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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룸


어둠이 깔리고 한참이 지난 어느 가을의 저녁, 매일 조금씩 차가워져 가는 밤바람은 늦은 귀가 길의 사람들의 옷깃을 여미게 만들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바쁘게 만든다. 하루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은 가볍고, 경쾌하다. 모두가 길거리의 어둠을 피해 따뜻한 집의 형광등 불빛으로 향하는 그때, 나는 무거움 발걸음을 끌며, 내가 사는 동네의 골목길을 들어선다. 회색 시멘트 바닥과 할로겐 냄새가 날 것만 같은 가로등 불빛을 보면서 귀가를 하는 나의 발걸음 소리가 조용한 원룸촌의 건물 벽을 타고 골목길을 파고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좁은 공간 11평의 나만의 아지트로 길잡이를 한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여 올라온 G공업 도시, 나는 이곳의 이방인이다. 입사 후 삼 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지만, 25년 넘게 살아온 떠나온 고향이 내가 사는 곳이며, 지금쯤 9시 뉴스를 보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하고 계신 부모님이 사는 고향집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이다. 3년이라는 시간을 여기 G공업도시 원룸에서 살았지만 단 한번도 내 집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혼자서 좁은 공간에 자신을 가두고 살아간다. 경제적인 이유, 학업이나 일자리, 또는 젊은 혈기에 독립을 꿈꾸며 원룸촌을 찾아 든다. 나의 경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기도 하고, 회사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와 좁은 공간을 나누면서 사는 것이 싫기도 하였고, 혼자서 생활하는 것이 막연하게 멋있고 자유로울 것 같다는 치기 어린 생각도 분명 있었다.

 3 302, 비밀번호는 4324, 나는 내 방문을 열고 들어와 원룸 안을 쓱 살펴보았다. 어질러진 책상, 항상 바닥에 깔려있는 이불, 그리고, 아침에 벗어놓고 나간 옷가지들, 아침에 출근한 이후 단 한가지도 바뀐 게 없다. 심지어 공기마저도 똑같다. 아침에 샤워하고 맡았던 습기 찬 욕실 냄새가 확 풍겨진다. 가만히 서 있자 현관 등이 꺼지고, 나는 익숙하게 어둠 속에서도 형광등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한다. 컴퓨터를 켜고, 옷을 갈아입고, 보일러를 돌리고, 샤워를 하고, 빨래가 말랐는지 확인하고, 냉장고 문을 열어 먹을 것이 있나 확인을 한다. 냉장고 안에는 과일, 오렌지 주스, 계란 두 개가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냉장고 안에 뭐가 있는지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안을 들여다보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늦은 퇴근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피곤을 먹는 것으로 풀려고 했는데 냉장고가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근처 편의점에 가서 뭔가 사야 할 것 같다.

일본 출장을 갔을 때 놀란 것 중 하나가 너무나 많은 편의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편의점 출점 거리제한을 두어야 할 정도로 과밀 되어 있고, 경쟁이 치열하다고 하는데 일본은 더 많은 편의점이 있었고, 운영도 잘 되고 있었다. 아마도 1인 가구가 더 많고, 자가용이 그렇게 많지 않아 대형 마트를 이용하는 사람도 적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각에는 우리나라도 경제가 계속 안 좋아지고, 고령화, 혼인율, 출산율 감소가 이어진다면, 곧 일본과 비슷하게 될 것 같다. 28.6% 1인 가구라 하니 어쩌면 몇 십 년 후엔 50%이상이 될 지도 모르겠다.

 샌달을 질질 끌며, 밖으로 나와 편의점으로 갔다. 근처에 편의점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행운이다. 혼자 사는 사람이 소량의 생필품을 사는 데 최적화 되어 있으며, 한밤중에 어두운 골목길 한 켠에서 불을 밝히고, 누군가 깨어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험한 세상에서 정말 위안이 된다. 원룸촌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범죄도 많지 않은가. 이 골목의 오아시스이고, 등대, 경비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편의점 사장님이 반갑게 눈인사를 한다. 나는 여기 편의점 단골이다.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물품을 여기서 구입하니까 자연히 왕래가 잦을 수 밖에 없고, 당연히 편의점 사장님과는 잘 알고 있다.

“오늘은 늦게 오셨네요.

“네, 요즘 일이 바빠서 빨리 퇴근하기가 어렵네요.

나는 인사말에 즉각적으로 대답하고, 언제나처럼 냉동만두와 샌드위치, 그리고,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다. 계산을 하는데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삼각김밥 두 개를 공짜로 받을 수 있었다. 늦은 밤 편의점을 방문하는 단골들만의 특권이다. 나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 비닐봉지에 삼각김밥과 방금 산 것들을 밀어 넣고, 빠르게 편의점을 나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까는 몰랐는데 문에 노란색 딱지가 붙어 있다. 가스 검침하러 왔는데 없어서 다음에 방문하겠다는 내용이다. 원룸에 혼자 살면서 몇 가지 곤란한 것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달마다 돌아오는 가스 검침이다. 낮에는 내가 출근하기 때문에 검침하러 와도 당연히 문을 열어줄 사람이 없고, 그렇다고 이 분이 내가 있는 밤이나 토,일요일에 오시는 것도 아니고, 전화로 언제 와 달라고 말씀 드려도, 나와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아서 제때 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몇 번의 약속 끝에 겨우 검침을 하고 나면 또 다음달 검침이 다가온다.

검침하는 사람도 불편하고, 받는 사람도 불편한데, 아직 관련 법안이나 행정은 다인 가구 위주로 되어 있으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최근에서야 앱을 사용하여 시범운영을 하고 있다고 하는데 빨리 확대, 정착이 되었으면 좋겠다.

 PC를 켜고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면서 주섬주섬 사 온 것들을 먹을 준비를 한다. 냉동만두는 전자렌지에 돌리고, 삼각김밥은 그냥 먹기로 하였다. 샌드위치는 일단 냉장고로. 이렇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식사를 하면 그래도 외로운 것을 잠깐 잊을 수가 있었다. 혼자서 먹는 것, 방해 받지 않고, 혼자 내 뱃속을 채우는 행위는 자유롭기는 하나, 반복되다 보면 입을 단지 먹는 것에만 사용하고 있는 모습에 울적해지고, 외로워진다. 그래서, 혼자서 요리를 해 먹는 경우가 별로 없다. 어차피 외롭게 먹어야 되는데 가급적이면 간편하게 먹는 게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이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방 안에 쓰레기들이 제법 눈에 보인다. 빈 페트병, 어제 받은 택배 박스, 그리고 방금 먹은 것들의 포장지 등등, 쓰레기 봉투를 꺼내 집어 넣는데 애매하다. 가장 작은 봉투를 샀는데도 2/3정도 밖에 차지 않는다. 지금 버리자니 돈 주고 산 쓰레기 봉투가 아깝고, 나중에 버리자니 냄새가 방 안에 밸까 겁난다. 잠깐 고민하다가 쓰레기 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근처 전봇대에 어지럽게 쓰레기 봉투들이 널려있다. 이곳 주변의 원룸에 사는 사람들이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다. 아무도 이곳을 관리하지 않고, 그저 수거 차량이 와서 수거만 해 가기 때문에 이곳은 항상 지저분하다. 분리수거 같은 것은 전혀 기대할 수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대형 폐기물이나 음식물 쓰레기만 없어도 양호한 상황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는 않았지만 나도 분리수거를 하지는 못하고 있다. 2/3 봉지 봉투를 버리는 것도 아까운데 각각 나눠서 버리자면 여간 귀찮고, 돈이 드는 일이 아니다. 

편하게 살고 싶어서 찾아 온 원룸인데 이 정도되면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정말 내가 편하게 살고 있는 것 맞는지, 혹시나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고 있지는 않는지, 환경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원룸에 혼자 사는 이유가 간편하고, 편리하고, 자유롭기 위해서였는데, 막상 살아보니 혼자 살아서 불편하고, 외로운 것이 더 참기 힘든 일이다.

물론 더 작은 주거형태도 존재하지만, 한 사람에게 단 하나의 방만 허용된 최소한의 주거 공간, 이 곳에서 안주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힘들다. 담벼락 위에서 나를 지켜보는 검은 고양이가 나에게 빨리 들어가 쓰레기 좀 뒤지게. 라는 말이라도 해 준다면 외로움이 다소 줄어들 것만 같다.



왕따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


얼마 전 집단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투신해서 자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 생을 포기해 버릴 정도였다면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분한 마음도 들었는데 아마도 나 또한 왕따로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일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학년 초만 되면 시시한 이유 몇가지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다. 학우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인데 좀 지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오해가 풀렸기 때문에 일년 중 왕따 당하는 기간은 길어야 한 달 이었다. 하치만 그 한 달동안 절대 잊을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는 경제가 급성장하고,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설 준비를 하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가난하거나 공부를 못하거나 외모가 뒤떨어지기만 해도 곧잘 공식적인 집단 놀림감이 되고, 담임 선생님 마저도 비슷한 잣대로 차별을 가하던 그런 시기였다.

내가 왕따를 당한 이유는 가난한 집 자식으로 보이고, 공부도 못하게 보이고, 외모도 남들이 볼때 싫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학년 초 서로가 잘 모를때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서 일어나는 일종의 연례행사 같은 헤프닝 이었다.

아버님은 동네에서 규모는 작지만 목 좋은 위치의 개인병원 원장이었고. 당연히 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집안 재력은 되었고, 초등학교 때는 꽤나 성적도 좋았었다. 외모도 못생긴건 아닌데 주관적인 것이니 더는 얘기하지 않겠다.

문제는 우리 집 1층이 개인병원이고 2층이 생활하는 주거공간 이었기 때문에 사시사철 감기, 독감 등 전염병 환자가 끊이질 않았고 나는 거의 일년에 몇 달 정도만 제외하고는 감기 같은 병을 노상 달고 살았다. 그 시절 아폴로 눈병도 흔한 전염병 이었는데 특히나 학기 초 초봄 환절기에 나는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쪅거리며, 눈병에 걸려 충열된 눈으로 등교하곤 했다. 동생이 둘이나 있고 엄청나게 검소한 부모님 덕분에 옷도 친척 형들의 옷을 물려받아 추레하였기에 가난한 집 아이로 의심 받았고, 결정적으로 도시락 반찬 때문에 없는 집 아이로 낙인 찍히곤 하였다.

각종 김치, 마늘 장아찌, 연근 조림, 깻잎, 콩자반 등등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가나 초등학생들이 싫어할 반찬을 싸오는 나를 친구들은 싫어했고, 당시 막 보급되던 줄줄이 비엔나나 참치캔 살 돈도 없냐는 모욕적인 말도 들어야 했다. 단지 아들의 건강을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준비한 어머님이 나에게 있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의사 아버지 덕분에 당시에는 흔치 않은 치아 교정도 하였는데 틀니라고 놀림 받는 경우도 많았다. 고른 치아를 위해 큰 돈을 들여 대학병원에서 엑스레이도 찍고, 본을 떠서 틀을 만들어 이에 끼우는 것을 부유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도 없는 돈지랄이었고, 아무리 설명해도 그런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친구들은 나를 이빨 병신으로 여겼다. 억울하였지만 내가 그들을 이해시키는건 불가능하였다.

일단 일이 이쯤되고 나면 나에 대한 헛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달동네로 하교하거나 등교하는 걸 봤다는 소문 말이다. 웃기는 일이었다. 실제로는 정원도 있고, 유리온실에 태양열 발전도 되는 당시로써는 아주 좋은 집에 살고 있었는데.... 학교 주변에 아파트 두 개가 있었다. A라는 약간 좋은 아파트와 B라는 평범한 아파트인데 A B아파트에 많은 친구들이 살았고, 위아랫물지듯 서로 잘 어울리지 않았다. 내가 볼 때는 매고른데 말이다. 달동네에 산다는 게 들키면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기 쉬웠다. 한 반에 정말 달동네에 사는 친구들이 한 둘은 있었는데 대체로 왕따였다.

보통의 친구들은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 내 흉을 보며, 머슬머슬하게 대하였다. 나쁜 친구들은 내 자리에 씹던 껌을 뱉어놓거나, 책에 낙서를 하거나, 괜히 싸움도 걸어왔다. 그런 서럽고 힘든 시간들은 가정환경조사가 끝나면, 또는 한 두 해전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얘기를 하던, 반 친구 중 한 명이 우리 집에 진료 받으러 왔다가 나를 만나면 사그라들었다. 부모님 손잡고 진료 받으러 왔다가 나랑 마주치고, 아버지에게 우리 반 친구라고 말하면, 그 친구는 얼굴빛이 하얗게 질리고,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었다.

이런 친구들이 여러 명 생겨야 비로소 왕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내 약점은 빠르게 퍼지고, 장점은 아주 느리게 소문이 돌았다. 신기한 일은 별것도 아닌 친구들이 눈치 없이 마지막까지 나를 괴롭힌다는 것이었다. 이런 친구들 중 몇몇은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마주친 적이 있다. 삼수까지 하고 대학교 같은 과 후배로 입학한 친구도 있었고, 회사 입사하고 외근 나갔다가 급하게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들린 패스트 푸드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친구도 있었고, 우리 회사 하청업체 견습사원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계속 그 친구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고, 상대방은 당황한 눈빛으로 끝끝내 내 시선을 외면하였다. 글쎄, 나라면 그냥 당당하게 사과할 것 같다. 5, 10년이 지난 일을 사과할 용기도 없는 사람이 나를 왜 그렇게 괴롭혔는지 모르겠다. 인생사 새옹지마인데,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매년 이런 일을 겪다 보니 결국 나는 학년 초가 되면 내 자랑을 먼저 늘어놓게 되었다. 같은 반 되어서 반갑다. 어디 사냐? 나는 XX병원이 우리 집이다. 공부는 잘하냐? 나는 작년에 우리 반에서 3등 정도였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작년에 같은 반이었던 친한 친구가 또 같은 반이 되면, 그 해는 운 좋게 왕따를 거의 당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나에게 대한 오해가 생기더라도 그 친구가 오해를 풀어주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는 학년초 왕따 당하는 기간이 많이 짧아졌다. 길어도 일주일이면 족했다. 머리가 굵어진 친구들이 좀 더 빠르게 사실을 알아채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는 도리어 그 동안 왕따의 여러 이유들이 도리어 장점이 되어 버려서, 빠르게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눈병이라도 걸리면, 조퇴하기 위해 손수건에 눈물을 찍어달라는 친구도 있었고, 내 맛없는 반찬을 정말로 맛있게 먹는 친구들이 생겨났다. 그 당시엔 이해가 안 되었지만, 부모님이 바쁘셔서 매일 인스턴트나 간편한 반찬만 먹어야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정말로 감동적인 맛이었을 것이다. 친척 형들 옷도 마찬가지였다. 부산의 유명 백화점에서 크게 사업을 하는 친척 집 형들 옷은 헌 옷 이지만, '명품'인 경우가 많았다. 기본 몇 십만 원짜리 브랜드의 청바지, , 신발을 신고 다니는 나를 많이들 부러워 하였다. 같은 반에 일진 친구가 있었는데 신발을 부러워하길래 왜 하나 줄까? 우리 집에 몇 개 있는데 라고 말했는데 도리어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였다.

나한테는 썩 유쾌한 기억이 아니지만 이렇게 글로 정리해 보는 까닭은 따돌림을 받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오만과 편견의 산물인지 알리고자 함이다. 국가대표 스케이트 선수들도 서로 따돌림을 하는 마당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오죽하랴. 또한 왕따 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는지를 내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알리고 싶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난 그저 아주 조금만 괴롭혔고, 그 정도는 가벼운 장난이 아니냐고. 하지만, 모든 범죄가 그렇듯 왕따를 당한 피해자가 직접 느끼는 정도는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그저 무시당하는 말 한마디 들었는데 이상하게 큰 마음의 상처가 되어버려서 평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밤에 자다가도 그 상황이 떠올라 벌떡 일어나서 괴로워 하는 일이 있었다. 아니, 지금도 가끔 그렇다.

원래부터 소심한 성격이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자존감도 떨어지고, 매사에 의기소침하고, 부정적이 되어 버린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러한 나 자신이 싫어서 나 자신을 긍정적이고, 밝게 바꾸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노력을 해 왔다. 싫어하는 축구나 야구도 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맡아서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학급위원이나 회사에서 다들 하기 싫어하는 공통업무를 맡는다든지 하는 것 말이다.

그렇긴 하여도 아직까지 전혀 극복하지 못한 게 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앞에서는 주눅이 든다. 또 왕따를 당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오버해서 나 자신을 소개하고,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과도하게 신경을 쓰고, 혹시나 나를 싫어하는 기색이 보이면 너무나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왜 이게 극복이 안 될까, 나름 고민해 보았는데 결국 학기 초 처음 학우들을 만날 때의 스트레스가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서, 아니 이제는 솔직히 그럴 자신도 없다. 나는 지금도 이사나 부서 이동, 이런 것들을 극도로 싫어한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 속에 던져지는 것이 너무나 싫다. 여러 야수들에게 둘러싸인 맨몸의 검투사가 된 기분이 되어 버린다.

후지코 F. 후지오, '도라에몽'이라는 만화의 작가인데 어린 시절 따돌림을 당한 자기 자신을 따듯하게 안아줄 그런 존재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주인공 진구와 그의 편 도라에몽을 그리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왕따가 되어 버리면 정말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줄, 내가 잘못했어도, 부족해도 따듯하게 안아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가 절실하다. 그러한 친구, 선생님, 부모님을 만나는 것이 쉬울 것 같지만 현실에서는 하나도 없다. 내 경우에는 그랬고, 옥상에서 뛰어내린 중학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말로 별다를 것 없이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인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그랬다. 적당히, 만만할 정도로 달라야 괴롭히지, 너무 많이 다르면 오히려 건드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노란 머리에 흰 피부, 갈색 눈을 가진 완전히 서양인의 외모를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 부모님과 누나는 우리와 같은 검은 머리에 검은 눈, 노란 피부를 가진 외관상 명백한 한국인 이었다. 졸업할 때까지 아무도 이 친구에게 너는 왜 부모님과 다르냐? 이런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답변과 상황을 아무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모르는 게 약이라 생각하고, 궁금증을 억누를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고,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권이 보장받는 사회에서 집단적인 따돌림은 미성숙한 인격의 발로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남들과 비슷하게 튀지 않는 삶을 미덕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왕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나간다면 어린 중학생이 집단 괴롭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는 않게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름 : 김석원

연락처 : 010-3156-9094

e-mail : dadaemby@naver.com


  • profile
    korean 2019.04.30 21:03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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