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콘테스트

오늘:
8
어제:
37
전체:
305,666

접속자현황

  • 1위. 후리지어
    65662점
  • 2위. 뻘건눈의토끼
    23333점
  • 3위. 靑雲
    18945점
  • 4위. 백암현상엽
    17074점
  • 5위. 농촌시인
    12042점
  • 6위. 결바람78
    11485점
  • 7위. 마사루
    11385점
  • 8위. 엑셀
    10614점
  • 9위. 키다리
    9494점
  • 10위. 오드리
    8414점
  • 11위. 송옥
    7661점
  • 12위. 은유시인
    7601점
  • 13위. 산들
    7490점
  • 14위. 예각
    3459점
  • 15위. 김류하
    3149점
  • 16위. 돌고래
    2741점
  • 17위. 이쁜이
    2237점
  • 18위. 풋사과
    1908점
  • 19위. 유성
    1740점
  • 20위. 상록수
    1289점
조회 수 38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사진과 죽음에 관한 에세이

"어린 시절에 나는 운동장에 혼자 남아있길 좋아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간 텅 빈 그곳에서,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우리 모두는 언젠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봄볕 따사로운 주말 하오. 아내와 함께 월명동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현장을 찾았다. 개봉된지 벌써 8년이 지났지만 어느 차고를 개조했다는 사진관 자리는 그대로였다. 그러나 인적이 없는 거리는 쓸쓸했고, 근처 맥주 집 '8월의 크리스마스' 간판은 빛바랜 흑백사진 같았다. 어쩔 수 없는 일,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게 하나라도 있던가?

 

감동이 컸던 탓 일게다. 비록 픽션이고 이미 여러 해가 지났지만 젊은 사진사 정원(한석규)과 주차요원 다림(심 은하)의 모습이 선명히 떠올랐다. 아마 다림도 소식이 끊긴 정원을 생각하며 이랬을 거다. 잠시 거리를 걸었다.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스쳐갔다. 젊은 사진사 모습도 떠올랐다. 죽음과 사진이라! 차 안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빙그레 웃었다. "당신, 영락없이 영화감독 같구려."

 

멜로 하면 역시 정 소영 감독의 <미워도 다시 한 번>이다. 진부한 통속 멜로지만 얼마나 많은 여성들의 누선을 자극했던가. 남녀의 가치관이나 우리사회 자체가 영화 상황과 흡사했던 탓이다. 제 아무리 대단한 화제작도 세월 앞에선 빛바랜 추억 같은 것, 이제 진부한 스토리는 더 이상 어필할 수 없다. 영화 수준이며, 관객들의 눈높이, 세월 따라 사회적 가치관까지 모두 변했으니 말이다. 이럴 즈음 허진호 감독은 깔끔한 영상을 통해 한국 멜로영화 수준을 한 차원 격상시켰다.

 

<8월의 크리스마스>는 일단 멜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은 사진과 죽음에 관한 한 편의 에세이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사진과 역사를 만들었다. 물론 이것들에 앞서 종교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처럼 다소 별난 경우를 빼놓고는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이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처지다.

 

사진사 정원의 내레이션대로, 우리는 어느 날 우연히 세상에 왔다가 다시 떠난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無)로 돌아가는 거다. 無란 결국 하얀 백지와도 같은 것일 텐데, 그렇다면 다시 돌아갈 그곳은 밑도 끝도 없는 막연한 곳, 어느 것 하나 의지 할 데 없는 두려운 곳이 아닐까?

-1-

인간은 뭔가 의지하고자 하는 대상을 찾던 끝에 마침내 종교를 떠올렸다. 종교란 전지전능한 신에 기댐으로써 공포를 덜고, 나아가 내세에서의 영생불사를 희구한다. 사실상 중세까지만 해도 이런 생각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한 현대인은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해 종교 자리에 역사와 사진을 대치했다. 언젠가 사라질 운명이지만 역사를 통해 살아온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역사는 단순한 기록을 뛰어넘어 현재를 변화시키고, 두려운 죽음조차 적극적으로 극복 한다. 이 점은 사진도 마찬가지다.

 

어떤 순간을 기념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곤 하는데, 사진은 생생한 지금, 현재 상태를 보존하고자 하는 행위다. 세월 따라 나이 들지만, 현재의 순간들을 보존함으로서 시간을 뛰어넘는다. 그러니 사진은 종교나 역사처럼 무로 변하는 인간의 삶을 영속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시간,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을 고정시키기. 변하는 시간을 현재화함으로써 삶의 무상함을 뛰어넘기,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확대하기. 이를 소설화 한 것이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다. 그렇다면 사진은?

 

찬란한 생의 이면에 죽음이 있듯이 삶은 역설과 아이러니의 연속이다. 결코 오래 살고 싶다 해서 살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게 또한 인생이다. 8월 염천에 크리스마스라니, 제목부터가 이미 삶의 부조리(不條理, absurd)와 아이러니를 내포하고 있다.

 

안락한 노후를 꿈꾸던 이가 한순간 교통사고로 죽는 일이 다반사이듯, 행복과 불행, 탄생과 죽음, 슬픔과 기쁨, 부자와 가난 등 인생은 아이러니 투성이다. 사진은 바로 이런 삶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앞에서 사진은 종교, 역사와 더불어 영생을 소망하는데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사진 찍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의식을 하든 안 하든 사진을 찍는 이들 곁엔 공통적으로 비극적인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허진호 감독은 이런 죽음 가까이에 사진을 정교하게 배치한다. 가령 가족사진을 찍고 난 할머니가 다시 찾아와 더욱 예쁜 모습으로 찍히길 원한다. 사진사인 정원 역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찍는다.

늙은 아버지와 함께 찍는 가족사진, 생기발랄한 어느 소녀와 다림,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정원, 친구들과의 기념사진 등 모든 사진 속엔 삶과 죽음이 사이좋게 공존한다.

 

 

친구들과 찍은 유쾌한 기념사진이지만, 그 가운덴 머지않아 죽을 친구가 함께 있고, 생기발랄한 다림 역시 퇴색된 사진의 주인공으로 남을 것이다. 결국 사진을 찍거나 찍히거나 간에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을 운명인 거다.

 

다시 물어보자. 과연 사진은 현재를 영원히 고정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사진은 단지 사진일 뿐이다. 물론 생동하는 어느 순간을 고정시키긴 하지만 사진은 결국 죽은 사물일 뿐이다. -2-

"누렇게 변하고, 빛깔이 바래고 희미해져 마침내는 어느 날 쓰레기와 함께 버려질 이 어머니의 사진과 더불어, 도대체 그 무엇이 사라지고 없어질 것인가? 생명뿐만 아니라, 때로는 사랑조차도 사라지는 것이다.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함께 찍은 단 한 장의 사진 앞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영원히 사라지려 하는 것은 바로 보물과도 같은 사랑이라고. 왜냐하면 내가 이미 죽은 뒤에 어느 누구도 그 사랑을 증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무심한 자연만이 남을 것이다. 그것은 그다지도 날카롭고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기 때문에...." (1-105)

 

앞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는 죽음과 사진을 주제로 한다고 했다. 영화는 죽음과 사진을 모티브처럼 반복한다. 우선 다림은 죽음의 이미지와는 전혀 무관한 생기발랄한 여성이다. 아름다움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고 실제 그렇게 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원이 그렇듯 다림 역시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이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으니까. 여기서 허진호 감독은 젊은 사진사의 죽음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결국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또 고안해낸 장치들이 효과가 없다면 차라리 용도 폐기하는 게 낫다. 허진호는 죽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보다 담담한 태도로 수용한다. "동양적 죽음을 묘사한 영화"라고 한 칸느의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타당하다. 버드란트 러셀의 말이다.

 

"나는 내가 죽으면 썩어 없어질 뿐 나의 에고 따위가 남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내 나이 젊지는 않지만 삶을 사랑 한다. 그러나 내가 허무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공포로 몸을 떠는 모습에 대해선 경멸한다. 행복이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 건 그것에 끝이 있기 때문이며, 사고나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들이 제 가치를 잃는 것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수대에 올라가서도 당당하게 처신했다. 세상에서 인간의 위치가 어디인지에 대해 진실하게 사고하도록 우리를 가르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당당함이다." (2- 82)

 

내 뒤를 이어 자식이 대신한다. 삶이란 허무하게 끝나지 않고 되풀이된다. 들에 핀 이름 없는 풀을 봐라. 저 혼자 왔다가 슬며시 혼자 사라지지 않던가? 알베르 카뮈의 영화 <흑인 오르페>의 한 장면이다. 사랑하던 여자 에우리디체가 죽자 오르페는 저 세상까지 찾아간다. 그러나 이미 죽은 자와 산 자의 자리는 서로 다르다. 땅을 치고 통곡해본들 다시 살릴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실망할 일이 아니다.

어느 무덤 곁에서 기타를 치며 춤을 추는 어린 소녀와 소년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랑하는 연인은 언젠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지만 자식들이 뒤를 잇고, 그들과 똑같이 삶과 사랑을 반복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지만, 그렇다고 들에 핀 한 포기 풀 보다 나으라는 법이 있던가? 무릇 자연 가운데서 인간만이 유별날 이유는 없다. 만약 자연의 한 구성원에 불과하다면 죽음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은 분명 두렵고 허무하지만, 자식을 생각하노라면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어느덧 세월은 흐르고 애틋했던 사랑조차 잊혀갈 즈음, 다림은 초원사진관을 찾는다. 그 옛날 추억이 서린 사진관 자리를 잠시 바라본다. 겨울. 무성한 가로수가 아닌 하얀 눈이다.

-3-

사진 속의 사랑은 이제 떠나고 없다. 한순간의 꿈이었다. 소설가 김연수 식으로 말하면 긴 농담이다. 그러나 따스했던 농담. 문득 흑백사진에 눈길이 미친다. 정원이 찍은 사진 한 장. 환희 웃고 있는 다림의 모습이다. 좋았던 시절! 이윽고 발길을 돌린 다림이 서서히 화면에서 사라진다. 한 포기의 풀이 말없이 사라지듯이, 그렇게.

 

 

 

 

 

 

 

  * 결혼시장과 여성의 사랑

“재산깨나 있는 독신 남자에게 아내가 꼭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진리다. 이런 남자가 이웃이 되면 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의 모른다고 해도, 이 진리가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너무나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를 자기네 딸들 가운데 하나가 차지해야 할 재산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서두 문장이다. 영문학사에서 오랫동안 회자되는 유명한 귀절인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이 단순히 여성의 결혼과 사랑만을 다룬 감상적 소설 이상으로 추켜진다. 즉 결혼과 사랑을 구체적인 현실 문제와 관련해서 정면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소설은 베넷 가의 네 딸과 그들의 인척 혹은 주변 여성들의 사랑과 결혼 과정이 스토리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큰 딸 제인과 둘째인 엘리자벳의 결혼 내용이 주가 된다. 결국 다아시와 엘리자벳이라는 환상커플의 행복한 맺음으로 소설은 끝나지만, 근대 영국사회의 지배계층인 젠트리가를 비롯해 엄숙함과 도덕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빅토리 시대 직전의 다소 자유분방한 영국의 세태풍속을 엿볼 수 있는 점이 흥미를 끈다. 또한 당시로서는 진보적 사고를 소유한 작가 제인 오스틴의 분신이자 주인공이기도 한 엘리자벳이라는 캐릭터는 오늘날 페미니즘 문학에서도 충분히 논의될만한 선진적인 인물이다.

 

주인공 커플의 결합은 요즘 티브이 드라마가 즐겨 다루는 소재다. 그래서인지 <오만과 편견>은 오래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된 적이 있고, 최근에는 조 라이트 감독의 동명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쉬운 부분은 작가가 적극 옹호한 엘리자벳의 지적탐색 과정이 거의 배제된 점이다.

 

사실 엘리자벳이라는 캐릭터는 지나치게 현실적 가치에만 밝은 여성으로 부각된 감이 있다. 이를테면 은희경 소설속에 자주 등장하는 현실과 처세에 밝고 영악스럽게 느껴지는 인물 같다는 거다. 물론 엘리자벳은 사려가 깊고, 우아한 성품을 지닌 아주 매력적인 여성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그녀가 지닌 교양은 당시 영국 젠트리 계급의 일반적 교양 정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연전에 문학모임에서 <오만과 편견>을 주제로 토론을 하던 중, 여성 멤버인 K씨가 자신의 이상적인 결혼관을 피력하자 이내 비현실적이라며 반박이 뒤따랐다. 아닌게 아니라 당시 K씨의 생각은 지극히 이상주의적이었다.

-1-

그런데 기이한 것은 크리스천들이 오매불망 천국가기를 열망하는 것에 대해서는 결코 이상주의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종교적 믿음에 따른 확신의 바람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모든 종교는 현실의 대척점에 있고 현실을 타기의 대상으로 여긴다. 죽음 후에 도달하는 영원의 세계, 즉 천국이야말로 유일하게 행복이 영속적으로 보장되는 장소다. 그래서 이들의 천국 소망을 결코 비현실적이라 말하지 않는 것은 실제화 될 수 있는 현실적 바람이라 인정한 때문일 것이다.

 

같은 이치로, 앞서 K씨가 피력한 이상적 결혼관은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결코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바람을 확신을 갖고 피력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녀가 말한 결혼관이 비록 타인에게 이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자신으로서는 당연한 생각을 말한 것이고, 실제 그런 주장을 행동으로 옮길 터이니 말이다. 즉 이상과 현실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거다.

 

예술이 그렇듯이 종교적 이상이나 우리네 이상 역시 결국 현실화 될 것이라고 확신하면 언젠가 실제 현실이 될 게 아닌가. 따라서 어떤 대상이 바라는 대로 될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갖는다면, 단순히 이상주의적이라고 몰아 부칠 수 없다는 거다. 그러나 사실로 말하면 K 씨의 생각이 현실화되기엔 실제 현실의 벽이 너무 높다. 그래서 이상주의적이라고 반박한 것일 테지만.... 아마 갈수록 돈과 신분 학벌 따위가 보다 분명한 결혼의 척도가 될 것이다.

 

비록 진지함과 열정어린 태도로 자신의 이상적인 결혼관을 소개한 K씨의 모습이 의연하게 보이긴 했지만 각박한 현실을 생각하노라니 괜히 쓸쓸한 기분이 든다.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부부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그리고 실제 하는 걸까? 소설가 로저 그르니에는 주인을 따르는 개만이 유일하게 사랑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부부는 물론이고 매혹적인 정부(情夫)의 사랑 역시 순수한 사랑이 아니고, 나아가 자식 사랑조차 덤으로 생긴 것이라고 한다. 하기사 허구한 날 벌어지는 부부싸움에 자식들과의 갈등을 떠올리다보면 대체 사랑이 무엇인지 의문이 들긴 한다.

 

"우리가 자식을 가지는 것은 그 미래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 어떤 기획이나 투쟁을 계속 밀고 가기 위하여, 그들을 만인의 미래인 인간들로 만들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언젠가 그들을 자유로운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 자신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을 낳는다. 적어도 생각은 그렇게 하고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사랑은 덤으로 생기는 것이다. 흔히들 상상하는 것과는 반대로 사랑은 즉각적으로, 억제할 수 없이, 그러나 덤으로 끼여드는 것이다. 때로 남편과 아내 사이에 있는 것이라는 어떤 출발점이나 구실, 최초의 작은 계기가 전부인 경우도 있지만 누구나 다 알 듯이 그런 것마저 없을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그것이 둘을 맺어주는 접착제가 될 수도 있고,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반면에 개는 어떤가? 개은 오히려 일종의 연인 혹은 정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연인이나 정부마저도 순수한 사랑이 아닌 그 무엇을 가져다준다. 어떤 삶의 비밀스러운 영광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이 옳은 것이건 그른 것이건 간에. 인간들 사이에는 순수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는 그렇지 않다. 개는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 받기 위해서 가지는 것이다. 그뿐, 다른 것은 없다. 심지어 처음에 다른 목적을 가졌다 하더라도 끝은 항상 사랑이다. 사람이 개를 가지고 만든 것이 바로 그것, 즉 사랑이다."

 

 

* 성명: 조 율연

* 이메일: yulyun@hanmail.net

* 연락처: 010-3456-3867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월간문학 한국인] 창작콘테스트-수필 공모게시판 이용안내 6 file korean 2014.07.16 2769
792 진지 2 file 문학사랑 2014.07.17 2574
791 청솔모님 만세 2 file 죽송 2014.07.23 711
790 어머니의 시준단지 외 2편 싸이렌 2015.08.05 599
789 내 나이가 어때서-수필(2편) 1 스토리텔러 2015.06.14 598
788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외 1편 장굴 2015.06.10 504
787 제5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응모작 햐수 2015.06.09 489
786 어느 시인의 귀농 일기/ 중국인 친구 안방 아버지의나무 2015.01.13 473
785 우정 여행 첫 번째. 블루레몬티 맛이 나는 겨울 바다 / 장윤희 이도의꽃 2015.01.23 459
784 #2. 노찬성과 에반 1 주열매 2016.11.30 437
783 아, 실장님 외 1편 응모합니다. 1 이남주 2014.11.28 422
782 바둑을 두며 외1편 심삼일 2015.02.06 420
781 수필 2편(생일, 오일장) file 완산 2014.08.28 415
780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외1편 file 장명희 2015.01.21 411
779 i.m.f 외 1편 데레사 2015.08.10 409
778 어떤 고백 문학a형 2014.12.04 409
777 까치가 울면 이슬처럼 2014.09.10 402
776 할머니와 양말 file 샹그릴라 2015.01.10 392
» 사진과죽음에 관한 에세이 외1편 진포 2015.01.30 389
774 제 5차 창작콘테스트 수필부문 > 별을 보는 아이 / 밤에서 낮까지 2 에프5 2015.05.17 382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40 Next
/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