엄마들처럼 나 또한 내 자식만 보고 있음을 알았다.

아들을 들여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등록절차도 허락되지 않은 육군훈련소 사이트에 편지쓰기와 사진스케치를 두들겨 보았다. 연결된 검색어를 보다가 <김별아>라는 작가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아 얼마 전에 <스무 살 아들에게> 라는 책을 발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음날 서점에 들러 구매를 하자마자 눈물을 훔치면서도 하루 만에 읽었다.

군대로 강연을 다니면서 군대란 곳을 일반인들보다는 잘 알고 있는 작가가 아들의 군 생활의 일정을 공감하며 써 내려간 글이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다. 아들을 생각하면 말없이 흐르는 눈물의 의미도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맑아진 눈으로 아들 손전화기를 열었다. 아들 카톡에 빠이빠이란 인사로 웃는 아들 얼굴을 보면서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 웃었다. 초등생 아들에게 집안일을 돕지 않는 남편 들으라고 크게아들아, 너희들 세대는 아빠처럼 하다가는 여자한테 밥 얻어먹기 힘들 거야라고 말하자 대답한 아들의 말이다. “나랏일을 하면 밥을 해 주겠죠?”

 

 

 

 

 

 

 

 

 

 

 

 

 

허울 좋은 집


일요일 아침이다. 동물농장이란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주인만 없으면 집안을 난장판을 만드는 개, 주인을 공격하는 개를 비롯해 여러 방법으로 주인들을 괴롭힌다. 공동치료를 위한 공간에서 개들에게 각자의 컨넬을 주고 들여보내는 것이다. 개들이 조련사의 지시대로 정해진 컨넬 안으로 들어가는데 덩치가 큰 난폭한 개는 꼼짝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방을 거부하는 것이다.

조련사는 개들의 좋은 집은 자신의 몸집 크기보다 조금만 더 크게 해서 편안한 마음이 들도록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자신의 몸에 비해 집이 크면 적이 들어와 해칠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생각해 불안해하기 때문이란다.

사람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공간이 최고일 것이다.

이천삼백만 원. 프리미엄을 받는 쪽이면 좋겠다. 기존 전세 계약금까지 포기하면서 백만 원의 손해를 더한 것이다. 게으름이 부른 금액이다. 시내에 갈 일이 있는 남편한테 분양계약을 하라니 시내에 집이 넘쳐서 아들의 진학 학교가 결정 나면 하자고 한다. 내가 하루의 휴가를 내서 다녀만 갔어도, 구경하던 전셋집이 좁다고 우기는 남편을 꺾었더라면 지불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도시생활은 작은 집에서 애들 교육에 전념하고 훗날에 원하는 집을 마련해보겠다는 나의 생각과 달랐다. 고등학교생활을 하숙으로 보낸 경험이 있는 남편은 가족이 함께 하는 것으로 아들을 응원하겠다는 마음이다.

새 아파트로 이사라는 기본 모양이라도 꾸리려니 벅차다. 장거리 교통비와 생활비로 기존의 소비를 훨씬 넘어 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비의 높이가 키워지고 대출금까지 안았으니 분에 넘치는 일을 벌인 것이다. 맹모도 맹부도 아닌 무늬 삼천지교를 위해 허울 좋은 집을 선택하는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무표정한 새 집에 이사를 했을 때의 냄새, ()에 대한 불편함이 커진다. 일하고 절약해 통장에 한 줄씩 채우면 걱정으로 쌓인 마음의 산도 깎이면서 편안한 집을 만들 수 있을까 싶다.

술을 못하고 수다가 즐겁지도 않아 모임을 챙기지 못하는 내게 책과 메모하기는 작은 일상의 위안이었다. 그 습관들이 싫지 않았다. 기분 나쁜 일도 나열을 하다보면 기분 나쁜 원인도 찾아내고 나의 실수도 인정하게 되거나 인내를 발휘하게도 된다. 이렇게 나를 알아가는 것이 글이라는 것을 느꼈다. 글을 쓰기로 했다. 나를 알아 무엇을 할 것인가? 갈등도 생겼다. 내가 주장하는 나와 타인이 알고 있는 나는 다른 형태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것이 삶인 것을. 가장 힘든 일은 내가 하려는 일이고 가장 쉬운 일은 남이 하는 일인지라 용기인지 객기인지를 부린 듯싶다.

쓰고 단맛에 미혹함이 없어 글쓰기를 시작하기에 좋다고 말하는 불혹이 되면서 커지기 시작한 집이다. 하늘의 뜻을 아는 지천명이 되어서도 갈대처럼 흔들리는 나를 바라보자면 더욱 절실하다.

글쓰기. 글집은 어찌하면 허울을 벗고 편안한 나를 담은 활자가 되어 나타날까?

글쓰기의 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 마지막 장면을 39번이나 고쳐 썼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지바고>10년에 걸쳐 썼다고 한다.

처음 대하는 우리말 풀이를 사전에서 읽으며 경이감을 느끼며 쓰는 욕심보다는 책을 읽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많은 작가들도 언제나 굶주린 이처럼 배고파하듯 깊은 고뇌를 통해 토해낸다는 글들을 대하며 많은 공감을 얻었다.

타인의 글에 공감하고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는 것이 글이라면, 활자체를 보며 울고 웃는 나처럼 나의 글이 타인에게 흘러갈 수 있을까?

그냥 보이는 대로 쓰는 것이라고 하여 편할 줄 알았다. ‘글을 쓰자란 말을 뱉으면서 그 말이 글밭의 문지기가 되어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채우는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미루기도 했다. 채운 것이 보이지 않는다. 봄 시장에서 갓 삶은 채로 사 왔는데 볕에 수분기 빠져가는 고사리처럼 내 마음은 미동 없이 단단하게 굳어만 간다. 편하게 쓰자던 것이 편하지 않음을 알았을 때 나를 드러낼 용기가 필요함을 알았다.

글쓰기가 내게 딱 맞는 집이 아닐 수도 있겠다. 아무도 공감하지 못한 채 내게 보내는 편지처럼 어색하고 무리한 출발이 되어, 펜을 굴리는 일 자체가 나도 알 수 없는 미안함을 만들어내고, 지나간 날들에 뒤통수를 긁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니면 큰집에서 허우적거리는 내 소리에 남들이 힘들어하는 코골이 소리를 내며, 꿈에 젖어 글의 근원도 모른 채 아집의 헛된 감정 놀이 같은 이명을 들으며 허울 좋은 글집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읽고 적는다. 한 줄씩 그어지는 부채탕감이 허울을 벗겨가듯 나는 읽는다. 천양희와 같은 글집은 못 짓지만 값없는 책을 읽는 날들로 같은 부유함을 누리는 행복을 즐긴다.

이 행복에 용기를 내어 연암 박지원의 이명과 코골이를 주춧돌 삼아 허울 좋은 글집의 기초를 다지는 공사를 시작해볼까 한다.

 

 

 

 

 

 

 

 

 

 

 

 

 

성명: 이정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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