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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호용정차

 


 업무 특성상 중국 출장이 많은 편이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면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일본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내 생각에는 중국이 더 가깝고도 먼 나라인 것 같다.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이 참전함으로써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되었고, 1992년 한중 수교 이전까지 사실상 갈 수 없는 곳 이었고, 인구도 많고 땅도 넓은 탓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하지 않고는 중국에 대해 잘 알기 어렵다. 

 

우리나라를 일컬어 금수강산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중국을 잘 알기 전에는 이 말에 동의할 수가 없었다. 중국에 와서 산과 강을 둘러보고 나서야 우리나라 산과 강이 정말로 깨끗하고, 소중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공기와 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중국의 황하나 양쯔강이나 모두 누런 황토 빛이며, 수돗물에도 석회가 들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커피 포트를 사용하고 나면, 다시 사용하기 위해 항상 청소를 해야만 하였다. 내가 가 본 중국의 대부분 지역은 공기도 좋지 않았다. 환경오염의 영향도 있고, 북쪽 몽고 고원의 건조한 바람과 모래 탓도 있다. 공기야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물이 좋지 않아 중국은 일찍부터 차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금번 중국 출장 후 복귀할 때 공항면세점에서 '서호용정차'를 구입하였다. 중국 출장이 잦아 항상 귀국할 때 어떤 기념품을 살까가 그간 큰 고민거리였었다. 마오타이주, 흑인치약, '르까오'라고 불리는 짝퉁 레고 등등 여러 가지를 사서 선물하기도 하고, 내가 쓰기도 하였지만 정말 이거다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싼 게 비지떡이라고 가격과 품질 두 가지가 다 만족스럽지는 못하였다.

 

 중국인들의 차 사랑은 유별나다.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차의 종주국이자, 최대 생산, 소비 국가이니 말이다. 한국인이 김치를 좋아하듯, 이탈리아인이 파스타를 좋아하듯, 차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아침 일찍 물통에 차를 타서 출근하고, 쉬는 시간마다 마시고, 짬짬이 다시 차를 타서 보충해 두고, 아예 물통을 보관하는 개인 사물함이 있는 회사도 많다.

업무적인 일로 현지 중국 업체를 방문하면, 대개 별도로 마련된 응접실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한다. 찻잔과 찻주전자(차호), 퇴수기 역할을 하는 차판, 남은 물이나 차를 붓는 차총 등으로 이루어진 아기자기한 다기세트를 마주하게 되면, 마치 소꿉장난을 하는 어린아이가 되어버리는 것 같다. 한국에서 이런 경우에 보던 종이컵이나 간단한 찻잔에 티백 차를 넣어 마시는 것 보다는 직접 주전자에 차를 넣고 끓이고, 잔에 따르고, 마시고, 남은 것을 붓고 하는 것이 번거롭지만 소소한 재미를 준다. 나와 같이 낯가림이 있는 사람에게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이렇게 손과 눈이 갈 곳이 많으면 어색함을 숨기기 좋다.

 

 재작년 여름에 중국 혜주로 출장을 갔을 때 일이다. 처음 방문하는 중국 협력사에 도착하여 더운 날씨에 차를 대접 받았는데, 그곳 사장님은 외국인에 나에게 중국의 차문화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해 주었다. '서호용정차'에 대한 설명도 그 날 처음 들었고, 처음 마셔보았다. 항주의 서호(西湖) 주변의 산에서 생산되는 차이고, 기온과 강수량이 좋은 지역이기 때문에 이 곳의 차가 아주 유명하다고 하였다. 매년 중국 내 10대 명차를 뽑는데 항상 10위 안에서도 상위권에 드는 차라고 하였다.

 

 '마시다'라는 동사는 중국어로 '()'를 쓰는데 다른 음료는 전부 ''라는 동사를 쓰지만 차를 마실 때 동사는 ''를 쓰기도 하고, '()'을 쓰기도 한다고 하였다. ''도 사용하냐고 하면, 차를 마실 때 입구()자가 세 개 모여서 ''이 되듯이 항상 찻잔의 차는 세 번에 나누어서 마셔야 한다고 하였다. 아무리 작은 잔의 차라도 한 번에 마시는 것은 제대로 된 차 마시는 방법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럴 듯 하다고 생각하는 중에 '()'에 대한 뜻도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라는 한자는 '풀초'자 밑에 '사람인'자 그리고, 아래에 '나무목'자로 이루어져 있는데 풀과 나무가 있는 곳에서 사람이 휴식을 취하듯 마시는 것이 차이기 때문에 이런 형상의 글자를 쓴다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차는 항상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 마시는 것이지, 일을 하거나, 그저 목이 마를 때 마시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였다.

 

 내가 알아듣지 못할까 봐 열심히 메모지에 한자까지 써가며, 설명하는 사장님을 통해 나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 중 가장 간단하면서도 의미 있는 차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자리에서 당장 나는 배운 대로 차를 세 번에 나눠 마시고, 차 마시는 동안은 업무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았다. 그 날 여러 잔을 마셨는데 한 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차를 마신 적은 처음이었다. 한 주전자를 혼자 다 마셨으니 말이다. 물론 맛이나 향도 아주 뛰어났다. 쓴 맛이 전혀 없고, 구수한 맛과 향이 났다. 많이 마셔도 전혀 질릴 것 같지 않은 담백한 맛이었다. 40도에 가까운 한 낮에 에어컨을 튼 응접실에서 마셨는데도, 차 본연의 따뜻하고, 상쾌함이 아주 많이 느껴졌다.

 

 귀국할 때 서호용정차를 사기 위해 가까운 중국 동료들에게 정보를 물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서호용정차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열에 일곱 여덟은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하였고, 이 차를 마셔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분명 훌륭한 차인 것은 맞는데 인지도가 낮은 것이 의아했으나, 내 나름대로 생각해서 내린 결론은 비싼 가격도 가격이거니와, 가격 대비 다른 차와 크게 맛의 차이가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차의 맛은 물, 끓이는 방법, 그리고 그 날의 날씨, 기분에도 영향을 받는다. 공연히 비싼 차를 접대하였는데, 상대방이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차는 '서호용정차'입니다. 라고 미리 알려줄 수도 있겠지만 모양 빠지는 일이고, 짝퉁이 판치는 중국에서 그런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줄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공항면세점에서 산 '서호용정차'는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중국차는 처음 사는 것이라 참치캔 만한 통에 든 것을 네 개 샀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하나씩 선물하고, 하나만 아내와 내가 '핀차'하였는데 다 마시기까지 꽤 오랜 기간이 걸렸다. 중국에서 본대로 한 주전자씩 끓여서 마시려니 4, 1살인 두 아이가 그럴만한 여유를 주지 않았다. 이 차를 마실 때마다 나는 마치 중국에 가 있는듯한 기분이 들어서 즐겨서 마시곤 하였고, 가끔씩 집에 손님이 오면 권하기도 하였다.

 

 중국은 깨끗한 물이 귀해서 이렇게 차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는데 똑같이 물이 좋지 않은 독일은 맥주를 만들어서 마신다. 중국 사람들이 나름 더 슬기롭게 몸에 해가 되지 않게 물을 마시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할 수 있고,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많이 있는데 '공차(貢茶)'라는 대만 차 매장이 있다. 크게 쓰여진 '공차(貢茶)'라는 한자를 볼 때마다 브랜드 명을 아주 잘 지었다고 감탄을 하곤 한다. '바칠 공', '차 차' 차를 바친다. 실제로는 차를 팔면서 바친다는 공손함을 나타내 고객을 높이고, 자신을 낮추는 아주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모비딕의 일등항해사 이름을 딴 '스타벅스' 따위는 비할 바가 못될 것이다.

 

 중국 차를 좋아하지만 내 생각에는 산마다 약수가 넘쳐나는 우리나라에서 굳이 차를 다려서 마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단지, 차를 마실 때 중국인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정도는 본받고 배울 만 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중국을 갈 기회가 많겠지만, 아직까지 내 마음 속 기념품 1,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드는 중국 특산품은 '서호용정차'이다. 예전 청나라 황제에게 진상하던 차인데, 황제가 된 듯한 기분을 잠시라도 느껴보는 것도 좋고, 혹시 또 옛 삼국지의 유비가 어머님을 위해 샀던 차가 바로 이 차 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풀과 나무 사이에서 휴식을 취하며, 이런 공상을 해 보는 것도 삶의 소소한 즐거움일 것이다.



■ 내 인생 최고의 칭찬



 지금까지 나를 가르친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만큼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시고, 내 인생에 좋은 영향을 끼치신 분은 없었다.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겠지만 그 분보다 내가 더 존경할 분을 만날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그 해 우리 학교로 전근 오셨기 때문에 4학년 첫 날이 첫 만남이었고, 첫 인상을 기억해보자면, 작지만 당당한 체구에 눈에 힘이 있으시고, 꽉 다문 입술 사이로 단호함과 힘이 느껴지고, 단정한 복장에 평범하지만 빈틈없어 보이는 30대 후반 여자 선생님이셨다. 누가 보더라도 교단이 어울리실 것만 같은 그런 모습이셨다.


 그 당시는 물리적인 체벌이 당연시 되던 시기였는데, 첫 일주일 동안 숙제 안 한 학생들을 때릴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을 하셨다. 체벌을 하지 않자 점점 숙제 안 하는 친구들이 늘어났고, 결국은 매를 드셨다. 조그마한 매로 손바닥을 때리면서도 때리고 나서 아프냐고 걱정스럽게 물어보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었다. 한 친구가 눈치 없이 아프다고 대답하자 본인 손을 매로 세게 때리고는 고개를 갸우뚱 하셨는데 그때, 나는 이 분이 지금까지의 다른 보통 선생님들보다 훨씬 뛰어난 인품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업도 열과 성의를 다해 가르치셨지만, 그것보다 더 강조한 것은 인성 교육과 기본적인 예절 교육이었다.


 첫 번째로 하신 일은 더 이상 부모님을 아빠, 엄마라고 부르지 말고, 최소한 아버지, 어머니로 높여 부르게 하셨다. 부모님은 가장 존경 받아야 하실 분인데 왜 다른 어른들을 대통령님, 선생님 이렇게 높여 부르면서 아빠, 엄마로 낮춰서 부르느냐, 감사와 존경을 담아 꼭 최소한 아버지, 어머니로 높여서 부르라고 하셨고, 한 달 내내 각 가정에 가정통신문을 보내서 결국 모두가 아버지, 어머니란 호칭을 쓰게 만드셨다.


 두 번째로는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면서 먹는 것 금지, 음식을 입에 넣을 때 외에는 입을 꼭 닫아서 다른 사람에게 입 안의 음식물을 보이게 하지 말 것, 그리고, 밥과 반찬을 남기지 말고 다 먹을 것을 지시하셨는데, 다른 것은 금방 지켜졌으나, 한참 반찬투정이 심할 때라 밥과 반찬을 남기지 않는 일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매번 점심시간 때 다 먹었는지 일일이 검사를 하셨는데, 50명이 넘는 아이들 도시락을 검사하는 것은 너무나 번거롭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는데, 집에 가서 자기 도시락은 자신이 직접 설거지를 하라고 하셨다. 우린 우리가 남긴 눌러 붙은 밥풀을 일일이 떼어내는 게 얼마나 짜증나는 일인지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나쁜 습관 하나가 고쳐졌다.


 일 년이 지나고, 그 다음해에는 한 살 아래의 내 여동생 반을 맡으셨는데 동생도 똑같은 것들을 배웠다. 아마 그 후로도 계속 교직 생활 내내 이러한 것들을 반복하셨을 것이다. 졸업 후에도 계속 연락을 드렸었다. 편지로, 전화로, 멀지 않은 곳에 사셔서 몇 번 찾아 뵌 적도 있었다.


 그 분이 나에게 하신 칭찬을 나는 절대 잊을 수가 없다. 대학교 1학년 때, 나는 정말로 자유로운 생활을 해 버렸다. 공부는 뒷전이고, 매일 친구들과 놀고, 밤 늦게까지 술 마시고 돌아다니곤 하였다. 이런 내가 걱정이었는지 어머니께서 내가 행여 나쁜 짓이라도 하게 될까 봐 걱정이라고 선생님께 말씀 드렸는데, 그 때 선생님께서는 아주 단호하게


"어머님, 지금까지 그렇게 착한 애는 본 적이 없습니다. 석원이는 절대로 십 원짜리 하나도 훔칠 애가 아닙니다.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라고 하셨다고 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서라도 그것보다 더 큰 칭찬을 듣지 못하였다. 살아오면서 때로는 비겁하거나 옹졸한 짓,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일들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항상 그 칭찬이 생각나서 나는 스스로 자책하고, 반성하면서 선한 일에 최대한 힘쓰며 지금껏 살아오고 있다.


 "우리 딸들이 아직 짝이 없으면 너한테 시집 보내겠는데, 다 짝이 생겨서 너무나 아쉽다."


 군대 가기 전, 만나 뵈었을 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인데 이것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당시 나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이성을 볼 때 외모를 최우선으로 따졌는데, 정말로 선생님 따님이라면 외모 정도는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참고로, 선생님 따님들은 다 나보다 서너 살이 많았다. 


 그 분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군대 제대 후 어머니와 같이 길을 걷다 우연히 마주친 때였다. 선생님 부군과 함께 맞은편에서 걸어오시는 걸 봤는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셨다. 초점 없는 눈과 헤 벌어진 입,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쭈뼛쭈뼛 다가서려는 나를 어머니께서 조용히 소매를 잡아 만류하셨다. 내가 군대에 있는 동안 선생님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고, 그 일로 충격을 받으셔서, 정신적인 병이 생기셨다고 하셨다. 그 후로 간간히 소식을 들었지만 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선생님, 꼭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뵙고 싶습니다. 저를 가르치신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지금도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을 할 때 문득문득 선생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합니다. 밥 공기의 마지막 한 톨 밥알을 먹을 때, 설거지를 할 때도 그렇습니다. 십 원짜리 동전을 볼 때도 가끔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습니다. 보여주신 크신 사랑과 믿음, 남에게 베풀며 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김석원


dadaemby@naver.com


010-3156-9094






 


 

  • profile
    korean 2019.06.30 21:30
    수고 많으셨습니다.
    더욱 분발하시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늘 건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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