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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0 14:39

할머니와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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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양말>

 

 

우리 집 옷장 서랍, 첫번째 칸에는 나의 보물이 잔뜩 들어있다. 보물이라고 해봐야 1000, 2000원짜리들이다. 바로 흔하디 흔한 양말. 서랍장은 양말창고다. 헌 양말이 아닌 새 양말이 서랍 가득 채워져 있다. 양말을 모으는 취미가 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서랍장의 양말들은 내가 간직할 것들이 아니라 어딘가 혹은 누군가에게 떠나보내어야 할 것들이다. 양말을 사고 모으고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습성은 나의 할머니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 연휴가 되면 어김없이 화성 조암에 사시는 친가 댁에 서른 명이 넘는 친척들로 북적북적했다. 사촌이 모두 모이면 열 둘은 되었고 다같이 일렬로 서서 고운 한복입고 어른들께 새배하고 새뱃돈 받는 즐거움이 있었다. 우리 집안만 특별한 명절풍습이랄 것은 없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특별한 명절 준비는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해마다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 손주들을 위하여 조암 장에 나가서 양말을 사오셨다. 색색의 고운 양말을 검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사갖고 와서는 나눠주셨다. 새배를 하면 새뱃돈 대신 양말을 한 켤레씩 주셨다. 며느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명절날 작은 엄마 여섯이 모두 시어머니가 주시는 양말 한 켤레에 아이처럼 좋아하던 얼굴이 떠오른다.

 

어릴 때는 할머니가 명절날 주시는 양말이 그토록 소중했다. 할머니가 사주신 보송보송한 새 양말을 신을 때의 보드라운 감촉이란하지만 머리가 커지고, 10대가 되고 부터는 흔해 빠진 양말 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 되었다. 어느 날부터는 명절에도 할머니 댁에 가지 않았고, 결혼 후에는 더더욱 명절 날 친가를 가는 일이 없어졌다. 그리고 나를 비롯하여 사촌들이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후 3대가 함께 명절을 보내는 일은 완전히 사라졌다. 할머니가 설날 주시던 양말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갔을 무렵 어느 해였던가. 결혼하고 3년 만에 아이를 낳고 오랜만에 할머니 댁을 찾았다. 증손주를 처음 보여드리기 위해서였다. 나는 할머니의 첫 손녀딸이었고, 내 아이는 할머니의 첫 증손자다. 할머니와 손녀과 증손자가 만나게 된 그날 나는 처음으로 할머니의 서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할머니는 오랜만에 온 나를 반기며 서랍에서 주섬주섬 양말을 챙겨주셨다. 갖고 싶은 것을 고르라고 하였다. 서랍 가득 웬 양말이 그렇게나 많은지, “할머니, 왜이렇게 양말이 많아?” 여쭈었다. 그랬더니 너네들 언제 올지 몰라서 매년 명절마다 장에 가서 샀더니 이렇게 쌓였다. 너 아들 낳았다고 해서 애기 양말도 샀다.” 라고 하신다. 그 순간 나는 얼음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말문을 열 수도 없었다. 잠시 가만히 할머니의 서랍장에 담긴 양말을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줄 수 있을까 오지도 않을 손주들의 양말까지, 심지어는 얼굴도 보지 못한 증손자의 양말까지 사가지고 서랍에 쟁여 두셨던 거다. 할머니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이었을까? 십 년 넘게 받지 못했던 할머니의 양말을 그날 한 봉지 가득 받아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도 할머니의 양말 서랍을 보게 된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양말 세일하는 코너에 가면 500, 1000원짜리 양말을 사곤 했다. 겨울에 신는 수면양말 여름용 덧신까지 종류별로 생각날 적마다 사왔다. 그리고 언제 누구에게 줄 것인지 생각하지 않고 양말을 모았다. 그리고는 모임이 있거나 사람들을 만날 때, 누군가에게 간단히 선물하고 싶을 때 양말을 들고 가서 나눠준다. 우리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낡은 팬티 한 장 입고 떠난 엄마>

 

한 인터넷 육아 카페에 중고 벼룩시장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게시판이 있다. 지역 엄마들의 커뮤니티이며, 쓰지 않는 물건들을 사고 파는 장이기 때문에 나도 곧잘 이용하는 편이다. 사진을 찍어 올린 후 연락처를 적어 두면, 직거래 혹은 택배로 물건을 교환한다. 나도 가끔씩 누군가 나의 물건을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어 글을 올린다. 며칠 전에는 수 년 된 인켈 중고 cd 카세트 플레이어를 올려놓았다. 짐만 차지하는 물건이라는 생각에 7-8만원 주고 샀던 제품이지만 세월의 흐름도 있고 하여 12000원 가격을 책정하여 사진을 올렸다.

 

그런데 카세트 플레이어를 <팝니다> 게시판에 올린지 10분도 안되어 여러 분이 댓글로 문의사항을 남겼다. 수고스럽지만 일일이 답변을 달아드린 후 하겠다는 사람이 정확히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 한 분이 문자로 조심스럽게, ‘혹시 내일 찾으러 가도 될까요? 돈은 그 때 드릴께요...’ 라고 보내왔다. 나는 즉시 좋다고 답변을 남기고, 다음 날 12시에 약속을 정했다.

 

12시에 물건을 가지러 온다는 약속을 했는데, 30분이 지나도록 산다는 사람이 오지 않았다. 조금 기분이 나빠질 무렵에 문자를 다시 한 번 보내어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을 했다. 그랬더니 아침부터 아이 둘을 챙기느라 정신이 없어서요... 조금 더 기다려 주시면 1시까지 갈께요라고 말한다. 어차피 일요일 오후 별다른 약속이 없기에 기다리겠다고 했다. 시간이 되었을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601동 앞에 와 있다고 말이다. 카세트를 들고 집 밖으로 나갔다. 멀리서 한 아이 엄마가 보인다. 등에 업은 남자 아이가 하나 있고, 한 손으로 딸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남은 한 손엔 기저귀 가방을 들고서 말이다. 당연히 엄마의 얼굴은 초라한 민낯이고, 아이 둘 챙겨가지고 나오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반가운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아주대학교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고 한다. 갑자기 가슴이 찡해왔다. 12000원짜리 중고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기 위해 아이 둘을 업고 안고, 버스를 타고 뜨거운 여름 한 낮 집을 나선 아이 엄마의 모습. 택배비 몇 천원이 아까와서 직접 찾으러 온 것일 수도 있고, 아이와 외출하고 바람쐴 겸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몇 만원하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저렴하게 샀다는 마음에서인지 아이 엄마는 흡족한 표정으로 12000원을 건냈다. cd플레이어가 고장이 나서 싼 것을 찾고 있었는데 벼룩시장에서 저렴히 구입하게 되어서 고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괜시리 미안했다. 집에 들어와서 시원한 음료수 한 잔이라도 대접할껄 하는 마음도 들고, 두 아이까지 데리고 왔는데 덤으로 물건 몇 개 정도 더 챙겨주면 좋았을껄 후회도 했다. 돈만 덥석 받아들고, 인사만 하고 뒤돌아서는데 마음이 울컥했다. 그 엄마의 모습에서 오래 전 친엄마의 모습을 보았던 것 같다.

 

낡아서 구멍이 날 정도로 삶고 또 삶아댄 엄마의 팬티만 기억이 난다. 엄마는 그 팬티 한 장 입고, 응급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하도 빨고, 삶아서 후들후들 낡은 팬티 한 장 입고 세상 떠난 엄마. 공장에 불이 나고, 온 몸에 화상을 입은 엄마의 마지막 모습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한 장의 사진처럼 정지되어 있다.

 

세 아이를 위해 아빠와 공장에서 죽도록 일만 하다가 삼십대 초반 생을 마감한 억울한 엄마의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 걸까? 엄마를 지독히 그리워하지만, 엄마처럼 살다가 죽고 싶지 않은 두 마음이 내 속에 있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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