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차 창작콘테스트 수필 공모 - 꽃 외 1편

by 젤리 posted Apr 10,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군대를 다녀와서 복학한 그해 9. 떨리는 마음으로 학교 사람들을 마주했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변하지 않은 나의 소심함과 낯가림은 인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마치 후임들의 인사를 받듯이 차가운 표정으로 고개만 까딱거리며 후배들의 인사를 받았다.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소심함은 무심함으로 가면을 바꿔 쓰고 반갑게 먼저 인사를 하지도 그렇다고 예쁘게 인사를 받지도 못했다. 그렇게 나의 소심함게 가로막혀 제대로 된 인사를 해보지도 못하고 한 학기가 끝나고 말았다.


허무했다. 아직도 나는 변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상하기도 했다. 나도 반가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다음 학기에는 반드시 내가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하겠다고 절박한 마음으로 다짐했다.

방학 때는 용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자만, 잘 구해지지 않았다. 2달간의 방학기간 동안만 할 수 있는 일을 동네에서 찾는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렇게 아쉬운 하루를 보내던 중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자신이 아는 형이 아르바이트를 할 것을 제안했는데, 졸업식 시즌에 꽃을 파는 아르바이트였다. 일주일 정도만 하는 짧은 일이었지만, 당장 일을 구하지 못한 내게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꽃을 판매하는 일이 흥미롭기도 하면서 걱정이 되기도 했다.


졸업식 시즌인 2월이 되고, 꽃을 팔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미리 일러준 학교로 향했다. 사실 졸업식은 10시 이후에 시작해서 본격적으로 꽃을 팔 수 있는 시간은 9시부터 1030분 까지였다. 왜 이렇게 일찍 가야하는지 의문이었지만, 학교 앞에 도착해서는 바로 의문이 풀렸다. 다른 꽃가게에서 나온 사람들이 학교  앞에 미리 도착해 자리를 맡고 대기 하고 있었다.


함께 꽃을 파는 친구와 함께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학교가 반갑기도 했고, 내가 졸업한 학교에서 꽃을 판다는 것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걱정했던 대로 꽃을 파는 건 어렵고 낯설었다. 소심함에 3개월 동안 후배들에게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를 판매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입을 한 번 떼어 꽃을 사라는 말을 남들 눈치를 보며 개미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은 가만히 서서 꽃을 구경하고 가는 손님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고 한 개도 팔지 못해서 내일부터는 나오지 말라는 얘기를 듣게 될까봐 걱정이 되었다. 안되겠다 싶어, 능숙하게 꽃을 파는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리고 그들의 방법을 하나씩 따라하기로 했다. 그들은 큰 목소리로 꽃을 한 번 보고가라는 말과 어떤 꽃이 예쁘다는 말을 열심히 외치고 있었다.


"꽃 한 번 보고 가세요. 예쁜 꽃이 많아요. 목화꽃도 있어요"

그 당시 드라마 '도깨비'의 영향으로 목화꽃이 유행이었는데, 많은 손님들이 그 꽃을 찾곤 했다.


그렇게 적당한 호객 행위로 손님을 끌었다면, 가격을 강조해야 한다.

"이 꽃이 원래 꽃가게에서 직접 사시면 훨씬 비싼가격을 받아요.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둘러보세요"


이렇게 말하며 손님들이 다른 꽃을 보러가지 못하게 최대한 잡아둔다. 만약 손님이 비싸다는 표정과 떠나려는듯 몸을 움직이면 처음에는 쿨 하게 보내준다. 그러다 꽃을파는 시간이 끝나 갈 때 즈음 가격을 조금씩 낮추며 판다. 다른 가게에 민폐를 안끼치는 선에서 말이다. 어차피 생화라서 찬 바람을 맞아서 다시 돌아가면 쓸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파는게 이득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판매방법은 망설이는 손님에게 꽃말을 전해주는 것이다.


"프리지아, 이 꽃이 우정을 상징하거든요. 학생, 친구 졸업식 가는거죠? 그럼 프리지아가 가격도 괜찮고 예뻐서 좋아요"


그리고 졸업하는 학생의 연령대를 고려한 꽃 추천도 필수이다.


"자녀분이 초등학생이시면 이런 초콜릿이나 사탕, 장난감 달린 꽃을 좋아할거에요"


그리고 처음부터 어떤 꽃이 괜찮을지 고민하는 부모님들에게는 이렇게 얘기를 해준다.


"사실 꽃을 받는 순간 기분이 좋지만 졸업식은 약간 달라요. 너도 나도 꽃다발을 받는데, 그냥 받는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크지 않거든요. 받는게 당연한 상황이니까요. 졸업식 꽃은 사진을 찍었을 때도 예쁘게 나오는게 중요해요"


졸업식에서 꽃은 단순한 꽃 선물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하는지 비밀을 알려주듯이 일러준다.


"졸업식이라 가족들, 친구들, 선생님 정말 다양하게 사진 찍잖아요. 그럼 모두 웃으면서 예쁘게 나오는데, 하나 비교 되는게 바로 손에 들고있는 꽃다발이에요. 작은 안개꽃도 예쁘기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화려한 꽃다발을 받으면 상대적으로 빈약해 보이거든요. 이게 사진 찍을 때는 더 선명하게 드러나요. 괜히 내 아들, 딸만 허전해 보이면 속상하잖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풍성한 꽃다발을 추천해드립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손님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며, 다른 꽃보다 비싸지만 최대한 풍성한 꽃다발을 골라 계산한다.


이런 방법들을 보고 조금씩 따라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잘 하지 못했다. 목소리도 크게 못내고 우물쭈물 입만 웅얼거렸다. 그래도 확실히 전보다는 잘하고 있었다. 손님들에게 꽃을 추천하고, 어떤 꽃이 많이 팔리는지 얘기해주고, 졸업식에서의 꽃의 역할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방법들을 익히고 사용하면서 처음보다 조금씩 더 팔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적게 팔고 있었지만, 괜히 스스로가 대견했다.


그 때 어떤 할머님이 내게 다가와서 꽃을 보고 있었다. 나는 특별한 말없이 어떤 꽃을 고르실까 보고 있었다.


"꽃들이 다 예쁘네"


할머니는 꽃을 보며 말하셨다. 내가 준비한 꽃도 아니지만 기분이 좋아져서 대답했다.


"사장님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일일이 다 준비하신 거에요!"


모든 꽃가게가 그렇게 준비했을 터지만, 마치 내가 파는 꽃만이 그렇다는듯 얘기했다. 그리고 어떤 꽃들이 많이 팔렸고, 졸업하는 학생이 어떤 꽃을 좋아할지, 어떤 꽃이 색감이 좋을지 신이 나서 설명해 드렸다.


할머니는 곧 풍성한 꽃다발을 집어들며 가격을 물었보셨다.


"2만 원 입니다!"


나는 밝게 웃으며 할머니께 대답했다. 이 가격이 비싸다고 하신다면 통 크게 5천 원도 충분히 깎아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돈을 거내며 웃으셨다. 그리곤 돈을 받는 내게 한 마디 말을 건내셨다.


"꽃이 학생처럼 예쁘네"


순간 소심하고 대단하지도 않은 나의 작은 노력이 보상받고 인정받는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의 마음은 꽃보다 아름다웠다. 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꽃을 팔았다. 어쩌면 봄과 함께 시작되는 새학기에는 나도 새롭게 피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청춘이었다.


아쉬움이 사라진게 아쉽다


대학교 4학년이 되고나서는 학교생활은 더 이상 재밌지 않았다. 이미 졸업해버린 선배들과 더 이상 알지 못하는 후배들만 있는 곳에서 나는 곧 떠나야 할 사람이었다. 새로운 사람들로 학교가 채워지고 나와 함께 학교를 다니던 학생들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내가 1,2학 시절에 봐왔던 4학년 선배들처럼 지금은 나도 치열하게 학교를 다닐 수가 없었다. 이제 새로운 사회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 그런 압박 속에 자존감은 낮아지고, 내가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을 시작한게 무척 부끄러웠다. 나는 정말 놀기만 했구나.

 

혼자서 생각에 잠기는 날이 많아졌다. 더 이상 웃으면서 학교를 다니기가 힘들었다.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죽어지내는 것 같았다. 여태껏 죽어지내왔지만 실컷 놀기만 했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제 청년이라고도 못 불릴 나이에 나는 사회로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뒤늦게 내가 할 수 있는게 뭔지 고민하고 내가 좋아하는 일이 있는지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봐도 그런 일 따위는 없었다. 그냥 백수처럼 누워서 휴대폰을 보면서 낄낄거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는 것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할수록 스스로가 혐오스러웠고 나는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과연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게 있었다면 지금 이런 혐오감에 빠져있을까? 스스로 계속해서 꼬리를 물며 나를 죽여갔다.

이제는 정말 어른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누군가 나를 쫓아다니며 내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도망치듯이 학교를 다녔다. 누군가를 만나면 얼굴을 내리깔고 나를 숨기기 바빴다. 아마 이런게 요즘 흔히들 말하는 아싸라고, 겉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직 졸업을 하지 않은 수업을 같이 듣는 같은 학년의 후배들이 있었고, 다행히도 완벽한 외톨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요즘 내가 자존감이 낮아진 탓일까. 분명히 함께 실습조교도 하고, 즐겁게 웃고 떠들던 후배였는데 우리는 서로를 어색해했다. 그게 너무 불편하고 심지어는 함께 있음에도 외롭게 느껴졌다.

서로를 봐도 예전만큼 반갑지 않고 오히려 어색해했다. 더 이상 서로를 궁금해 하지 않아서 쉬는 시간에 대화를 나눌 일도 없었다. 나는 혼자 멍하니 있었고, 후배는 자신의 2명의 동기와 함께 대화를 나누거나 역시 혼자 휴대폰을 했다.

예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불과 2년 전의 모습.

 

오늘 지각했네? 어제 늦게잤어?”

, 어제 새벽까지 문화마케팅 수업 자료 조사하느라 늦게 잤어요. 너무 피곤해요.”

 

정말 일상적인 대화였다. 서로를 궁금해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던 때였다. 전혀 이상하거나 어색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딘지 불편함만 남았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느껴지는 어색함과는 뭔가 달랐다. 분명히 그런 종류의 어색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무뎌지곤 했고, 나조차도 곧 사라질 어색함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뭔가 달랐다. 지금 당장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나의 존재를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 역시 예전만큼의 뜨거운 마음으로 그를 대하지 않았다.

어떤 수업을 신청했는지, 오늘 입은 옷이 어떤지, 어떤 과제가 골치아픈지, 이따 수업 마치고 피씨방에 가지 않을건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을 나누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서로를 보기도 불편해져 버렸다.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후배도 역시 그런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곧 나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아쉬워하지 말자. 지금껏 그래왔듯이 어차피 이렇게 될 사이였겠지.’

사실 한 두 번은 아니었다. 그 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지인들을 많이 떠나보냈다. 그건 누구의 탓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냥 시간이 흘렀고, 다들 그 시간 속에 각자의 생활을 보냈고, 환경이 달라지면 다시 그 생활에 집중했을 뿐이다. 영원한 것은 영원이라는 단어뿐일는 말처럼 아무리 친한게 지낸 사람이라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진짜 관계가 드러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다.

 

내가 무너뜨린 관계가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관계와 비례했다. 내가 일방적으로 밀어낸 것은 아니고 시간이 나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 갈라지고 서로 소원해지게 했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다른 사람이 더 궁금하고 흥미롭게 만들었다. 1년 전까지 함께 술을 마시며 웃고 떠들던 친구는 이미 더 이상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 술을 마시자고,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자고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아마 그 호의가 다른 누구에게 향했을지도 모른다.

그때도 나는 똑같이 위로했다. ‘진짜 친구가 아니었던거지.’

먼저 어색함을 풀어버리고 예전처럼 사이를 되돌릴 용기도, 멀어지면서 단단하게 마음을 먹기도 힘들었던 나는 속에 겹겹이 쌓인 아쉬움과 외로움들로 넘쳐났다.

언제까지 이런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 건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이런 언제까지 허례한 관계만을 위해 내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걸까.

 

미친 듯이 외로워졌다. 이젠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며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이라도 후배에게 말을 걸고,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예전의 행복하고 편했던 관계가 그리웠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충분히 친구가 많거나 나를 대체할 누군가가 이미 있는 것 같았다.

 

과연 그들이 어색함을 견뎌내고 나랑 계속 관계를 유지하고 싶을까?’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들에게 좋은 친구인지 나도 확신할 수 없었다. 수없이 뱉어댔던 서로를 향한 웃음과 기쁨이 과연 영원할 수 있는건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또 천사와 악마가 나를 괴롭히듯이 한편으로는 이런 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얼른 네가 가야할 길이나 찾아라는 외침이 들렸다. 머릿속이 어지러웠고, 마음은 텅 빈 것 같았다.

 

그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들도 나를 아쉬워할까. 아쉬움이 사라진 관계를 아쉬워할까. 현실에 벽을 이제야 마주하고 있을까.



김현태

kht94423@naver.com

010-5749-7793


Articles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