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우리는 가끔 가까이에 있는 것에 고마움을 모르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가까이 있는 것에 소중함을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이 없음에 불편함을 느낄 때나 아쉬울 때 그렇습니다. 물이나 공기처럼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당연한 것처럼 여기며 소중함을 모른 듯 우리 몸의 일부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컨대 나의 발도 마찬가지입니다. 발은 참 고생입니다. 그리 통통하진 않고 두껍지 않은 작은 체구로 내 몸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마치 세상의 무게와 책임을 받치고 있는 것처럼 몸의 중심 아래엔 발이 있습니다. 개선장군마냥 두발로 세상을 딱 버티고 서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천대를 받으면서도 잘 모르는 곳, 가장 깊은 곳, 낮은 곳에 존재합니다.
발을 들여다보면, 원인 모를 멍 자국과 날선 핏줄들, 위로 향한 엄지발톱, 그리고 뒤꿈치의 딱딱한 굳은살, 여름내 태양에 검게 타버린 발가락이 보입니다. 전쟁에서 열심히 싸운 군인처럼 말입니다.
원인 모를 멍 자국은 언제 어디에서 부딪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동그란 형태를 보이면서 마치 칭찬도장같이 새겨져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참으로 열심히 했나 봅니다. 날선 핏줄들은 얇디얇은 피부 속에서 핏줄과 뼈들이 엉켜져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성난 것처럼 아우성입니다. 심장에서 발끝까지 가기 위한 역동성이 느껴집니다. 위로 향한 엄지발톱은 태어날 때부터 그러했습니다. 사랑을 갈구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어떤 날은 양말의 답답함마저 뚫고 부끄러운 듯 얼굴을 빼꼼히 내밉니다. 구멍도 매번 그 자리에서만 납니다. 뒤꿈치의 딱딱한 굳은살과 검게 타버린 발가락은 여름 내내 샌들만 신고 다녀서 그렇다고 제 스스로를 변명해 봅니다. 딱딱한 굳은살에는 튼튼한 하얀 갑옷을 입고 어떤 공격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후방을 지킵니다. 검게 타버린 발가락은 키 순서대로 오형제가 나란히 골고루 시커멓습니다. 우애 좋은 형제들처럼 말입니다.
참 볼품없습니다. 올 여름은 무던히도 덥고 힘들었습니다. 그만큼 발도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여름뿐이겠습니까? 겨울에는 어떻습니까? 답답한 신발 속에서 긴 시간을 버텨야 할 때가 태반입니다. 어떨 때는 한없이 불쌍하고 어떨 때는 슬픕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버텨준 것이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어느새 멍은 그러려니 하고 핏줄은 그나마 잘 보이니 발은 살이 안 쪘다고 안도합니다. 그리고 엄지발톱은 타고난 것이 그래서 앞으로도 양말의 엄지발톱부분만 구멍이 생길 것입니다. 뒤꿈치 굳은살은 이미 나와 한 몸이 되어 떨어질 줄 모릅니다. 아무리 닦고 밀어 봐도 소용없습니다. 검은 발가락도 겨울에는 하얗게 변하겠지 라고 생각하고 체념하고 받아들입니다.
발은 저에겐 상체보다 무거운 하체를 떠받들어 주고 어디론가 자유롭게 데려다주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제 이 무거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 노력하지만 쉽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발에게 참 미안해집니다. 그래도 발은 영원히 함께해야 할 내 동반자이며 동업자입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이제는 고보습 크림으로 발을 더 쓰다듬어 주고 더 많이 사랑해주고 아껴줘야겠습니다.
난꽃
어렸을 때 언제부터인지 아버지는 집에서 난을 키우셨습니다. 왜 키우셨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는 참으로 열심히 난을 애지중지 자식처럼 키우셨습니다.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희미하고 흐릿한 기억 속에서 아버지는 조금의 먼지도 허락 안하실 듯 열심히 헝겊으로 곧게 뻗은 잎을 닦고 또 닦으셨습니다. 물은 자주 줘서도 안되고 너무 안줘도 안되서 까다롭게 물을 주셨습니다. 난을 떠받들고 있는 화분조차 평범하지 않고 도자기스럽고 고급스러운 곳에 난을 정착시켰습니다.
너무 열심히 관리 하셔서 어린 내 눈에는 재미없는 난 키우기 취미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고상한 취미를 가진 아버지를 어머니는 귀찮아하셨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집도 좁은데 키우기도 까다로운 난이 엄청 귀찮고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저보고 키우라고 했으면 몇 칠 못가서 난이 죽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몇 년 전 임신도 한 김에 태교에 도움이 되고자 그리고 감정의 메마름을 느끼고 집에서 식물이나 꽃을 키우고 싶어서 꽃 화분을 산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도전했는데, 어느새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기 되었습니다. 죽어버린 꽃 화분을 보면서 마음 한편으로 꽃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집에서 더 이상 식물을 기르지 않습니다.
어느날 아버지의 정성이 난에게 닿았는지 열심히 키운 난은 애벌레에서 나비가 태어나듯 한 마리 나비같은 모양의 꽃을 세상에 살포시 보여 주었습 니다. 색깔과 모양이 얼마나 아름답고 예쁘던지, 어린 나는 너무 신기하고 황홀했었습니다. 난이 꽃을 피우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그랬는데, 진짜로 좋은 일이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납니다. 그렇지만 우리 가족이 큰일 없이 건강하게 지낸 걸 보니 그 말도 맞은 것 같습니다. 참으로 좋은 추억입니다.
지금은 집도 더 넓어지고 좋아졌지만 아버지는 난을 키우지 않습니다. 그 또한 이유를 모르고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어릴 적 나의 그 경험은 아직까지도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아마 그때부터 인가 봅니다. 식물을 잘 키우지는 못하지만 보고만 있어도 기분 좋아지고 눈과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길을 가다 보도블록 사이에 핀 들꽃이나 담장에 핀 장미꽃등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우리네 인생도 살아가다 보면 어렵고 힘든 일이 있을 것입니다. 비록 그 일을 해결할 수 없어도 바라만 봐도 기분 좋은 꽃과 식물이 있다는 것은 어쪄면 행운인 것 같습니다.
이 름 : 강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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