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창작콘테스트 수필 공모 <종이 위 거북이들 >

by turtlelove2 posted Nov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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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위 거북이들

  거북이들이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날 난 초등학교 1학년이었다. 동네 마트에서 아무 생각 없이 마냥 동물을 길러보고 싶어 골랐던 2마리의 거북이들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지 전혀 몰랐다. 1학년...2학년...3학년...4학년...5학년... 시간은 하나만 녹여먹어야지 하다 어느새 다 먹는 문구점에서 파는 뼈다귀 사탕이 녹는 것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힘들 때면 거북이들이 있는 어항으로 달려가 거북이들에게 내 고민을 이야기했다. 거북이들은 큰 눈을 뙤록뙤록 굴리며 자신들의 어항을 바라보는 나를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아무럼 좋았다. 그냥 누군가에게 힘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거북이들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들의 눈빛으로 나를 다독여주었다. 나의 힘들었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6학년 때의 여름, 거북이 한 마리를 청계천에서 데려왔다. 우리 집에 있던 거북이 두 마리는 그 거북이들을 환영해주는 것 같았다. 그 시기쯤 나는 이미 거북이에 미쳐 있었다. 거북이가 있는 인형, 열쇠고리, 심지어는 작은 지우개까지. 거북이가 들어있으면 무엇이든지 사고 싶어 했다. 


 어느덧 중학교에 들어가든 해, 나는 부모님을 따라 베트남에서 살게 되었다. 거북이들은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한국에 있는 할머니 집에 머물게 되었다. 내 힘으로 어떻게 바꿀 수 없는 일이었다. 거북이들이 베트남으로 갈 때 비행기를 잘 탈 수 있을지도 몰랐고 세관 신고도 엄격했으니까. 거북이들과 내가 헤어지는 시간이 되었을 때, 캐리어를 옮기느라 너무 바빴던 나는 미처 거북이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했다. '다시 볼 수 있겠지. 한국에 영원히 안 오는 것도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면 찜찜한 기분을 덜어내려 했던 나는, 그 행동이 미래에 후회로 남을지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거북이들과 난, 생이별을 하고 말았다.


  베트남에서 생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거북이들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울수록 거북이들을 종이에 많이 그렸다. 우리 집 거북이들을 캐릭터처럼 만들어 만화도 그렸다. 그렇게 하면 정말 거북이들과 내가 실제로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거북이에 관련된 물품도 열심히 모았다. 모으면 모을수록 한국에 두고 온 세 마리의 거북이들에 대한 슬픔이 덜어지는 기분이 들어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베트남에서 생활한지 1년 반 쯤 되었을 때, 나는 세 마리의 거북이들에 대한 슬픔을 많이 덜어냈다. 거북이들에 대한 기억이 흐릿해지는 느낌이 드는 날도 있었다. 그렇게 난, 거북이들 없이 생활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한국에 겨울이 찾아왔을 때쯤, 나는 문득 거북이들이 생각 나 할머니에게 거북이들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할머니에게서 장문의 카톡 문자를 받았다. 거북이들 사진이구나 하며 재빨리 카톡을 읽은 나는, 잠깐동안 할머니가 보낸 카톡의 내용을 이해햐지 못했다.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하늘 나라로 갔다. 그런 표현들의 뜻이 내 머릿속에서 잘게 부서졌던 것 같았다. 잠시 뒤, 내 뇌가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뜻을 이해했다. 갑자기 온 몸이 확 뜨거워졌다. 쇠몽둥이가 내 심장을 관통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숨이 안 쉬어졌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믿기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다. 거북이들이 죽었다. 많이 아팠다...죄책감이 들었다. 거북이들을 지켜주지 못해서, 며칠 동안 거북이들이 죽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린 거북이 캐릭터도 볼 수가 없었다. 너무 슬펐다. 그렇게 울고 나니, 슬픔을 다 쏟고 나니, 천천히 거북이들의 죽음을 받아들일 용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던 거북이 캐릭터들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그 캐릭터들을 그리고 나니 거북이들이 종이 위에서 살아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깨달았다. 거북이들은 죽인 게 아니다. 종이 속으로 자신들의 세상을 옮겨가기만 한 것이다. 언제든지 연필을 잡고 거북이들을 그리기만 한다면 만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종이 위에서 거북이들은, 예전과 같이 힘들 때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좋은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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